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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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괵튀르크 카간국
𐰜𐰇𐰛:𐱅𐰇𐰼𐰰
Göktürk Kağanlığı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ok1.png
국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C3%B6kturksAD551-572.png
영토
위치 시베리아
몽골 고원
중앙아시아 일대
수도 오르두 발리크
정치체제 군주정
국가원수 대가한
언어 고대 튀르크어, 소그드어
종족 튀르크족
종교 텡그리
존속기간 동돌궐 551년 ~ 630년
서돌궐 581년 ~ 657년
돌궐 제2제국 683년 ~ 745년
성립 이전 유연
멸망 이후 위구르 제국
고대 튀르크어 𐰜𐰇𐰛:𐱅𐰇𐰼𐰰 (Kök Türük)
한자 突厥

1. 개요2. 명칭3. 역사
3.1. 돌궐 제1 제국(동돌궐, 서돌궐)3.2. 동돌궐3.3. 서돌궐3.4. 돌궐 제2 제국
4. 동돌궐 역대 가한5. 돌궐 제2 제국 역대 가한6. 돌궐 비문7. 터키는 돌궐의 후예?8. 현대9. 매체10. 관련항목

1. 개요

6세기8세기 사이에 중앙아시아동북아시아 북부 스텝 지대(지금의 몽골, 카자흐스탄 초원)에서 활동한 튀르크민족과 그들이 세운 유목 제국. 과거의 흉노유연 이후로 강력한 통합 유목국가를 세워 당대 중국사, 한국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대 터키부터 중앙아시아의 여러 스탄국까지 튀르크 계통 민족국가들에서 공통 조상으로 보고 있다.

2. 명칭

흔히 널리 알려져 있는 중국인들의 기록인 주서(周書)에 의한 음차 표기로는 突厥. 한국식 한자음으로 돌궐이라고 읽는다. 터키어로는 Göktürk Kağanlığı(괵튀르크 카안르으). 돌궐 문자로 적힌 비문을 직역하자면 쾩 튀뤼크(𐰜𐰇𐰛:𐱅𐰇𐰼𐰰, Kök Türük) 또는 튀르크(𐱅𐰇𐰼𐰚, Türk) 정도가 된다.

즉, 돌궐인들이 쓰던 명칭은 쾩 튀뤼크(Kök Türük)이고 돌궐은 튀르크가차이다. 쾩 튀뤼크는 천상의 튀르크라는 뜻으로, 고대 튀르크 언어에서 Kök 은 하늘, 파란색이 기본 의미였고 또한 '동쪽'이라는 의미와도 연결되었다고 보인다. 따라서 괵튀르크는 곧 '동돌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참조.

원어민 발음을 '투르크'로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튀르크'가 türk에 훨씬 가깝다. 좀 더 세세히 따지자면 현대인의 /ㅟ/[wi] 말고 고전적으로 쓰이던 표준어상의 /ㅟ/[y]가 türk와 음성 기호상으로 같은 발음이다. 비문 자료에는 튀뤽[türük]으로도 나온다.

본 문서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돌궐이란 말을 사용한다.

3. 역사

3.1. 돌궐 제1 제국(동돌궐, 서돌궐)

돌궐의 기원에 대해서 돌궐인이 지은 오르혼 비석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사서에서 옅볼 수 있는데 주서에서는 과거에 존재했다 이 시점에는 사라진 흉노의 별종(別種)으로 나와있으며[1] 수서에서는 돌궐의 선조가 아사나씨(阿史那氏)로 원래 평양(平凉은 수서에서 고구려(高句麗)를 부르는 호칭이다)의 잡호(雜胡,호족)였는데 아사나씨의 500호가 유연으로 도망하여 야금업(冶金業, 제철)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또한 색국(塞國, saka로 추정)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한문 사료에 기록된 돌궐의 신화를 보면 대개 이리를 돌궐의 시조로 삼고 있다. <북사> 등에는 북녘 색국의 아방보(阿諸步) 부락의 17[2]명의 아들 중 하나이자 이리의 소생인 이질니사도(伊質泥師都, Igil Nisha čor로 추정)가 아방보가 망한 뒤 여름 신 및 겨울신과 혼인하여 아들 넷을 낳았는데, 그 중 한 명이 흰 기러기로 변했으며, 또 다른 한 명이 검수(劒水)와 아보수(阿輔水) 사이에서 키르기즈를 세웠고, 또 한 명이 처절수(處折水)에서 나라를 세웠다. 큰아들인 눌도육설(納都六設, Nur Türk shad로 추정)은 발사처절시산(跋斯處折施山)에 살며 추위로부터 여러 부락을 구제해냈다고 전하고 있다. 그의 10명의 아내에게서 나온 아들들은 각자 성(姓)을 가지게 되었고, 눌도육설이 죽자 그들 중 아현설(阿賢設, Ashana shad로 추정)이 부족을 이끌었다는 전설이 있다.

