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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6 06:53:27

미하일로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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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0522D><colcolor=#fff> 두클랴 크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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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슬라프 그라디슈니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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Радослав Градишнић}}}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재위 두클랴 크냐지
1163년 ~ 1186년
아버지 라도슬라프 그라디슈니치
배우자 데시슬라바
가문 보이슬라블예비치 왕조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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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두클랴 제7대 크냐지이자 마지막 군주. 스테판 네마냐에게 축출되었다.

2. 생애

두클랴 제4대 크냐지 라도슬라프 그라디슈니치의 아들이다. 1163년경 아버지가 사망한 뒤 제5대 크냐지로 등극했다. 그의 영역은 두클랴와 인근 지역에 국한되었고, 동로마 제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1180년경 두클랴 교회의 수장인 바르 대주교 그르구르 바르스키가 스플리트 대교구의 정경에 보낸 보고서에서 라쉬카 대공 스테판 네마냐가 바르 주변 들판이 황폐화되었음에도 800명에 달하는 인부를 보내달라고 요구한다고 불평했으며, 미하일로 3세가 두클랴 교회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추가 지원을 제공할 능력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던 1180년 동로마 황제 마누일 1세가 붕어한 뒤 제국이 내란에 휘말리면서, 동로마 제국이 그를 도울 가망은 사라졌다. 1186년, 동로마 제국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세르비아의 통합과 독립을 꾀한 스테판 네마냐는 두클랴를 무력으로 공략했다. 미하일로 3세는 아내 데시슬라바와 함께 라구사 공화국으로 망명했고, 스테판 네마냐는 장남 부칸을 두클랴 일대의 지배자인 제타 공작에 선임했다. 이후 미하일로 3세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