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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12:32:16

발칸 연방



세르비아어: Балканска федерација
크로아티아어: Balkanska federacija
보스니아어: Balkanska federacija
불가리아어: Балканска федеративна република
마케도니아어: Балканска федерација
그리스어: Βαλκανική Ομοσπονδία
영어: Balkan Federation
러시아어: Балканская федерация
튀르키예어: Balkan Federasyonu

1. 개요2. 시도 사례 목록
2.1. 범발칸 연방(Pan-Balkan federation)2.2. 불가리아-루마니아 연합(Union of Bulgaria and Romania)2.3. 발칸사회주의연맹 운동2.4. 발칸공산주의연맹2.5. 그리스-유고슬라비아 연방2.6. 유고슬라비아 - 불가리아 통합시도
3. 번외 사례들4. 기타

1. 개요

발칸 연방은 19세기 후반 ~ 20세기 중반까지 주로 발칸반도에서 활동한 사회주의계 세력이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연방 국가였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으로 독립한 발칸 국가들은 2차례의 발칸 전쟁,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로간 앙숙이 되어버렸고 각국의 민족주의 대두, 각국 지도자들의 탄압, 강대국의 방해 등으로 실패했다.

2. 시도 사례 목록

2.1. 범발칸 연방(Pan-Balkan federation)

파일:Flag_of_Rigas_Feraios.svg.png
리가스 페라이오스의 범발칸 연방 국기

그리스의 계몽운동가이자 독립 운동가 리가스 페라이오스(Αντώνιος Ρήγας Βελεστινλής : 1757-1798)가 구상했던 국가였다.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받은 리가스가 발칸반도의 민족들에게 반 오스만 제국 봉기를 자극하려고 했으나 그리스 사업가의 배신으로 오스만 제국에게 넘겨져 처형당했다.

2.2. 불가리아-루마니아 연합(Union of Bulgaria and Romania)

19세기 말 루마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이 독립하면서 두 국가 간 통합을 시도한 논의가 존재했다. 그러나 제정 러시아의 협박과 통합 협상이 실패하면서
좌절되었다.

2.3. 발칸사회주의연맹 운동

1908년 청년 튀르크당의 혁명이 벌어진 후, 1910년에 열린 제1차 발칸 사회주의자 회의는 발칸 반도의 단결,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대비 및 마케도니아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논의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전쟁 참전에 반대한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발칸 사회민주노동연맹이 결성되었고, 불가리아 사회주의자 크리스티란 라코프스키가 이끌게 되었다.

1915년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마케도니아가 불가리아, 그리스, 세르비아에 분할되지 않고 독자적인 단일국가로 재통일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으나 발칸 반도의 국가들은 발킨사회주의연맹의 지도자들을 탄압해서 국외로 추방하게 되면서 통합논의는 흐지부진해졌다.

2.4. 발칸공산주의연맹

2.5. 그리스-유고슬라비아 연방

추축국그리스 침공유고슬라비아 침공으로 런던에 망명정부를 세우게된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 왕정이 1941년 영국의 지원을 받아 추진된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유고슬라비아 연방 내부의 반발과 소련의 반대에 부딪혔고, 1942년 영국이 체트니크가 아닌 티토의 파르티잔을 후원하기로 하면서 페이퍼 플랜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고슬라비아는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그리스는 그리스 내전에 시달리면서 흐지부진되었다.

2.6. 유고슬라비아 - 불가리아 통합시도

1946년 ~ 1948년 사이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와 불가리아의 지도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발칸 연방을 설립하려고 시도했는데 알바니아 인민공화국도 초기엔 발칸 연방 설립제안에 우호적이었다.

물론 우호적인 것과 별개로 세부적인 차이는 존재했다. 티토는 불가리아가 유고슬라비아의 공화국으로 가입하는 안(사실상 유고슬라비아가 불가리아를 합병하는 것)을 원했고, 디미트로프는 국가연합을 원해서 합의에 도출되지 못했다.

그러나 발칸 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로 소련은 발칸 연방 수립을 반대하면서 발칸 연방 논의는 중단되었고, 이는 티토-스탈린 결별에도 영향을 주었다.[1]

알바니아 지도자 엔제르 호자 또한 티토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유고슬라비아-알바니아간 통합 국가안을 거부함에 따라 발칸 연방 공화국 수립은 실패로 끝났다.

3. 번외 사례들

4. 기타


[1] 티토의 제안에 긍정적이었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도 이듬해 소련에서 병을 치료 받던 중 갑자기 사망했는데, 스탈린의 눈밖에 나서 독살당했다는 설도 제기되었으나 엠버밍으로 보존되었던 그의 시신이 1990년 화장된 탓에 독살 여부는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