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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K. 다우닝 탈퇴 후 라인업 (2011년)[1] 왼쪽부터 이언 힐, 스콧 트래비스, 롭 핼포드, 리치 포크너 글렌 팁튼 |
<colcolor=#fff><colbgcolor=#000>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결성 | 1969년 |
버밍엄 런던 | |
데뷔 | 1974년 9월 6일 (데뷔일로부터 [dday(1974-09-06)]일, [age(1974-09-06)]주년) |
데뷔 앨범 | |
활동 기간 | 1969년 ~ 현재 |
멤버 | 글렌 팁튼 (기타) 리치 포크너 (기타) 롭 핼포드 (보컬) 이언 힐 (베이스) 스콧 트래비스 (드럼) |
전 멤버 | K. K. 다우닝 (기타) 팀 리퍼 오웬스 (보컬) 알 앳킨스 (보컬) 사이먼 필립스 (드럼) 레 빙크스 (드럼) 앨런 무어 (드럼) 존 힌치 (드럼) 데이브 홀랜드 (드럼) |
장르 | 록, 메탈, 헤비 메탈 |
레이블 | 소니 뮤직, 에픽 레코드, 컬럼비아 레코드, 애틀랜틱 레코드 |
링크 | |
[clearfix]
1. 개요
Kick and Rush, Never Surrender.(치고, 달리고, 항복하지 않는다.) - 주다스 프리스트의 컬러.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그러나... 운명은 그다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환경은 전혀 평등하지 않다. 이들은 이미 쇠퇴의 기운이 완연한, 그을음과 재와 검댕과 먼지가 가득한 공장도시 버밍엄에서 태어났고,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위로 기어올라가서 락스타가 되고 자신들의 왕조를 창건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내일이 없는 노동자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8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메탈 무브먼트,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시대의 최고의 헤비메탈 그룹 가운데 하나이며 메탈 룩의 시초로 알려져있다.(때론 엄밀한 의미에서 활동시기를 기반으로 NWOBHM보다 앞선 헤비메탈로 정의함, "메탈갓" 그 자체)블랙 사바스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헤비메탈을 발전시킨 주다스 프리스트는 송곳 같은 트윈 리드기타와 메탈스러운 보컬로 상징된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먼저 보컬에 매료되지만 꾸준히 애청자로 남게 만드는 것은 바로 트윈 리드기타이다. 트윈 리드기타는 이전부터 있었으나 이를 헤비메탈식으로 발전시킨 밴드가 바로 이들이다. 단순히 리드가 2명인 것과 더불어 한 파트의 솔로를 쪼개서 두 리드기타가 텐션을 유지하며 긴박하게 주고받는 식으로 연주하는 특징도 있다.[2] 이러한 특징은 이후 유러피안 파워 메탈이라는 장르의 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밴드 이름은 밥 딜런의 노래 The Ballad of Frankie Lee and Judas Priest 에서 따왔다.
2. 역사
밴드의 결성은 1969년 몰락의 기운이 완연한 철강도시 버밍엄으로 넘어가면서 시작된다. 같은 버밍엄 출신인 블랙 사바스와 비교했을 때 비슷한 평균연령에도 불구하고, 주다스가 전성기를 너무 늦게 맞이하였다. 그래서 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갖고 80년대에 유명세를 탄 밴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실제로는 60년대 말에 활동을 시작한 노땅 중의 노땅 밴드다.[3] 첫 앨범인 Rocka Rolla[4]가 나오는데 5년이나 걸려서 그렇지...절친한 친구이던 웨스트 브롬위치에서 자란 이언 힐과 케네스 다우닝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프레이트'라는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안이 베이스, 케네스가 기타를 담당하고 드러머 존 엘리스[5]를 영입. 이후 보컬을 구하던 도중, 당시 버밍엄에서 '주다스 프리스트'라는 밴드를 이끌다 프레이트로의 이적을 원하던 앨런 앳킨스(통칭 알 앳킨스)를 섭외하게 된다.
프레이트에 가입하게 된 앨런은 우리 밴드의 이름을 내가 재적하던 밴드의 이름인 '주다스 프리스트'로 바꿔보는건 어때? 난 그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라고 권유하게 되었고(알란이 지은 이름은 아니다), 앨런의 권유를 받아들인 두 친구와 존 엘리스는 이때부터 밴드의 이름을 주다스 프리스트로 결정한다. 버밍엄과 주변 지역에서 활동을 개시하던 주다스 프리스트는 데이브 홀랜드 가입 이전까지 쭉 애로사항으로 자리잡는 드럼 세션의 고질적 문제를 겪으며 드러머를 존 엘리스 앨런 무어, 크리스 캠벨, 그리고 존 힌치로까지 교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동안 정규 앨범은 내지 못했지만 조금씩 인지도를 얻으며 트래피즈와 씬 리지의 오프닝 밴드를 서면서 점점 이름을 알려나간다.
그러나 1973년, 그들의 노력만큼 들어오지 않는 수익과 정상 가도를 달리던 블랙 사바스의 토니 아이오미의 회사 IMA의 매니지먼트 문제로 인해 결국 보컬 알 앳킨스와 당시 재적중이던 드러머 앨런 무어가 밴드를 떠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 시절을 핼포드가 언급하길 '투어가 끝난 후 벤에서 자고 무료 식권을 얻어 식사를 하던 거지꼴이나 다름없던 시절 '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밴드는 어려웠다. 당시 처참하게 몰락하던 영국의 경제 상황을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
졸지에 다시 보컬과 드럼을 구하는것부터 시작하게 된 밴드는 당시 이안 힐과 교제중이던 수 핼포드의 추천으로 그의 오빠인 롭 핼포드를 보컬로 영입하게 된다. 이에 롭은 자신과 함께 이전에 '히로시마'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존 힌치를 데려와 함께 주다스 프리스트에 흔쾌히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4인조의 의기투합 끝에 마침내 첫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녹음하게 된 1974년, 당시 레코딩 제작을 맡은 레이블 '걸(Gull)'에서는 한명의 멤버-이를테면 키보디스트나 혼(Horn) 세션을 할수 있는-를 추가로 영입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게 되고, 이에 케네스는 한명의 '기타리스트'를 영입하여 파워를 더욱더 증폭시키기에 이른다.그렇게 해서 1974년 뒤 늦게 주다스 프리스트에 합류하게 된 그 기타리스트가 바로 글렌 팁튼.
