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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모르반(Morvan)[1] |
출생 | 미상 |
사망 | 818년 브르타뉴 프리지악과 카하익스 사이 평원 |
재위 | 브르타뉴 왕국의 왕 |
미상 ~ 8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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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르타뉴인들이 프랑크 왕국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국왕으로 추대한 첫 번째 인물.2. 행적
이름인 모르반은 브르타뉴 모르비앙 지역의 르 파우에-랑고네트 주에 있는 모르반 언덕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8~9세기경, 브르타뉴인들은 프랑크 왕국의 지속적인 침략에 시달렸다. 753년 피피누스 3세가 브르타뉴로부터 반(Vannes) 백국을 탈취했고, 778년 카롤루스 대제는 렌, 낭트를 추가로 공략한 후 반 일대와 묶어서 브르타뉴 총독령을 신설했다. 브르타뉴 총독령은 브르타뉴인들이 프랑크 본토를 습격하는 걸 저지하는 동시에, 프랑크 왕국에 직접적으로 복속하지 않은 브르타뉴인들을 지속적으로 침략해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렌과 반 일대 사이에 둘러싸인 알레 일대는 프랑크군에게 집중적으로 습격당해 큰 피해를 입었다. 또한 카롤루스 대제는 브르타뉴 내 프랑크인을 늘리고 조공을 바치는 대가로 자치권을 부여받았던 브르타뉴인들에게 막대한 공물을 바치라고 강요했다.이러한 카롤루스 대제의 강압 정책에 시달리던 브르타뉴인들은 814년 1월 카롤루스 1세가 사망하자 모르반을 브르타뉴 왕으로 추대하고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818년,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프랑크 왕위에 오른 루도비쿠스 1세는 상당한 군대를 이끌고 반으로 진군한 뒤 그곳을 주둔지로 삼았다. 이후 브르타뉴로 진군해 반군의 모든 요새를 공략하고 브르타뉴 전역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모르반은 루도비쿠스 1세의 공세를 피해 달아났지만 프리지악과 카하익스 사이 평원에서 초슬론(Choslon)이라는 종자에게 살해되었고, 브르타뉴인들은 루도비쿠스 1세에게 굴복했다. 전승에 따르면, 모르반은 브르타뉴 랑고네트의 케르맹 고분 아래에 묻혔다고 한다.
[1] 일부 기록에는 무르만(Murman) 또는 모르만(Morman)으로 기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