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바딤 레핀 (Vadim Repin) |
국적 | 러시아/벨기에 |
출생 | 1971년 8월 31일 ([age(1971-08-31)]세) 소련 노보시비르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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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베리아 태생, 러시아/벨기에 국적의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 예브게니 키신과 함께 소련 3대 신동으로 서방국가를 휩쓸고 다녔다. 러시아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2. 생애
3살때 어머니에게 악기를 사달라고 조른것이 그의 첫 음악 활동이였다. 처음에는 여러 악기를 배웠으나, 음악학교에 남는 자리가 바이올린밖에 없어서(...)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지 반년만에(!!!) 무대에 올라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10대 초반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데뷔했으며, 14살부터 도쿄, 뮌헨, 브뤼셀등 세계를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15살에는 카네기홀에서 뉴욕 데뷔무대를 가졌으며, 17세에 QEC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거머쥔다.그 이후, 세계에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들 대부분과 협주무대를 가졌고 37살에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44세에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맡게 되었다.
3. 연주 스타일
(17세 때 연주)
그의 스승이자 러시아 바이올린계의 대부인 자카르 브론은 '레핀이 내 모든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라고 말했고, 예후디 메뉴인은 '내가 들어본 이래로 가장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전성기때 레핀은 세상에서 바이올린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였다. 섬세한 연주를 보여주지만, 덩치에서 나오는 천둥같은 파워와[1] 도대체 가능한지 싶은 테크닉을 이미 청년때 마스터했다.
이런 레핀도 2000년대 슬럼프가 찾아왔었다. 이혼문제의 영향인지 끝을 모르던 기교는 점점 약해지고, 실수도 잦아졌다. 그러나 러시아의 발레리나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의 컨디션은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고,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게 된다.
4. 여담
스트라디보다 과르네리를 선호하며, 현재 사용하는 바이올린도 '봉주르'라는 이름의 1743년산 과르네리이다[2]. 과르네리를 직접 소유하고 있는 몇안되는 연주자이다. 레핀왈 과르네리가 스트라디보다 연주하기 더 어렵고, 더 많은 정성을 요한다고.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벨기에 국적을 가지고 있고 브뤼셀에서 거주하고있는데, 레핀은 'QEC때부터 브뤼셀에 대해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내 음악의 고향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부인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도 발레계에선 레핀급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세계최고의 발레단인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국회의원까지 겸임하고있는 대단한 인물이라, 둘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러시아 예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현재 둘 사이에 자식이 1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