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팝 시기 대표곡 | |
더 라스 - There She Goes (1990) | 블러 - For Tomorrow (1993) |
오아시스 - Live Forever (1994) | 슈퍼그래스 - Alright (1995) |
라디오헤드 - High and Dry (1995) | 펄프 - Common People (1995) |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 A Design for Life (1996) | 스웨이드 - Beautiful Ones (1996) |
버브 - Bitter Sweet Symphony (1997) | 임브레이스 - All You Good Good People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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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버브, 슈퍼그래스, 엘라스티카, 펄프,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블러, 오아시스, 스웨이드)
1990년대 영국성을 강조한 음악 문화를 일컫는 용어로, Britpop, British Modern Rock에서 유래한 말이다. 얼터너티브 록처럼 하나의 장르 이상의 의미를 갖는 용어다. 이 당시에는 너바나, 펄 잼으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 록/그런지에 대항하여 언론들이 60, 70, 80년대를 바탕으로 한 소위 영국색 짙은 음악들을 띄워주기 시작했고 그렇게 브릿팝이라는 용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 음악적 성향과 뿌리
최초의 브릿팝 밴드로 일컫는 더 라스(The La's)의 There She Goes, 이 노래 자체는 '더 라스' 버전보다는 미국 밴드 'Sixpence None the Richer'의 곡이 유명하다. 심지어 중학교 2학년 영어교과서에 이 노래가 나오는데 'Sixpence None the Richer'의 노래로 나온다.
주로 1960~70년대 영국의 록 음악, 파워 팝, 인디 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에서 건너온 그런지 등의 유행에 대항하며 발생하였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자생적으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영국 언론에 의해 발굴되었다고 봐야할듯 하다. 영국 언론에서 미국의 그런지에 맞설 음악으로 팍팍 밀어줬을 뿐.
최초의 브릿팝 밴드는 더 라스(The La's)로 보고 있으며, 이후에 등장한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 이렇게 네 밴드가 '브릿팝 4대 밴드'로 불린다. 단, 상업적 성공 면에서는 이 네 밴드 중에서도 오아시스가 독보적이었다. 일례로 오아시스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의 경우 영국 내 판매량이 450만 장, 전 세계 판매량은 2000만 장에 달하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오아시스 다음가는 성공을 거둔 블러의 The Great Escape과 비교하면 영국 내 판매량은 3배, 전 세계 판매량은 10배 정도에 달하는 수치다.
오아시스 같은 경우는 사실상 거의 영국 대중가요 전반에 영향을 끼쳐 2000년대 초중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개러지 록 밴드들의 음악에도 많은 정서적 영향을 주는데, 리버틴즈나 레이저라잇, 더 뷰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한민국에서는 브릿팝의 개념에 대해 심지어 평론가들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1][2] 브릿팝을 영국 음악 전체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3]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라디오헤드, 트래비스, 뮤즈, 콜드플레이 등의 밴드를 브릿팝 밴드로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브릿팝의 음악적 특징으로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 기타와 멜로디 중심의 편곡을 들 수 있다. 정서적으로는 상당히 다양하다. 밝은 정서, 낙천성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가사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영국 특유의 냉소, 분노 등등의 부정적인 정서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브릿팝 어떤 정서든 대부분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승화하여 카타르시스를 주는 특징이 있다. 시기적으로는 90년대 초반에서 90년대 중후반까지의 영국 메인스트림 음악을 지칭한다. 일례로 국내에서 흔히 대표적 브릿팝 밴드로 여기고 있는 라디오헤드의 경우 데뷔시점이 1993년으로 브릿팝의 시대를 관통하긴 하나 그 당시에 그런 조류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전통적인 영국 록큰롤과 더 스미스, 스톤 로지즈로 대표되는 80년대 영국 인디씬보다는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밴드이다.[4] 뮤즈 역시 마찬가지로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긴 하지만 브릿팝이라고 불릴 수는 없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다음 목록을 보면 브릿팝이란 무엇인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브릿팝 밴드들 : 더 라스,캐스트[5], 오아시스, 블러[6] , 스웨이드[7], 펄프[8], 슈퍼그래스, 엘라스티카, 애쉬, 진, 오션 컬러 씬, 에코벨리, 슬리퍼, 쿨라 쉐이커, 코너샵, 롱피그스[9], 셰드 세븐[10]
브릿팝이 아닌 밴드들 : 라디오헤드, 뮤즈, 트래비스[11], 콜드플레이, 버브[12], 플라시보[13], 스피리추얼라이즈드
쉽게 얘기해 브릿팝이란 1993~1996년 사이에 등장한 밝고 경쾌한 복고풍의 영국산 로큰롤 음악 내지 팝 록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영민하고 요란한 에너지로 가득했던 음악이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의 4년간의 짧은 전성기를 끝으로 1997년에 이르러 브릿팝은 급속히 추진력을 상실해갔고 때마침 터져 나온 3장의 우울한 걸작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버브의 Urban Hymns, 스피리추얼라이즈드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는 실제로 브릿팝 시대를 종결시켰다. 그리고는 우울의 정서로 가득한 시대가 몇 년간 지속되었다. 사람들이 브릿팝으로 쉽게 오해하는 우울하고 서정적이고 뭔가 좀 분위기 있는 영국산 팝 록은 대개는 포스트 브릿팝 시대의 음악이다.