몽골어 계통 언어를 쓰던 유연을 멸망시키고, 초원의 패자가 된 투멘(土門)은 '나라(il)를 세운 카간'이란 의미의 일릭 카간(Iliq Qaghan, 이리가한[伊利可汗])을 칭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551년에 경쟁관계인 유연과 우호적인 고구려의 신성, 백암성을 직접 공격하기도 했는데 고흘 장군의 맹활약으로 실패했다.[3] 553년에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릭 카간이 이때 사망하고, 제2대 카간인 아이 카간(Ay Qaghan으로 추정, 아일가한[阿逸可汗])이 즉위했으나 같은 해에 역시 사망한다.

돌궐 제국은 제3대 무칸 카간(Mukhan Qaghan, 목간가한[木杆可汗]) 치세에 확고하게 기반이 닦였다. 그는 서쪽으로는 이란사산 왕조와 연합해 에프탈을 멸망시키고, 아무다리야 강을 경계로 국경을 설정해 트란스옥시아나에 발을 들였고, 동쪽으로 거란을 꺾고 북쪽 키르기스를 병합해 새외 모든 나라를 복속시켰다고 했다. 이 때 돌궐 제국의 영역은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동쪽으로는 고구려 인접지역인 흥안령 산맥까지 이르렀다. 과거의 유목제국 흉노유연의 서쪽 영역이 파미르 고원을 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서쪽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 시기 중국 북부는 북제북주가 다투고 있어 신흥제국 돌궐과는 서로 우호관계를 맺으려 했다. 북중국의 분열은 돌궐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돌궐의 4대 카간이었던 타스파르 카간(Taspar Qaghan, 타발가한[佗鉢可汗])은 조공을 바치는 북주북제를 두고 "내가 남쪽의 두 아들를 효순하게만 하면 어찌 물자가 없음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4]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다.

돌궐제국은 동서로 매우 긴 국토였는데[5] 전성기 동서 돌궐의 영역을 모두 합치면 흑해에서 내몽골에 이르는 실로 광활한 영토였다.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를 쓴 르네 그루세의 말에 의하면 만약 그들이 단결할 수만 있었다면, 돌궐 제국은 천하무적이었을 것이라고 단언했을 정도. 그러나 이런 영토 한 지점에서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어렵다고 판단해 나라의 동서를 가까운 일족에 맡겨 셋으로 분할해 지배하는 체계를 갖췄다. 이전의 흉노에서 좌현왕, 우현왕을 뒀던 것과 비슷하지만 돌궐은 동방과 서방 모두 카간 칭호였다는 차이가 있다. 당연히 시간이 흐르면서 중앙권력의 약화로 분권화됐다. 제5대 카간인 으쉬바라 카간(Ïšbara Qağhan, 사발략가한[沙鉢略可汗])이 즉위하면서부터 아사나씨 종실 내부에 권력 다툼이 생긴 것이다. 582년 충돌을 직접적 계기로 돌궐은 동서로 분열된다. 자세한 내용은 사발략가한 문서 참조. 그리고 중국을 수나라가 통일하면서, 돌궐이 분열된 북중국을 가지고 놀면서 이득을 취했던 국제 정세가 오히려 역전되어 그 중심이 돌궐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3.2. 동돌궐

동서돌궐의 싸움은 수문제의 이간책까지 겹쳐 격화됐다. 궁지에 몰린 사발략가한수나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587년 그의 동생 막하가한은 동부는 되찾았으나 서돌궐과 싸우다 전사, 이후 야미 카안(Yami Kağan, 계민가한) 치세 때 동돌궐은 서돌궐을 이기기 위해 수나라에 일시적으로 굴복했다.

