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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39:29

문광채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문광모(文光模)
본관 남평 문씨[1]
출생 1861년
경기도 광주유수부 초부면 용진리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사망 1919년 12월 15일[2]
서대문형무소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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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문광채는 1861년 경기도 광주유수부 초부면 용진리(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서 아버지 문병의(文秉義)와 어머니 광산 김씨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5일 이정성(李正成), 김춘경(金春經), 김현모(金顯模)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가 와부면 송촌리에서 발발하자 이에 참가해 독립만세를 외치며 덕소리로 향했다. 그러다가 이정성, 김춘경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언도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었고,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19년 12월 15일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문광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의안공파-이곡-참의공-영원군파-참의공파 32세 모(模) 항렬.[2] 음력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