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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0 01:32:05

텔레비전(밴드)

텔레비전
Television
파일:텔레비전 밴드1.jpg
<colbgcolor=#000><colcolor=#fff>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결성 1973년 3월 12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데뷔 1975년
싱글 Little Johnny Jewel
해체 2023년 1월 18일
멤버 톰 벌레인[1] (리드보컬, 기타, 1973-2023)
빌리 피카 (드럼, 1973-2023)
리처드 헬 (베이스, 보컬 1973-1975)
리처드 로이드 (기타, 보컬, 1973-2007)
프레드 스미스 (베이스, 보컬, 1975-2023)
지미 립 (기타, 2007-2023)
장르 포스트 펑크, 아트 펑크, 아트 록, 프로토 펑크
레이블 엘렉트라 레코드, 캐피톨 레코드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활동3. 음악적 성향4. 음반 목록
4.1. 정규 앨범4.2. 라이브 앨범4.3. 컴필레이션 앨범4.4.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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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욕의 포스트 펑크[2] 밴드. 집에 있는 가장 흔한 것에서 이름을 따자고해서 가전제품 텔레비전의 이름을 따오게 됐다고 한다.

2. 활동

기타리스트/보컬리스트 톰 벌레인, 드러머 빌리 피카, 베이시스트 리처드 헬이 모여 결성한 네온 보이즈(Neon Boys)가 시작이었다. 1973년 말 밴드명을 텔레비전으로 바꾸었고, 리듬 기타리스트 리처드 로이드를 영입하여 재정비를 마친뒤 활동을 시작했다.

뉴욕의 타운하우스 극장을 시작으로 언더그라운드를 기점으로 팬들을 확보하게 되었고, CBGB에서 활동을 이어간다. 1974년 후반을 기점으로 레이블들의 관심을 받게 된 밴드는 1975년, 레코드 레이블과의 계약을 위해 브라이언 이노와 작업한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지만, 브라이언 이노가 프로듀싱한 사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톰 벌레인은 아일랜드 레코드를 비롯한 레코드 레이블들과의 계약을 모두 결렬했다.

데모 테이프 제작 후 리처드 헬은 밴드를 탈퇴하고 뉴욕 돌스의 기타리스트였던 조니 썬더스하트브레이커스를 결성했다. 리처드 헬의 자리를 블론디의 베이시스트였던 프레드 스미스가 영입되어 채우게 되었고, 데뷔 싱글 Little Johnny Jewel를 자신들이 세운 레이블인 오크 레코드를 통해 발매했다. 이 싱글은 언더그라운드 내에서 히트를 치게 되었고 메이저 레이블들이 밴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엘렉트라 레코드와의 계약 이후 1977년 초, 1집 Marquee Moon을 발매했다.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자국인 미국보다는 영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1978년, 2집 Adventure를 내고 해체했다. 당시 리처드 로이드랑 톰 벌레인 간에 불화도 있었고 로이드의 마약 문제가 겹쳤다고 한다. 해산한 동안 솔로 활동을 하다가 1991년 재결성해 간만의 복귀작 Television을 내놓았고 그럭저럭 괜찮은 평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해산했으나 2001년 다시 재결성해 투어를 시작했다. 재결성 후 오리지널 멤버들끼리 다녔으나 로이드는 병세 때문에 2007년 우호적으로 떠났다. 이후 병세가 호전되었는지 2016년에 결혼하고 솔로 앨범을 냈다. 텔레비전 멤버와 토킹 헤즈 멤버가 참여했다.

톰 벌레인이 지병으로 2023년 1월 28일 사망했다. # [3]

3. 음악적 성향

활동시기인 70년대 후반, 영국발 펑크 열풍이 불기전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패티 스미스토킹 헤즈등과 함께 아트 펑크 씬을 견인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작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펑크에 예술성을 부여한 점 때문에 록 음악의 전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 특히 데뷔작인 Marquee Moon(1977)은 상업적으론 주목받지 못했을지언정 수많은 음악 팬들과 평단들로부터 역사에 길이남을 명반으로 취급받고 있다. 토킹 헤즈하고 예술적 방향성이 같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토킹 헤즈가 아프로 비트와 훵크를 기반으로 사운드 실험에 치중했다면 이들은 기타를 좀 더 전면적으로 내세웠고 재즈의 즉흥연주과 벨벳 언더그라운드스티브 라이히의 미니멀리즘에서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톰 벌레인 본인은 존 맥러플린마일스 데이비스, 러브, 버팔로 스프링필드, 벤처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리더인 톰 벌레인은 한때 패티 스미스의 연인이였으며[4] 그 인연 때문인지 2009년 지산 록 페스티벌 당시 패티 스미스와 함께 내한했다. 이때 무대 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고,그로부터 4년 뒤인 2013년엔 두 밴드가 한국에서 합동 공연을 했다.

참고로 이 밴드의 베이시스트였던 리처드 헬[5]은 펑크 록 패션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 뉴욕 돌스의 매니저로 일하던 훗날의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인 말콤 맥라렌과 동업자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헬의 봉두난발의 헤어스타일과 찢어진 의상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4. 음반 목록

4.1. 정규 앨범

4.2. 라이브 앨범

4.3. 컴필레이션 앨범

4.4. 싱글



[1] 본명은 토머스 밀러이다. 벌레인이란 성씨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인 폴 베를렌에서 따왔다고.[2] 위키피디아에 장르 항목에는 프로토 펑크(펑크 이전), 펑크, 포스트 펑크(펑크 이후)로 모두 분류된다. 이 밴드가 고작 5년이라는 기간 동안만 활동했는데도 불구하고 세 가지 장르에 모두 포함된다는 것은 밴드의 음악이 그만큼 기이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펑크가 얼마나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졌는지 말해주기도 하는 부분이다.[3] 2022년 11월 빌리 아이돌과 함께하는 투어가 갑자기 취소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아팠던 걸로 보인다.[4] 둘이 있을때면 벌레인이 시를 읽어주기도 했었다 한다.[5] Marquee Moon 제작 전에 탈퇴했다. 리처드 헬 앤 더 보이도이즈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