하지만 수나라고구려와의 성과 없는 전쟁으로 인해 국력을 소모하고 내란으로 붕괴되자, 그 틈을 노려 수나라의 복속에서 벗어나 다시 세력을 길러 중원의 쟁패전에 개입하며 군벌들을 후원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수양제의 손자 양정도를 내세워 돌궐의 꼭두각시로서의 수나라의 재건을 시도하기도 했고, 당나라를 세운 당국공 이연도 돌궐의 신하를 칭하는 굴욕을 맛보고 돌궐군의 도움을 받아 장안으로 진격하기도 했다. 또한 당나라는 초창기에 돌궐에 복속하여 신하로서 돌궐을 섬긴다. 또한 동돌궐은 당나라에 대항하여 동쪽 고구려와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당태종 이세민은 돌궐을 상대로 외교적 이간책을 시도했다. 힐리가한에게 불만을 품은 조카 돌리와 욱사설이 당나라로 투항해왔고, 설연타를 비롯한 철륵계 부족들도 당의 사주를 받아 돌궐에 등을 돌렸다. 게다가 수년 동안 큰 눈이 많이 내려 유목하던 가축들이 폐사하는 악재가 겹치자 이세민은 상황을 간파하고 서기 630년에 대대적으로 지금의 내몽골 지역을 기습공격해 힐리가한을 생포, 멸망시켰다.

나라를 잃은 돌궐인들 일부는 서돌궐로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내몽골에 그대로 남았고, 이세민은 634~645년 만리장성 근처 10개 주에 이주시켰다. 그러나 639년 돌궐 수령 결사솔의 반란을 계기로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재이주시켰고 도호부를 두어 기미지배했다.

3.3. 서돌궐

위와 같이 동돌궐은 중원의 왕조들과 대립했고, 서돌궐은 돌궐의 발원지인 중앙아시아에서 이란사산 왕조, 아나톨리아 지역의 동로마 제국 등과 때로는 충돌하고 교역하며 존속했다. 그리고 영역을 넓혀 카스피해흑해까지 나아가 바다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당나라가 중국을 재통일하며, 동돌궐(630년), 토욕혼(634~635년), 타림 분지도시국가들, 그리고 서돌궐과 연합한 고창 왕국(639년)을 공격해 하나하나 복속시켰다. 서돌궐은 마침 카를륵의 반란에 시달리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당나라는 서돌궐에 652년, 653년, 657년 세 차례 서역 원정군을 보냈다. 결국 657년 당고종소정방, 임아상, 소사업 등을 시켜 보낸 원정군에 의해 서돌궐의 수도 수야브가 함락당하고, 마지막 군주 사발라가한은 생포된 후 장안으로 압송당했다. 서돌궐 원정이 마무리된 직후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해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670년부터 나당전쟁을 시작하니 한국사의 흐름과도 관계가 있는 셈이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돌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4. 돌궐 제2 제국

당나라신라토번과의 전쟁에서 재미를 못 보고 성장세가 둔화되자 옛 동돌궐 지역에서는 679년 니숙복, 680년 복념을 카간으로 추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이 둘은 진압당했지만 683년 무렵에 쿠틀루크 카안(Kutluk Kağan)(혹은 일테리시 카안(İlteriş Kağan))이 중심이 되어 무장 봉기를 일으켜 비로소 당나라에서 독립하는데, 이를 후돌궐 제국 또는 돌궐 제2제국이라고 한다.[6]

