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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17:58:06

스트라토바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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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 코티펠토
마티아스 쿠피아이넨
옌스 요한슨
라우리 포라
롤프 필베


{{{#!folding [ 전 멤버 ]
[ 음반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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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tovar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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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일 핀란드, 헬싱키, 1984년
출신지
[[핀란드|]][[틀:국기|]][[틀:국기|]]
장르 파워 메탈
활동 기간 1984년 ~ 1985년 (Black Water)
1985년 ~ 현재 (스트라토바리우스)
레이블 earMUSIC
링크 파일:스트라토바리우스 로고.png

1. 개요2. 멤버
2.1. 전 멤버
3. 연혁
3.1. 결성3.2. 초창기 (1~3집)3.3. 전성기 (4~8집)3.4. 혼란기 (9~11집)3.5. 재결성 (12집~)
4. 음반
4.1. 정규4.2. 비정규/라이브/베스트
5. 여담

[clearfix]

1. 개요

핀란드멜로딕 파워 메탈 밴드. 이 밴드의 이름은 일렉기타 Fender Stratocaster와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에서 따왔다고 한다.[1]

잉베이의 네오 클래시컬 메탈과 멜로딕 파워메탈의 조합을 처음 시도한 밴드였으며, 헬로윈 이후 등장했던 멜로딕 파워 메탈의 갈래중에 키보드 사운드를 전면에 배치하고 마이너 음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북유럽과 이탈리아, 일본쪽의 파워메탈은 사실상 스트라토바리우스와 메인 송라이터 티모 톨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티모 톨키는 잉베이와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스트라토바리우스는 딥 퍼플리치 블랙모어의 영향력이 제일 컸던 밴드였다고 말했었다.[2]

Eagleheart 등 대표곡이 여럿 있긴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1996년작 KBS 주말연속극 첫사랑의 OST로 수록된 애수가 넘치는 발라드곡 Forever가 엄청나게 유명한 밴드이다.[3][4] 당시에는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았고, 음악 다운로드조차 일반화되지 않은 탓에 이 곡 때문에 록 발라드 그룹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당시 실화로, 한국 아줌마들이 이 곡을 듣고 앨범을 샀는데, 앨범을 틀자마자 강렬한 메탈곡인 Father Time[5]이 나오는 바람에 당황한 수많은 아줌마들의 반품[6]이 속출했고, 반품사태를 확인하기 위해 리더인 티모 톨키가 한국을 찾아왔었다. 이들의 주요 아시아 시장이 일본이고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기에 인접 시장인 한국이 메탈 음악의 불모지라는 것을 모르고 일본과 비슷한 성향일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반품사태가 일어났어도 반품하지 않고 '이미 산 거 그냥 듣지 뭐'하고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돌리신 경우가 더 많았다. 실제로 당시 Forever가 수록된 Episode 앨범 음반 판매량이 2만 장이 넘었다고 하니. 당시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외국 음악 앨범 중에서도 제일 많이 팔렸다고 한다.

80년대에 데뷔한 메탈밴드치곤 1기타 체제인것이 특징인데, 그만큼 밴드 사운드가 기타에만 의존하지않고 여러 악기의 사운드를 잘 활용한다는 의미다.

2. 멤버

2.1. 전 멤버

3. 연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tratovarius_Tavastia_2006.jpg 파일:external/fc09.deviantart.net/Stratovarius_II_by_Wolverica.jpg 파일:external/jp.metalship.org/groupe54.jpg
2006년 라이브 콘서트 당시의 사진. 티모 톨키와 야리 카이눌라이넨이 보인다. 2009년의 밴드 사진. 멤버 교체로 티모와 야리가 사라졌다. 2012년 새로 맞이한 드러머 롤프 필브(왼쪽에서 두 번째)와 함께 한 사진.

3.1. 결성

스트라토바리우스의 결성은 1984년까지 올라간다. Black Water라는 밴드의 리더였던 드러머 투오모 라실라는 당시 기타리스트의 갑작스런 이탈로 자리를 메울 땜빵을 찾았고, 당시 베이시스트 욘 비헤르배의 추천으로 밴드에 수혈된 젊은 피가 바로 티모 톨키였다. 이후 Stratovarius로 밴드명을 개명하였으며 티모 톨키는 밴드의 후발주자로 영입되었음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어느 새 밴드의 중심이 되었다.