당시 멤버. 왼쪽부터 K.K./힌치/핼포드/팁튼/힐. 당시에는 콧수염을 진하게 길렀던 글렌 팁튼과 수염이 제법 덥수룩하지만 멋진 얼굴의 미남이던 이안, 앞머리가 많이 후퇴하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가 많이 남아있던 핼포드의 모습이 보인다.
METAL GOD, 즉, 메탈의 신이라 불린다.이것은 자타공인의 주다스 프리스트의 수식어.이 수식어가 주다스가 메탈 역사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지, 그리고 지금도 남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일부분. 동명의 곡이 이들의 헤비메탈 역사에 길이 남을 초명반, British Steel에 있다. 해당 곡은 Metal God이 아니라 Metal God's'. 사실은 이 곡 덕분에 주다스 프리스트가 '메탈의 신'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 한 모터헤드는 마초적이고 간지나는 면에서 헤비메탈의 신적인 존재라면 주다스 프리스트는 차가운 톱날같은 롭 핼포드의 귀곡성으로 헤비메탈의 신적인 존재라고 얘기한다.
초창기 드럼 에서 여러 차례의 멤버교체가 있었다. 존 힌치에서 다시 앨런 무어, 그리고 레스 빙크스로 바뀌었다가 데이브 홀랜드가 들어온 것이다. 그 후 1977년 딥 퍼플의 베이시스트 였던 로저 글로버가 프로듀스한 3번째 스튜디오 앨범 Sin After Sin에선 드러머계의 거성인 세션 전문 드러머 '사이먼 필립스'가 레코딩에 참여를 해주어 드럼 세션이 풍족해진 느낌을 준다. 허나 사이먼은 당시에 전문 세션 드러머였기 때문에 밴드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흔히 롭 핼포드, 글렌 팁튼, K.K.다우닝, 이언 힐, 데이브 홀랜드를 전성기 멤버로 친다. 정확히는 데이브 홀랜드는 'Killing Machine[6] 앨범 발표직후 1979년부터 참가하였으나, 이후 1989년까지 대부분의 전성시대를 함께했기 때문에 그냥 원년멤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시절부터는 확실히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미 그 전 앨범부터 성공한 밴드의 표본인 일본 단독공연을 성사시켰으며, 각종 차트 상위권에도 이름을 올렸다. 당시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아이언 메이든과 함께 황금시대를 맞이한 모터헤드, 그리고 로니 제임스 디오의 영입으로 다시 2차 전성기를 맞은 블랙 사바스까지, JD의 전성기이자 그야말로 NWOBHM의 황금시대였다.
1980년 원년 라인업으로 사실상 현재의 주다스 프리스트를 있게 만든 메탈 앨범들의 스탠다드, 명반 British Steel이 발표되었다. 이때부터 K.K, 팁튼의 트윈기타가 멜로디를 완전히 주도하고 베이스 이언 힐은 철저하게 트윈기타를 받치는 리듬악기로 자리를 잡았다.[7] 이 전에 발매했던 앨범들과 비교해 곡 길이도 짧아지고 더 단순하게 사운드 변화를 시도하여 80년대 헤비메탈의 원형을 완성하였다. 발표 직후 영국 앨범 차트에서 4위까지 수직상승을 하고,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도 30위권까지 도약하며 우선 상업적인 성공을 확실하게 거두었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헤비메탈을 완벽하게 정의한 앨범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올뮤직, 롤링 스톤 매거진등을 포함한 매체에서 만장일치 만점을 받으며 주다스 프리스트의 시대를 열었다. British Steel 앨범에 수록된 대표적인 명곡들로는 Breaking The Law, 그리고 언제나 주다스 프리스트 라이브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Living After Midnight가 수록되어 있다. 두 곡 모두 영국 싱글차트 톱 40에서 12위까지 도약하며 주다스 프리스트를 영국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 밴드로 만들기 시작한다.
British Steel 앨범의 성공 이후로 주다스 프리스트는 1981년 Point of Entry 앨범을 발매하며 Heading Out to the Highway, Don't Go 같은 히트곡들을 다시 발표한다. 충분히 훌륭한 앨범이었지만 British Steel 앨범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인지 다소 묻히는 감이 없잖아있는 앨범이다.
그리고 1982년 주다스는 다시 한번 명반을 발표하는데, 그 유명한 Screaming for Vengeance 앨범이다.
빌보드 차트 17위라는 헤비메탈이라는 장르의 접근성을 감안하면 엄청난 순위에 등극하였고[8], 2014년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250만장 이상, 전세계적으로 500만장이 넘게 팔린 주다스 프리스트의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 평론의 평가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Electric Eye,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 같은 명곡들이 이 앨범에서 쏟아져 나왔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위치를 단순히 영국 대표 헤비메탈 밴드가 아닌 세계수준의 헤비메탈 밴드로 올려준 앨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월드투어와 새로운 앨범작업 준비 등으로 바쁜 스케줄을 보내던 주다스 프리스트는 1984년, 팬들의 기대속에 Defenders of the Faith 앨범을 발표한다. 빌보드 차트 순위는 이전보다 한 계단 떨어진 18위에 등극. 이 앨범에서도 히트곡 Freewheel Burning, Jawbreaker, The Sentinel 등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주다스 프리스트는 그들의 황금시대를 계속하여 이끌어나갔다.
그러나 주다스 프리스트의 멈추지 않던 행진을 한풀 꺾어놓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는데, 바로 1986년 발표된 Turbo 앨범의 혹평이다. 당시 주다스는 앨범에 글램 메탈적 요소들을 조금씩 가미하고, 신디사이저 기타를 처음으로 이 앨범에서 활용하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고, 다행히 미국에선 빌보드 차트 17위에 오르며 상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평단의 평가는 이전보다 냉정해졌다. 그를 증명하듯 자국인 영국에선 앨범 순위가 33위까지 떨어지는 실패를 맛봐야만 했다. 허나 전세계에서 300만장이 팔리며 상업적으로는 실패하지 않은 앨범. 또한 히트곡인 Turbo Lover도 이 앨범에 수록되어있다.
