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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01:56:14

러시(밴드)

파일:Rush_logo.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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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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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러시
RUSH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게디 리, 알렉스 라이프슨, 닐 피어트
입성 연도2013년
후보자격 연도1999년
후보선정 연도2013년}}}}}}}}}

파일:D35299F0-A94E-4256-858A-16C852ABB793.png파일:Acclaimed-Music-Logo-Dark.png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1980년대 아티스트
88위

파일:월스트리트 저널 로고.svg 선정
가장 인기 있는 록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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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저널이 2018년 음반 판매량, 유튜브 조회수, 차트 및 음원 성적 등을 종합하여 통계 산출을 통해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록밴드를 선정했다.
<rowcolor=#fff,#000>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
<rowcolor=#fff,#000>6위7위8위9위10위
AC/DC 이글스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스 에어로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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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000>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플리트우드 맥 린킨 파크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마룬 5 본 조비
<rowcolor=#fff,#000>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U2 밴 헤일런 저니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산타나
<rowcolor=#fff,#000>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시카고 너바나 더 후 비치 보이스 콜드플레이
<rowcolor=#fff,#000>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도어즈 레너드 스키너드 그린 데이 펄 잼 포리너
<rowcolor=#fff,#000>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블랙 사바스 니켈백 데프 레파드 푸 파이터스 하트
<rowcolor=#fff,#000>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폴 아웃 보이 더 폴리스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 ABBA 원리퍼블릭
<rowcolor=#fff,#000>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제네시스 R.E.M. 키스 러시 ZZ TOP
<rowcolor=#fff,#000>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고릴라즈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패닉! 앳 더 디스코 blink-182 다이어 스트레이츠
51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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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75A5D13-D37C-4A62-94E4-4B9BA96D570A.png 선정 가장 위대한 하드 록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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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2px"
VH1이 2000년 발표한 가장 위대한 하드 록 아티스트 순위.
<rowcolor=#fff>1위2위3위4위5위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지미 헨드릭스 AC/DC 메탈리카
<rowcolor=#fff>6위7위8위9위10위
너바나 밴 헤일런 더 후 건즈 앤 로지스 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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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2px"
<rowcolor=#fff>11위12위13위14위15위
에어로스미스 섹스 피스톨즈 사운드가든 핑크 플로이드
<rowcolor=#fff>16위17위18위19위20위
크림 라몬즈 오지 오스본 더 클래시 앨리스 쿠퍼
<rowcolor=#fff>21위22위23위24위25위
펄 잼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 칩 트릭
<rowcolor=#fff>26위27위28위29위30위
모터헤드 이기 팝 러시 머틀리 크루 레드 핫 칠리 페퍼스
<rowcolor=#fff>31위32위33위34위35위
데프 레파드 도어즈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앨리스 인 체인스 제인스 애딕션
<rowcolor=#fff>36위37위38위39위40위
프랭크 자파 야드버즈 MC5 닐 영 & 크레이지 호스 스톤 템플 파일럿츠
<rowcolor=#fff>41위42위43위44위45위
Ted Nugent 킹크스 Nine Inch NailsZZ Top 판테라
<rowcolor=#fff>46위47위48위49위50위
스콜피온즈 The Rollins Bird재니스 조플린Smashing Pumpkins슬레이어
<rowcolor=#fff>51위52위53위54위55위
Thin LizzyFaith No MoreKornSonic Youth블루 오이스터 컬트
<rowcolor=#fff>56위57위58위59위60위
White ZombieHeart앤스랙스Bad CompanyNew York Dolls
<rowcolor=#fff>61위62위63위64위65위
제쓰로 툴Ministry보스턴SteppenwolfThe Cult
<rowcolor=#fff>66위67위68위69위70위
Joan Jett & The Blackhearts롤링 스톤스Husker Du메가데스Living Colour
<rowcolor=#fff>71위72위73위74위75위
레너드 스키너드푸 파이터즈Twisted SisterPat BenatarSpinal Tap
<rowcolor=#fff>76위77위78위79위80위
본 조비HoleMarilyn MansonRattGreen Day
<rowcolor=#fff>81위82위83위84위85위
PixiesQueensrycheKing's XUFOWhitesnake
<rowcolor=#fff>86위87위88위89위90위
포리너킹 크림슨ToolLita Ford레인보우
<rowcolor=#fff>91위92위93위94위95위
DanzigBlack CrowesLenny Kravitz예스Fugazi
<rowcolor=#fff>96위97위98위99위100위
Meat LoafPrimusMountainBed BrainsQuiet 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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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VH1 선정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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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11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로 뽑은 "가장 위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이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러시 핑크 플로이드 제네시스 제쓰로 툴 킹 크림슨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예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TOOL 더 마스 볼타 드림 시어터
같이 보기: 아티스트, 프로그레시브 명반 }}}}}}}}}

