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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0 18:10:18

이진충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대조영>3.2. <신탐적인걸>

1. 개요

李盡忠
(? ~ 696)

거란가한.

이굴가의 후손으로, 이소고의 형이었으며 이실활의 사촌형이자 손만영의 매부였다.

2. 생애

대하씨 부락 연맹의 수장이었다.

송막도독 이굴가 사후 660년에 대하아복고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당군에 진압되었다. 이후 이진충은 당 고종에 의해 무위대장군 및 송막도독으로 임명되었다. 이진충은 춥고 추운 거란에서 민들레씨를 먹으며 살아왔던 것으로 유명했다. 이진충은 이소고와의 어렸을 적 갈등으로 집을 나와 사촌동생인 이실활의 집에서 10년 정도 생활했다.

거란의 송막도독으로 있다가 696년에 조문홰가 거란 사람들을 무시하자 원한을 품고 영주에서 손만영과 함께 봉기해 영주를 함락시키고 조문홰를 죽였으며,[1] 이로 인해 측천무후는 이진충을 '이진멸'(李盡滅)이라 불렀다.[2] 얼마 안돼서 무상가한(無上可汗)[3]이라 칭했고, 단주까지 진격했으나, 장구절에게 격퇴당했다. 이에 무측천이 조인사, 장현우, 마인절, 이다조 등 28명의 장수들로 하여금 거란을 공격하게 했고, 양왕 무삼사를 유관도안무대사, 납언 요숙을 부사로 삼았다. 그 뒤 서협석곡의 황장곡 대전에서 선봉 조인사, 장현우, 마인절의 당군을 대패시키고[4][5][6] 장현우와 마인절을 사로잡은 뒤 당군의 공문서를 위조하여 포로로 잡은 장현우, 마인절의 서명을 얻은 후 연비석과 종회창의 군대를 거의 몰살시키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전투 과정은 이렇다. 무주군이 출정하자 이진충과 손만영은 영주 출신 포로를 풀어주며 포로들에게 하소연했다. 이진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은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으나, 도독인 조문홰가 가혹하게 통치하여 어쩔 수 없이 반란을 일으켰고, 관군이 오면 즉시 부대를 이끌고 투항하겠다."
무주군을 현혹시키기 위해, 이진충은 거란의 부락 사람들 중 노약자들을 내보냈고 약소와 양 등은 밖에 내버려두어 무주군이 약탈하도록 하는 등 무주군의 기강이 해이해지도록 했다. 이를 들은 조인사와 장현우, 마인절은 거란이 곧 패할 거라 생각하여 빠른 진군을 결심하고 거란을 맹렬히 추격했다. 이후 서협석곡의 황장곡에서 거란군은 무주군을 전멸시키고 조인사와 장현우, 마인절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이진충은 이들로 하여금 거짓 첩문을 쓰게 하여 장현우 등의 서명을 얻고, 급속행군한 연비석과 종회창의 당군을 격파하고 몰살에 가까운 패배를 안겼다.

그 뒤 겨울 10월 22일에 병사했다.

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대조영>

파일:이진충.jpg

배우 김동현이 연기했다. 어느정도 배포도 있고 호방한 호걸로 묘사된다.

설인귀의 요구에 따라 영주 땅을 받는 조건으로 고구려 원정을 돕는데, 이때 수하 장수 이해고, 딸 초린이 설인귀 휘하로 활약한다. 당나라와 처음 협력하게 된 2차 고당 전쟁 당시엔 설인귀와는 어느정도 삐걱대던 사이었지만, 설인귀가 거란의 이름을 팔아먹지 않고 패전의 책임을 자기 혼자 뒤집어 쓴 걸 보고선 설인귀에게 진정으로 협력한다. 이후 그 둘의 공으로 어렵게 버티며 영주 땅에 정착 했지만 세월이 흘러 이문의 계략으로 감독관 조문홰가 거란인들에게 폭정을 하면서 거란인들이 봉기하도록 조장해서 괴롭히는데 결국 거란인들이 대조영의 도움를 받아 위기를 모면해 봉기하려고 해서 설인귀가 그를 설득해서 반란 혐의를 벗어나게 해주려고 했지만 때는 늦었다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사실 이진충은 설인귀에게 설득되어 조문홰를 살려보내고 거란의 반란을 해프닝으로 끝내려고 했지만 대조영에게 고구려 유민을 빼앗기면 안된다는 신홍의 계략으로 이해고가 조문홰를 죽이게되고 거란의 반란을 최대한 없는 것으로 해주려던 설인귀를 차마 죽이지못한 이진충이 부관 홍패와 함께 당나라로 쫒아보내면서[7] 거란의 반란은 기정사실화 된다.

