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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게치 카스하와 함께 오이라트와 몽골 대결 구도를 시작한 인물. 고오하이의 아들로, 북원시기 오이라트의 유력자 중 한명이었다. 에센 이전 북원의 인물들이 그렇듯 사료마다 기록이 전부 다른 인물이다. 아래는 각 사료에서 등장하는 바툴라를 설명한다.2. 생애
2.1. 몽골 기록
2.1.1. 알탄 톱치
니굴세그치 칸이 쿵 왕비의 말에 속아 고오하이를 죽였는데, 나중에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알고 미안했는지 발라무[1]와 우게치 카스하에게 4투멘 오이라트를 지배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발라무와 우게치 카스하는 니굴세그치 칸을 살해하고, 몽골의 적이 되었다. 알탄 톱치는 발라무와 우게치 카스하가 오이라트를 몽골의 적으로 만든 장본인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후 아다이 칸이 오이라트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사망한다.2.1.2. 에르덴 톱치
니굴세그치 칸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점까진 같지만 이후가 약간 다르다. 니굴세그치 칸은 바툴라에게 자신의 딸 사무르 공주를 시집보내고, 오이라트의 수장 자리를 주었다. 문제는 바툴라가 우게치 카스하의 수하였다는 것이다. 우게치 카스하는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다. 니굴세그치 칸은 바툴라와 함께 우게치 카스하를 죽이려 하였으나, 우게치 카스하가 선수쳐서 니굴세그치 칸을 죽였다. 그후로 바툴라는 우게치 카스하의 수하로 있었고, 아룩타이를 노예처럼 부렸다. 16년이 지난뒤, 1415년에 그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던 우게치 카스하에게 살해당한다.2.2. 중국 기록
바툴라는 명나라 기록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마흐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토곤의 아버지이고, 몽케테무르 이후 오이라트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바툴라와 동일인물인 것으로 강력하게 추정되고 있다. 마흐무라는 이름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보아 이슬람교 신자로 추정된다. 명나라 기록에서 등장하는 마흐무라는 인물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1403년에 처음 등장한다. 오이라트왕이라 불렸던 몽케테무르 사후 타이핑, 바투 볼라드와 함께 오이라트를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몽골의 칸은 오루크테무르 칸으로 오이라트를 굉장히 증오하는 사람이었다. 오루크테무르 칸은 오이라트를 계속해서 공격했고, 마흐무는 이에 밀려 세력을 크게 잃었다. 하지만 아룩타이가 칸을 살해하고 동차가타이 칸국[2]에 있던 부냐시리를 새로 칸으로 옹립하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몽골의 위협으로부터 살길을 찾기 위해 1408년 10월 2일 영락제에게 인신과 봉작을 요청했다. 즉, 책봉을 해달라고 한 것이다. 다음해 5월 영락제는 그를 특진금자광록대부(特進金紫光祿大夫) 순녕왕(順寧王)에 봉하고 인장과 고명을 하사했다. 이후 부냐시리와 아룩타이가 오이라트를 공격했는데 이를 크게 무찔렀다.
1409년 6월 영락제는 몽골에 보낸 사신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분노한 그는 구복을 정로대장군(征虜大將軍)으로 삼아 원정을 명한다. 하지만 원정은 참패했고 영락제는 친정을 결심한다. 영락제는 친정을 발표하고, 마흐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영락제가 선부에 도착할 무렵, 마흐무는 사신을 보내 자신이 명나라 편임을 어필했다. 영락제의 친정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부냐시리는 영락제에게 패배한 후 초원 이곳저곳을 떠돌다 마흐무의 손에 참살된다. 마흐무는 델베그 칸을 새로 옹립한다.
몽골이 약해진 틈을 타 마흐무의 오이라트는 빠르게 성장했다.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영락제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했는데 이것이 영락제의 심기를 건드렸다. 영락제는 사신을 보내 사죄하면 전처럼 대우해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몽골처럼 정벌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마흐무가 아룩타이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명나라의 변경을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영락제는 또다시 친정을 준비한다. 1414년 영락제는 오이라트에 대한 친정을 개시했다. 이에 마흐무는 델베그 칸, 타이핑, 바투 볼라드와 함께 영락제와 맞섰지만 명나라가 가져온 화포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영락제는 친정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마흐무는 말 50필을 바치고 사죄하고, 이전처럼 다시 조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사이 아룩타이는 명나라로부터 화녕왕(和寧王)에 책봉되고 명나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으면서 세력을 크게 성장시켰다. 이에 위협을 느낀 마흐무는 1416년 아룩타이를 공격했으나 오히려 패하고 델베그 칸과 함께 사망한다. 이후 그의 순녕왕 자리는 아들 토곤이 이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