파일:Ultimate Classic Rock 로고.png 선정 50대 프로그레시브 록 아티스트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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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ltimate Classic Rock이 2023년에 선정한 50대 프로그레시브 록 아티스트를 정리한 틀이다. 이는 음악 자체의 작품성 보다는, 얼마나 프로그레시브 록 스러운지, 프로그레시브 록에 미친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기준으로 선정 되었다고 한다.[1]
<rowcolor=#fff,#000>1위2위3위4위5위
킹 크림슨 제네시스 예스 핑크 플로이드 프랭크 자파
<rowcolor=#fff,#000>6위7위8위9위10위
러시 젠틀 자이언트 제쓰로 툴 카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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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000>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캐러밴 Van der Graaf Generator 더 마스 볼타 마이크 올드필드
<rowcolor=#fff,#000>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 캔자스 오페스
21위부터는 링크 참조.
[1] 때문에 ELO 같은 아트 록 성향이 강한 밴드는 선정 되지 않았으며, 핑크 플로이드의 순위도 작품성에 비해 낮게 랭크 되어있다.
}}}}}}}}} ||}}}}}}}}} ||

{{{#!wiki style="margin:-10px -10px"<tablewidth=90%><tablebordercolor=#fff,#1c1d1f>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svg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 화이트.svg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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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러시
RUSH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음악 심볼.jpg 음악
입성날짜 2010년 6월 25일
위치 6752 Hollywood Blv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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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파일:Rush_logo.png 러시
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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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ettyImages-84885264.jpg
<colcolor=#fff><colbgcolor=#ff0000> 국적
[[캐나다|]][[틀:국기|]][[틀:국기|]]
결성 1968년 8월

[[캐나다|]][[틀:국기|]][[틀:국기|]] 온타리오주 토론토
데뷔
[[캐나다|]][[틀:국기|]][[틀:국기|]] 1974년 3월 1일
(데뷔일로부터 [dday(1974-03-01)]일째)
데뷔 앨범
활동 시기 1968년 ~ 2018년
멤버 게디 리 (보컬,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 등)
알렉스 라이프슨 (기타)
닐 피어트 (드럼)
장르 프로그레시브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하드 록, 헤비 메탈
레이블 파일:애틀랜틱 레코드.png
링크 파일:Rush_logo.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특징3. 역사4. 인기5. 구성원
5.1. 게디 리(Geddy Lee)5.2. 알렉스 라이프슨(Alex Lifeson)5.3. 닐 피어트(Neil Peart)5.4. 존 룻세이(John Rutsey)
6. 디스코그래피
6.1. 밴드 결성6.2. 프로그레시브 실험 시기6.3. 프로그레시브 중흥 시기6.4. 실험 완성 시기6.5. 신디사이저 실험 시기6.6. 기타 강조 시기6.7. 공백 이후 부활 시기
7. 기타

[clearfix]

1. 개요

파일:rush gig.jpg
러시는 1968년에 결성되어 2018년에 해체된 캐나다록 밴드이다.

2. 특징

러시는 프로그레시브 록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이자 헤비 메탈 밴드이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상징과도 같은 밴드로 일컬어진다.

멤버는 OC[1] 게디 리(Geddy Lee, 보컬, 베이스, 키보드), OC 알렉스 라이프슨(Alex Lifeson[2], 기타), OC 닐 피어트(Neil Peart, 드럼)[3]다. 1970-80년대가 전성기였지만, 2018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4]

라이프슨과 피어트의 건강 문제로 2015년을 마지막으로 라이브 투어에서 은퇴했으며,[5] 결성 50주년인 2018년에 모든 활동을 중지한다고 선언했다. 결국 3년 반의 투병 끝에 현지 시간으로 2020년 1월 7일 피어트가 교모세포종으로 67세에 사망했다.#