또다른 오해는 브릿팝이 음악적으로 별로 엄밀하게 정의된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더 스미스를 위시로 한 80년대의 인디록과 90년대 초반 매드체스터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기에 나고 자란 이들이 밴드를 결성한 만큼, 사운드적인 면에서 공유하는 지점도 있다. 다만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일컫는 4대 브릿팝 밴드들 각각의 음악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렇게 다른 음악을 하는 밴드들을 한 장르로 넣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밴드들은 위에서 언급한 브릿팝의 음악적, 시기적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즉 서로 개성은 뚜렷하지만 브릿팝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으므로 브릿팝으로 묶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브릿팝이 뚜렷하게 정의되는 개념이라는 것은 멘스웨어, 오션 컬러 씬, 에코벨리, 애쉬 등 중견급 밴드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가 최고의 브릿팝 밴드로 불리는 것은 브릿팝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뚜렷한 개성을 녹여냈기 때문이다.[14] 되레 중견급, 또는 그 이하의 브릿팝 밴드들의 경우, 개성이 약해 브릿팝 그 자체의 특징만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4대 밴드 중 브릿팝이 죽은 뒤까지 평론적으로 성공을 거둔 두 밴드인 블러와 펄프는 브릿팝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색과 타 장르의 영향[15] 을 극대화해 성공을 거뒀다. 반면 해체 직전까지 약간의 변화 외에는 브릿팝 장르 내로 묶을 수 있는 음악을 낸 오아시스는
3. 브릿팝의 정체
사진속 인물은 당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총리와 노엘 갤러거. 영국 정치의 꼭대기에 있는 총리와 당대 최고의 락스타가 서로 악수를 나누며 웃고 있는 이 어색한 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브릿팝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요약해준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위의 링크들은 그저 편의상 브릿팝이라는 단어로 묶어서 90년대 영국 락씬을 평가하고 있을 뿐, 엄밀히 말해 저 장황한 설명들이 모나게 틀린 부분은 없다. 브릿팝에 대한 해석과 분석은 이미 오래 전에 이뤄진 상황이며 위의 서술들은 모두 그에 기초한 일반론에 가까울 뿐 특별히 주관적인 서술이라 보기도 힘들다. 링크에 나온 뮤지션들을 보면 브릿팝 순위인데도 노엘 갤러거 솔로 앨범 등이 순위에 올라가 있다. 이정도면 섬세한 기준으로 순위를 작성했다 보긴 힘들다. 외국의 필진들이라고해서 그들을 꼭 의심과 비판없이 맹신할 필요는 없다. 하물며 브릿팝은 영미권에서 유독 저평가와 허술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애초에 브릿팝이 ‘장르’라기 보단, 90년대 영국 음악 언론이 만들어 낸 일종의 선동이자 사기에 가까운 부흥운동에 가까웠기 때문에, 평론가들에게는 너무나 캐주얼하고 깊이없는 음악들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적인 이유로 4집 이후의 블러, 라디오헤드, 버브 등은 브릿팝이라는 단어로 묶을 수가 없으며 그 단어를 언급하지도 않거나 혐오했으며, 콜드플레이와 트래비스는 아예 브릿팝 문화가 죽은 후에 등장한 세대다.