허나 1988년 발표한 Ram it Down 상업적으로도 평단에게도 실패한 앨범이 되어버렸다.[9] 이 앨범에서 주다스는 이전의 헤비 메탈 스타일보다 더욱 파워풀한 스래시 메탈, 스피드 메탈의 영향을 받은 모습을 몇몇 곡에서 선보였으나,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어서인지 팬들의 반응도 이전만큼 좋지는 못했다. 통일성 없는 곡 배열 역시 까였다. 반수 이상의 곡들은 전작 터보앨범의 연장선상의 곡들이 많았고, 공격적인 성향의 곡들은 예전보다 더 정교한 연주와 보컬라인을 뽐냈으나 과거의 스피드 넘버보다 매력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원래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의 대다수는 전작 Turbo와 함께 더블 앨범으로 발매하려고 했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취소되었다. 당시 계획은 Turbo의 상업성이 강한 곡들을 수록한 앨범 1과, Ram it Down의 공격적인 곡들을 수록한 앨범 2였다. 어쨌거나 이 앨범의 의의를 꼽자면 이 앨범에서 선보인 파워풀한 사운드가 1990년 발표된 주다스 프리스트의 또 다른 명반, Painkiller의 초석을 깔았다 정도.
Ram it down 앨범 투어 이후, 데이브 홀랜드는 가족의 건강을 이유로 탈퇴하게 된다. 대신에 초특급 기교로 무장한 헤비메탈 밴드 '레이서 X(Racer X)'[10] 출신의 방년 29세의 스콧 트래비스가 가입하게 되고, 전 세계 메탈팬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문제의 앨범, Painkiller를 발표하게 된다.
Painkiller 앨범은 주요 멤버들의 나이가 40대에 접어들었다고는 믿기지 못할, 밴드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에너지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롭 핼포드의 목소리는 더욱더 날이 서있었고, 두 기타리스트는 스윕 아르페지오 등 신세대 주법까지도 받아들이면서 보다 역동적인 고난이도 연주를 들려주었다. 여기에 스캇 트래비스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드럼연주로 힘을 보태주었다.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말하긴 힘들었지만(미국, 캐나다 골드) 평단으로부터나 팬으로부터나 좋은 평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으며, 지금까지도 주다스 프리스트의 상징적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힌다.
페인킬러 앨범 이후 다시 반등을 시작하던 주다스 프리스트였지만, 92년 롭 핼포드가 탈퇴한다. 롭 핼포드는 프리스트 활동과 더불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솔로 프로젝트 밴드를 하고 싶어했었다. 허나 멤버들의 만류 및 계약상의 문제가 있었고, 이에 실망한 롭이 팩스로 주다스 프리스트 탈퇴선언을 하고 결국 자신의 밴드인 '파이트(Fight)'를 결성하기에 이른다(허나 파이트는 정규 2집까지 낸 후 조용히 해체하게 된다).
롭 핼포드가 자리를 비우고 주다스 프리스트는 한동안 잠복기에 들어섰으나, 90년도 중반 새 보컬을 물색하게 된다. 그리고 Tim 'Ripper' Owens라는 무명의 보컬[11]이 발탁되었고, 1997년 Jugulator로 복귀하게된다.
하지만 밴드의 상징을 넘어 헤비메탈 보컬리스트의 상징이었던 핼포드의 빈 자리는 컸다. 오웬스는 매우 뛰어난 보컬이었지만 색깔이 핼포드와는 많이 달랐고, 이는 Jugulator 앨범 역시 마찬가지였다.[12][13] 판매량이나 티켓 파워는 핼포드 시절에 비해 떨어졌고 공연장 규모 또한 많이 축소되었다.
이는 핼포드 쪽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잠시 테크노 음악으로 외도를 한 프로젝트 밴드 'Two'를 거쳐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 'Halford'도 메탈 활동을 지속했다. 그의 메탈 복귀작 'Resurrection'은 호의적인 평가를 얻어냈으나 역시 주다스 프리스트의 이름을 건 시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Jugulator 이후 98년 라이브 앨범 Live meltdown, 2001년 Demolition, 2002년 Live in London 등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오웬스의 무지막지한 역량도 보다 향상되어 프리스트에 융화되어갔지만 여전히 팬들은 롭 핼포드와의 재결합을 바라고 있었으나 Halford도 2002년 Crucible을 발표하며 재결합은 팬들의 희망으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2003년 경부터 재결합 소식이 들려왔고 2004년, 재결합이 확정되었다. 오웬스는 탈퇴수순을 거쳤고 밴드는 그가 새로운 밴드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등 조치를 하여 핼포드의 재결합에 따른 잡음을 최소화 하였다.
장장 12년만의 재결합 소식에 팬들은 환호했고 CNN에서도 소식이 들려올 정도였다. 이후 재결합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2005년에는 복귀작 Angel of Retribution을 발표하게된다. 성공적인 복귀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규모 월드 투어를 가졌다.
이후 2008년에는 밴드 최초의 컨셉앨범 Nostradamus를 발표한다. 2cd로 발매된 대작으로, 서사성을 강조하여 팬들의 반응은 엇갈리는 편이다.
노스트라다무스 투어 이후 2010년에는 British Steel 30주년을 기념하는 투어를 가진다. 이 투어에서는 British Steel의 전곡을 연주하는 셋리스트로 팬들의 많은 환호를 받게되었고, 이는 30주년 기념반에 보너스 DVD로도 발매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투어는 K.K. Downing의 마지막 투어로 남게된다.
그리고 2010년 제5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Dissident Aggressor 앨범으로 최우수 메탈상을 거머쥔다! 이 상은 이 앨범 하나 덕분에 수상했다기보단 지금까지 메탈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상으로 본다는 것이 중론.
