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면서 절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게 부모다. 자기 가족 빼고 모든 일에 다 참견하는 아빠 춘필과 하프 혼혈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쿼터. 속된 말로 튀기다.
외모가 눈에 띄는 것도 싫은데 집은 또 모텔이다. 평범하지 않은 태생, 평범하지 않은 부모, 평범하지 않은 집. 그래서 늘 따라붙는 수군거림. 무시하는 척, 태연한 척, 강한 척했지만 시선에 예민했고, 상처받았고, 분노했다. 여기만 아니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스무 살이 되는 해의 첫날 모텔 캘리포니아를 박차고 무작정 상경한다.
독한 스모키 화장의 가면을 쓰고 지하 고시텔에서 저 높은 곳만 바라보며 살아온 서울살이 10년. 드디어 땅 위 원룸도 얻고, 지강희 이름 석 자 파인 명함도 얻고, 날 더 큰 세상으로 이끌어줄 것 같은 남자도 만났는데... 처음으로 총책임을 맡은 현장이 하필이면 시골 촌구석, 버리고 떠나온 모텔 캘리포니아 바로 앞이다.
일하러 온 첫날 첫사랑 머슴애와 마주치는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엄습하더니 봉인해둔 어마어마한 습관과 감당할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 폭풍처럼 강희를 강타한다.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하는 첫사랑 판타지의 주인공. 순정남이자 하나읍 최고의 짐승남. 비유가 아니라 진짜다. 소에게 도장 찍고, 돼지에게 백신 주사 놓는다.
사윗감으로 탐내는 농장주 허다하고 날마다 쏟아지는 사랑 고백에 팬클럽까지 결성됐지만 연수는 절대 한눈팔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사람, 지강희뿐이다.
아홉 살 전학 온 첫날, 강희에게 찍혀 깡.패 (깡희패밀리)의 넘버3가 된 이후 지강희는 연수의 우주이자 신앙이었다. 언제까지나 지강희만의 순정하고 다감한 ‘곰탱이시키’이길 소망하고 또 소망했다. 십대의 끝에서 그동안 고이 간직한 마음을 고백하고 첫 밤을 같이 보낼 때만 해도 온 세상이 다 내 거 같았는데, 강희가 떠났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며 사라졌다.
첫사랑은 원래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지만 난 강희 아니면 안 되니까... 긴 기다림을 시작하기로 하는데 문제는 짝짓기에 눈이 먼 하나읍 농장주들이 그런 연수를 가만두지 않는다는 거였다.
강희 아버지. 잘생겼다. 눈빛은 아늑하고 목소리는 부드럽고 행동은 우아해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잡아채는 묘한 마성을 지녔다. 피아노를 치며 샹송을 기가 막히게 부를 줄 알고 통기타와 샤우팅으로 동네 싸움을 제압할 줄 아는 동시에 아름다운 걸 보면 눈물 흘리는 짙은 감수성의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하나읍에서 처음으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마을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사법고시 대신 임신한 강희 엄마 손을 잡고 돌아와 가업이던 여관을 물려받았다. 호텔 캘리포니아를 꿈꿨지만, 현실은 시골 모텔이었다. 어쩔 수 없이 Motel 네온사인의 M자 불을 끄는 방식으로 호텔 캘리포니아에 만족한다.
십대의 고민은 딱 하나였다. 0살 때부터 친구였던 에스더가 정략결혼은 싫다는데 집안에서는 정혼을 서두르고 있다는 거. 베프인 에스더의 고민을 해결해주고자 남자답게 가출했다.
들고 나온 현금이 떨어질 즈음, 말로만 듣던 편의점 알바를 구하러 갔다가 강희를 만났다. 알바 중이던 강희가 사장으로부터 갑질을 당하고 있던 상황.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웬걸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를 듣고 혼자 힘으로 멋지게 사장을 몰아붙이는 여전사 같은 모습은 덤으로 관람했다.
가출로 에스더의 고민을 해결한 석경은 영원한 남사친 여사친으로의 우정을 다짐하며 이후 유학도, 사업도 같이 한다. 지강희를 스카웃하는 조건으로 정구의 회사에 투자하기로 한 석경. 그렇게 자신이 론칭하는 숙박 앱의 부띠크 모텔 리모델링을 전담해 줄 회사가 꾸려진다. 이름하여 황.금.박.지.