3.2. 초창기 (1~3집)

1989년에 첫 앨범 Fright Night를 발표하였으나, 이 당시에는 곡의 완성도도 불안하고 당시 보컬이었던 티모 톨키(3번째 앨범 Dreamspace까지 보컬을 했다)의 삑사리도 있었던 실패한 앨범이었다.

이후 1992년에 2번째 앨범 Twilight Time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1993년에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음반으로 기록되기도 했으며 밴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현재 밴드의 근간이 되는 멜로딕 파워메탈의 사운드가 바로 이 앨범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3번째 앨범 Dreamspace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스트라토바리우스가 내놓았던 역대 앨범들 중 가장 암울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일부 몇 곡을 제외하고는 라이브에서 연주되는 일이 드물었다. 또한 이시기가 스트라토바리우스 전체 커리어를 통틀어서 가장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가까운 성향이었기 때문에 기존에 유지하던 멜로딕 파워메탈 노선의 몇몇 곡들만 사실상 살아남았다고 할수 있는 수준.

3.3. 전성기 (4~8집)

4집 Fourth Dimension 앨범부터는 티모 코티펠토가 새로운 보컬로 팀 내에 들어오게 된다. 코티펠토의 참여로 인해서 톨키는 보다 더 기타 연주에 치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거기다 코티펠토의 밴드 성격과 딱 맞아떨이지는 보컬링으로 인해서 밴드는 전성기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전성기의 시작은 멤버 교체였다. 키보디스트 안티 이코넨이 밴드를 떠남과 동시에 드러머이자 밴드의 리더였던 투오모 라실라와도 작별을 한 것이다.[7] 이후 스트라토바리우스는 새로운 키보디스트로 잉베이 말름스틴 밴드 출신의 옌스 요한슨과, 드러머로 코지 파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 탄탄한 투베이스 드러밍을 자랑하는 이름난 세션 요르그 미하일이 가입하게 된다. 말 그대로 티모 톨키의 재능을 그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슈퍼밴드의 진용을 갖춘 것이다.

그 결과물은 이후 4개 앨범에 거친 대박행진으로 나오게 된다.

5집 Episode는 스트라토바리우스의 명성이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넘어서 전 세계로 펼쳐져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을 일으켰던 Forever가 바로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다.

그 다음, 밴드는 6번째 앨범 Visions를 통해서 그야말로 초 대박을 터뜨린다. 지금까지도 뭇 스트라토바리우스의 팬들에게 스트라토 최고의 명반이라 칭송받는 이 앨범이 출시된 후 밴드는 라이브 투어를 진행하고 동시에 콘서트 당시의 연주를 녹음한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였다.

그리고 밴드의 대박행진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으니, 연달아 나온 7집 Destiny와 8집 Infinite는 종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사운드를 자랑하였다. 7집 앨범의 타이틀곡인 Destiny와 8집의 타이틀곡 Infinity는 둘 다 10여 분대에 달하는 긴 플레이타임을 가졌음에도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풍부한 음색을 즐길 수가 있는 곡들이었다.

3.4. 혼란기 (9~11집)

그 뒤 Elements Part 1Elements Part 2 연작을 냈는데, 이전의 명반행진들에서 보여줬던 기타-키보드 솔로배틀이 줄어들고 오케스트레이션[8]이 강조된 데다가 달리는 곡들도 줄어들어서 찬반양론이 심한 앨범이었다. 또한 연달은 성공으로 고무된 톨키가 당시 레이블이었던 생츄어리의 지원을 받아 상당한 액수의 제작비를 투입한 앨범이었다.