3. 역사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서로 친해진 게디 리와 알렉스 라이프슨, 그리고 라이프슨의 친구인 존 룻세이(John Rutsey)가 스쿨밴드를 만들어 게디 리의 집 지하실에서 연습을 하게 되며 결성되었다. 이후 1974년 드러머였던 룻세이가 당뇨병 증세를 보여[6] 도중에 탈퇴하고 현재의 드러머인 닐 피어트가 합류하면서 자신들만의 색채를 찾기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 커버밴드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는 16세 때부터였고 매주 주말마다 시내에 있는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7] 이 때 매니지먼트사의 눈에 들어 소속사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 12학년(고등학교 3학년) 때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중퇴를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피해 고향을 떠나서 캐나다로 이민을 왔던 부모들은 자식들이 학업에 정진하여 번듯한 직장을 가지기를 바랐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앞날이 불확실한 음악인의 길을 걷겠다고 하니 반대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데뷔 후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부모들은 그제서야 왜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뒀는지 알게 됐다고 한다.[8] 다만, 알렉스 라이프슨은 나이가 들면서 그래도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에 대해 좀 후회하는 듯하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 다시 학구열에 생긴 듯하다.[9]

두 차례에 걸쳐 프로그레시브적 요소를 섞던 실험을 하던 러시는 이 두 앨범이 상업적으로 실패하자[10][11] 이제 돈이 되는 작품을 만들라는 레이블의 압박과 주변인들의 극렬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밴드를 접을 각오로 20분짜리 대곡 타이틀을 건 앨범 2112를 냈는데, 이 앨범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락의 세계에서 새로운 별로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무지막지하게 긴 곡을 라디오에서 틀어주기엔 무리가 따랐고[12], 공상과학 요소가 짙게 깔린 20분짜리 곡 '2112'는 당시 음악계 기득권층의 눈에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놈들이 같잖게 똑똑한 척' 하는 것으로 보였으며, 때문에 러시는 1970년대 당시 평론가들에게 줄기차게 까이는 동시에 대중 미디어 업계에서 거의 무시당하다시피 하였다. 당시 평단이 싫어했던 음악이 헤비메탈/하드 록, 그 중에서도 프로그레시브를 가장 싫어했다고 하는데, 이들이 보기에 헤비메탈/하드 록은 기품이 없는데다가 특히 프로그레시브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않은 락 스타들이 예술가 흉내를 내려고 하는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속사 측에서는 러시는 여타 유명 밴드들처럼 실력도 꿀리지 않고 공연 티켓도 늘 매진인데 뭐가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밴드 멤버 본인들은 러시가 다른 락밴드들처럼 확실한 밴드 이미지나 컨셉이 없어서 늘 이것저것 있어보이는 옷들을 주워 입고 사진을 찍거나 했던 것이 그러한 악평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물론 입소문을 듣고 라이브를 직접 본 팬들은 그런 평론가들 얘기엔 귀조차 기울이지 않았지만. 팬들 외에도 KISS를 비롯한 다른 프로 밴드들 역시 러시의 실력과 음악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당시 메인스트림과 어울리지 않았던 그들의 스타일 때문에 평론가들이 줄기차게 까댄 부분이 안타깝다고 한다.[13]

그 후로 하드록에 다채로운 구성과 실험적인 연주, 지적인 가사를 가미하는 노력을 계속한 덕분에 1980년대에는 '킹 크림슨예스레드 제플린을 만났으니 그게 바로 러시다'라는 평을 거쳐 현재는 러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다. 기존에 만들어진 장르의 틀에 함부로 담을 수 없다는 식으로 숭배되다시피 한다.

러시의 곡은 처음 들어보면 단 세 사람이 내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깊고 풍성한 느낌을 준다. 메탈리카의 기타리스트인 커크 해밋2112 앨범을 처음 듣고 대규모 슈퍼밴드라고 생각하고 앨범 표지를 봤는데 3인조 밴드라는 것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실제로 밴드 구성원 하나하나가 자신의 분야에서 거의 기인의 경지에까지 다다랐기 때문. 알렉스와 게디는 라이브에서 각각 기타와 베이스를 치는 동시에 발로 이펙터와 건반을 조작하는 묘기를 부리는데, 이는 배경 트랙을 사용하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선보였던 음색과 효과를 그대로 재연하려는 밴드의 고집이라 할 수 있겠다.

곡의 가사와 주제는 주로 닐 피어트가 담당하는데, 철학적인 고찰에서부터 장대한 서사 구조, 현대인의 생활상과 사회상 등 깊이 있는 주제를 선호하는 편이다. 본디 성격이 내성적이었던 피어트 본인이 드러머이기 이전에 독서광이었다는 점은 서구에서 흔히 생각하는 "드러머는 때리고 부순다"는 고정 관념과 정면으로 대비되기도 한다.[14]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피어트는 제2차 세계 대전 말미에 미국이 계획한 원자폭탄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프로젝트와 그 결과였던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주제로 한 곡 Manhattan Project의 가사를 쓰기 위해 이와 관련된 책을 무려 10권이나 읽었다.[15][16]

