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버전[1] | 음원 |
1. 개요
푸가지(Fugazi)는 1986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결성된 포스트 하드코어,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다. Fugazi라는 단어는 짝퉁이나 고장난 것을 가리키는 속어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들 사이에서 쓰이던 "Fucked Up, Got Ambushed, Zipped In"[2]이라는 표현에서 유래되었다. 포스트-하드코어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로 후대 인디 록에 큰 영향을 미쳤다.2. 멤버
- 이안 맥케이(Ian MacKaye) - 보컬, 기타
- 가이 피치오토(Guy Picciotto) - 보컬, 기타
- 조 랠리(Joe Lally) - 베이스
- 브랜든 캔티(Brendan Canty) - 드럼
3. 역사
푸가지의 시작은 이안 맥케이의 하드코어 펑크 밴드 마이너 스렛이었다. 마이너 스렛은 하드코어 펑크 신에 음악적,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지만 결성 3년 만에 해체되었고, 맥케이는 기존 펑크 록의 단순함에서 벗어난 새로운 음악을 하려고 했다. 이안 맥케이와 조 랠리가 먼저 뭉쳤고, 이어서 최초의 이모코어 밴드 'Rites of Spring'의 멤버였던 가이 피치오토와 브랜든 캔티가 합류해 푸가지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그 뒤 본격적으로 공연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8년 데뷔 EP 'Fugazi'와 후속 EP 'Margin Walker'를 연이어 발표한다.[3] 이 음반들의 뛰어난 완성도와 격렬한 라이브 퍼포먼스로 밴드는 점차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 기세를 타고 발표한 정규 1집 'Repeater'는 인디 앨범으로서는 대단히 높은 약 300,000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이러한 훌륭한 성과에 더불어 1991년 너바나가 불을 당긴 얼터너티브 열풍으로 푸가지는 금세 음악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뚝심있게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아틀란틱 레코드를 비롯한 각종 메이저 음반사에서 러브콜을 보냈으나 이들과 계약하지 않고 자신들의 인디 레이블 '디스코드 레코드(Dischord Records)'로만 음반을 발매했으며, MTV나 롤링 스톤 같은 주류 매체의 인터뷰, 공연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 1993년 롤라팔루자 페스티발의 헤드라이너로 서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으나 이 역시 거부. 또한 가난한 팬들을 위해 공연 관람료는 무조건 6달러 이하, 음반 가격은 무조건 10달러 이하라는 기준을 세워 활동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스트레이트 에지' 가치관을 고수하며 인터뷰나 노래 가사 등으로 정치적 성향을 여과없이 드러냈으며, 각종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렇듯 메인스트림을 철저히 거부하고 언더그라운드를 위주로 활동했으나 1995년 'Red Medicine'이 빌보드 200 126위, 영국 오피셜 차트 18위를 기록한 것을 필두로 여러 음반을 차트 위에 올리며 활약했다.
2001년의 스튜디오 앨범 'The Argument'를 낸 후 2003년 공식적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이안 맥케이에 따르면 해체한 것은 아니며, 현재까지도 멤버들끼리 종종 모여 합주를 하기도 한다고. 그러나 새 앨범 발표나 공연 계획은 없다고 한다. 활동 중지 이후로 각종 매체에서 거액의 재결합 제안들이 들어왔다고 하며, 코첼라 페스티발에서는 공개적으로 큰 돈을 대가로 재결합 공연을 설 것을 제시했으나 그들답게 모두 거절했다.
음악적으로는 초기에는 직선적인 포스트 하드코어 사운드를 구사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노이즈 록, 포스트 펑크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펑크 록을 기반으로 기존 하드코어 펑크에선 금기시되었던 레드 제플린, AC/DC 등의 고전 하드 록 사운드를 받아들였으며, 레게나 Funk 등의 특성도 접목했다. 이들의 음악은 포스트 하드코어 장르의 교본이자 금자탑으로 꼽히며, At The Drive-In, 리퓨즈드, 맥러스키 같은 하드코어 밴드들은 물론이고, 펄 잼[4], 블러[5],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엘리엇 스미스, 잭 화이트 같은 인디 록 음악가들 전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더 클래시의 조 스트러머,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조니 마 같은 선배 뮤지션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모든 앨범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그 중에서도 'Repeater'와 'The Argument', 컴필레이션으로는 '13 Songs'가 명반으로 꼽힌다.
4. 스트레이트 에지
푸가지는 스트레이트 에지(Straight Edge, sXe) 무브먼트의 대표 격으로 여겨진다. 이 용어는 마이너 스렛 시절의 동명의 곡 'Straight Edge'에서 비롯되었으며, 약물과 각종 사건 사고로 얼룩진 기성 록 음악 신에 반발하며 금욕적이고 진실된 태도를 추구하는 신념을 뜻한다. 상업적으로, 이들은 거대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DIY 정신을 모토로 주류 시스템의 대안을 추구했다. 자체 레이블을 설립해서 스스로 음반을 유통했고, 기존의 음반 가격과 공연 티켓 가격이 음반사들과 공연 기획사들의 담합으로 인해 거품이 크게 끼어 있는 바가지라고 주장하며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음반, 공연 활동을 벌였다. 정치적으로는 성 평등, 도덕적인 삶을 주장하며 이러한 성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스트레이트 에지' 정신은 이후 많은 하드코어 밴드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하위문화가 되었으며, WWE의 스트레이트 에지 소사이어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스트레이트 에지의 기본 수칙은 다음과 같다.
5. 디스코그래피
- 정규 앨범
- Repeater (1990)
- Steady Diet of Nothing (1991)
- In on the Kill Taker (1993)
- Red Medicine (1995)
- End Hits (1998)
- The Argument (2001)
- EP
- Fugazi (1988)
- Margin Walker (1989)
- 3 Songs (1989)
- Furniture (2001)
- 컴필레이션 앨범
- 13 Songs (1989)
[1] 1988년 12월 29일 워싱턴 D.C. 윌슨 센터에서 촬영되었다.[2] 좆되다, 매복에 당하다, (시체 가방에) 지퍼가 잠기다.[3] 이 두 EP는 1989년 '13 Songs'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합쳐져 발매되었다.[4] 보컬 에디 베더는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로 이들의 '13 Songs'를 꼽았다.[5] 그레이엄 콕슨은 이들의 음악을 접한 순간이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밝혔다.[6]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밴드 공연문화를 전해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미성년자가 공연자에 들어서면 손등이나 손목에 X 표식을 그려주기도 했는데, 후에는 이 손에 X를 그리는게 스트레이트 엣지 씬 전체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7] 특히 그 중에서도 비건, 즉 완전 채식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