또한 파트 1발매즈음 티모톨키가 음원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글을 다소 격한 어조로 쓰며 논란이 있었고, 발매 후에 '스트라토바리우스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멤버 몇을 내보내겠다'는 티모 톨키의 쑈킹한 발표가 있었다. 당시 이들의 멤버 조합은 역대급의 앙상블이었기 때문. 결국 보컬인 티모 코티펠토와 드러머인 요르그 미하일이 탈퇴하게 되고, 드럼엔 해머폴의 드러머이자 옌스 요한슨의 형제 앤더스 요한슨, 밴드의 보컬에 무려 마이클 키스케가 거론되고 키스케가 직접 스트라토 가입설을 부인하는 등 여러 해프닝이 있었으나 결국 새로운 보컬로 그 전 경력이 전혀 없는 신인 MISS K라는 의문의 여성이 보컬로 영입되었으나, 온갖 찬반양론으로 밴드와 팬들은 극도의 혼란 상태였다. 결국 티모 코티펠토와 요르그 미하일은 재가입을 하게 되었으나 밴드캠프 자체는 어수선하기 그지 없었다.[진실] 심지어 티모 톨키는 옌스 요한슨과 산책하던 도중 한 칼을 든 괴한에게 습격받는 일까지 있었다, 그나마 복싱선수였던 경력에 거한(신장 192cm)이었던 그인지라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다만 문제는 후에 이 사건이 자작극이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다. 또한 원래부터 기행의 달인(...) 이었던 옌스 요한슨이 라이브에서 포에버 연주도중 무대 위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사건마저 있었다(...) 그 뒤 2005년에 나온 앨범이 셀프타이틀 앨범 Stratovarius였으나..

...결과물은 그야말로 처참 그 자체였다. 질주감 있는 곡들이 완전히 없어진 데다가 싱글커트된 Maniac Dance는 뜬금없이 LA 메탈의 어법을 받아들인 곡이라 밴드의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어떻게 보면 좀 부당한 비난일 수도 있는 게, 애초에 이번 앨범에는 스피디한 곡은 없다고 티모 톨키가 선언했었고, 사실상 3장의 앨범을 계약한 레이블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앨범이었기에 딱히 기대를 한 사람들은 없었다. 당시 이들의 투어분위기는 그야말로 적막 그 자체로 서로 약속된 플레이만 했을뿐 원수지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악곡 자체의 멜로디들은 여전히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투어를 계속하며 2008년 중에 새 앨범을 낸다고 하였으나..

물론 9집 수록곡인 Eagleheart 등 그래도 앨범 안에 명곡이 몇몇 개 있었으며 이 곡은 공연마다 단골로 연주되는 등 스트라토바리우스를 대표하는 곡으로 남았다.

3.5. 재결성 (12집~)

돌연 리더인 티모 톨키가 밴드 멤버들의 불화를 언급하며 밴드를 해체하고, 새로운 밴드인 레볼루션 르네상스(Revolution Renaissance)를 결성하게 되어서 밴드가 그대로 망해버릴 위기에 처한다. 당시 국내 미디어에서도 스트라토바리우스가 해체된다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밴드의 남은 멤버들은 티모 톨키 없이 스트라토바리우스를 잇겠다고 했고, 톨키의 행위는 밴드의 남은 멤버들과 팬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게 문제였던 이유는, 레볼루션 르네상스 1집의 음원들은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새앨범에 넣기위해 만들었던 곡들이었다. 현재도 그 증거로 스트라토 멤버들이 연주한 데모 앨범이 인터넷에 남아있으여 이 중 일부는 몇몇 국가에서 레볼루션 르네상스 앨범 보너스 트랙으로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과거 밴드가 유지되던 2007년 바켄에서 스트라토의 라이브에서 신곡이라고 Last Night on Earth 라는 레볼루션 르네상스의 곡을 부르기도 했다. 이걸 중간에 가로채서 세션들을 모아 자신의 솔로밴드의 앨범으로 발표해버린 것. 물론 작곡 자체는 티모 톨키의 몫이었으니 그의 권한이 크겠지만 작사 쪽에서는 코티펠토의 지분역시 컸다. 결국 톨키는 '스트라토바리우스'라는 이름의 모든 사용권을 남은 멤버들에게 완전히 넘겼고, 스트라토바리우스는 마티아스 쿠피아이넨(Matias Kupiainen)이라는 새 기타리스트가 가입한 상태로 2009년 5월에 새 앨범 Polaris를 출시했다.