거란의 반란의 낌새를 미리 챈 이문이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 영주의 거란인들을 진압하면서 손만영과 붙잡혀 고문당하는 고초를 겪다가 대조영, 대중상, 그의 손자 이검이 영주성을 해방시키자 구출되면서 거란을 임시로 독립시키고 설인귀와의 회담으로 조문홰를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반란을 없는 것으로 하려고 했다. 문제는 이해고가 돌아온 직후에는 이진충의 뜻을 따르려 했다가 신홍이 유민을 내어주면 모든 것이 대조영에게 유리하다는 말에 조문홰의 목을 베어 반란을 제대로 성사시켜 영주를 전쟁의 발판으로 만들었다.[8] 신홍이나 설계두 등 이해고의 부하들이 대조영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했지만 이진충은 대조영이 거란을 독립시키는 것에 도와주었고 당나라가 언제 공격할지 모른다고 여겨 오히려 대조영을 붙잡아둬야 한다거나 대조영과 거란의 후사를 상담하는 등 중용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설인귀가 대총관으로 참여한 전투에서 병력면에서 밀리자 이해고는 본의 아니게 대조영에게 함께 싸워달라고 고개를 숙여야 했고 전쟁에서 이기면 유민을 내어준다는 공식적인 약속까지 하여서 결국 거란족은 당나라에 반란을 안하니만 못하게 되었다.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대조영과 연합으로 이문을 붙잡았지만 이해고도 당나라의 설인귀에게 붙잡히자 포로 교환을 위해 교섭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으며 교섭 이전에 당나라에서 그를 암살할 것을 우려해 대조영이 미리 다른 사람에게 이진충을 위장시키면서 이진충은 병사로 위장해 조인사, 이다조 등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해고를 나중에 구출하고 당나라 대군을 대조영의 계략대로 대파하는데 성공해 거란을 통치했지만 건강이 악화되고 당나라가 대중상을 군왕에 봉하는 등 이간책을 쓰려는 것과 더불어 손만영, 신홍의 모략으로 대조영을 의심하게끔 몰아가자 이에 분노에 치밀어 쓰러지며 이로 인해 신홍이 이진충이 쓰러진 틈을 타서 대조영을 죽기 위해 어의를 매수해 깨어나는 것을 늦추기 위해 약재를 늦게 조제하는 등의 행동을 취했지만 이진충은 대조영을 죽이려고 하기 전에 깨어나서 대조영을 죽이는 것을 멈추게 했다. 사실 이진충은 대조영과 대중상 부자를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돕기위해 전군을 이끌고 온 대조영 일행을 자신은 믿고 동반자로 여기는데 자신의 일족들이 유민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당나라의 이간책을 핑계로 대조영 일행에 대해 이간계를 쓰자 분노하다가 쓰러진 것이다. 검이를 통해 대조영이 누명을 쓰고 처형될 위기에 놓인상황을 알게되면서 그를 불러내어 속마음을알아내고자 대조영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대조영은 초린이 왕이 되어야한다고 이진충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그 과정에서 대조영의 진심을 알아본 이진충은 대조영과 고구려장수들을 전부 풀어준다.

