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브렉시트 강행과 이런저런 기행을 많이 벌여서 튀르키예계 영국인의 인지도를 높인 인물이다.#1#2#3 |
튀르키예계 영국인은 튀르키예인이 영국으로 귀화한 경우나 튀르키예인 혈통의 영국인을 총칭한다. 튀르키예계 독일인의 경우와 다르게 아나톨리아에서 이민 온 튀르키예인보다는 영국이 키프로스를 지배하는 기간 동안 북키프로스 등에서 이민 온 경우가 더 많다.
[clearfix]
2. 이민사
대항해시대 당시 영국은 스페인 제국과 워낙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원교근공 외교 차원에서 당시 스페인의 주적이었던 오스만 제국과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곤 했다. 헨리 8세는 오스만 제국 출신 용병들을 고용하곤 했으며,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군의 포로가 된 무슬림 포로들을 오스만 제국으로 돌려보내주거나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정착시킨 적도 있었다.[1] 송환되지 않고 영국이나 영국 식민지에 잔류한 오스만 무슬림들은 대개 성공회로 개종하곤 했다. 개종하지 않고 이슬람을 고수한 경우도 있었는데, 1627년 런던에는 40명 정도 되는 무슬림이 살고 있었다. 영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오스만 제국 신민 중 정확히 몇 명이 튀르키예인이고 몇 명이 아랍인인지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으나, 시난 같은 튀르키예어 이름을 사용한 경우[2] 혹은 튀르키예 수피 종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례 등을 보면 당시 영국에 정착한 오스만 제국 무슬림들 중 튀르키예인도 분명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오스만 제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다 무슬림이던 것은 아니고, 당연히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이나 그리스인 파나리오테스, 아랍계 기독교인 신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 기독교 국가들과의 외교에서 자국 내 기독교인 신민들을 외교관이나 무역상인으로 활용하곤 했기 때문이다. 1838년 영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발타 리만 조약이 체결된 것을 계기로 오스만 제국 상인들의 영국 진출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영국으로 이주한 오스만 제국 신민들 중에는 부유층이 많은 편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이나 사업가로 파견된 상류층 무슬림들이 영국 내에서 본국 가족들 몰래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 관련한 기록도 남아있다.[3] 하지만 오스만 제국 내에서 경제적으로 몰락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날 시리아의 대도시에 해당하는 다마스쿠스와 알레포는 전근대 당시에는 세계적인 직물 공업의 중심지였으나, 19세기 후반부가 되면 인도산 면화를 떨이로 가져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영국 면화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심각한 경제 불황에 시달리게 되었다. 특히 당시 시리아 유대인들 상당수는 직물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오스만 제국에서 지중해 건너 유럽으로 수출하던 견직물, 면직물, 모직물이 국제 시장에서 도태되자, 심각한 경제적 곤경을 겪었다. 이들은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미국의 목화 수출이 막힌 틈을 타서 이집트에서 면화 수출을 늘리자, 이집트에서 장사를 했으나, 남북전쟁이 끝나자마자 이집트의 면화 산업이 몰락하면서 다시 또 곤경을 겪게 되었고, 이들 상당수는 영국 맨체스터로 이주하게 되었다.[4]
19세기 중반부터 오스만 제국 영토였던 키프로스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영국은 1914년이 되자 키프로스를 완전히 병합하기 이른다. 키프로스인들은 기독교인 인구도 많고 주민들도 백인이다보니 영국에서는 이들에 대해 따로 그렇게 심각한 차별적인 정책을 취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튀르키예화된 무슬림 키프로스인 혹은 튀르키예어를 사용하는 키프로스 기독교인들도 영국으로 상당수 이주, 정착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영국에서 이발사로 근무하는 튀르키예인이 많다.# 튀르키예는 전통적으로 이발 강국으로 유명하고[5] 중동 국가보다 영국 비자를 취득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3. 유명 인물
4. 관련 항목
[1] 튀르키예계 미국인 문서 참조[2] 당시 영국 측 사료에는 Chinano로 기록되었다.[3] 보리스 존슨이 이런 튀르키예인 무슬림 상류층 이민자 조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여기서도 또 일부 시리아 유대인들이 현지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결국 멕시코로 이주하게 되었다.[5] 유럽에는 튀르키예인이 이발사로 근무하는 곳이 많은데 오죽하면 튀르키예 본국에서 유행하는 남성 헤어 스타일이 유럽 바버샵에서 근무하는 튀르키예인 이발사들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고 더 나아가 유럽을 거쳐 북미까지 소개되기도 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