1970년대에 공상 과학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 대곡을 위주로 활약했던 러시는 1980년대에는 음악적인 실험의 일환으로 신디사이저 음이 짙게 깔린 뉴웨이브록을 연주하였고, 1990년대 이후 다시 기타의 비중을 높이면서 초창기 때의 모습과 1980년대 당시 실험의 결과를 버무린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위에 적은 것처럼 사실상 프로그레시브 하드록,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완성시킨 밴드로, 이후 드림 씨어터[17][18]를 비롯한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들에게 엄청난 추앙을 받고 있다.[19] 또한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아니더라도 엔간한 메탈한다는 사람들은 거의 다 러시를 존경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미스터 빅의 리더 빌리 시언과 보컬 에릭 마틴, 밴드 그레이트 화이트, 기타리스트 조지 린치, 제이크 E. 리 등등으로 이들은 러시 트리뷰트 앨범에도 참여하였다.

메탈 쪽이 아니더라도 러시 이후의 세대 중 프로그레시브적인 실험성을 추구하는 록 밴드들 다수가 러시의 영향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스매싱 펌킨스, 프라이머스, TOOL 등등.

2016년 게디와 알렉스의 고향인 토론토의 노스 욕(North York)에 'Lee & Lifeson Art Park'가 개장했다.

2018년 알렉스 라이프슨의 인터뷰에 따르면, 앨범과 투어 등 더이상 러시로서의 활동 계획이 없다고 했다. 사실 마지막 투어가 된 2015년 투어 때도 라이프슨의 건선성 관절염과 피어트의 만성 건염 등 건강 문제로 더 이상의 투어는 못 돌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도 당시에는 앨범 작업 정도는 기대해봐도 좋다고 했었지만... 결국 2012년 Clockwork Angels가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2020년 1월 닐 피어트가 교모세포종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러시의 나머지 멤버들은 러시로서의 활동을 그만두었다. 이렇게 50년 넘는 밴드의 역사가 마감됐다.

2021년 러시의 이름을 딴 에일 맥주를 발매하였다. 멤버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2022년부터는 공식활동 보단 자선 공연이나 후배들의 공연 특별 게스트로 간간히 나오곤 한다. 푸 파이터스 드러머인 테일러 호킨스의 사망으로 추모 공연이 열렸을 때 참여하기도 하였다.

4. 인기

사실 위에서 얘기하는 내용은 평론가나 저널리스트들이 주로 인용할만한 정보이고, 팬들이 러시에 보이는 가히 절대적인 충성심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실제로 러시가 신출내기 시절이었던 70년대, 모든 주류 매체(라디오, TV, 리뷰 잡지)로부터 동네북으로 줄기차게 까이던 러시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팬들이 매체의 악평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공연에 찾아오고 음반을 사주었기 때문이었으며,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식과 후손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러시를 전수해주는 등 단순히 팬의 수준을 넘어선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따라서 이런 충성심이 나타날 수 있는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러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남들이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 "목소리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 뿐, 그 외 위 네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편이다.

밴드에 대한 충성심이 엄청 높다보니 러시가 20대일 때부터 팬이었던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에게까지 록 음악을 러시로 입문시키고, 그 자식들도 자신들의 친구들에게 러시를 전파하게 되면서 팬들의 연령층은 세대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 Subdivision처럼 어릴 때 소외받고 자랐던 팬들이 보란듯이 성장하여 사회적 성공을 이뤄 가족들과 친구들을 공연장에 함께 데리고 가게 되었고, 이는 날이 갈수록 밴드의 성공과 어마무시한 수입으로 연결되었다.

5. 구성원

5.1. 게디 리(Geddy Lee)

5.2. 알렉스 라이프슨(Alex Lifeson)

5.3. 닐 피어트(Neil Peart)

5.4. 존 룻세이(John Rutsey)

파일:john rutsey.jpg
파일:early rush.webp
좌측부터 알렉스 라이프슨, 게디 리, 존 룻세이
1952년 7월 23일 ~ 2008년 5월 11일

본명은 존 하워드 룻세이(John Howard Rutsey). 러시의 초창기 멤버이며 1974년까지 드러머로 활동했다.

밴드 결성 당시 알렉스 라이프슨의 친구였으며, 러시라는 밴드의 결성에 꽤나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초기 밴드의 방향성을 잡을 때 가장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고민했으며, 작사·작곡도 자신이 대부분 하였다. 다만 완벽주의적인 성향이라 작성한 가사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적는 스타일이었다고.[28] 또한 드럼 실력도 꽤나 출중한 편이어서 어찌보면 닐 피어트와 유사한 면이 있다.