하지만 대조영과 이진충과의 대화를 끝까지 듣지못하고 앞부분만 듣게된 이해고와 신홍 그리고 손만영이 거란부족장들과 원로들을 이끌고 시위를 벌이나 이진충은 그들의 간계를 눈치채고 팩트를 때리며[9]대조영을 지지해준다. 하지만 거란장수들의 민심이 좋지않았고 대조영이 유민들과 함께 요동정벌을 하겠다고 요청하자 이를 허락하며 대조영이 요동정벌에서 개선하고 돌아온후 이진충은 일선에서 물러나 새 황제를 발표하려고 했고 만일에 대비해 작성해둔 유서를 대조영에게 넘겨준다.[10] 이에 이진충이 검이가 대조영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을 알게된 신홍은 혹시라도 대조영에게 제위를 물려줄까봐[11] 이해고를 충동질하여 이진충의 침소에 들어가 살해하도록 했으나 이해고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칼로 침상 옆을 찍어 깨어난 이진충은 이해고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이진충이 대조영에게 너무 많이 의존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거란을 세우고 당나라를 물리친건 자신과 거란 병사들 인데 왜 자신과 거란 병사들 보다 대조영을 더 믿냐고 하자 대조영은 손님이라 손님의 예로 잘해준것 뿐이지만 이해고는 자신의 분신이며 아무리 귀한 손님도 자신의 피와 살보다 귀할수는 없다며 이해고가 사위라는 것을 주지시키자 그말에 흔들린 이해고는 이해고는 그말이 거짓이 아님을 간절히 바란다면서 결국 칼을 떨구며 방을 나오게 된다. 그러나 신홍이 몰래 들어와 이진충의 목을 끈으로 졸라 죽이는 역적질을 저지르게 되고 그렇게 이진충은 하룻밤사이에 허망하게 떠나며 초린은 매우 오열한다. 이후 열린 다음 보위를 논하는 회의에서 대조영이 들어와 유서를 공표했는데 거기에는 손만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진충과는 달리 손만영을 제거하려는 음모는 꿈도꾸지 못하고 거란은 손만영 체제로 넘어가게 되는데, 신홍 본인도 반란을 일으킨 손만영에게 왕위를 준게 검이 문제를 피해기 위해서라는걸 뒤늦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대신 손만영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이해과와 자신이 실권을 잡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긴 했지만.

이진충 사후, 당나라에는 이진충이 간밤에 급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측천과 당나라 대신들은 잠시 황당해하긴하나 기뻐해한다. 그와 반대로 설인귀는 간소하게 이진충을 추모한다. 비록 말년에 들어 적대관계가 되었지만, 일생동안 협력한 친구가 너무나 허망하게 가버린 것에서 인생의 허망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12] 그 와중에 눈치없는 홍패는 이진충에게 바치는 술을 마시려고 했다...

이후 손만영이 거란국을 통치했지만 이진충의 유지내용을 지키기위해 대조영과의 동맹관계를 유지시키려고하나 이해고와 신홍에 의해 동맹이 깨지게된 것은 물론 설인귀의 계략에 의해 돌궐과 동맹을 맺게된 손만영이 오만방자해지기 시작한 것과 더불어 이해고가 대조영에게 패배를 하게되면서 거란국이 멸망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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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당시 평양성에서 이진충이 목숨걸고 백성을 살리려는 대조영 일행을 살려주는 장면은 상당히 긴 대조영 드라마 전체에서도 명장면에 뽑힌다.끝부분 대사가 이진충의 명대사. 작중에서 나온 당시의 이진충은 거란 백성들을 위해 영주 땅을 얻고자 당나라와 협력하고 있었는데 대조영 일행이 고구려 백성들을 위해 기꺼히 목숨을 바치자 이에 공감을 했던 것.[13] 훗날 대조영과 적대관계가 될거라는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딸인 초린의 제안도 있고 해서 대조영 일행을 보내준다.

여담으로 드라마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간이 흐르면서 작중 대조영에게 의지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줘 '대깨대'[14]란 별명이 붙어버렸다.[15]

초기에는 전투도 직접 하고 그랬으나 황제가 되고 나이가 들은 뒤부터는 뒷선으로 물러났다보니 전투에 참여하진 않는다.[16]

비록 이진충이 급사한 뒤 거란은 이해고와 신홍이 실권을 잡는 바람에 대조영과 동맹이 깨지긴 하지만 동맹이 깨짐에도 불구하고 대조영은 이진충과의 신의를 끝까지 중시하여 초린과 검이만큼은 끝까지[17] 지원한다.[18]

3.2. <신탐적인걸>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당에 반란을 일으켰고, 무측천에게 이진멸로 개명당하는 수모를 겪는다.[19]