밴드는 마지막 월드투어를 계획하고 있었다(단발성 공연은 계속 한다 공언했었다). 밴드원들의 나이가 60을 넘어가는 마당에 아무래도 지속적인 월드투어는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 됐을터이다. 투어명도 의미심장한 Epitaph로 명명하고 투어를 계획중이었으나, 다우닝이 갑작스럽게 밴드 탈퇴를 선언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니지먼트와의 불화가 주된 원인으로 알려져있다. 밴드는 이에 리치 폴크너라는 젊은 기타리스트를 영입, 투어를 강행하고 이후 2014년 포크너와 함께 Redeemer of Souls라는 신보를 발매했다.
2018년 신보 Firepower를 발매하였다. Painkiller 앨범까진 아니어도 좋은 평가를 받는 중. 반응이 좋으니 더 의욕이 생긴 듯 '정말 곧' 신보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 마치 회춘한 듯 한 이 Firepower 앨범으로 내한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이 무렵 글랜 팁튼의 건강에 엄청난 문제가 생겨서 결국 라이브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다. 파킨슨 병으로 정상적인 연주가 힘들어진 상황. 하지만 앵콜때 꼭 모습을 드러내서 연주를 마치며 공연에 찾아준 팬들의 아쉬움을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했다.
2022년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공연자(Performers) 부분이 아닌 음악적 우수상(Award for Musical Excellence)으로 들어간 점이 아쉬울 따름. 공연자 부문으로는 후보 선정도 힘들었으나, 워낙 팬덤이 크고 말이 많았기에 명전에서 어느정도 타협을 본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2023년 10월 13일과 11월 17일, 내년을 기점으로 발매 예정인 신보에 들어갈 두 신곡인 'Panic Attack'과 'Trial By Fire'를 각각 싱글로 선공개하였다. 여전히 우직하고 강력한 오리지널 메탈 사운드에 72세인 롭 핼포드의 보컬에서도 노쇠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다시 한 번 팬들의 기대를 키우고 있다.
3. 멤버
3.1. 현재 멤버
- 롭 핼포드 (보컬, 1973-1992, 2003-) : 해당 항목 참조.
- 이언 힐 (베이스, 1969-) : 마지막 남은 프리스트의 원년 멤버. 80년대부터 꾸준히 스펙터 베이스를 사용하는 스펙터파 락 베이시스트이다. 베이스가 풍기는 끈적한 하드락적 멜로디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고 베이스의 리듬 악기 속성을 더욱 부각하였다. 베이스 리프는 리듬 기타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며 철저히 근음셔틀로 제한하여 프리스트식의 메탈을 완성하는데 일조하였다.[14]
- 글렌 팁튼 (리드기타, 1974-) : 주다스의 상징인 트윈 기타의 축. 2008년에 파킨슨 병 초기 단계로 진단 받았지만 10여년 동안 연주를 이어나갔다. 2016년까지도 플레이의 정교함은 떨어진듯 했으나 페인킬러 솔로도 소화하고 있어서 건강에 이상이 있는지 몰랐던 팬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증세가 악화되어 2018년에 활동을 중단했다. 스튜디오 작업은 하지만 투어는 2018년 Firepower 음반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전 Sabbat,Hell의 멤버 겸 테스타먼트,킬스위치 인게이지,피어 팩토리 등의 음반 제작에 참여했던 1969년생 기타리스트 앤디 스닙(Andy Sneap)이 대신 뛰고 있다.
- 리치 포크너 (리드기타, 2011-) : 1980년생. 영국 출신으로 주다스 프리스트와 포크너를 모두 알고 지내던 지인의 추천에 의해 2011년 K.K.다우닝의 후임으로 영입되었다. 모던해진 마이클 쉥커라는 평을 받을만큼 나이에 비해 상당히 올드스쿨한 감성을 가진 정통파 락 기타리스트이며, 절도있고 파워풀한 테크닉과 멜로디의 흐름을 중시하는 절제된 연주가 특징. EMG 57/66이 탑재된 깁슨 플라잉 V를 주로 사용하며, Epiphone에서 시그니처 모델이 나와있다. 여담으로 조지 린치의 딸인 머라이어 린치(Mariah Lynch)와 연인관계이고, 슬하에 딸이 하나 있다(2020년 7월 8일생) 2021년 락 페스티벌 공연 때 몸에 이상이 생겼고 공연 후 찾은 병원에서 급성 대동맥 박리 진단을 받아 응급 수술을 받았다. 셋리스트상 마지막 곡인 Painkiller 때 쯔음 혈흉이 시작 될 정도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고. # 전성기를 함께한 멤버가 아닌지라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이름을 올리진 못했다.
- 스콧 트래비스 (드럼, 1989-)
3.2. 이전 멤버
- 팀 리퍼 오웬스 (1996-2003, 보컬)
- 케이케이 다우닝 (1969-2011, 리드 기타) : 이언 힐과 함께 주다스 프리스트를 결성한 멤버고, 전성기와 침체기, 부흥때도 함께 있었던 주다스 프리스트의 상징과도 같은 멤버였다. 헤비메탈 씬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트윈기타 듀오로 리드 기타의 비중은 글렌 팁튼이 약간 더 높았지만 팬들이 주다스 프리스트 하면 떠오르는 기타리스트는 K.K 쪽이 조금 우세하고 Victim of Changes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무려 1분 40초의 솔로는 그의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이다. 작은 키때문인지 플라잉 V 또는 플라잉 V 파생 기타류를 엄청 선호한다. 가지고 있는 기타도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2대를 제외하면 십수대가 전부 V모양 기타이다. Hamer에서 시그니처 플라잉V도 나왔다. British Steel 30주년 투어를 끝낸 2011년 주다스를 떠나는데, 탈퇴 이유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고 "내가 밴드를 떠날 수밖에 없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There Were 'Lots And Lots Of Reasons' I Left JUDAS PRIEST.)", "밴드 공연할 때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I wasn’t happy with the band’s live performance.)" 등만 인터뷰에서 언급하였다.[15] 하지만, 같은 해 기타 파트너인 글렌 팁튼이 10년 이상 진행됐던 파킨슨병 증세 악화로 투어 활동을 중단했을 때 밴드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요청하지 않아서 섭섭하다는 인터뷰도 하였다. 그리고 2019년부터 팀 리퍼 오웬스, 레스 빙크스[16], 데이빗 엘렙슨(메가데스의 그 베이시스트 맞다.)와 기타리스트 A J 밀스와 함께 KK's Priest라는
살짝 주다스 안티스러운밴드로 활동중이다. - 데이브 홀랜드(1979-1989, 드럼) : 프리스트 가입 전 글렌 휴즈의 트래피즈 에서 드럼을 담당하였고 이후 British Steel부터 Ram It Down 앨범까지 프리스트의 전성기를 함께하였다. 탈퇴 후 1991년 트래피즈를 비롯한 다른 밴드의 세션 연주도 드문드문 하면서 드럼 강사로 조용히 생활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2004년에 자신에게 드럼 레슨을 받던 17세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징역형을 선고받아 2012년까지 복역하였다. 2018년 트래피즈 매니저 측에서 갑자기 사망소식을 전했다. 미성년자 성추행이라는 중죄 때문인지 그의 사망에도 주다스 측에서는 공식적인 추모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 멤버에 포함되었다.