밴드명인 ’러시‘도 존의 형인 빌 룻세이가 지은 것으로, 리허설을 구경하던 중 문득 떠올린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나친 음주와 앓고 있던 당뇨병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1974년 1집 녹음을 마친 뒤 동년 7월 25일 마지막 라이브 공연을 끝내고 러시를 탈퇴한다. 존 본인이 라이브 공연을 하러 여기저기 이동하는 빡빡한 스케줄을 개인적으로 싫어했던 이유도 있었다.

탈퇴 이후에는 아마추어 보디빌더가 되었고 오랜 친구였던 라이프슨과도 종종 안부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교류가 뜸해졌고, 라이프슨도 2000년대 초반 진행한 인터뷰에서 룻세이와 연락을 주고 받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밝혔다.

2008년 5월 11일 사망했다. 사인은 당뇨 합병증으로, 집에서 잠을 자던 도중 급사했다고 한다. 게디와 라이프슨도 그의 비보에 추모 의사를 전했다.

6. 디스코그래피

6.1. 밴드 결성

1집: Rush (1974) - 대표곡: In The Mood, Working Man
1집 뮤직 비디오: In The Mood

6.2. 프로그레시브 실험 시기[29]

2집: Fly By Night (1975) - 대표곡: Anthem, Fly By Night, By-Tor and the Snowdog[30]
2집 뮤직 비디오: Anthem, Fly By Night
3집: Carass of Steel (1975) - 대표곡: Bastille Day, The Necromancer, The Fountain of Lameneth

6.3. 프로그레시브 중흥 시기

4집: 2112 (1976) - 대표곡: 2112, A Passage to Bangkok, The Twilight Zone
4집 라이브: All the World's a Stage (1976)
5집: Farewell To Kings (1977) - 대표곡: A Farewell To Kings, Xanadu, Closer to the Heart, Cygnus X-1 Book I: The Voyage.
5집 뮤직 비디오: A Farewell To Kings, Xanadu, Closer To The Heart

6집: Hemispheres (1978) - 대표곡: Cygnus X-1 Book II: Hemispheres, Circumstances, The Trees, La Villa Strangiato. 앨범 전체.
6집 뮤직 비디오: Circumstances, The Trees

6.4. 실험 완성 시기

7집: Permanent Waves (1980) - 대표곡: The Spirit of Radio, Freewill, Jacob's Ladder, Entre Nous, Natural Science

8집: Moving Pictures (1981) - 대표곡: Tom Sawyer[31], Red Barchetta, YYZ[32](연주곡), Limelight, The Camera Eye, Witch Hunt, Vital Signs.
8집 뮤직 비디오: Tom Sawyer, Limelight, Vital Signs
8집 라이브: Exit...Stage Left (1981) (유튜브 채널 참고)

6.5. 신디사이저 실험 시기

멤버들과 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호불호가 갈렸던 시기였다. 심지어 알렉스 라이프슨 조차 신디사이저의 도입에 반대를 했었는데 이 당시만해도 기타 중심의 록 팬들은 신디사이저나 이를 자동으로 재생하는 시퀀서는 가짜 악기라는 인식이 상당히 강했다.[33] 적어도 딥 퍼플의 존 로드처럼 해몬드 오르간이라면 모를까 희한한 전자소리를 내는 신디사이저 사운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 이외에 신디사이저 때문에 기타의 역할을 가져갔다는 생각 때문에 더 반발이 심했다 한다.[34]

9집: Signals (1982) - 대표곡: Subdivisions[35], The Analog Kid, Chemistry, Digital Man, The Weapon, New World Man, Losing It, Countdown.
9집 뮤직 비디오: Subdivisions, Countdown

10집: Grace Under Pressure (1984) - 대표곡: Distant Early Warning, Afterimage, Red Sector A, The Enemy Within, Behind the Wheels
10집 뮤직 비디오: Distant Early Morning, Afterimage, The Enemy Within, The Body Electric
10집 라이브: Grace Under Pressure Tour (1984) (유튜브 채널 참고)

11집: Power Windows (1985) - 대표곡: The Big Money, Manhattan Project, Marathon, Territories, Middletown Dreams, Mystic Rhythms
11집 뮤직 비디오: The Big Money, Mystic Rhythms

12집: Hold Your Fire (1987) - 대표곡: Force Ten[36], Time Stand Still, Prime Mover, Lock and Key, Mission.
12집 뮤직 비디오: Time Stand Still, Lock and Key
12집 라이브: A Show of Hands (유튜브 채널 참고)

6.6. 기타 강조 시기

신디사이저 실험 시기 때 자신의 역할이 뒤로 물려났다고 계속 느낀 라이프슨이 다시 사운드의 메인이 되고 싶다 해서 다시 기타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본인의 바램과 달리 이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하는데, 러시의 실력과 인기 때문에 많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취향이나 성향을 라이프슨에게 자꾸 요구를 하였기 때문에 앨범 작업시 많은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라이프슨 역시 게디 리처럼 다양한 페달이나 이펙터를 사용해서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프로듀서들은 그가 그런 부가적인 도구를 쓰지 않고 단순한 이펙트만 사용한 연주를 요구했다고 한다.

