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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17 21:41:18

박실(조선)


박실
朴實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1367년
사망 1431년 (향년 64세)
본관 함양 박씨
시호 정효(靖孝)
가족 관계 부 - 박자안(朴子安)

1. 개요2. 생애

1. 개요

조선의 무관.

2. 생애

좌군도총재까지 지낸 무관 박지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참형당할 위기에 처해 궁궐 앞에서 구명운동을 했고 이를 본 태종이 그를 가상하게 여겨 금군으로 특채하며 벼슬길에 올랐다.

여러 직책을 거쳐 1414년 예조참의로 임명되며 전라도와 충청도 사이의 강의 조운로, 육운로를 조사했다. 1417년 경상우수사에 임명되었고 좌군동지총제, 중군총제를 거처 1419년 이종무와 함께 대마도 정벌에 좌군절제사로 참가했다.

하지만 제비뽑기로 당첨되며 병력을 이끌고 이로군 산속을 순찰하던 중 왜구들에게 기습당해 피해를 입고 퇴각하던 과정에서 무질서하게 퇴각하며 추락하거나 압사한 인원들도 많았다. 편장 박홍신 외 박무양, 김해, 김희가 분전하다가 전사했다. 박실은 겨우 배에 올라타 탈출했다.

귀국 후 판흥주목사, 우군총제, 도총제를 거쳐 전라도수군처치사로 서해안에 출몰한 왜구 17명을 베어 어의를 하사받았다. 2번의 명나라 사신행렬에 참가한 전적이 있다. 1431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