부활한 돌궐 제국은 686~687년 시기에 몽골 고원에 있던 철륵계 부족들을 격파하고, 돌궐인의 성산 외튀켄으로 돌아왔으며, 쿠틀루크 카안의 동생 카프간 카안(Kapgan Kağan, 묵철가한) 시절에 전성기를 맞아 동쪽으로는 거란을 격파해 흥안령 산맥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북쪽으로는 바이칼호 부근의 바이르쿠를 복속시키며, 서쪽으로는 예니세이 강 유역의 키르기즈와 당나라 치하의 옛 서돌궐 영역까지 진출했다.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695년 묵철가한을 책봉하지만 실제론 제어할 힘은 없었고 오히려 도움을 받는 처지였다. 696년 거란의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자 묵철가한의 도움을 받은 것. 대신 묵철가한은 당나라에 돌궐인들의 반환, 물자의 공급, 공주와의 혼인을 끈질기게 요구했고 측천무후는 굴욕적으로 이 요구를 다 들어줘야 했다. 이렇게 숙적 당나라를 밟고 다시금 동북아시아 스텝(steppe) 지대를 통일하고 강성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716년 묵철가한은 바이르쿠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오다가 기습당해 갑작스럽게 죽었고, 생전에 후계자로 정해뒀던 뵈귀는 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쿠틀루크의 아들인 왕자 퀼 테긴(중국명 궐특근)의 활약으로 내분은 진정되고, 퀼 테긴이 형 빌게 카안(Bilge Kağan, 중국명은 비가가한)을 즉위시켰다.[7] 그러나 이미 돌궐 2제국의 세력은 저물기 시작한 상황. 741년 이낼 카안(이연가한)이 사망한 뒤 6년 동안 지배층의 내분으로 여러 명의 카안이 살해, 폐위당하는 막장 상황에 접어들었고 744년에 복속해있던 위구르, 바스밀, 카를룩 세 부족 연합의 반란으로 외튀켄이 함락당해 사실상 멸망한다. 후에 위구르 제국이 나타난다.

4. 동돌궐 역대 가한

대수 왕호 재위기간
1대 이리가한 토문 552 ~ 553
2대 을식기가한/아일가한 과라 553
3대 목간가한 사근 553 ~ 572
4대 타발가한 지두 572 ~ 581
5대 사발략가한 섭도 581 ~ 587
6대 막하가한 처라후 587 ~ 588
7대 힐가시다나도람가한 옹우려 588 ~ 599
8대 계민가한 염간 599 ~ 614
9대 시필가한 돌길세 614 ~ 619
10대 처라가한 사리불설 619 ~ 620
11대 힐리가한 막하돌설 620 ~ 630

5. 돌궐 제2 제국 역대 가한

대수 왕호 재위기간
1대 힐질리시가한 토둔철, 골돌록 682 ~ 691
2대 묵철가한 묵철 691 ~ 716
3대 부구가한 복구, 양아지 716
4대 비가가한 묵극련, 골출록 716 ~ 734
5대 이연가한 ? 734 ~ 741
6대 등리가한 비가골돌록 741 ~ 742
7대 판궐특근 ? 742
8대 오소미시가한 오소미시특근 742 ~ 745
9대 백미가한 백미특근골롱복 745

6. 돌궐 비문

몽골의 오르혼 강 유역에는 8세기 돌궐 제2 카간국 시기에 세워진 석비(石碑)들이 있다. 이들 금석문이 19세기에 해독되어 돌궐인들이 고유한 표음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돌궐문자).

20세기 중후반에는 Talât Tekin 등의 언어학자들이 돌궐어의 문법을 복원하여 돌궐어의 동명사 존재 등을 밝혔으며, 터키 정부의 주도로 비문 내용 전체를 복원하려는 목표의 프로젝트가 2000년부터 현지에서 진행 중이다.

해독된 내용 중 주요한 것들은 다음이 있다.
  • 괵튀르크 제2 제국의 개국공신으로 장군이자 재상인 톤유쿠크(Tonyukuk, 아사덕돈욕곡)의 석비가 있다. 비문의 자세한 내용은 아사덕돈욕곡 참조.
  • 오르혼 비석 서문에는 빌게 카안의 동생 퀼 티긴(Kül Tigin, 궐특근) 장군의 비문에는 고구려를 뵈퀼리(Böküli)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를 참조.

7. 터키는 돌궐의 후예?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만주까지 호령하던 돌궐에서부터 기원한다고 말한다. 터키계 고고학자들의 연구로 돌궐은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장두형 인도유럽어족으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북아시아 스텝(steppe) 지역(現 몽골초원)으로 진출했고, 돌궐 동서분열 이후 서돌궐이 쇠퇴하자 하자르 카간국(Khazars Kaganate)이 독립하여 볼가 강을 넘어 현재 러시아 남부와 키예프 지역까지 영토를 넓히게 된다. 하자르 카간국의 장군이자 벡[8]셀주크(Seljuqs)는 아랄해 북쪽에서부터 950년경에 중앙아시아의 화레즘지역으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부터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셀주크 왕조를 건국, 중앙아시아에서부터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거쳐 더 나아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아나톨리아(현재 터키공화국)까지 영토를 넓혔다는 것이다.

