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상원의원 (네브래스카 주 클래스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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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대 네브래스카 주지사 조셉 로버트 케리 Joseph Robert Kerrey | |
<colbgcolor=#002a86><colcolor=#fff> 출생 | 1943년 8월 27일 ([age(1943-08-27)]세) |
미국 네브래스카 주 링컨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전처 베벌리 데프널 (1974~1978) 배우자 사라 페일리 (2001~) |
학력 | 네브래스카 대학교 (B.S.) |
정당 | |
의원 선수 | 2 (상원) |
의원 대수 | 101, 102, 103, 104, 105, 106 (상원) |
경력 | 제35대 네브래스카 주지사 (1983~1987) 연방 상원의원 (네브래스카 클래스 1 / 1989~2001) 민주당 상원선거 대책위원회 위원장 (1995~1999) 뉴스쿨 총장 (2001~2010) |
군사 경력 | |
복무 | 미합중국 해군 |
1966년 ~ 1969년 | |
최종 계급 | 중위 |
참전 | 베트남 전쟁 |
수훈 | 명예훈장 동성훈장 퍼플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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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 네브래스카 주지사,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했다.2. 생애
1943년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노동자 출신 부모의 셋째로 태어났다. 지역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네브래스카 대학교에서 약학을 전공하였다. 학부 성적이 우수하여 5년제 학사 과정을 4년만에 취득하였다. 1965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여 징집영장을 받자 미 해군 장교 과정에 지원했고 특수전 훈련 과정을 마쳐 1969년 남베트남에 네이비 씰 소속으로 파견되었다. 베트남전에서 얻은 공훈으로 케리는 동성훈장을 수여받았는데, 참전용사 이력은 차후 그의 정치 인생에 큰 도움을 주었으나 동성훈장 취득 과정에서 하술할 전쟁범죄 논란이 발생했다. 동해 3월 베트콩 캠프 습격 도중 지근거리에서 터진 수류탄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침착하게 지휘를 지속하여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고, 1970년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전역 후 잠시 버클리에서 시간을 보낸 뒤 반전운동에 참여하였다. 네브래스카로 복귀하여 레스토랑, 헬스장, 볼링장 사업을 경영해 크게 성공하였다. 사업 중 친구의 주의원 출마를 돕고 링컨의 인권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 동성애자 인권 보장에 노력하는 등 정치에도 참여하기 시작하였다.1978년에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당을 바꾼 케리는 198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네브래스카 주지사 후보로 선출되었다. 네브래스카주가 2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65.5%[2]를 득표할 정도로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주에다가 케리의 도시적인 자유주의 성향 때문에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였으나 농산물 가격 하락, 축산물 수요 부족에 분노한 농민들의 지지로 현직 공화당 주지사 찰스 톤(Charles Thone)을 1%p 미만의 격차로 근소하게 꺾고 당선되었다. 주지사 임기 중 케리는 중서부 주지사 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 중간선거에서는 재선에 도전하지 않았다.[3]
1988년 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 케리는 쉽게 당의 후보로 확정되었고 낮은 인지도와 당내 경선에서 겨우 승리했다는 약점을 가진 현직 공화당 상원의원 데이비드 카네스(David Karnes)를[4] 15%p차로 크게 제치고 당선되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하여 초반 주목을 받았으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부터 3위에 그쳤고 사우스다코타에서만 승리하는 부진한 성과를 내어 중도 사퇴하였다. 1994년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하였다. 상원의원으로서 케리는 실용주의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핵무기 감축, 언론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옹호했고 낙태권에도 친선택적인 입장을 취했다. 직장과 주택에서 게이와 레즈비언에게 시민권 보호를 확대하는 것을 지지했으며, 총기 규제 법안에 일부 찬성표를 던졌다. 국기모독죄에도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반대표를 던졌다. 경제적으로는 사회 보장 개혁과 보편적 건강 보험을 지지하였고[5] NAFTA에 찬성했다. 1999년에는 공화당의 필 그램이 제시한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의[6] 상하원 협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2000년에는 지역구에서의 인기가 높았지만 3선에 출마하지 않았고 대신 민주당에서는 또한 전직 네브래스카 주지사인 벤 넬슨이 케리의 빈 상원의원 자리에 도전하여 당선되었다.
상원의원 임기가 끝난 뒤 케리는 뉴욕시로 이사하였고 뉴스쿨 총장직을 맡았다. 9.11 테러 뒤에는 9/11 위원회의 민주당측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찬성하였고 성급한 철군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방했다. 2005년에는 마이클 블룸버그를 상대로 뉴욕시장 출마를 저울질하였으나 곧 포기하였다. 벤 넬슨이 2012년에 상원의원 3선 도전을 접자 옛 상원의원 의석에 다시 도전하였다. 하지만 뎁 피셔를 내세운 공화당은 그가 10년간 주를 버렸다고 공격하였고 당내 좌파도 자금 지원에 비판적이었다.# 개표 결과 고향인 링컨과 주도 오마하가 위치한 카운티에서는 조금 앞섰으나 보촌혁도로 인한 농촌 지역의 피셔 몰표를 이겨내지 못하고 큰 차이로 낙선했다. 2016년에는 풀브라이트 베트남 대학의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되어 2년간 재임하였다. 2020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조 바이든을 지지했다.#
3. 논란 및 사건사고
3.1. 베트남전 참전 관련 논란
케리가 동성훈장을 얻은 이유는 베트남의 한 마을인 탄퐁(Thanh Phong)에 대한 보트 습격을 지휘하여 베트콩을 21명 사살한 전과 덕분이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시점, 케리가 사살한 자들이 베트콩이 아니라 민간인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되었다. 논란이 격화되자 케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어둠 속의 교전 상황에서 민간인을 실수로 사살했다"며 "이 작전으로 훈장을 받은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참회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 그러나 케리의 부대원이었던 거하드 클란과 사태를 목격하였다고 주장한 베트남인 여성은 그가 발포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다른 케리의 부대원들과 존 케리, 척 헤이글 상원의원은 케리의 편을 들었다.# 해당 의혹으로 인해 풀브라이트 베트남 대학 이사회 의장 임명시에 현지에서 갑론을박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뉴욕 타임즈에 존 케리, 존 매케인과 미월관계에 대한 공동 기고를 작성했다.#4. 여담
5.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2 | 미국 주지사 선거 | 네브래스카 | | 277,436 (50.64%) | 당선 (1위) | 초선 |
1988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378,717 (56.71%) | 초선 | |||
1994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317,297 (54.78%) | 재선 | |||
2012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332,979 (42.23%) | 낙선 (2위) |
[1] 전임 에드워드 조린스키(Edward Zorinsky) 사망으로 케이 A. 오어(Kay A. Orr) 주지사 임명[2] 50개 주 중 3위[3] 여담으로 1986년 네브래스카 주지사 선거는 거대양당의 두 후보가 모두 여성인 첫 주지사 선거였다. 결과는 공화당 케이 A. 오어(Kay A. Orr) 주 재무장관 당선[4] 현직 상원의원이지만 선거로 당선된 것이 아닌 민주당 상원의원 에드워드 조린스키(Edward Zorinsky)가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측근이었던 그를 임시 상원의원으로 임명한 것이다. 2023년 다이앤 파인스타인의 사망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이 라폰자 버틀러를 상원의원 공석에 임명한 것이 유사한 사례다.[5] 다만 이후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입장을 바꿨다.[6] 글래스-스티걸법을 실질적으로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