이 Polaris는 그 동안 밴드 음악의 핵심이었던 톨키가 탈퇴해서 대신에 보컬인 코티펠토와 키보드인 옌스의 영향이 상당해진 앨범으로, 키보드라인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색채가 더욱 강화되기 시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새로 가입한 기타리스트인 마티아스가 연주는 잘해주고 있지만 아직 밴드에서는 영향력이 낮은 편. 그리고 Stratovarius 셀프타이틀 이후에 새로운 베이스로 가입한 멤버인 로리 포라가 작곡한 곡도 있다. 곡 분위기는 이들의 전성기 때 앨범, 특히 Episode 앨범에 근접하려고 했지만 톨키가 빠진 것 때문에 완전히 이전 느낌이 나진 않았다. 전성기 4연작보다는 못하긴 해도 평작 이상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바로 직전에 나온 셀프타이틀이 처참하게 실패한 것에 대한 반등도 있다.)

이후, 2011년 1월 13번째 앨범 Elysium을 출시하였다. 톨키강점기 시대의 밴드와는 확 달라진 사운드가 특징인 앨범으로, 12집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래도 12집은 기존 사운드를 지키려고하는 시늉이나 했지(...) 이젠 아예 기존의 스트라토바리우스와는 정말 확 달라진 느낌을 보인다. 네오 클래시컬적인 요소는 거의 사라졌으며 물론 여전히 북유럽 스타일의 아름다운 멜로디의 파워메탈이라는 기본 리즈는 충분히 채워주는 앨범이었으며, 완성도는 매우 훌륭한 편이었다. 각 앨범마다 전통적으로 1, 2곡씩은 내놓는 발라드곡들 중 Move the mountain이란 곡은 여전히 그들의 북유럽 스타일의 멜로디가 건재함을 과시해준다. 이 때부터 기타리스트 마티아스의 영향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코티펠토와 함께 사운드를 주도해나가는 입장이 된다.

그리고 2013년에 대망의 Nemesis를 발매했다.[10] 작품의 완성도는 거의 환골탈태 수준. 메탈 아카이브에서는 이 앨범이 과거 명작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

2015년 9월 새 정규앨범 15집 Eternal이 발매되었다. 전작 Nemesis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작에 비해 훨씬 스피디한 사운드를 보여주었다. 사실 티모 탈퇴후의 앨범들이 좀더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파워메탈 사운드에 맞춘 스타일이었다면, 이 앨범은 가장 티모톨키 스타일의 애수어린 멜로딕 파워메탈 사운드를 선보였다. My Eternal Dream 뮤직비디오로 전쟁 속 비극과 희망을 다루기도 했다.

2018년 9월 28일에 비정규 앨범 Enigma: Intermission II가 발매되었다. 앨범 수록곡인 Oblivion이 공개되었다. 지난 앨범 한정판의 보너스 트랙들과, 기존 곡들의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으로 수록된 컴필레이션 앨범이며, 신곡은 1, 4, 7번 트랙 3곡이 수록되었다.

2020년 10월에 스튜디오에서 새 앨범을 작업하고 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유했다.

5월 27일 앨범을 공개하겠다는 소식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하였으나... 만우절 농담으로 밝혀졌다. 앨범을 ABLUM으로 적어놓은 것을 보아 빼박.

2022년 9월에 새 앨범 Survive를 발매했다. 장장 7년 만의 새 앨범이고 4년만의 신곡 발표인 셈. 기타 리프에 Djent의 색채가 꽤 나지만 멜스메와 Djent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호평이 많았다.

4. 음반

4.1. 정규

4.2. 비정규/라이브/베스트

5. 여담

이들의 음악적 행보가 기타리스트인 티모 톨키의 속칭 휘모리 기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연주를 베이스로 깔고 계속 진행했으니, 음악이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는 비슷비슷한 감이 보였다. 메탈 밴드치곤 드물게 라이브 때 유독 베이스 사운드가 상당히 명확하게 잘들린다.

