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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23:42:4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nopad>파일: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jpg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원제 Why Fish Don't Exist : 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
장르 에세이
작가 룰루 밀러 (Lulu Miller)
번역 정지인
출판사 곰출판
발매일 2021. 12. 17.
쪽수 300쪽
ISBN 9791189327156

1. 개요2. 내용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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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아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학장의 삶과 그 의미를 추적하는 논픽션 에세이이다. 저자인 '룰루 밀러'는 피바디상을 수상한 과학전문기자이다.

2. 내용

과학전문기자인 저자는 진화론적 논리를 따라가다가 '세계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이에 무척 괴로워했다. 그런데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학장이었던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저자가 보기에 그는 어떤 고난에도 인생의 답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저자는 그의 인생을 탐구해보기로 결심한다.

어렸을 때 데이비드는 수집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별들의 이름을 외우고 지도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던 평범한 아이였다. 커서도 그는 꽃을 수집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교사가 되었고 그의 인생도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나 싶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키고, 또한 그의 수집 강박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준 사람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박물학자였던 루이 아가시였다. 아가시는 생물들을 제대로 된 순서로 배열하면 신성한 창조의 의도뿐 아니라 어쩌면 더 진보할 방법에 관한 실마리까지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데이비드는 아가시의 말에 그야말로 감동했고, 이제 그는 그 목표를 받들어 생물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의 강박적 수집벽은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는데 둘도 없는 자질이었다. 그는 북미의 모든 담수어를 발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물 위로, 강으로 , 호수로 나가 다양한 표본 물고기들을 낚아 올렸다. 그는 차츰 분류학 연구 논문을 출판하기 시작해 종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밝혀내는 한편, 쓸데없이 중복되는 분류는 정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에도 이 물고기 중독자의 존재가 알려졌다. 정부는 데이비드의 팀에게 미국에 남아 있는 미지의 어류들을 찾아달라고 용역을 맡겼다. 데이비드는 분류학자로서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지치지 않고 일했고, 그 결과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이 모두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한 것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스탠퍼드 부부가 찾아와 자신들이 서부에 실험적으로 세운 작은 학교의 초대 학장이 되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릴런드 스탠퍼드가 악덕 자본가로 널리 알려진 공화당 상원의원이라는게 마음에 걸렸지만, 넉넉한 봉급과 캘리포니아의 날씨 때문에 구미가 당겼다.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여 1891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나이 갓 마흔 살이 되었을 때다. 한 가지 문제는, 데이비드가 학장이 된 지 겨우 1년이 지났을 때 릴런드 스탠퍼드가 사망해서 학교의 모든 것을 스탠퍼드의 아내인 제인이 물려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인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죽은 아들을 만나려고 영매들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데이비드가 볼 때 너무나 터무니 없는 사람이었다. 데이비드는 영매술을 믿는 이들을 질책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글들을 발표하면서 제인의 신경을 긁었고, 이때문에 제인은 데이비드와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불만을 사사건건 말하며 부딪쳤다.

그럼에도 데이비드는 물고기가 있어서 행복했다. 새로운 물고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나가고, 거기에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붙일 때마다 느껴지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행복감. 그 사랑스러운 질서의 감각.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강박적인 수집은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그에게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발생하여 그가 30년 동안 모아놓은 물고기 표본을 담은 유리단지들이 모두 다 산산조각 나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 지진이 전하는 명백한 메세지, 즉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메시지에 그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늘을 물고기의 목살에 찔러 넣어 이름표를 꿰매 붙였다. 이제는 절대 이름표를 유리단지 안에 어정쩡하게 넣어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각자의 이름을 바로 그 물고기의 피부에 꿰매 붙여 떨어질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은 혁신은 도전적인 소망을 담고 있었다. 이제 그의 작업은 혼돈의 맹공 앞에서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라는, 다음번 혼돈의 공격 때는 그의 질서가 흔들림 없이 우뚝 서 있을 거라는 도전적인 소망. 그는 어떻게 이 '혼돈'에서 다시 일어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ㅡ 언뜻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하는 ㅡ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신념은 다음과 같은 거짓말,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는 저 거짓말에 기반하고 있다. '의미 없는 진화의 세계'에서 이러한 낙천성은 분명 자기 기만이다. 그런데 그것이 두려움을 잠재워주고, 일과 인간관계에서 더 많은 성공을 가져다 준다면 자기 기만을 한다고 나쁠게 뭔가? 그러나 현대 심리학자들은 그러한 자기 기만이 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작은 거짓말은 좋은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지만, 지나친 기만은 오히려 적응에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연구가 그것을 증명한다. 델로이 폴허스는 과도한 자신감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밝혀냈다. 리처드 로빈스와 제니퍼 E. 비어는 긍정적 착각이 단기적으로는 더 행복하게 하나, 장기적으로는 더 불행해진다는 것을, 다시 말해 기만은 나중에라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결정적으로 바우마이스터는 높은 자존감이 평온을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의 강한 폭력성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1905년으로 돌아가보자. 이때 제인 스탠퍼드의 첩보원은 데이비드 학장이 자신의 친구 찰리의 불륜을 감추기 위해 목격자를 정신병원에 감금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데이비드가 친구의 스캔들을 덮어버렸으며, 대학을 갱단 두목처럼 자신의 사람들로 운영한다고 비난하는 보고서를 써 보냈다. 그 보고서는 이사회에도 전해졌고, 제인이 곧 데이비드를 해고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 그해 초 하와이를 여행 중이던 제인이 독이 든 물을 마시고 죽어버린다. 참으로 공교로운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물을 분석한 화학자는 치사량의 스트리크닌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혔다. 데이비드를 괴롭히던 스탠퍼드 부인은 독살당한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의사들이 제인의 죽음을 독살로 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하와이로 향했다. 그는 의사로 일한 지 2년밖에 안 된 자를 데리고 관계자 몇 명을 만나보고는 제인 스탠퍼드가 독살당한 것이 아니라 폭식을 해서 죽은 것이라고 성명서를 냈다. 그가 하와이에 도착한 지 이틀 만이었다. 하와이의 의사들이 즉각 반대 성명을 발표했지만, 데이비드의 명성, 권력, 섬에 대한 미국의 무시 등으로 인해 반대 성명은 본토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모든 과정을 추적하여 2003년에 《제인 스탠퍼드의 불가사의한 죽음》이라는 책을 출간한 의학박사 로버트 커틀러는 제인이 독살당한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데이비드가 독살을 은폐하려 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왜 은폐하려 한 것일까? 커틀러는 데이비드가 살인에 가담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사실이라고 단언하지는 않았다.[1]