다시 말하지만 브릿팝은 ‘음악의 한 장르’가 아니며 90년대 초중반의 영국 연예계에서 가장 활개치고 다니거나 언론에서 띄워주는 연예인들을 묶은 일종의 연예계 프로파간다 겸 운동쯤으로 봐야한다. 브릿팝 시기만큼 영국 연예계가 활발하던 시기도 없었다.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단어임에도 온갖 모델, 배우, 방송인, 정치가, 총리까지 브릿팝과 엮였다. 또한 억지로 브릿팝의 음악적 시초가 누구니 하면서 계보를 만들라면 만들 수도 있겠으나[16], 후대에 어거지로 정의내리기 위해 끼워맞춘 격이었으며, 오아시스 역시 본인들을 브릿팝으로 묶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으나[17][18], 정작 ‘브릿팝은 이런 음악이다’를 정의내릴 때 가장 선두에서 얼굴 들이미는 그룹이다. 오아시스는 그로 인해 넵워스 무대에서 브릿팝 운동의 정점을 찍었다. 당시 넵워스 들판에 모인 연예계 인물들 및 온갖 계층들을 위해 마련된 백스테이지 크기만 해도 거의 공항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락이라는 장르의 올타임 레전드중 하나인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는 브릿팝 운동이 떠오르던 당시 대표주자였던 오아시스의 음악을 듣고선 ‘음악이 리듬감이 없다. 이딴 노래를 듣고 어떻게 춤을 주나?’하며 그들의 기량에 의심을 품었으며, 실제로 오아시스는 본인들을 정통 로큰롤의 적자로서 표현했지만 오아시스 등과 거의 동시기에 데뷔한 PJ하비는 '오아시스는 항상 자신들이 영국 최고의 밴드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저 제일 인기만 많은 뿐이다.'라며 그들을 비판했다.[19]
결국 브릿팝에 대한 설명은 저 위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의미와 평가보다는 미묘한 뉘앙스와 시선을 받는 단어이며, 웬만해서 브릿팝을 서술하는 해외 필진들의 글을 보면, 다른 리뷰들과는 다르게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전문적인 서술보다는 어딘가 ‘그 땐 그랬지’ 하며 노가리를 까는 듯한 핀트가 없이 두루뭉실한 서술들이 많다. 실제로 브릿팝은 음악적으로 뭐라 깊게 평가할 껀덕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결국 그 시대의 상황과 뒷얘기거리만이 남겨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릿팝 시기의 음악들은 음악적인 평가보다는 사회, 문화적인 평가를 해야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 오아시스의 초기 3개의 앨범들이 대표적이다. 블러의 초창기 앨범들이 나중에 가서야 재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
또한 90년대 이전까지 라디오의 팝송과 음악 잡지 등으로 상대적으로 좁은 틀안에서 외국 음악을 향유했던 세대과는 다르게, 여러 포맷과 장르의 다양화 등으로 인해 오래된 외국 음악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깊이는 떨어져 가는 시대이다. 예전에는 그것이 좁고 깊었다면 요즘은 넓고 얕은 시대이나, 그것은 꼭 한국인 뿐 아니라 자국 영국에서조차 대충 브릿팝 시대에 어떠어떠한 밴드들이 있었는지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는 한은 요즘 세대들은 제대로 모른다. 가령, 요즘에는 영국에선 95년도 여름에 언론이 부추겼던 오아시스와 블러의 브릿팝 전쟁만 기억하겠지만, 실제로 시장을 평정했던 건 슈퍼그래스의 ‘Alright’이라던가, 또한 2000년대 이후 태어난 한국 청소년들에게 아무리 서태지와 아이들과 김건모가 대단했다고 말하거나 한들 그게 제대로 와닿을 수가 없다. 듀스와 김현정 등이 어쩌구 해봤자 누가 관심과 열정을 가지겠나.
