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閔曦생몰년 미상으로, 고려의 무신이며, 본관은 여흥[1].
2. 생애
1231년 제1차 여몽전쟁 때, 북계분대어사로서 적의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적진에 갔다.그 뒤 송국첨과 함께 또 몽고군 진영에 다녀왔다. 그 해 12월 몽고군이 개성을 포위하고 흥왕사를 불태우자, 몽고군 진영에 다시 가서 화친을 청하고 몽고 사신 2인과 함께 돌아왔다.
1232년 최임수와 함께 감찰어사로서 왕명을 받고 몽고에 항전을 지속하던 귀주성의 박서, 김경손 등을 권유해 몽고에 항복하게 하였다. 그 해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한 뒤 서경순무사로서 사록 최자온과 함께 다루가치 살해를 모의하나, 이를 안 서경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킨다.[2][3]
1233년 3월에는 필현보와 홍복원이 서경에서 정의와 박녹전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그 해 12월 북계병마사로서 최우의 가병 3천 명을 이끌고 난을 진압한다.[4]
이후 지추밀원사가 되었으나, 최항이 집권한 시기 유배된다.
유배에서 돌아온 뒤 추밀원사가 되었고, 1258년 처자에게 은 1근과 쌀 3석이 하사된다.
3.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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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민인철
- 어머니: 미상
- 형: 민부
- 본인: 민희
- 아내: 미상
- 아들: 민영창
- 딸: 민씨
- 사위: 최현성
- 딸: 민씨
- 사위: 이윤
- 외손녀: 이씨
- 외손서: 윤순[5]
상서공 민식의 손자이다. 남계 후손은 전해지지 않으나, 여계 후손으로는 대표적으로 정희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가 있다.
4. 대중매체
- 드라마 무신에서는 배우 정규수가 역할을 맡았다.
- 소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에서는 실제 역사와 같다. 1차 여몽전쟁 이후 서경순무사로 있던 중 최자온과 함께 다루가치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6], 다루가치들을 주살하라는 최우의 밀지를 받고[7] 행동을 서둘러 특공대를 이끌고 다루가치들의 대부분을 살해한다.[8] 그러나 이 소문을 뒤듣게 들은 서경 백성들이 난을 일으켜 최자온은 억류되고 최임수는 저도로 도주한다. 이후의 행적은 실제 역사와 동일하다.
[1] 시조 7세. 이후 조선 말 명성황후가 속한 그 여흥 민씨 맞다.[2] 최자온은 옥에 갇히고, 최임수를 비롯한 다른 관료들은 저도로 도주한다.[3] 고려사에서는 살해 모의만이 나와 있으나, 《원사》에서는 다루가치 72인이 모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는 민희와 최자온이 다루가치를 모살하다가 서경 주민들이 난을 일으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았을 때, 다루가치들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다루가치들의 대부분이 살해당했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4] 필현보는 요참형을 당하고, 홍복원은 몽골로 도주했다. 이 때 서경 주민들을 섬으로 모두 이주시켜 서경은 한때 폐허가 되었다.[5] 정희왕후의 5대조이다.[6] 장교들로 구성된 특공대를 조직하여 다루가치들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7] 본래는 이공주가 별초들을 이끌고 다루가치들을 하나하나 주살하려고 했지만 최우가 이를 만류했다.[8] 샤다 혼자만이 몽골로 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