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2-17 20:13:07

민주혁신당

대한민국 진보정당
(창당) 민주혁신당 (해산)
사회대중당
(개별 합류)
한국사회당
(개별 합류)
민주혁신당
약칭 민혁당
창당일 1957년 10월 15일
해산일 1960년 2월 2일
대표 서상일
이념 진보주의
페이비언 사회주의
반공주의
자유민주주의
의석 수
0석 / 233석
당 색
붉은색 (#E0115F)

1. 개요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1957년 서상일장건상 등과 함께 혁신계 세력을 통합하여 만든 정당. 본래는 조봉암도 참여하려 했었으나 조봉암은 의견 차이로 인해 참여하지 않고 진보당을 따로 창당한다. 그러나 장건상계와 서상일계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결국 서상일이 장건상계 인사 7명을 제명하였다. 이후 장건상은 혁신세력 연합을 주장하며 진보당 등과 연합해 통일준비회를 발족하게 된다. 이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으나 1석의 의석도 건지지 못한 채 원외정당으로 있다가 1960년 2월 해체하고 만다. 정당 해산 이후 남은 인사들은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당에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훗날 제15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이 되는 김수한을 비롯해 장건상, 정현섭, 김성숙, 고정훈, 신숙, 박기출 등이 있다.

창립하는 데 참여한 인물 대부분이 전직 민족주의 계열 운동에 참가한 전적이 있고, 반공주의 성향을 가졌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반공혁신 계열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시기 일본 민사당과 비슷한 점이 있다.

강령 및 정강에 있어서 페이비언 협회식 사회주의를 추종한다는 것과, 강력한 반공주의를 내세웠다는 것 이외에는 진보당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서상일이 진보당 사건 당시 조봉암이 공산주의자라는 증언을 한 것을 계기로 양당 간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4.19 혁명 이후 혁신계열이 사회대중당으로 통합되었을 때로 계파 간 협력에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약칭이 민혁당이지만 1999년에 있었던 민혁당 사건의 민족민주혁명당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

2. 둘러보기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제1공화국 ~ 노태우 정부
(1948 ~ 1993)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정부 수립 이전
독립노농당 사회당 사회민주당 민주주의독립전선 민주독립당 민족자주연맹
와해 및 소멸 (6.25 전쟁)
진보당 민주혁신당
등록취소
한국사회당 사회대중당 혁신당 사회당
혁신동지총연맹 한국사회당 사회대중당 통일사회당*
강제해산 (5.16 군사정변)
대중당 통일사회당
정당활동 금지 (10월 유신)
통일사회당
정당활동 금지 (5.17 내란)
사회당 신정당 민주사회당
신정사회당
사회민주당
정당등록취소 민중의 당
민중당
* 사회대중당 창당준비위원회의 다수파가 통일사회당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셨으나 곧 해산됨.
노태우 정부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