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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이름 | 야드버즈 THE YARDBIRDS | |
헌액 부문 | 공연자 (Performers) | ||
멤버 | 키스 렐프, 크리스 드레야, 폴 샘웰-스미스, 짐 맥카티,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 | ||
입성 연도 | 1992년 | ||
후보자격 연도 | 1990년 | ||
후보선정 연도 | 1990년, 1991년, 1992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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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크리스 드레야, 짐 맥카티, 키스 렐프, 지미 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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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 재적 시기 | ||||
제프 벡 재적 시기 | ||||
지미 페이지 재적 시기 |
출신지 | 잉글랜드 런던 |
역대 멤버 | 제프 벡 (기타) 지미 페이지 (기타, 베이스) 에릭 클랩튼 (기타) 크리스 드레야 (베이스) 키스 렐프 (보컬) 짐 맥카티 (드럼) 폴 샘웰스미스 (베이스) 앤서니 탑 (기타) |
장르 | 록 음악, 블루스 록, 사이키델릭 록, 리듬 앤 블루스 |
활동 기간 | 1963년 - 1968년 |
데뷔 | 1964년 1집 Five Live Yardbir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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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3년 결성되어 1968년 해체된 영국의 록밴드.2. 상세
대중음악 역사상 여러 중요한 뮤지션들과 연관되어 있는 밴드이며, 활동 당시엔 밴드 그 자체의 인기도 꽤 많았다. 로리 갤러거, 크림, 지미 헨드릭스와 더불어 블루스가 미국에서 영국으로 넘어와 블루스 록, 하드 록, 헤비 메탈 등 다양한 파생 장르들이 만들어지는데 크게 기여한 밴드로 평가받는다.한국에서는 다른 록밴드들이 그렇듯이 대중적인 인지도가 좁쌀만큼도 안되지만, 3대 기타리스트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가 모두 거쳐간 밴드로 알려져있다.[1]
야드버즈 자체는 제프 벡과 에릭 클랩튼이 탈퇴한 후 지미 페이지가 다른 멤버들을 영입함으로써 '뉴 야드버즈'를 거쳐 레드 제플린으로 재탄생한다.
3. 역사
야드버즈를 비롯한 영국 음악가들의 소속 밴드들을 정리한 표. 잘 안보이면 링크 참조.
야드버즈는 1963년 영국 런던에 결성되었다. 원래 이름은 메트로폴리스 블루스 쿼텟이었으나 63년에 이름을 야드버즈로 바꾸었다.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앤토니는 무려 16살이었다. 그러나 곧 부모님의 반대로 탈퇴하게 되고, 에릭 클랩튼이 기타리스트로 섭외된다.
64년에 에릭 클랩튼이 정통 블루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탈퇴하자 그 뒤를 이어 제프 벡이 기타리스트로 영입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베이스의 폴 샘웰스미스가 탈퇴하자 66년에 지미 페이지가 영입된다. 지미 페이지는 처음에는 베이스를 위해 가담했지만 후에 제프 벡과 함께 공동 리드기타 역할을 맡게 된다. 그 후 이 라인업의 야드버즈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욕망(영화)에 잠깐이지만 강렬하게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 속 공연 중에[2] 제프 벡이 음향 문제에 열받아서 기타를 부수고 그 부품조각들을 관객에게 던져줬다. 관객들은 서로 그 조각을 가지려고 광분하는데 그걸 손에 넣은 주인공은 그걸 뺏으려는 관객에게 추격을 받고 공연장 밖으로 도망가지만 자신에게 별 쓸모도 없는 물건임을 깨닫고 길가에 버리고 그걸 본 다른 사람들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참고로 이렇게 공연 중에 기타를 부수는 행위는 더 후가 런던의 클럽 라이브 중에 최초로 행한 뒤에 화제가 되면서 다른 밴드들도 따라하며 한창 유행하고 있던 퍼포먼스였다. 그런 얘기를 우연히 들은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비록 록음악엔 문외한이었지만[3] 악기 파괴 행위와 그 부숴진 조각들에 대한 짤막한 에피소드를 자기 영화에 삽입하면 유의미한 장면이 되리라 생각하고 [4] 그 장면 촬영을 위해 더 후를 섭외하려 했으나 스케줄 문제로 출연이 불발되었고 대타로 야드버즈가 출연하게 된 것이다.