티모 톨키가 왜 그렇게 밴드를 하루아침에 때려치고 새 밴드를 차려 나가버렸는지에 대해서는 뒷소문이 무성하다. 사실 티모 톨키가 돈 때문에 다른 멤버들 두고 혼자 먹튀하고 날랐다는 설이 지배적이긴 하다. 이 건에 대해 티모 본인은 해명한 적 없다. 다만 티모 입장에서 반론을 하자면, 그가 자신의 심각한 우울증과 발작증상을 대중들과 대중매체에 공개하길 극도로 꺼렸기 때문에, 이 결정은 심신미약 상태에서 했다는 썰이 있다. 톨키는 전자책 자서전에서 어릴 적부터 중증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다가 아버지가 '가족을 사랑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이후 그 트라우마에 심각하게 시달렸다고 밝혔다. 단순히 가족 중 한명이 자살한다면 그 자체로 트라우마일텐데, 심지어 톨키의 아버지는 10살이었던 티모 톨키의 눈앞에서 손목을 긋고 4층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였을듯. 한 유럽 미디어에서 이 자살사건에 대해 티모 톨키에게 집요하게 질문하다가 톨키가 ‘너희 썩을 기레기 새끼들은 잡지 한권이라도 더 팔고 싶을뿐이지. 이해한다’ 라고 대노한 적이 있었고, 이 인터뷰는 톨키의 욕설이 그대로 미디어에 실렸다(...)(#). 그럼에도 1998년까지 밴드활동을 할 만큼 어떻게 버틸 수 있었지만, 1999년부터는 치료 없이 버티기 힘들 정도가 돼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2003년부터 라이브에서 발작이 제어되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었고 2008년 결국 스트라토바리우스를 포기하고 나간 것이다.

2008년 이후 정신과 치료가 진전을 보였지만 2013년부터 다시 병세가 악화되었고 2017년에는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과 술을 동시에 마실 정도로 정신 상태가 악화됨과 동시에 체중 관리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팬들의 증언에 의하면, 병세가 재발한 이유는 2013년부터 2017년 사이 아내와 딸이 그의 병세로 인한 발작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이혼을 선언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팬증언삭제된 증언). 공개된 사실등을 바탕으로 추론하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톨키는 형편이 어려운 어머니를 돌보겠다는 강박관념이 병세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돈독이 올랐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선택을 할 만큼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2008년 밴드 해체라는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

참고로 12번째 앨범인 Polaris가 스트라토바리우스의 20주년 기념 앨범이라니 이제 정말 늙은이 밴드가 아닐 수 없다. 보컬 티모 코티펠토와 드럼 요르그, 키보드 옌스는 50대를 넘긴 아저씨들. 심지어 옌스 요한슨은 2016년 기준 만 나이로 52살, 우리나라 나이로 54살이 되었다.

2010년 11월 18일, 공식 홈페이지에 밴드의 드러머 요르그가 암에 걸렸음을 밝혔다. 쾌유를 빌자.http://stratovarius.com/

그리고, Forever 사태(?) 이후 한국과는 인연을 끊을 듯했지만 헬로윈과 더불어 2011년 3월 2일로 내한공연[13]이 예정되었다.

같은 해 1월, 보컬인 티모 코티펠토가 박테리아성 질병에 걸려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티모 본인은 공식 홈페이지에 그에 대한 자신의 코멘트를 달았다. 이후, 다행스럽게도 3월 2일 있었던 헬로윈과의 합동 라이브에서 요르그와 티모 두 사람 다 멋진 연주와 노래를 선보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3월 라이브와 13집 앨범 발매를 끝으로 요르그는 16년 만에 팀에서 탈퇴했다. 하지만 이건 건강 사정과 그동안의 밴드 활동으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인한 탈퇴였고, 밴드는 요르그를 위해 Farewell 투어를 핀란드 각지에서 진행했다.

특히, 핀란드 제2의 도시인 Tampere Pakkahuone에서 펼친 공연은 라이브 DVD로 제작되기도 했다. 약 7000명이 들어가는 Pakkahuone가 발디딜 틈 없이 꽉 차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012년 6월 20일 밴드는 1987년생의 젊은 새 드러머 롤프 필브(Rolf Pilve)를 맞아 들였다.(참고로 63년생인 옌스 요한슨과 무려 25살의 나이차. 그야말로 아들뻘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13년 1월 30일에 EP Unbreakable을 발매했고[14] 2월 22일 새 앨범 Nemesis를 발매했다.

