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武延秀(? ~ 710년)
중국 당나라, 무주의 외척. 계보 상으로 측천무후의 조카손자이다.
2. 생애
무승사의 아들인 무연수는 측천무후가 무주혁명을 일으킨 뒤, 회양군왕(淮陽郡王)으로 책봉되었다. 698년에 돌궐 제2제국의 2대 가한인 묵철가한이 자신의 딸을 보내 화친을 청하자, 측천무후는 무연수를 보내 묵철가한의 딸을 맞아들이도록 하였다. 하지만 묵철가한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무연수와 같이 온 염지미(閻知微)를 사로잡고 무주를 침공하여, 무연수는 사실상 돌궐에 억류되는 신세가 되었다.그러다가 705년, 묵철가한이 다시 화친을 청하면서 무연수는 7년 만에 돌궐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신룡정변이 일어난 직후였기 때문에 무연수는 환국공(桓國公)으로 작위가 내려갔고 좌위중랑장(左衛中郎將)으로 임명되었다. 무연수는 당나라로 돌아온 뒤 사촌형인 무숭훈의 부름을 받아 중종의 막내딸인 안락공주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으며, 돌궐에서 억류된 동안 돌궐의 언어를 익혔기 때문에 돌궐의 노래를 부르고 호선무(胡旋舞)를 추었으며, 안락공주는 무연수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였다. 707년 무숭훈이 이중준의 쿠데타로 살해된 뒤, 무연수는 안락공주에게 장가를 들었다.
무연수는 태상경, 우위장군, 부마도위가 되었고 항국공(恒國公)으로 전봉되었으며 실봉 500호를 식읍으로 누렸다. 또한 안락공주의 남편이 된 뒤부터 중종의 총애를 받고 방종해졌는데, 안락공주의 창조(倉曹) 부봉(符鳳)은 무연수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무연수를 꼬드겼다.
지금 천하의 백성들은 오히려 무씨를 그리워하고 있으니, 주나라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참서에 따르면 ‘검은 옷을 입은 군주가 제왕의 옷을 걸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부마께서는 바로 신황의 손자입니다.
무연수는 위황후, 안락공주와 합작하여 중종의 아우인 예종을 죽이고 당나라의 실권을 잡으려고 했지만, 710년 예종의 아들인 임치왕 이융기가 이를 먼저 눈치채고 궁중 쿠데타를 일으켰다. 무연수 일파의 계획은 이융기의 궁중 쿠데타에 의해 실패하였고, 결국 이융기에 의해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