- 레스 빙크스(1977-1979, 드럼) : Stained Class, Killing Machine, 그리고 Unleashed in the East 앨범에 참여했던 드러머. 프리스트 이전에도 록 밴드 애니멀스(The Animals) 출신의 에릭 버든(Eric Burdon), 그리고 딥 퍼플의 베이시스트 로저 글로버의 앨범 <The Butterfly Ball and the Grasshopper's Feast>에 객원 드러머로 참여했던 경험이 있던 드러머이다. 그러나 밴드에서 정식 멤버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밴드를 나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2011년에 상기한 바와 같이 K.K. 다우닝과 함께 KK's priest 활동을 전개.
4. 디스코그래피
4.1. 정규 앨범
- 1974 - Rocka Rolla
- 1976 - Sad Wings of Destiny
- 1977 - Sin After Sin
- 1978 - Stained Class
- 1979 - Killing Machine
- 1980 - British Steel
- 1981 - Point of Entry
- 1982 - Screaming for Vengeance
- 1984 - Defenders of the Faith[17]
- 1986 - Turbo
- 1988 - Ram It Down
- 1990 - Painkiller
문서 참조.
- 1997 - Jugulator
- 2001 - Demolition
- 2005 - Angel of Retribution
- 2008 - Nostradamus
- 2014 - Redeemer of Souls
- 2017 - Turbo 30 (Remastered 30th Anniversary Deluxe Edition)
- 2018 - Firepower
- 2024 - "Invincible Shield"
4.2. 라이브 앨범
1979 - Unleashed in the East1987 - Priest...Live!
1998 - Live Meltdown[18]
2002 - Live in London
2009 - A Touch of Evil
2016 - Battle Cry
4.3. 컴필레이션 앨범
1978 - The Best of Judas Priest1981 - Hero, Hero
1989 - The Collection
1993 - Metal Works
1998 - The Best of Judas Priest: Living After Midnight
2004 - Metalogy
2006 - Essential Judas Priest
5. 내한 공연
2008년 첫 내한, 2012년 내한 이후 멤버들의 체력 문제로 더 이상의 내한은 없을 것이라 예상됐지만 2015년 3월 16일 Redeemer Of Souls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은퇴를 번복하고 지난해 발표한 앨범 Redeemer of Soul 수록곡 Battle Cry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핼포드의 변함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여기에 트래비스의 화려한 드럼 연주와 포크너의 박력있는 기타 연주가 더해지자 무대 앞 스탠딩석을 중심으로 극장 내부는 곧바로 달아올랐다.
핼포드는 쉼 없이 Dragonau과 Metal Gods까지 이어 부른 후 "Hello, Everybody. Judas Priest is back"이라는 말로 지난 공연 이후 3년을 기다린 국내 팬들에게 인사했다.
이어 Devil's Child, Victim of Changes 등 밴드의 전성기인 1970~1980년대 히트곡을 연달아 선보였다. 공연이 중반부에 치달으면서 Love Bites와 March of the Damned, Turbo Lover 등의 노래가 나오자 예상대로 관객들의 후렴구 떼창이 시작됐다.
핼포드는 관객들의 떼창이 계속되자 마이크를 관중석에 넘겨 노래를 양보했다. 핼포드는 국내 팬들의 호응에 감격한 듯 "이 아름다운 나라에 다시 와서 기쁘다. 우리가 벌써 41년이 됐다. 긴 시간이었다. 여러분의 성원, 사랑, 헌신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맙다"는 말만 대여섯 차례 반복하며 관객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이전 내한공연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Breaking the Law에서 연출됐다.
2층 지정석 관객들까지 일어서서 후렴구 "브레이킹 더 로, 브레이킹 더 로"를 합창했다.
핼포드는 마지막곡 Hell Bent For Leather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무대에 등장하는 '쇼'도 잊지 않았다.
1시간 30여분가량 쉼 없이 계속된 공연이 끝났지만 관객들은 이번 내한공연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 "프리스트, 프리스트"를 외치며 밴드를 다시 무대로 불러세웠다. 이에 주다스 프리스트는 The Hellion, Electric Eye 등을 앙코르곡으로 선사했다.
그러고도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은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곡만 더 하겠다"며 부른 Painkiller에 이어 애초 세트리스트에도 없던 Living After Midnight까지 부르고 나서야 관객들은 이들을 놔줬다.
공연은 관객들의 기립 박수 속에 마무리됐다. 관객들은 공연의 여운이 남은 듯 관객석에 불이 켜지고 나서도 한참을 서서 "주다스 프리스트"를 외쳤다. 최근 어느 해외 스타의 내한공연에서도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이제 더이상 앨범을 내지 않겠다 선언했으니, 한국에서의 내한공연은 마지막이 된 셈. 롭의 성량을 걱정했던 팬들의 걱정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고음과 무대매너를 보여줬다.
... 고 했지만 '17년 3월 13일에 새 앨범을 작업중이라고 공식 홈페이지에 발표를 내놓았다. # 녹음도 6월에 거의 마친 상황이라고. # 새 앨범의 명칭은 Firepower이며, 2018년 3월 9일 발매되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일에 또 내한 공연 예정이다. 장소는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
진행된 내한공연에서는 신보앨범 위주의 공연과 함께 Painkiller 등 히트곡까지 빠지지 않았고 상기했던 바이크 퍼포먼스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당초 파킨슨병으로 투어에서 하차했다고 밝혔던 글렌 팁튼이 코러스에 깜짝등장한 점도 고무적인 요소. 힘든 손으로나마 연주를 소화해냈다. 공연이 끝나고 후방 전광판에 'Judas Priest Will be Back'이란 문구를 띄워놓았으니, 훗날 다시 내한을 기대해봐도 좋을듯.