돌궐을 자국 인공위성의 이름으로 사용 중이고, 터키 연구가로 유명한 이희수 교수 역시 터키사에서 언급하길 터키의 국부격인 아타튀르크는 돌궐이 터키 조상이라고 강조했고, 559년 돌궐이 중국을 이긴 걸 기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959년 압델 멘데레스 대통령 체제에서도 터키는 돌궐 승전 14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고 서술했다. 지금도 꾸준히 유적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다. 터키 정부의 돌궐 유적 발굴 관련 기사.#
물론 터키 오직 하나만이 돌궐인들의 후예인 것은 아니고 돌궐인 중 가장 서쪽까지 간 한 일파가 현대 터키인인 것이다. 터키가 현재 국력이 그나마 튀르크 계통 중 가장 크고 강해서 마치 터키를 튀르크라는 역사성의 대표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중앙아시아부터 캅카스까지, 민족국가를 가지지 못한 경우까지 찾으면 중국위구르족이나 시베리아 지역까지 튀르크의 후예들은 유라시아 각지에 분포한다.

즉, 돌궐제국은 멸망한 이후 중국처럼 재통일되지 않은 채 여러 소국으로 분열돼 있다. 터키는 돌궐족의 여러 후예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8. 현대

파일:Lenguas_túrquicas.png
남동 튀르크
남서 튀르크
북동 튀르크
북서 튀르크
아르구(칼라지)
오구르 튀르크(추바시)
돌궐(튀르크)은 언어적 계통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볼드체로 표시된 것은 현재 자신들의 국가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고, † 표시가 있는 것은 현재 사멸한 종족이다.

9. 매체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캐먼치킨 개파이가 돌궐 출신이라고 언급된다.

10. 관련항목


[1] 주서에서는 귀방과 철륵이 있던 위치가 언급되는데 돌궐이란 단어는 아니다. 훨씬 옛날에 있던 귀방과 철륵이 과연 돌궐과 같은 뜻인가에는 의문점이 많다. 또한 주서의 철륵이 돌궐과 상관없는 키르키스를 뜻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유는 철륵이 위치한 곳이 예니세이강 상류의 바이칼 호수 서쪽이며 키르기스가 있던 위치와 일치한다.[2] 혹은 70명이라고도 하는데, 둘 다 돌궐이 성스럽게 여겼던 숫자 7이 반영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3] 이 551년에는 백제 성왕신라 진흥왕나제동맹 연합군이 고구려 남부인 한강 지역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도 했고, 결국 남북으로 동시에 공격을 받은 고구려는 북쪽의 돌궐 전선은 막아냈지만 남쪽으로는 4세기 전성기에 획득했던 한반도 중부지방을 통째로 상실한다.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 문서 참조[4] 주서 권50 열전42 이역전.[5] 사실 이 동네 유목제국들이 과거 흉노부터 후대의 몽골 제국까지 대부분 남북보다 동서로 훨씬 긴 편이다. 남북으로 가면 갈수록 환경이 크게 달라지는데 위도대가 비슷한 동서는 비슷한 스텝 자연환경이 이어지므로 유목민들은 대부분 동서로 확장하는 게 더 편했다.[6] 이 독립 과정에서 고문간이 지휘하는 고구려 유민들이 돌궐에 협력했다는 기록이 있다.[7] 이 퀼 테긴의 업적을 한문과 고대 튀르크 문자로 기록한 오르콘 비문은 19세기에 러시아인에 의해 발견돼 서양에 소개, 유명해졌다.[8] bey,بك‎ “Beik는 터키계의 수장을 뜻한다[9] 중국은 투르키스탄을 돌궐, 동투르키스탄을 동돌궐이라고 한다. 정작 동돌궐은 현 몽골에 있었고 동투르키스탄은 서돌궐의 권역이었단 게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