13집: Presto (1989) - 대표곡: Show Don't Tell, Chain Lightning, The Pass, Scars, Superconductor, Hand Over Fist
13집 뮤직 비디오: Show Don't Tell, The Pass, Superconductor
14집: Roll The Bones (1991) - 대표곡: Dreamline, Roll the Bones, Where's My Thing?, Ghost of a Chance
14집 뮤직 비디오: Roll The Bones
15집: Counterparts (1993) - 대표곡: Animate, Stick It Out, Nobody's Hero, Leave that Thing Alone(연주곡), Cold Fire
15집 뮤직 비디오: Stick It Out, Nobody's Hero
16집: Test For Echo (1996) - 대표곡: Test For Echo, Driven, Half the World, Virtuality, Resist[37], Limbo(연주곡)
16집 뮤직 비디오: Driven, Half The World

6.7. 공백 이후 부활 시기

1996년 말, 닐 피어트가 딸을 차 사고로 잃었고 아내 역시 병으로 사망하여서 안그래도 감수성이 예민한 닐 피어트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왔었다. 모든 관계자들은 밴드가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17집: Vapor Trails (2002) - 대표곡: One Little Victory, Ghost Rider[38], Secret Touch, Earthshine, Freeze
17집 라이브: Rush In Rio (2002).[39]
18집: Snakes And Arrows (2007) - 대표곡: Far Cry, The Larger Bowl(A Pathoum), Spindrift, The Main Monkey Business, Hope(연주곡), Malignant Narcissism(연주곡).
18집 뮤직 비디오: Far Cry, Malignant Narcissism
19집: Clockwork Angels (2012)[40] - 대표곡: Clockwork Angels, Headlong Flight

7. 기타

파일:external/i.kinja-img.com/17mz76i80hip2jpg.jpg
2012년 5월 16일 뉴욕 양키스토론토 블루제이스 경기에서 호세 바티스타구로다 히로키를 상대로 한 홈런 장면을 보고 놀라는 장면. 이 장면에서 게디 리는 관중석 부분 최좌측상단에 있다.


