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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11:49:14

미시소거 화물열차 탈선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미시소거 화물열차 폭발.jpg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

1. 개요

1979 Mississauga train derailment
L'accident ferroviaire de Mississauga

1979년 11월 10일 캐나다 자치령 미시소거에서 있었던 열차 탈선으로 인한 대형 폭발사고.

2. 사고 당시

파일:미시소거 화물열차 직원.jpg
당시 퍼시픽 화물열차 소속의 54번 화물열차가 윈드소어로 향하고 있었다. 106대의 화물 차량을 끄는 만큼 기관차도 EMD F40PH를 3대나 끌고 다닌 마일 트레인이었다. 당시 화물열차엔 프로판, 스티렌, 뷰테인, 염소 90톤 같은 온갖 화학물질이 있었다. 위의 사진 왼쪽부터, 기관사는 테드 니콜(Ted Nichol), 브레이크맨은 래리 크루파(Larry Krupa), 그리고 엔지니어 키스 프러스(Keith Pruss)가 탑승했었다. 프러스는 크루파의 장인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면 4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해야 했다.

오후 11시 53분, 열차가 이동하던 도중 33번째 차량의 바퀴 베어링에서 과열이 일어났다. 베어링이 움직이지 않아 바퀴의 마찰열이 그대로 전달 되는 일명 '핫박스(Hotbox)' 현상이 일어났다. 마찰열이 점점 강해지면서 아예 바퀴에 불이 붙었고, 불이 붙은 바퀴가 떨어져 나가면서 마비스로드 인근의 건널목탈선했다. 탈선하면서 열차는 순식간에 쌓이고 프로판 가스가 새어나오다 폭발하면서 대형 화재가 일어났다. 온갖 화학물질이 타오르면서 불길은 40층 높이로 타올랐다. 당시 주민들은 상황을 "한밤중이었는데 낮 만큼 밝았다." 고 회상했다. 래리 크루파는 재빨리 달려가 열차를 분리하고,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차량 27대를 최대한 떨어뜨려 놓았다. 차량 27대는 상당수가 프로판 가스가 실린 차량이라 불길 가까이 놓으면 위험했기 때문이다.

소방대와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 워낙 심각한 상황이라 미시소거의 모든 인원이 투입되고, 토론토에서도 지원을 왔다. 한 소방대원들은 당시 결혼식이라 턱시도를 입고 축하해 주던 도중 소식을 듣고, 급히 턱시도 위에 소방대원 복장을 입고 달려왔다. 열차에 있던 수천톤에 달하는 연료가 공급되고 있는 상황인데다 이미 몇 차례 대형 폭발까지 일어났다. 테드 니콜은 열차 내에 어떤 물질들이 있는지 알렸고, 이를 들은 소방대원은 대피를 결정, 경찰과 함께 인근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확성기로 알리고, 일일이 문을 두드리면서까지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파일:미시소거 대피.jpg
처음엔 6,000명 만 인근 스퀘어 원 몰이라는 쇼핑몰에 대피했으나, 이후 쉐어웨이 가든 쇼핑센터, 또 다시 국제 무역 센터로 대피시켰다. 날씨가 점점 나빠지고 바람이 점점 강해지자 대피해야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고, 나중엔 무려 250,000명에 달하는 사람이 대피했다. 예외는 없었고, 병원에 있던 중환자들 까지 앰뷸런스 수십대를 동원해 전부 대피시켰다. 이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오기 전 까진 북미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대피한 사례였다. 당시 미시소거 시장 헤이젤 맥캘리온(Hazel McCallion)은 사고가 진정되기 전 까지 도시 전체를 폐쇄했다. 도시에는 화재와 싸우는 소방대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남은 경찰 외엔 남지 않았다.

폭발은 계속됐고, 소방대원들은 끝까지 맞서 싸웠다. 약품까지 뿌려가며 최대한 불을 진화해 나섰다. 몇몇 소방관은 유독가스를 흡입해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시장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다 발목을 삐었음에도, 3일간 잠도 자지 않으며 대피를 관리하고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애완동물들 데리고 대피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기에 약 1만 마리에 가까운 애완견과 애완묘, 애완 앵무새 등 여러 애완동물이 도시에 남아 있었고, 이들을 관리하는 팀도 따로 있었다. 대피한 동안 안전지역의 주민들은 대피한 사람들을 도왔다. 3일이 지난 뒤 불을 간신히 끄는데 성공했고, 3일이 또 지나고 염소가스 또한 어느정도 진정 되어 몇몇 사람들이 돌아왔다. 그 뒤 또다시 몇주가 지난 뒤에야 모든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사망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심지어 중상자도 몇 없었다. 때문에 캐나다에선 이 사건을 미시소거의 기적(The Mississauga Miracle)이라고도 부른다. 다만 도시에 남아있던 애완동물 중에 사망사례가 좀 나왔다.

3. 사고 이후

사고 당시 힘쓴 시장의 소식이 시 전역에 퍼지면서 헤이젤 시장은 이후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2015년, 93세 나이로 은퇴할 때 까지 미시소거 시장으로 근무했다.

재빨리 열차를 분리시킨 뒤 아직 불이 붙지 않은 화물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은 엔지니어 크루파는 캐나다 훈장(Order of Canada / L'orbre de Canada)을 받았다. 또 북아메리카 철도 명예의 전당(North America Railway Hall of Fame)에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