이후 야드버즈는 제프 벡 등의 탈퇴로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되고, 밴드를 남겨두고 싶었던 지미 페이지가 1968년 로버트 플랜트, 존 본햄, 존 폴 존스를 영입하여 ‘뉴 야드버즈’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밴드 멤버들이 ‘뉴 야드버즈’라는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제프 벡 등 야드버즈의 전 멤버들이 야드버즈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기에 밴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때 뉴 야드버즈의 멤버들과 친분이 있던 더 후의 키스 문은 “너희 밴드는 납(Lead)으로 만든 비행선(Zeppelin)처럼 추락할거야”라는 농담을 하면서 밴드의 새 이름으로 레드 제플린을 추천해 준다. 멤버들은 이를 받아들여 레드 제플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레드 제플린/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레젭과는 별개로 야드버즈는 1992년에 재결성을 하고 현재까지 공연 중이다. 현재 오리지널 라인업은 드러머인 '짐 매카티' 밖에 없다.[5]
대표작으로는 Roger the Engineer를 꼽는다. 야드버즈 사운드의 완성형이라는 평가를 받는 앨범이다.
4. 인기 및 평가
개별 멤버들이 야드버즈 활동 당시보다도 그 이후 활동에서 훨씬 더 뜬 바람에 밴드 자체의 인지도는 조금 애매한 편. 라이브에서 인기는 괜찮았으나 차트 성적은 최대 20위 정도로 영국에서도 중박 히트 밖에 못 쳤고[6] 비틀즈, 롤링 스톤즈, 킹크스, 더 후 같이 함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던 동년배 거물 밴드들에 비해 (현역 밴드로써) 단명한 편인지라 야드버즈 자체보다는 주로 xx 멤버가 있었던 전 밴드 이런 쪽으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블루스 밴드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 같은 밴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7] 그래도 라이브에서의 인기는 좋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소소한 팬층도 있었고 이는 레드 제플린이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에 영향을 줬다.하지만 제프 벡이 야드버즈 시절에 퍼즈톤의 기타연주 기법을 발전시키는 등[8] 평단에서는 알게 모르게 일렉기타 연주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밴드다. 리드 보컬인 '키스 렐프'[9]는 1976년에 지하실에서 기타를 치다가 감전사를 당한 불행한 사실[10] 때문에 나머지 멤버들 중에서 인지도가 약간이나마 높다.
5. 디스코그래피
- Five Live Yardbirds (1964)
- For Your Love (1965)
- Having a Rave Up with The Yardbirds (1965)
- Roger the Engineer (1966)
- Little Games (1967)
- Birdland (2003)
6. 여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이라는 영화에서 야드버즈가 공연하는 모습이 나온다. 지미 페이지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제프 벡이 기타를 부수는 모습이 담겨있다.[1] 참고로, 이 3대 기타리스트라는 건 1970년대에 어느 일본 음악기자가 그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주장한 3대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한국에 들어와서 마치 확고한 정설인 것처럼 정착된 건데, 오직 한국에서만 유행해온 표현일 뿐이고 한국 이외의 나라들에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이 아니다. 일단 확고부동의 1위로 인정받는 지미 헨드릭스가 여기에 빠져있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도 어느 정도 기타리스트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서 잘 쓰지 않는 표현이 되어가고 있다.[2] 이 때 연주한 곡은 'Train Kept A Rollin''과 동일한 연주에 가사만 바꾼 'Stroll On'이다.[3] 안토니오니는 촬영 당시 50대 장년 나이의 이탈리아인이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영국 모드 문화나 록음악 문화에 대해 잘 몰랐던게 당연했다. 화망 사운드트랙도 록 뮤지션이 아닌 재즈 뮤지션인 허비 행콕이 맡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청년문화에 대해 관심이 생겼는지 나중에는 아예 미국 청년 반문화를 다룬 영화인 '자브리스키 포인트'를 찍기도 한다.[4] 이 장면은 실상 별로 의미없음에도 사진 속 이미지에 집착하는 주인공 그 자신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5] 재결성에 참가한 멤버로 리듬기타, 베이시스트인 '크리스 드레야'(Chris Dreja: 아버지가 폴란드 태생이라 Dreja를 드레야라고 발음)도 있었으나 건강 상 문제로 2013년에 탈퇴를 했고 (참고로 크리스는 Roger the Engineer 앨범 커버를 그리기도 했다.), 그를 대신해서 에릭 클랩튼 이전에 리드 기타리스트를 잠깐 했던 '앤서니 탑햄'이 잠깐 합류한 바 있다.[6] 이상하게 차트 성적이 안 좋았던 밴드였다. 미국은 훨씬 박해서 137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받았다.[7] 스튜디오 앨범도 낸 밴드이지만 하필 이 밴드를 다녀갔던 음악가들이 에릭 클랩튼, 잭 브루스(크림), 믹 테일러(롤링 스톤스), 피터 그린, 믹 플리트우드, 존 맥비(플리트우드 맥), 앤슬리 던바(프랭크 자파)인지라(...).[8] 참고로 퍼즈 톤은 미국의 기타리스트 '링크 레이'가 'Rumble'에서 처음 썼다.[9] 위 사진의 왼쪽부터 두 번째에 있는 인물로 보컬로서 성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해체 이후에는 르네상스라는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고 사망 직전에 르네상스 재결성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10] 평소에도 천식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이게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