여담이지만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과 관계가 깊다. 당시 토니 블레어가 내걸던 구호중 하나인 쿨 브리타니아는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이 아닌 영국의 록을 보여주자던 브릿팝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 실제로도 블레어는 노엘 갤러거[20][21]와 데이먼 알반의 지지를 얻어냈으며 다큐멘터리 Live Forever - 브릿팝의 흥망성쇠에서 당시 음악계에서는 노동당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 하였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위의 사진은 총리 취임 이후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열린 파티의 장면으로 꽤나 유명한 사진. 다만 데이먼은 뒤에 지지를 철회하게 되는데, 블레어가 아이들을 카톨릭계의 학교로 보낸 것에 대해 질의를 하였다가 그런건 신경쓰지 마라는 답변을 받고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22]
3.1. 포스트 브릿팝
이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 무렵까지 등장한 콜드플레이, 트래비스, 뮤즈, 엘보우 등의 일련의 영국 밴드들을 '포스트 브릿팝' 혹은 '브릿팝 2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 음악에는 브릿팝보다는 미국색이나 인디적인 모습이 더 두드러지며 다소 실험적인 면모를 띠기도 한다. 밝은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브릿팝과는 달리 우울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음악이 많다. 애초에 '포스트(post-)'라는 접두사는 '이후에 나온 것' 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포스트 브릿팝이라고 하면 브릿팝 이후에 나온 음악임을 뜻할 뿐, 브릿팝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23] 이들 중 상당수는 2000년대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콜드플레이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현재 전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잘 나가는 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브릿팝보다는 라디오헤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앞에서 열거한 밴드들 치고 1~2집 시절에 라디오헤드를 따라한다는 소리를 안 들은 밴드가 없을 정도다.다만, 라디오헤드의 The Bends와 OK Computer가 포스트브릿팝의 시작점에 있다고 해서 당시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포스트브릿팝으로 단정짓기는 곤란하다. 당시에는 브릿팝 이후의 대세였던 음악이기에 그때의 인기인 영국 음악을 통틀어 포스트브릿팝이라고 했고, 최고 인기였던 밴드가 라디오헤드였기 때문에 라디오헤드가 포스트브릿팝의 대가로 알려졌지만, 위 두 앨범의 몇 곡들을 제외하면, 후대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많은 포스트브릿팝 밴드들의 곡은 트래비스나 콜드플레이에 가깝다. 물론 라디오헤드의 곡 중에서도 포스트브릿팝의 전형인 곡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앨범 전체를 통틀면 라디오헤드는 이미 본인들이 추구하는 색깔을 보여주고 있고, 굳이 '포스트 브릿팝 앨범'을 찾는다면 다른 밴드들의 앨범이 더 가깝다는 것.
버브 3집, 트래비스 2~5집, 콜드플레이 1~3집이 가장 좋은 예이고, U2의 많은 곡들도 포스트브릿팝 스타일에 가깝다. U2의 기타리스트 The Edge의 테크닉보다 멜로디와 텍스처를 중시하는 기타사운드는 많은 포스트브릿팝 밴드의 기타리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런 단순한듯 아름다운 기타선율은 포스트브릿팝 사운드의 근간이다!
포스트 브릿팝 밴드에게서 버브의 Urban Hymns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가 없는 데, 지금이야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가 더 높은 평가를 받지만 당시엔(1997~98년도) 적어도 영국에서는 '버브가 세계 최고' 라 평할 정도로 버브와 그들의 세번째 앨범 Urban Hymns는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버브의 프론트맨 리차드 애시크로프트가 신드롬이라 표현할 정도로 반응도 뜨거웠고 판매량도 어마어마했으며 (10x Platinum) 대표곡인 Bitter Sweet Symphony는 미국에서도 먹혔고 나이키 광고에까지 사용되기도 했었다. 실제로 98 브릿어워드를 석권했던 건 라디오헤드가 아니라 버브였다. 영국 내에서만큼은 미래를 바라봤던 라디오헤드보다는 좀 더 영국적인 전통을 이어나간 버브의 영향력이 더 컸다는 것이다.
분명 초기에는 이들의 스타일도 하나로 묶을 수 있었지만, 이들도 어느덧 베테랑이 되어가는 현재에는 전부 각자의 스타일을 찾아가면서 하나의음악 스타일로 이들을 전부 묶기에는 무리가 있다. 라디오헤드는 이젠 대중이 범접하기 어려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고, 버브는 해체, 콜드플레이는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내세운 팝스타일로 전향했다. 그리고 세계엔 스트록스, 악틱 몽키즈, 화이트 스트라입스 등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붐이 불고, 포스트 브릿팝은 어느새 추억이 됐다.
