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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미초 아센 (영어: Mitso Asen, 불가리아어: Мицо Асен)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불가리아 제2제국 차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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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 제2제국 9대 차르.2. 생애
이반 아센 2세의 딸 마리아 아세니나와 결혼한 불가리아 보야르로, 1241년 즉위한 칼리만 아센 1세의 섭정단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256년 미하일 아센 1세가 사냥하던 중 칼리만 아센 2세에게 살해되었고, 칼리만 아센 2세는 미하일 아센 1세의 미망인인 안나 로스티슬라브나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헝가리 봉신인 로스티슬라프 미하일로비치가 자신의 딸인 안나 로스티슬라브나를 구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불가리아의 수도 타르노보로 쳐들어갔다. 칼리만 아센 2세는 백성들이 따라주지 않자 수도를 떠났고, 로스티슬라프는 타르노보를 점거한 뒤 딸을 데리고 헝가리로 돌아간 후 "불가리아의 황제"를 자칭했다.그 후 차기 차르를 놓고 여러 유력 인물이 경쟁했는데, 미초 아센이 위대한 차르 이반 아센 2세의 사위이며 칼리만 아센 1세의 섭정을 맡았던 점을 내세워 차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신망을 잃었고, 많은 보야르들은 각자의 영지에서 할거했다. 그는 위신을 살리기 위해 니케아 제국과의 전쟁을 재개하였으나, 테오도로스 2세에게 참패했다. 이로 인해 평민들까지 등을 돌리자, 스코페의 명문가문 출신인 콘스탄틴 아센 1세가 이 때를 틈타 1257년 반란을 일으켰다. 미초 아센은 프레슬라프로 도망친 뒤, 프레슬라프와 메셈브리아 일대에서 할거하며 화폐를 독자적으로 주조하였다.
이리하여 불가리아는 콘스탄틴 아센 1세를 따르는 서부와 미초 아센을 따르는 동부로 분할되었고, 양자의 전쟁은 1263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1263년 콘스탄틴 아센 1세의 거듭된 공격을 버티지 못하게 되자 동로마 제국의 미하일 8세에게 망명하면서 메셈브리아 일대를 넘겼다. 미하일 8세는 이를 받아들이고 트라키아를 침공하여 스타니마카와 필리포폴리스를 공략하였다. 그 후 그는 트로드를 영지로 삼고 여생을 보냈다.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들인 이반 아센 3세가 미하일 8세에 의해 불가리아 차르로 추대된 1277년에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