2013년 8월 3일에 홍대 V-Hall에서 내한공연을 가졌으며 다음 날인 8월 4일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또한 팬카페가 주도하여 스트라토바리우스 전 멤버와 만나서 식사를 나누는 이벤트가 있었다.

2019년 8월 16-18일 강원 락페 라인업에 떡하니 이름을 올려 메탈 팬들이 경악과 환호. 8월 18일에 내한하였다. 전성기 곡들을 다 부르며 코티펠토는 건재함을 과시. 한편 옌스 요한슨의 장비에 문제가 생겨서 음이 안 나오는 일이 있어서 옌스가 연주하는 내내 안색이 안 좋았다고 한다.
[1] 앞서서 독일크라우트록 밴드 크라프트베르크가 데뷔 앨범의 수록곡 이름으로 사용한 예가 있긴 했다.[2] 재미있는 사실은 잉베이 또한 리치 블랙모어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데뷔 초기에는 헤어스타일부터 의상까지 리치 블랙모어를 따라했을 정도의 광팬이다.[3] 고려대학교 응원가 Forever와 LG TWINS 응원가 승리의 노래의 원곡이다.[4] 여담으로 망했어요 느린 버전의 삽입곡이기도 하다.[5] 당시 음반 수입은 서울음반이 맡았는데, 음반매장에서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앨범을 틀어 놓으면(Forever 때문이긴 하지만..) "이 노래 누구 거예요" 라면서 문의하는 메탈키드들이 많았다. 앞서 말했듯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은 탓에 외국 대중음악의 정보 접근이 제한적이라 이 광경이 흔했다.[6] 당시 몇몇 음반매장에서 카운터 보는 직원들에게 반품사태를 막기 위해 음반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 "이거 헤비메탈 밴드의 앨범입니다"를 주지시켰다. 그래도 반품... 나중에 Forever가 들어간 컴필레이션 앨범이 나오면서 좀 괜찮아졌음.[7] 이들은 2013년 티모 톨키 솔로 프로젝트 때 다시 합류한다.[8] Part 1의 타이틀곡 Elements는 메인 보컬보다 오케스트레이션이 더 두드러지는 곡이다.[진실] 정작 수년후인 2020년, 티모 톨키가 스트라토바리우스와 화해하며 밝힌 내막은 밴드 내부의 다툼은 사실이었으나 그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한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쇼였다는 것이었다. 바로 뒤에 언급되는 톨키의 습격사건 역시 조작이었다. 새 보컬리스트 Miss K는 애초에 스트라토바리우스에 가입할 생각이 없었고, 일부러 시끄럽게 이슈를 만들어 Miss K를 알리고 그녀의 솔로앨범을 발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대중들의 증오가 자신에게 향하도록 한 이유가 후에 발표되는 셀프 타이틀 앨범에 실릴 unitedF를 통해 용서와 결합으로 밴드의 상처가 치유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말했지만, 그 증오가 상상이상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예를 들어볼때 일반적인 상식과 대인관계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있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이전 시대의 일인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의 일이었다. 현실에서 제로 레퀴엠을 하다니...[10] 여기에 수록된 Unbreakable은 Nemesis 발매 전에 2개의 리마스터링 곡을 수록해 먼저 발매됐다.[11] World on Fire의 뮤직비디오에서 반전주의를 외쳤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더욱 와닿는 상황이다.[12] 사실 이 앨범은 스트라토바리우스가 이 때 Noise에서 Nuclear Blast로 레이블을 이적함에 따라 Noise에서 스트라토바리우스의 Noise시절 앨범인 Twilight Time부터 Destiny까지의 곡을 모아서 만든 베스트 앨범이다. 즉 헬로윈의 "The Best, The Rest, The Rare"와 결이 완전히 같은 앨범.[13] 서울 장충 체육관으로 예정되었으나 본래 기획하기로 했던 소속사의 갑작스런 연락 부재로 장소는 악스홀으로 변경되었다.[14] 메인타이틀 Unbreakable 외 Falling Star, The game never end의 리마스터 버전 수록. Unbreakable은 이후 Nemesis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