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박송남(朴松南)[1] |
링네임 | Pak Song Pak Song Nam Mr. Korea |
별칭 | The Korean Assassin |
출생일 | 1943년 4월 11일 |
사망일 | 1982년 10월 24일 (향년 39세) |
신장 | 198cm (6 ft 6 in) |
체중 | 122kg (268 Ib)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양군 (現 경상남도 진주시) |
가족 관계 | 배우자 이혜란(李惠蘭)[2] 자녀 1남 1녀 |
피니쉬 무브 | 클로홀드 |
유형 | 올드 스쿨 + 올라운더 |
커리어 | NWA 사우선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NWA 플로리다 챔피언 2회 NWA 아메리카스 헤비웨이트 챔피언1회 NWA 록키 마운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웨스턴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NWA 브라스 너클스 챔피언 1회 NWA 텍사스 태그팀 챔피언 2회 NWA 센트럴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플로리다 태그팀 챔피언 3회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2회 NWA 조지아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아메리카스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웨스턴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2회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십 토너먼트 우승(1979) |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프로레슬러이자 前 가수.2. 경력
한국인 및 한국계 외국인을 통틀어 북미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활발한 커리어를 보여준 선수로 정확한 데뷔전은 불분명하나, 1963년 4월 19일 "신진 거인"으로 소개된 박송남이 '백곰' 우기환을 상대로 37분만에 핀폴로 이겼으며, 21일에는 장영철을 상대로 한 헤비급 챔피언 매치에서 패배했다는 기사가 동년 4월 20일, 22일 경향신문 기사로 확인된다. 이후론 장영철을 따라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에 가입하나, 김일의 귀국 이후 김일 파벌 하에 들어가면서 장영철과의 사이가 심각하게 틀어졌다고 전해진다. 장영철 파벌에 의해 산 속에 꽁꽁 묶여 버려졌다고도. #, #
장영철과의 불화로 인해 한국 내에서의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김일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1970년부터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김일과 태그팀으로 NWA 서부 지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동안 NWA 산하의 미국 여러 단체에서 '한국에서 온 자객'으로 활동하며 앙드레 더 자이언트, 할리 레이스, 도리 펑크 시니어, 테리 펑크, 토니 아틀라스, 진 키니스키, 진 머독, 더스티 로즈, 락키 존슨, 밥 백런드, 자이언트 바바 등 당대를 호령하던 강자들을 상대로 태그팀을 맺거나 승리를 거둔 기억이 남아있으며, 특히 더스티 로즈와는 당대의 희대의 라이벌로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1970년대 후반에 걸쳐 수차례 혈투를 벌여 플로리다 전역을 넘어 조지아에 까지 그 이름을 날린다.
1975년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경기를 가졌고 1976년 서울에서 안토니오 이노키와 시멘트 매치를 벌였다.# 실제로 이 사건은 박송남의 승리를 바랬던 모든 팬들을 제대로 엿먹였고 시합 이후 반응은 그야말로 폭동이 일어나던 상황이었으며 이노키는 군대가 총을 들고 호위하는 상황에서야 겨우겨우 경기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3] 이후 국내 프로레슬링계의 본격적인 암흑기를 불러오게 된 원흉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1980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와 세인트루이스의 NWA 산하 단체들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가졌으며 동년 10월, 스탠 스테시악, 지노 헤르난데스, 개리 영과 팀을 맺고 폰 에릭 패밀리, 브루저 브로디과 대립한 8인 태그팀 제거 매치를 끝으로 프로레슬러로서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는다.
3. 여담
- 흔히 가라테 찹이라 불리는 손날로 때리는 식의 찹을 주력기로 사용하였는데 거구에서 나오는 힘을 실어 한 손으로 사과를 박살내거나 맥주캔, 수박, 돌판 등을 격파로 부숴버리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7]
- 미국에서 활동할 시절 당시 매니저로 개리 하트[8]를 대동하고 다녔다. 단순 매니저로만 대동한 것이 아닌 당시 게리 하트가 이끌던 스테이블인 'Gary Hart's Army'에 가입해 활동했다.[9]
- 25살이 되던 1967년에 잠시 가요계에 데뷔해 '다정한 모습'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바가 있다.#
[1] '朴松男'이라고 표기된 기사도 확인된다.[2] 1945년 출생, 몰년 미상.[3] ECW 원 나잇 스탠드(2006)에서 존 시나가 그대로 승리했을 경우 이런 일이 일어났을 거라 생각하면 된다.[4] 다만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 관중들은 레이븐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5] 가장 큰 한국인 레슬러는 208cm의 배우 서찬호로 과거 일본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였으나 큰 활약은 하지 못한채 활동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6] 위에서 언급한 서찬호의 경우는 거인병 때문에 키가 커진 것으로 지금은 치료한 상태라고 한다. 참고로 거인병과 마르팡 증후군은 차이가 있는데 거인병은 키와 골격, 근육의 크기가 같이 커지는데 반해 마르팡 증후군은 키는 커지는데 체형 자체는 마른 체형으로 커진다.[7] 영상에 나오는 선수들이 후술한 Gary Hart's Army의 멤버들이다.[8] 박송남 뿐만 아니라 래리 즈비스코, 더스티 로즈, 압둘라 더 부처, 그레이트 가부키 등 여러 선수들의 매니저를 맡은 바 있다.[9] 멤버는 바비 던컴, 딕 슬레이터, 몽골리안 스톰퍼, 코리안 어쌔신[10], 토루 타나카, 더 사모안이 가입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