강희와 함께하면 할수록 그녀가 궁금하고 새롭고 그녀와의 미래를 같이 키워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석경. 드디어 가까워질 기회가 생기나니.. 바로 하나읍 프로젝트다. 일과 강희, 모두를 쟁취하고자 인생 첫 시골 살이에 도전하는 석경.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대에 들어갔으나, 해부 실습과 동물 실험 등에 충격을 받아 힘든 시간을 보낸다. 꿈을 포기해야 하나 방황하던 시절, 학과 선배인 연수를 알게 되고 비록 “내일 도축된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는 안 아플 수 있게 행복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한다.”는 연수 말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후 연수가 만든 실험견 돌봄 동아리에 가입해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던 중 학교의 불법 동물 실험 실태를 알게 되고, 모든 불이익을 무릅쓰고 내부고발자가 된다.
어렵게 졸업은 했지만, 진로가 모두 막힌 상황에서 또다시 손을 내밀어준 연수. 자신의 병원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서로 절친이었던 부모님들 덕분에 석경과는 태어나기도 전 이미 친구였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느 날 갑자기 친구이던 석경이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집안에서는 둘을 정혼시킬 생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략결혼은 절대로 싫다’는 말로 석경의 고백을 촉구하는데 그때부터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석경이 가출해버린 것이다. 혼자만 좋아했구나, 착각이었구나.. 상처받은 에스더는 유학길에 오르는데 이걸 어쩌나 미국으로 유학 온 석경과 또다시 재회한다. 두 사람은 정혼 해프닝을 없었던 셈 치자며 서로의 가장 친한 남사친 여사친 사이를 이어나가고... 의기투합 끝에 만든 앱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두 사람 모두 자력으로 영앤리치에 등극한다.
정치질이 난무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실력 하나로 업계 최고 자리까지 올랐던 인테리어 업계 여전사. 새로 총책임을 맡게 된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강희를 만나 스카웃한다. 출신도, 학력도, 인맥도 없는 강희가 편견으로 가득찬 대기업 직원들 사이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며 인생 선배이자 업계 선배로서 강희의 멘토가 되어준다. 인생 최고의 사치는 명품백 구매도, 외제차 구매도 아니고 ‘싫어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것’이라는 강희 말에 감명 받아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독립, ‘황금박지’를 창업한다.
깡희 패밀리 넘버 원. 다섯 살 때 모텔 캘리포니아에 버려진 아이. 출생 신고도 되어있지 않은 아이를 춘필씨가 거둬 강희와 함께 키웠다. 고아니, 기생충이니, 계집애 같은 새끼니 하는 숱한 놀림에도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소중한 누군가를 건드리면 폭발한다. 그런 이유로 김헌열 패거리와 시비가 붙어 퇴학까지 당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때 발견한 재능 덕분에 10년 넘게 포크레인 기사로 잘나가고 있다.
깡희 패밀리지만 서열은 없다. 시인을 꿈꾸는 도서관 사서. 하나읍에서 가방끈이 가장 길다. 강희를 믿고 의지했던 만큼 의논 한마디 없이 사라진 것을, 베프인 자신의 전화를 수신 차단한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강희에게 쌀쌀맞게 외면하기엔 강희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부터 강희를 괴롭혔던 초중고 동창. 땅도 많고, 돈도 많고, 영향력도 많은 부모 빽을 등에 업고 친구들을 제 맘대로 부린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강희를 어떻게든 굴복시켜보려 무지 애를 썼지만 강희는 언제나 당한 것 이상을 되갚았고 주변에는 연수와 한우와 승언이 늘 떠받들고 있었다. 그랬던 강희가 다시 돌아와 신경을 긁어댄다. 한번 해보자는 거지?
화려한 패션에 정수리를 과하게 부풀린 헤어스타일, 10센티는 될 법한 하이힐. 하나읍의 퀸, 순자 아니고 수지다. 수지가 “저기 연수야.. ”라고 부르면 세 가지 중 하나다. 돈 이야기, 남자 이야기, 그것도 아니면 돈을 들고 튄 남자 이야기. 끝도 없이 치는 사고를 친남매처럼 자란 오라버니 춘필이 끝도 없이 수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