[1] 당시 무측천의 집권하에서 기미 지배체제가 붕괴되고 있었다. 무측천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기, 정무정, 왕방익, 흑치상지 등의 양장들이 숙청당하면서 국경에 쓸 만한 장수가 없었던 데다가 국정이 불안해졌고, 각 피지배 이민족들에 대한 징발이 증가했다.[2] 손만영 또한 비슷하게 손만참으로 강제개명을 당했다.[3] '더 높은 곳이 없는 최고의 왕'이라는 뜻이다.[4] 거란군이 굶주리고 있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등 기만술을 사용하여 선봉인 조인사, 장현우, 마인절을 대패시켰다.[5] 조인사에 대해서는《구당서》, 《신당서》에 보면 패배했다는 기록만이 있으나, 《자치통감》에는 조인사도 사로잡혔다고 나와 있다.[6] 무주군의 시체가 산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고 한다.[7] 그래도 마지막까지 신경써주었고 설인귀와 홍패 역시 이에 화답하며 돌아갔지만 신홍이 제멋대로 이 둘의 암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설인귀와 오랜 친분은 끝이 나고 만다.[8] 이해고가 무려 홍패가 지키는 조문홰를[20] 홍패를 속여서 빼낸 뒤 죽였다.[9] 대조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거란장수와 원로들을 향해 자신의 이권이 뺏길까봐 두려워하는 소인배들이라고 일갈한다.[10] 여기서 대조영과의 인연을 좀 더 길게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손자가 고구려의 핏줄이라는것을 알게되면서 대조영과의 인연이 여기까지인것을 깨닫고 아쉬워한다. 그 대신 훗날 자기가 없어도 거란국을 잘 부탁한다고 대조영에게 간청을 한다. 다만 대조영은 검이가 자신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몰라 이진충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21][11] 그러나 이진충은 오히려 검이가 대조영의 아들인 것을 알자 검이가 왕위를 잇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왕위를 이해고나 초린에게 물려줄 생각을 버리고 손만영에게 자리를 넘겨준다. 물론 신홍은 오로지 이해고를 왕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에 이 경우라도 역모를 저지르려고 했을 것이다.[12] 설인귀는 당나라소속이지만 거란인 출신이며 이진충과는 고구려멸망때부터 적이 되기 이전까지 많이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동고동락하는 사이였다. 대표적인 예시로 설인귀가 관직을 버리고 장안성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거란의 멸족을 보고싶지않아 이진충을 죽기살기로 설득하는 것은 물론 측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영주토벌 총사령관 자리를 잠시 주저하였다.[13] 이때 했던 대사가 땅을 얻고자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해서 싸우는데, 비록 적국이지만 백성을 살리기위해 목숨을 바치는 용사들을 허망하게 죽이고 싶지 않다며 살려보내 준다.[14] '대가리가 깨져도 대조영을 믿는다.'의 줄임말이다.[15] 당시 이진충에게는 사방이 적이였다. 우호적인 관계였으나 적이 되어버린 설인귀[22]와 호시탐탐 영주를 노리는 돌궐의 묵철을 포함 당나라에서도 거란을 가만히두질 않았다. 거란의 신하장수들을 제외하면 대조영밖에 믿을만 한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에 연출이 그렇게 나와버린것...[16] 물론 황제가 된 것도 그렇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무래도 선봉에 서서 전투에 참여하기가 힘든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17] 한가지를 예시로 거란이 멸망하고 요동으로 찾아왔을때 대중상과 같이 술자리를 하는 자리에서 검이가 대조영의 트리거를 건드렸으나 대조영은 검이를 이해고의 자식이 아닌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이진충자사의 외손자로서 검이를 대하는거라고 호통을 친다.[18] 당장 대조영 본인부터가 직접 이진충과의 관계를 언급할 정도로 이진충과의 신의를 끝까지 중시했다. 거란이 자신을 배신했어도 이진충만큼은 끝까지[23] 자신을 믿었기 때문.[19] 여기서 조문홰는 실제 역사와 달리 살아 있었다.


[20] 설인귀의 간청에 이진충은 허락했고 이에 설인귀는 홍패를 시켜서 조문홰를 빼낸 뒤 직접 지키라고 했다.[21] 이진충은 대조영에게 차마 진실을 밝힐 순 없다보니 돌려말했다. 이로 인해서 대조영은 검이의 정체를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알게 된다.[22] 이건 신홍때문이다. 이진충은 마지막까지 설인귀와 우호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신홍이 이해고의 만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멋대로 설인귀와 홍패의 암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한번 원한가지면 절대 용서치 않는 설인귀[24]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23] 손만영에게 후계를 넘기라는 유서에다가도 대조영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