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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원의 권신. 아수드족 출신이다.2. 생애
그의 초반 생애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에르덴 톱치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원래 우게데레쿠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오이라트에게 붙잡혔고 바툴라 밑에서 똥을 모으는(...) 일을 했다. 이당시 그는 똥을 담을 바구니를 항상 들고다녔는데 여기서 아룩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똥이나 모으는 그를 보며 비웃곤 했다.어느날 오이라트가 모여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회의에서 나온 오이라트족들에게 아룩타이가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를 물었다. 오이라트족은 아룩타이가 위대한 나라를 위해 고통을 받고 있다며, 곧 아자이 타이지[1]가 칸이 되고, 아룩타이가 타이시가 될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들이 지나간 뒤, 아룩타이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다음과 같이 말하며 기도했다.
이는 저들의 말이 아니다. 천명이다! 나같이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자이 타이지는 하늘의 자손이다! 아버지 하늘이시여! 당신은 아십니까?
사무르 공주[2]는 아버지를 죽인 우게치 카스하에 대한 복수로, 쿵 왕비와 아자이 타이지, 아룩타이를 몰래 풀어주었다.
위의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기보다는 전설일 가능성이 높다. 토곤도 비슷한 형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아룩타이가 바툴라 밑에서 노예처럼 있던게 1415년에서 1425년 사이인데 명나라 기록에서는 이당시에 이미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1403년 아룩타이는 오루크테무르 칸 아래서 지원(知院)의 관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당시 몽골은 몇년전부터 오이라트와 급격하게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고, 서로 끝없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룩타이는 오루크테무르 칸 아래서 오이라트를 맹렬하게 공격했고, 당시 오이라트는 수세에 몰려 세력을 크게 잃고 있었다. 1402년 정난의 변을 성공적으로 마친 영락제는 이전의 황제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몽골의 정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영락제는 오루크테무르 칸 뿐만 아니라 유력자였던 아룩타이에게도 비단을 내려주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
오루크테무르 칸은 당시 몽골인들로부터 지지를 별로 받고 있지 못했다. 이에 아룩타이는 칸을 살해하고 동차가타이칸국으로 피신해있던 부냐시리를 새 칸으로 추대했다. 영락제는 새롭게 칸이 된 부냐시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냈다. 하지만 사신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 영락제는 직접 몽골에 대한 친정을 개시한다. 부냐시리를 물리친 영락제는 아룩타이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아룩타이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졌다. 왜냐하면 아룩타이가 바로 영락제의 사신을 살해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룩타이가 항복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하자 영락제는 곧바로 그를 공격했다. 아룩타이는 가족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멀리 도망간다. 영락제가 명나라에 돌아온 후 아룩타이는 영락제에게 사과를 구했다.
영락제의 친정 이후 몽골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오이라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몽골에 대해 맹공을 퍼붓는다. 아룩타이는 영락제에게 지속적으로 호의를 구했고, 마침내 영락제로부터 화령왕의 호칭을 받는다. 몽골이 비실비실대는 동안 오이라트의 세력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결국 영락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지경까지 가게 되고, 영락제는 오이라트에 대한 친정을 단행한다. 오이라트는 영락제의 친정으로 박살이 나버렸고, 아룩타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들을 공격한다. 1416년 아룩타이는 잘라만산에서 오이라트를 크게 물리친뒤, 바툴라를 살해하고 그의 아들 바흐무를 사로잡았다. 아룩타이는 바툴라가 자신을 똥줍는 하인으로 부려먹은 것에 대한 복수로 바흐무에게 평생 주전자를 들어 옆에서 시종들을 것을 명령했다. 바흐무는 이후 토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사무르 공주의 도움으로 오이라트 땅으로 다시 돌아갔다.[3]
아룩타이는 아다이 칸을 몽골의 새로운 칸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실세권력은 아룩타이에게 있었다. 오이라트와 명나라의 견제가 사라진 아룩타이는 계속해서 세력을 성장시켰다. 크게 세력을 성장시킨 아룩타이는 올량합 3위와 연합해서 명나라 변경을 자주 공략했다. 결국 영락제는 1422년 아룩타이에 대한 친정을 개시한다. 아룩타이는 어머니와 아내로부터 니가 어떻게 명나라 황제를 이길 수 있겠냐며 한소리를 듣고 가축, 군수품을 버리고 북쪽으로 달아나버린다. 영락제는 아룩타이를 잡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그와 연합했던 올량합3위를 공격했다.
초원으로 돌아온 아룩타이는 또다시 명나라 변경을 공략했다. 영락제는 1423년 또다시 친정을 개시했다. 하지만 중간에 아룩타이가 오이라트에게 깨지고 북쪽으로 멀리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영락제는 아룩타이를 잡는 것을 포기하고 황하 근처 몇몇 몽골족을 공격하는 것으로 원정을 마쳤다. 아룩타이는 1424년 어김없이 명나라 변경을 공격했고, 영락제는 이번에도 친정을 진행했다. 아룩타이는 영락제에게 "황제께서 이쪽으로 오면 자기는 저쪽으로 갈 것이고, 저쪽으로 오면 이 쪽으로 갈 것이라며" 아예 대놓고 약을 올렸다. 영락제는 더이상의 친정이 무의미하다 생각했는지 이만하면 됬다며 회군했다. 하지만 회군 중 유목천(楡木川) 근처에서 사망한다.
명나라군이 돌아간 후 아룩타이는 다시 초원으로 돌아왔다. 이후 명나라 변경을 몇번 더 공격하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명나라 황제는 그냥 넘어갔다. 1431년 2월 무렵 토곤의 맹공을 받은 아룩타이는 대흥안령 산맥을 넘어 요동 근처로 도망갔다. 그곳에서 세력을 보전하면서 올량합3위와 훌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계속해서 오이라트의 공격에 버티던 아룩타이는 1434년 2월에 다시한번 크게 깨지고, 그해 7월에 토곤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의 가족 중 일부는 명나라에 투항했다. 정통제는 토곤에게 유시하면서 "순녕왕이 대대로 내려온 원수를 갚음을 보니 매우 좋다"고 했다. 아룩타이의 죽음으로 아다이 칸은 사실상 자기를 지켜줄 세력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1439년 토곤에게 살해당한다.
[1] 쿠르착의 아들이다. 쿠르착의 정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알탄 톱치에서는 그를 니굴세그치 칸의 아들로, 에르덴 톱치에서는 동생으로 기록하고 있다.[2] 니굴세그치 칸의 딸이자, 바툴라의 아내[3] 토곤이 아룩타이에게 잡혔다는 이야기도 전설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