6. 기타
초창기 다섯 앨범(80년대 이전)은 딥 퍼플 의 초중기 사운드같은 클래식 록 느낌을 주는 하드락 밴드다. 롭 핼포드 본인은 포크락의 느낌을 내고 싶었다고 하는데 Epitaph 같은 곡은 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의 인생 역전이 시작된 앨범 British steel[19]부터는 흔히 알려진 헤비메탈밴드의 느낌을 주면서 롭 핼포드의 보컬색도 살아나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그 전작인 Hell Bent For Leather 이후 Screaming For Vengeans와 Defenders of the Faith를 발표하여 메탈의 정점에 이르렀고, 그 후 발표한 Turbo가 상업주의, Ram it down 이 매너리즘이라는 혹평 속에서도 잘 버티더니 Racer X에서 드럼을 담당하던 젊은 괴수 스콧 트래비스를 영입해서 파워풀한 사운드로 전향해 페인킬러 앨범을 만든다. 그때 스콧을 제외한 멤버들의 나이는 39세. 글렌은 이미 43세였다.한국에서는 5집 앨범에 수록된 Before The Dawn이 80년대 초 대박 히트를 치는 바람에 주다스를 애절한 발라드 그룹으로 인식하기도 했었다.당시 어른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로 로라장(롤러 스케이트장)에서 블루스 타임에 자주 나오던 곡이라고. 사실 다른 곡들은 죄다 금지 먹어서 뒤늦게 발매된 탓도 있다. 참고로 이 곡은 주다스의 거의 모든 다른 곡들과 따로 노는 곡이다. 주다스에 이런 애절한 발라드 형식의 노래는 거의 없다. 마치 BMW i8을 보고 BMW를 전기차만 만드는 업체라 생각하는 오류와 비슷하다. 전설적인 독일의 록 밴드 스콜피언스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 물론 Before The Dawn은 주다스 프리스트 최초이자 최후의 발라드 곡으로, 그 뒤에는 발라드가 히트하는 일이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그 뒤에 헤비메탈 시대를 연 명반 British Steel부터 Defenders of Faith까지 줄줄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빽판 아니면 듣지도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신해철/음악 활동 문서
크리스 샹그리디는 90년대 후반에 신해철과 모노크롬 앨범을 동일한 밴드명으로 공동작업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다시 주다스 프리스트의 프로듀스를 맡은 Demolition 앨범에 실린 Metal Messiah라는 곡이 모노크롬의 곡 Machine Messiah와 히든트랙 'Demo69'를 표절한 곡이라는 주장이 신해철 '본인'이 제기했다. 표절 판단 여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Machine Messiah와 Metal Messiah 두 음원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듯이 원곡에 쓰인 음향파일[20] 자체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의 주다스 프리스트 역표절 사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샹그리디는 꽤나 저명한 프로듀서이며 아무래도 샹그리디의 입장은 공동 프로듀스이므로 자기도 곡 소유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표절을 감추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음원파일 자체를 그대로 쓴 걸로 봐서는 정말로 샹그리디가 자신도 소유권이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해철이 명확한 입장 표명을 안하고 애매하게 넘어갔으며 인터뷰나 질문이 들어왔을 때마다 '변호사한테 물어봤더니 오래 놔둬야 비싸게 받을 수 있다더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고스트스테이션 2011년 8월 5일자 방송의 주다스 프리스트 특집 말미에 이를 잠깐 언급하고 넘어갔다. 표절 문제에 대한 신해철의 입장은 '표절'로 명확하게 정의한 듯 하다. 방송내용은 거의 주다스 프리스트 위인전 수준으로 메탈갓을 향한 신해철의 애정이 엿보였다.
"(전략) 주다스 프리스트는 오리지널 멤버로 재결합해서 그 이후로도 전세계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리퍼 오웬스가 재적하던 시절, 어떻게든 몸부림을 치기위해서 동양에서 온 신비한 아티스트의 곡을 무작정 베끼면서 멀티테잎까지 갖다 썼다든가…."
"하는 추문들은 그냥 묻어두기로 한다. 전설은 전설로 남아있는 것이 좋은 법…."
"왜냐하면 우리에겐 미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 (곡소개)
"리퍼 오웬스가 재적하던 시절, 어떻게든 몸부림을 치기위해서 동양에서 온 신비한 아티스트의 곡을 무작정 베끼면서 멀티테잎까지 갖다 썼다든가…."
"하는 추문들은 그냥 묻어두기로 한다. 전설은 전설로 남아있는 것이 좋은 법…."
"왜냐하면 우리에겐 미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 (곡소개)
주다스 프리스트 관련 유명 일화중 하나로 1985년 Stained Class 앨범의 수록곡 'Better by You, Better than Me'에 자살을 유도하는 비밀 메세지[21]가 숨겨져 있고 이를 듣고 2명의 10대 학생들이 자살했다며 해당 학생들의 부모들이 밴드를 고소해서 크게 시끌했던 적이 있었다. 이는 당대 최고 전성기에 있던 헤비메탈 장르와, 더 나아가서 대중음악 전반의 악마 숭배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과 악마주의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 재판은 최종적으로 1990년 무혐의로 결론지어지며 주다스가 승소했다. 승소 이후 인터뷰에서 주다스 프리스트는 우리가 비밀 메시지를 넣을거면 "시디 더 사라"나 "나가면서 우리 티셔츠도 사라"라고 했겠지 죽으란 메시지는 안 넣었을 것이다. 뭐하러 우리 팬들을 죽이겠나?라면서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Better by You, Better than Me'는 하드 록 밴드 스푸키 투스의 1969년 발표곡을 커버한 것으로, 원래 주다스의 곡도 아니다. 참고로 이걸 빌 힉스가 풍자했다. #
주다스의 강렬한 겉모습만 보고 주다스가 엄청난 마초 라이프를 즐길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사생활은 평범하고 평화롭다고 한다.