[1] Officer of the Order of Canada. 캐나다 훈장 2등급. 캐나다의 국익을 신장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훈장. 음악가로서 최초로 받은 명예이다.[2] 본명은 알렉산다르 지보지노비치(Aleksandar Živojinović). 성을 직역하면 삶의 아들(Son of Life), 즉 Lifeson이 된다.[3] 닐 퍼트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닐 피어트로 발음한다.[4] 21세기 들어서의 대표곡은 에디 코크런의 로큰롤 고전을 리메이크한 Summertime Blues(러시의 버전의 경우 더 후와 블루치어의 리메이크 곡을 합친 것 같은 느낌이 난다.). 이 곡은 2004년 WWE 썸머슬램 주제곡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리고 유튜브에 이들의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 노래 등이 올라오면서 젊은 세대에게 재발견되어 음반 매장에 재고로 있던 쌍팔년도 러쉬 음반이 다시 팔리기도 하였다.[5] 라이프슨은 피킹이 힘들 정도였다고 하고, 피어트는 그 전부터 서너 시간의 공연에서 드럼을 꾸준하게 치는 것이 힘들 정도로 금방 지쳐버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라이브 때 최고의 컨디션으로 공연을 못 보여준다는 죄책감에 "차라리 탈퇴를 할 테니 새 멤버를 기용하라"고도 하였지만, 게디 리는 새 멤버들보다는 형제 같은 오랜 친구들과 같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힘든 결정이지만 러시의 활동을 끝내자고 하였다.[6] 실력이 좋은 드러머였으나 원래 몸이 안 좋았던데다가 음주에 대한 절제가 없어서 당시 소속사에선 존 룻세이 때문에 밴드가 망할지도 모르고, 개인 건강을 위해서라도 밴드를 그만두게끔 설득하였다고 한다. 그 후 존 룻세이는 본인 건강에 대한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보디빌더가 되었고 그 후 토론토에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살다가 2008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7] 하지만 당시 음주연령이 높았던 시기라 미성년자였던 이들이 몰래 공연을 하고 다니는 것을 학교에 들키면 안 됐다고...[8] 무명 기간도 짧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메이저 입성 후에는 전국구급 대스타가 되었다.[9] 이 부분은 자기 자식들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학교를 중퇴하고 밴드를 하고 전국구 대스타가 되었으니 학교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자기 자식들을 설득시키기 상당히 어려웠는듯 하다.[10] 처음엔 멤버들 전원 다 엄청난 실력파였기 때문에 소위 BADASS스러운 퀄리티 높은 하드록 앨범을 만들려 했었지만, 닐 피어트의 문학적 지식과 음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취향 덕분에 이러한 실험적인 결과물들이 나왔다. 밴드에서 게디와 알렉스는 원래부터 친구였지만 닐 피어트는 자신이 원년 멤버를 쫓아내고 밴드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스스로 계속 소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게디와 알렉스는 닐을 안심시켜주기 위해 작사나 작곡 등 앨범 작업에 대한 그의 지분을 높였다.[11] 게디는 인터뷰에서 닐 피어트처럼 시적 소양이 깊은 사람은 처음 봤고, 그가 쓴 가사를 처음으로 봤을 때 접해보지 못했던 단어들을 보고 상당히 감탄을 하였으며, 이것으로 차별성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12] 당시에는 비틀즈, 레드 제플린 같은 최고의 인기밴드를 빼면 20분은커녕 5분을 넘는 노래도 라디오에서 내보내기가 힘들었다. 당장 Bohemian Rhapsody 같은 곡도 길이가 6분이나 된다고 라디오는 물론 음반사에서도 퇴짜를 맞던 시절이었다. 6분짜리 곡도 이럴진데, 20분이나 되는 곡을 라디오에서 틀어줄 리가 없었다.[13] 비슷한 예시로 프레디 머큐리 사망 전까지 평론가들한테 까이고 까였다. 러시가 고등학교 중퇴자들이 똑똑한 척한다고 까였다면, 퀸은 대학물 먹은 애들이 자기들이 똑똑하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고 까였다(...).[14] 메슈가의 드러머 토마스 하케는 이런 점에서 닐 피어트의 판박이.[15] 이런 점에서 아이언 메이든의 팬들과 공유층을 서로 이루고 있는데, 두 밴드 모두 서사적인 요소가 강한 점이나 베이스의 테크니컬한 연주가 상당히 튄다는 점이 비슷해 러시 팬들이 아이언 메이든의 팬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16] 메탈리카, 드림 씨어터X JAPAN처럼 드러머가 밴드 리더 혹은 중심 멤버가 아닌 이상은 작곡은커녕 작사 쪽엔 손도 못댄다. 이런 상황에 드러머인 닐 피어트가 작사를 담당하는 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 이 때문에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인 테일러 호킨스가 명예의 전당에서 "대체 어떤 미친 밴드드러머한테 가사를 쓰게 하냐"고 드립을 쳤다. 밴드라는 그룹에서 드러머의 입지를 잘 보여주는 모습.[17] 드림씨어터의 1~2집 홍보문구가 '러시가 메탈리카를 만났다'이다. 러시의 홍보문구였던 '킹 크림슨+예스+레드 제플린'의 오마쥬.[18] 사실 자신들도 밝히듯 멤버 대부분이 러시의 광팬이며, 애초에 드림 시어터의 전신인 머제스티(Majesty)는 러시의 곡들을 커버하는 밴드였다.[19] 특히, 드림 씨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는 2집 Images and Words까지 닐 피어트의 시그니처 드럼셋을 그대로 사용했을 정도로 러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20] 게디의 부모님이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피해자로 종전 후 캐나다로 온 유대인-폴란드계 이민자, 알렉스의 부모님은 세르비아계 이민자로, 노동 계층으로서 힘겹게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21]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 칸이 수도로 지은 도시 상도(上都)에 대한 환상을 노래함.