데이비드는 은퇴하고 나서 미국에 우생학을 보급하는데 앞장 섰다. 그는 책을 하나 썼는데, 전 세계에서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고 권고하는 책이었다. 그는 청중들에게 "백치들은 모두 자기 핏줄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를 포함한 우생학자들이 비슷한 말들을 하고 다닌 이후로, 미국 전역의 뒷골목에서는 불임수술이 강제적으로 행해졌고, 때로는 처형까지 자행되었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이 유전적 정화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계획에 열성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매우 큰 목소리로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과학자들도 가난과 방탕, 문맹, 범죄성 등은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견의 핵심은 《종의 기원》에 있었다. 이 책의 논리에 따르면,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의 생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 유전자 풀이 넓을수록 그 종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다. 마지막 순간의 깨달음이나 회한을 보여주는 증거는 전혀 없다. 저자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인가? 저자는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혼돈'에 맞서 데이비드가 자연의 '질서'라는 비전을 수호하려는 데서 이러한 사악함이 생겨났음을 깨달았다. '혼돈'은 데이비드의 무조건적인 확신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고,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자, 이렇게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저자는 강제적인 불임수술를 당했음에도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은 애나와 메리를 만나고서야 그 해답을 찾는다. 우리가 그럼에도 사는 이유는,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 ㅡ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단순한 사실 ㅡ 덕분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애나와 메리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그것은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따라서 그 관점들의 상호 관계로서 의미가 되는 ㅡ 우리는 중요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저자는 이를 '민들레 법칙'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데이비드가 중요하게 여겼던 '의미'인, '어류'라는 분류에 대해서 논한다. 마치 데이비드 평생의 과업을 부정하듯이, 저자는 캐럴 계숙 윤의 책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어류"라는 하나의 단어 아래 몰아넣었다. 생물 진화의 분기를 연구하는 분기학자들에 따르면,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들 중 다수가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다. 폐어와 실러캔스는 허파와 심장 구조가 우리와 비슷하다. 연어, 농어, 송어, 장어, 가아 등은 겉보기에 물고기처럼 미끌미끌하고 비늘이 있어 육기어류와 쌍둥이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연골어강이라 불리는 상어와 가오리들은 비늘이 있는 송어와 장어보다 진화상으로 우리와 훨씬 더 거리가 멀다. 생명의 나무를 더 아래로 훑어 내려가면 먹장어 같은 무악류도 있고, 진화 분기상 척삭이라는 구조물을 가장 먼저 선구적으로 갖추었던 피낭동물인 멍게도 있다. "어류"라는 범주가 이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물론 폐어와 실러캔스를 송어와 금붕어의 분류에 함께 밀어넣어 "어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단,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공통 조상을 지닌 모든 후손이 함께 포함될 수 있도록 몇몇 다른 생물들도 어류라는 집단에 집어넣어야 할 것이다. 물가에 걸터앉아 있는 개구리들은 어떨까? 그 개구리들도 어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 하늘 높이 나는 새들은? 그 새들도 어류라고 해야 한다. 당신의 엄마는? 당연히 어류다. 어떤가. 그럴듯한가? 그렇지 않다면, 과학적으로 좀 더 논리적인 일은 어류란 내내 우리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범주를 부수고 나와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다.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그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처방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희망은 내가 누릴 자격이 있어서라거나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쁜 것의 이면에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이 '혼돈'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자.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자. "질서"라는 당연한 확신, 특히 도덕적ㆍ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하나의 대용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최악일 때는 족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가 이 단어들을 타이핑하고 있을 때 저자의 마을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급습했다. 그들은 남부연맹군 지도자의 동상 하나를 지키려고 나치 표시를 단 방패를 들고 공원으로 돌진했다. 그들은 반대시위자 군중을 향해 차를 몰아 한 사람을 죽이고 수십 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그들의 부츠와 그들의 구호와 그들의 신념으로 한 흑인 남자를 피가 나도록 구타했다. 그 일이 끝난 뒤 그들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죽음에 대해서는 유감이지만 자신들의 생각은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고, 백인은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그것은 "그냥 과학의 문제"라고 그는 킬킬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자연 자체에는 그런 도덕적 우열의 사다리가 없다.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층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다리는 아직도 살아 있다.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

3. 여담


[1] 저자는 수천 장에 이르는 데이비드의 저술을 일일이 확인하다가 두어 달 뒤에 우연히 데이비드의 저술 《물고기 연구를 위한 안내》에서, 그가 물고기를 잡을 때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이 "스트리크닌"을 물에 푸는 것이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즉, 데이비드는 스트리크닌을 자주 사용했고 그만큼 그 독약을 쉽게 구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데이비드가 살인에 가담했을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