리퍼 오웬스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 록스타에서 주다스 프리스트를 모델로 했음이 분명한 밴드가 난잡한 모습을 보이자 팬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사실 가장 항의한 부분은 롭 핼포드로 추측되는 캐릭터가 찌질이 게이로 나와서지만... 게이인 것은 사실이다. 1998년 인터뷰에서 커밍아웃 - 바이라는 소문도 있다. 이언 힐의 누이가 핼포드와 결혼했다는 설은 사실이 아니고. 핼포드의 여동생 '수 핼포드'가 이언 힐과 결혼했었다. 1984년 이혼. 영화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롭 핼포드인 것이 분명한 영국출신 전보컬이 게이임을 밝히는 것을 희화화하고 그가 마치 리퍼 오웬스를 모델로 한 후임보컬(주인공) 때문에 쫓겨난 것처럼 묘사됐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본인들 역할로 출연한 적이 있다. 저작권법 위반으로 쫒기던 심슨 가족이 스웨덴 영사관으로 도망가자, 당국에서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주다스 프리스트를 불러다가 공연을 한다.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하기 위해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은 것을 패러디 한 것. 그런데 이 때 부른 노래는 breaking the law(법 좆까)를 패러디한 respecting the law(법 지켜라). 그리고 정작 이 노래를 듣던 스웨덴 외교관은 북유럽에서 온 사람이라서 오히려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22]
2018년 2월에 주다스의 초창기부터 밴드를 지켜온 글렌 팁튼이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고 주다스 프리스트 공식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
글에 따르면 10년전 부터 병이 시작되었고 계속 연주를 해왔지만 파킨슨병이 더 심해져 투어를 못 돌 정도가 되자 그걸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결국 신보 'Firepower' 홍보투어에 빠지고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Andy sneap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한다.
7. 둘러보기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이름 | 주다스 프리스트 JUDAS PRIEST | |
헌액 부문 | 음악적 우수상 (Award for Musical Excellence) | ||
멤버 | (롭 핼포드, 이안 힐, K.K. 다우닝, 데이브 홀랜드, 글렌 팁튼, 스콧 트래비스, 레스 빙크스 ) | ||
입성 연도 | 2022년 | }}}}}}}}} |
[1] 오른쪽에서 2번째에 있는 사람이 K.K.의 뒤를 이어 새로 참여한 젊은 피, K.K 와 외모까지 흡사한 리치 포크너(Richie Faulkner). 포크너는 로렌 해리스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다. 나이는 1980년생으로 젊은 기타리스트. 하지만 그나마 70이 아직 되지 않은 스콧을 제외하고 모두가 70대 초반의 나이인 주다스 멤버들에게는 브리티시 스틸 앨범 발매때 태어났던 리치는 귀여운 아들뻘(...)로 보일 것이다. 여담으로 리치는 크리스토퍼 리 경의 91번째(!!) 생신맞이 새 앨범(그것도 헤비메탈 앨범이다!!) '샤를마뉴(Charlemagne: The omens of death)'에서 어레인지 부분을 총괄할만큼 실력은 확실한 기타리스트. 해외 메탈헤드들은 잭 와일드와 랜디 로즈를 섞어 놓은 느낌이라고 평하기도 한다.[2] 이 형태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곡이 Hellrider와 The Sentinel로 기타솔로를 쪼개서 두 리드기타가 주고 받기도 하고 두 솔로를 동시에 밀어 붙이기도 한다. 리드 기타가 둘이라고 해도 하나의 솔로를 쪼개서 주고 받는 연주는 공연에서 박자를 놓칠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선호하지는 않는다. 쪼개서 연주한다고 해도 메가데스의 Hangar 18처럼 각자의 인트로와 아웃트로에 몇 초간 텀을 두어 치고 빠지는 시간적 여유를 만들지만 주다스의 몇몇 곡들은 전혀 그런 텀이 없고 한 사람이 빠지는 타임에 이미 다른 기타가 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혼자서 오버더빙 없이 솔로를 다 커버하기는 불가능하거나 하려면 죽어날 뿐더러, 기타 2명의 실력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경쟁적이고 탁월하면서, 가능하면 뚜렷하게 알기 쉬운 구분점이 있어야 트윈기타의 현란한 테크닉이 시너지를 일으킨다. 그래서 이 트윈 기타 시스템 밴드는 보컬이 기타겸업을 하기 힘들어 대다수가 5인조 밴드이다. 일부 밴드가 4인조인데 슬레이어, 마스토돈처럼 보컬이 베이스 겸업을 하거나, 헬로윈의 카이 한센처럼 하다하다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들어 전문 보컬을 영입하기도 하고, 제임스 헷필드나 데이브 머스테인처럼 억지로 보컬겸업을 하지만 항상 까이거나, 그마저도 스케줄과 성대 무리가 와서 보컬이 맛이가는 참사를 겪기도 한다.[3] 같은 80년대 NWBHM의 라이벌 격인 아이언 메이든보다 평균연령이 10년 이상 높다. 기타리스트인 글렌 팁튼은 블랙 사바스의 토니 아이오미보다 나이가 더 많으며, 심지어는 AC/DC보다 더 연배가 높다.[4] 74년 발매된 주다스 프리스트의 데뷔앨범. 주다스 멤버들은 이 앨범을 흑역사 취급한다. 분명 괜찮은 앨범인데 문제는 프로듀싱이 매우 구렸다. 그 당시 멤버들은 블랙 사바스의 프로듀서를 고용해 앨범을 녹음했다. 원래는 싱글 기타에 신시사이저를 넣으려 했지만 프로듀서가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트윈 기타를 제안했다. 그러나 결과물을 들어본 주다스 멤버들은 실망했다. 그때까지 트윈 기타 연주를 하드 록에 접목시킨 사례가 없어서 트윈 기타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롭 헬포드는 후에 "그 앨범은 쓰레기였습니다. 