[22] 아예 두 편을 합쳐서 Cygnus X-1 Duology(2연작)이라 하여 28분짜리 대곡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23] 주로 닐 피어트의 드럼. 각종 매체나 유튜브에서 가장 드럼이 어려운 곡을 꼽으라면 이 곡이 항상 top 3에 들어간다.[24] 이전의 한 공연 대기실에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맘껏 주문하라는 에이전시 직원의 말을 듣고 평소부터 궁금해했던 독한 술들을 주문해서 공연 전에 들이켰는데,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공연을 한 후 엄청나게 숙취에 쩔었다고 한다. 이후 주색잡기는 철저하게 멀리하게 되었다고.[25] 게디 리와 알렉스 라이프슨은 예전부터 공연하는 것 이외에는 놀 줄도 몰랐고 닐 피어트 역시 친구가 거의 없다시피 자라서 이들은 흔한 락스타들의 놀이문화와 상당히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닐 피어트의 경우 투어를 가는 곳들은 대부분 대도시라 대형 서점들이 많아서 매우 좋았다고 한다.[26] 여담이지만 70년대를 주름잡던 음악가 중 마약 및 그루피 논란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음악가들(핑크 플로이드, 리치 블랙모어, 브라이언 메이)은 대부분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27] 닐 앞에서 기타/베이스를 치는데 방방 뛰어다닌다거나, 닐 피어트의 액션 피겨를 세운 후에 "얘가 진짜보다 좋은 이유는... 스위치가 있어서 끌 수 있기 때문이죠"라 한다거나, 베이스 앰프 자리에 세탁기와 자판기, 닭고기를 굽는 진짜 요리사를 둔다거나, 미디 페달에 바비 인형을 꽂는다거나. 닐도 이걸 보고 안쓰러웠던 나머지 이렇게 대꾸해주기도 한다.[28] 1집 음반을 제작할 시기 녹음 당일에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죄다 갈아엎었다가 게디 리가 급하게 작사를 해야 했던 적도 있다.[29] 닐 피어트가 합류하여 밴드의 성향이 본격적으로 바뀐 시기다.[30] 러쉬가 최초로 지은 7분 이상의 대곡. 이후 러쉬의 모든 대곡과 이어지는 최초의 실험이다. 당시 레코드 관계자들을 굉장히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31] 별명은 "캐나다의 진짜 국가".[32]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의 공항 코드다. 곡의 처음 시작 부분이 바로 YYZ를 모르스 부호로 옮긴 - . - - - . - - - - . .를 표현한 것이다. 오오 애향심! 오오[33] 오죽하면 퀸의 앨범에도 "우리는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표기해놨을 정도[34] 우스게소리가 아니라 1기타에 신디사이저가 있는 밴드들을 보면 신디사이저가 앵간한 리드 기타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들어 딥 퍼플은 해몬드 오르간이지만 라이브에 기타 사운드의 외적인 부분을 리드를하고, 드림씨어터 역시 키보드가 리드를 하는 경우가 꽤 있고, 스트라토바리우스는 신디사이저를 거의 메인으로 앞세운 밴드다.[35] 위에서도 설명이 되었지만, 도시 구조와 사회에서 그룹 모임에 끼지 못하는 외톨이들에 대한 노래로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공감이 가는 노래. 허약한 체질 때문에 외톨이로 자랐던 닐 피어트의 경험에서 작사되었다[36] 신디사이저 실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인정해주는 명곡. 아예 베이스가 곡의 주역이기 때문이다.[37] 오랜만에 어쿠스틱 기타를 넣었다.[38] 닐 피어트가 딸을 사고로, 그리고 10달 후 아내를 병으로 잃은 후, 죽음을 각오하고 북미 대륙의 도로 8만km를 오토바이로 질주한 경험을 담은 노래. 96년 이후 새 정규 앨범이 발매되기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린 이유가 바로 피어트가 가족을 잃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피어트는 이 경험을 토대로 같은 제목의 책을 내기도 하였다. 리오 라이브에서 피어트의 연주 장면을 보면 평소 진지했던 모습이 더욱 진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39] 북미/유럽 러쉬 팬들이 "우린 지금까지 너무 썰렁했나" 하고 반성하게 만들 정도로 관객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밴드 결성 28년만에 처음으로 브라질에 왔고, 음악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국민성이 합쳐졌다. 아이언 메이든의 Rock In Rio 라이브와 더불어 강력히 추천받는 라이브 DVD이다.[40] 앨범 커버의 시계가 9시 12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4집 앨범/타이틀 곡의 제목인 2112를 21시 12분으로 표현했다.[41] 대표적으로 게디는 1993년 올스타전에 캐나다 국가 독창자로 초청됐었다.[42] 이게 밴드로서 아주 중요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당수의 소규모 관객의 무대에서 오는 압박과 수백 수천 명의 관객이 있는 무대에서 오는 압박감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KISS의 단독 라이브 공연만 봐도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러시는 이런 대규모의 관중 앞에서 공연을 하는 귀중한 경험을 신인 때부터 다져온 것이다.[43] 알렉스 라이프슨은 자신을 "사회자유주의" 성향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44] 주인공은 러시의 <시링스 신전의 사제들>에서 힌트를 얻어 이 단계를 클리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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