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미네르바 루이즈 구타펠(Minerva Louise Guthapfel) |
생몰 | 1873년 9월 23일 ~ 1942년 11월 9일 |
출생지 |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
사망지 | 미국 일리노이 에반스턴 |
매장지 |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
추서 | 건국포장 |
1. 개요
미국의 감리회 선교사.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미네르바 루이즈 구타펠은 1873년 9월 2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일찍이 감리회에 입교했고 선교사를 맡아서 1903년 한국으로 파송되어 서울 및 경기도 일대에서 1912년까지 전도 활동을 수행했다. 그녀는 이 시기에 자신이 겪은 일을 토대로 잡지에 연재한 글을 책으로 다시 엮어 <Happiest Girl in Korea>를 출간했다. 이 책은 국내에서는 <조선의 행복한 소녀 옥분이>로 번역됐다.그녀는 이 책에서 가부장적인 틀에 매인 여성과 미신을 믿는 나약한 서민의 모습을 들어 조선인들의 삶이 암울하다고 진단하면서도, 조선인들의 순박하고 착한 모습을 호의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그녀는 '옥분이'라는 이름의 14살 소녀가 집에서 매일 매맞다가 쫓겨난 뒤 손과 발이 동상걸려서 감리교가 세운 병원에 실려가 절단 수술을 받은 뒤 여기에 눌러앉아서 편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며 자신이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고 밝히는 일화를 감동적으로 묘사했다.
1912년 조선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온 구타펠은 1919년 3.1 운동에 대한 소식을 듣고 미국 중서부 각 교회를 방문하여 한국의 참혹한 사정을 알리고 부인회와 교섭하여 한국의 독립운동지원 활동을 호소했다. 그해 10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한국친우회 조직에 참가하여 서기를 맡아 한국 사정을 알리고 한국 독립을 지원하며 한인 구제를 위한 모금 등의 활동을 수행했으며, 1920년에도 회람을 내어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미국 의회와 정부에 한국 독립 문제를 청원하고 친한(親韓) 여론 형성을 위해 여러 차례 순회 강연 활동을 하였다. 1921년 11월 21일 한국친우회 회장 톰킨스와 함께 워싱턴군축회의 미국대표단 단장 휴즈에게 청원서를 보내 한국대표자의 회의 참석과 한국문제를 상정하도록 촉구했다.
이후에도 감리교 선교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구타펠은 1942년 11월 9일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유해는 시카고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미네르바 루이즈 구타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