일단 프로듀싱이 잘못되었죠. 분명 하드한 사운드를 냈는데 결과물은 전혀 하드하지 않았던 겁니다." 라고 말했다. 평론가들도 혹평을 내렸다. 다만 이 앨범은 주다스 팬들이 주다스식 록발라드의 명작이라고 하는 Run Of The Mill이 수록되었다. 2021년부터는 실로 오랜만에 Rocka Rolla가 라이브 무대에서 연주되기도 하였다.[5] 70년부터 71년까지 딱 1년만 재적했다.[6] Hell Bent for Leather로 흔히 알려진[7] 주다스 프리스트의 중후기 곡들만 들어보면 베이스는 거의 근음셔틀 역할만 하는데 비해서 초기 앨범에서 베이스 라인이 복잡한 것들이 있다.[8] 자국인 영국에선 차트 포지션 11위에 등극했다.[9]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적작들이 플레티넘까지 찍어서 그렇지 Ram it down 앨범도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골드를 찍은 앨범들이라 아주 폭망한 것은 아니다.[10] 멤버들 개개인의 테크닉이 대단하던 밴드이다.레이서 X 출신의 또 다른 슈퍼스타로 그 유명한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가 있다.[11] 미국 내 전국적인 인지도는 낮았지만 초기에 활동했던 오하이오 애크론 지역에서는 Brainicide, Winter's Bane의 보컬리스트를 하면서 중고음역대 파워메탈 보컬로 상당히 유명세를 떨쳤다.[12] 오웬스는 굉장히 억울한게 전성기때의 롭 핼포드면 몰라도 당시 라이브 영상들을 보면 오웬스가 훨씬 안정적으로 고음처리를 한다. 예를 들어 painkiller 라이브를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오는데 오웬스는 굉장히 깔끔하게 부르는 반면 핼포드는 나이가 나이었던지라 91, 92년쯤을 제외하면 제대로 불렀다 할 만한 painkiller 영상이 없다. 대부분 풍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고음을 쥐어짜는데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따라서 저 시기에 주다스의 부진을 오웬스만의 문제로 결정해버리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다.[13] 사실 핼포드는 그 대단한 기량을 떠나 전성기 때도 초고음을 페인킬러 수준으로 계속해서 내는, 타고난 목소리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높은 보컬은 아니었다. 그 전까지 초고음이 많은 Freewheel Burning, Sentinel를 보면 중~고음역대를 오가며 파워 넘치게 부르다가 한번씩 초고음대를 금속성으로 찌르며 포인트를 주는 스타일. 저음에서 기량도 뛰어나다. 그나마 Screaming for Vengeance가 초고음 위주 곡인데 라이브에서 쉽게 소화하는 곡은 절대 아니었다.(고음은 다 올라가도 공기를 충분히 불어넣지 못해 약간 메마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근데 SFV 이상으로 초고음만 내달리는 곡들이 가득한 페인킬러 앨범이니, 기량이 녹슬기 시작한 핼포드가 라이브로 소화하긴 애초에 불가능했다. 사실 수록곡 중 Between the Hammer and the Anvil처럼 전성기 때랑 보컬 구성이 비슷한 곡도 있지만, 미드템포와 보컬 강약조절이 있는 평상시 쥬다스에 비해 끝없이 달리기만 하는 본 앨범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물론 쥬다스 프리스트도 마구 치달리는 곡도 발매한 적이 있지만 한 앨범 내내 저렇게 달리진 않았다. 이들의 최고앨범인 British Steel을 들어봐도 상당히 분위기나 구성에 다르다.[14] 초기 음반을 들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중반기 음악부터는 베이스 라인이 매우 단순해졌고 핑거피킹에서 피크로 완전히 넘어가서 베이스의 음색도 메탈적으로 변화시켰다. 라이벌 밴드인 아이언 메이든의 스티브 해리스가 리드믹하면서도 빈틈없이 들리는 멜로디의 베이스라인을 깔고 작곡하여 실력을 어필한 반면, 주다스의 이안 힐은 철저하게 핼포드,팁튼,K.K을 받치는 근음,저음셔틀역할을 하면서 주다스 특유의 톱날같이 날카로운 음악의 밑바닥역할을 한 것.[15] 2018년 자서전 출간 전 인터뷰에서 몇가지 사실들을 더 이야기하는데, 직접적으로는 2010년 롭이 솔로앨범 2개내고 솔로투어까지 돌동안 남은 멤버들은 주다스 명의로 EP 하나 내고 끝이냐?라고 작곡셔틀 취급한 그룹의 대우에 폭발했다고 언급한다. 주다스 활동이 줄면서 K.K도 여러가지 부업을 하면서 돈을 썼고, 그때문에 자기 장비를 경매에 내놓기도 하는 등 금전적 손해를 보기도 했다고.[16] 아래 데이브 홀랜드 직전에 주다스에서 활동했던 드러머.[17] 주다스 프리스트 곡들 중에서 보컬 난이도가 높은 곡이 포진해있다. 음역대가 높은 락/메탈계열 보컬도 페인킬러의 곡들보다 이 앨범 곡들을 더 어려워 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 The Sentinel은 30대 나이의 리퍼 오웬스조차 공연에서 어려워한게 눈에 보인다.[18] 아무리 리퍼 오웬스가 까인다지만, 이 앨범의 Diamond and Rust를 한번 들어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조안 바에즈의 원곡을 달리는 메탈 스타일로 편곡한 것이 원래 주다스 다이아몬드 앤 러스트지만, 리퍼는 이를 잔잔한 어쿠스틱 반주에서 갑자기 뻑 하고 터지는 메탈 발라드로 편곡. 후반부의 울부짖는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샤우팅은 그야말로 소름이 돋는다.[19] 80년대 헤비메탈을 정의한 교과서라고 불리기도 한다.[20] 신해철이 직접 작업했다고 밝힌 가상 오케스트라 음원.[21] 백워드 매스킹하면 특정 구간에서 'Do it(해라)', 즉 자살을 하라는 메시지가 나온다고 주장.[22] 이때 FBI 요원이 '폭발하는 데스메탈이지(blasting death metal)'이라고 말하는데 이 때문에 '주다스는 데스메탈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팬들이 많았다. 결국 다음 에피소드에서 바트의 칠판 깜지(JUDAS PRIEST IS NOT "DEATH METAL")로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