4. 관련 문서
[1] 대한민국 가요계는 'K-POP=아이돌'이다.[2]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영미권 대중음악사에 대해 모르거나, 왜곡돼서 알고 있는 경우가 꽤나 있다. 심지어 실제 역사와 다르게, 본인 생각과 사상을 토대로 강연역사왜곡을 하는 일도 잦았을 정도다.[3] 심지어 2024년 4월에 올라온 평론 기사에서도 그런 식으로 작성해서 올렸다![4] 다만 라디오헤드는 그 이전 인터뷰에도 스미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사실 영국의 90년대 밴드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스미스의 영향 하에 있다.[5] 더 라스의 반쪽짜리(..) 후신 밴드[6] 보통 2~4집만 브릿팝으로 분류한다. 5집 이후는 얼터너티브로 분류. 참고로 5집 당시 '브릿팝은 죽었다'라고 말하기도. (블러의 5집 발매를 시점으로 오아시스, 블러 등 주요 브릿팝 밴드들이 브릿팝 노래들을 내지 않고 장르를 바꾸며 브릿팝은 자연스럽게 끝났다. )[7] 'Dog Man Star'앨범의 경우 브릿팝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데뷔 앨범 역시 브릿팝 씬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본격적인 브릿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확실하게 브릿팝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은 3집 'Coming Up' 정도.[8] 펄프는 4집과 5집 두 앨범만 브릿팝이며 그 뒤 두 앨범은 아트 록 쪽으로 분류한다.[9] She Said, On & On 등의 곡이 유명하다. 보컬 크리스핀 헌트는 제이크 버그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몇 곡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10] Going for Gold가 가장 유명하며 2024년 신보가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나름 인지도가 있는 밴드이다.[11] 정확히 말하자면 브릿팝이 망해갈때쯤(…) 나온 1집 Good Feeling은 브릿팝(정확히는 오아시스 스타일의 로큰롤)이 맞다. 이 당시 노엘 갤러거의 지지를 받으며 오아시스의 서포트 밴드로 뛰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물론 이 이후는 포스트 브릿팝으로 분류한다.[12] 버브의 Urban Hymns 앨범의 경우 흔히 '브릿팝의 마지막 명반'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되지만, 엄밀하게 말해 브릿팝이 아닌 '포스트 브릿팝'의 범주에 들어가는 앨범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밝고 경쾌하다기보다는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며, 기타가 전면에 나서지도 않는다. 브릿팝 전성기에 발매됐던 이전 앨범들은 첫 번째 앨범 A Storm in Heaven 은 슈게이즈나 스페이스록에 가까웠고 두 번째 앨범 A Northern Soul 역시 리차드 애시크로프트표 기타팝 싱글이 앨범의 일부를 차지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였다[13] 영국에서 결성되고 활동해서 의외로 브릿팝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멤버 전부가 영국출신도 아닌데다가 무엇보다 본인들이 브릿팝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스타일도 브릿팝보다는 오히려 글램 록의 영향이 짙은 편.[14] 오아시스는 60년대 로큰롤과 70년대 펑크에 팝적인 감수성이 섞인 음악을, 블러는 다양한 악기를 섞어 트렌디한 음악을, 스웨이드는 날카로운 기타 리프의 글램 락을, 펄프는 복고적인 신스팝에 뿌리를 두었다.[15] 블러는 앨범마다 바뀌었지만 노이즈 록, 일렉트로니카, 트립 합 쪽으로 선회했고 잠정 해체 전 마지막 앨범인 Think Tank에선 데이먼의 음악적 성향이 극대화되어 이후 탄생할 고릴라즈의 음악과 어느정도 연관된다. 펄프는 챔버 팝 과 아트 록으로 선회.[16] 대표적으로 꼽히는 게 더 라스와 스톤 로지스. 여기서 더 내려가면 더 스미스와 버즈콕스. 여기서도 더 내려가면 더 버즈 등 갖다 붙이자면 끝이 없다.[17] 노엘 갤러거는 "우린 브릿팝 밴드가 아니다. 우린 유니버셜 락을 한다. 일단 나부터 아일랜드 혈통이다."며 브릿팝으로 묶이는 것을 거부했다.[18] 사실 당시 브릿팝으로 얘기되던 밴드들 대부분이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싫어했고 브릿팝 움직임에 대해서도 상당히 회의적인 시선을 갖고 있던 경우가 많다.[19] 하지만 오히려 이 단순하고, 일어나서 춤을 추기보다는 따라 부를 수 있는 찬가 스타일의 음악이 오아시스의 인기 비결이기도 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영국은 하우스 음악과 맨체스터의 하시엔다(Hacienda, 팩토리 레코드가 설립한 클럽이다)를 비롯한 클럽 문화가 매우 컸는데 오아시스가 데뷔할때 즈음해서 사람들은 그런 음악에 슬슬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고 클럽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와서는 진심이 담겨있고 따라부를 수 있는 기타 음악을 원했기 때문이다. 다만 노엘 갤러거가 이걸 노리고 일부러 음악을 단순하게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20] 노엘의 경우 96년 브릿어워드에서 이런 발언을 한 바가 있다. "이 나라에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7명의 사람이 있다. 나, 우리 애(Our Kid), 귁시, 본헤드, 앨런 화이트, 앨런 맥기(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사장), 그리고 토니 블레어."[21] 실제로 인터뷰 중에도 노동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22] 이후로도 데이먼 알반은 이라크 전쟁 참전 반대 운동에 참여하거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등 블레어를 위시한 노동당 중도파와 선명한 대립각을 세웠다.[23] 다른 예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완전히 반대되는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