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아다다 원작 영화 | |
백치 아다다 (1956) | 아다다 (1988) |
백치 아다다 (1956) An Idiot Adada | |
<colbgcolor=#444><colcolor=#fff> 감독 | 이강천 |
원작 | 계용묵 《백치 아다다》 |
각색 | 한순화 |
제작 | 조희찬, 한순화 |
제작사 | 경양영화사 |
기획 | 허백년 |
촬영 | 심재흥 |
조명 | 서영훈 |
편집 | 김영희 |
음악 | 김동진 |
미술 | 박석인 |
출연 | 나애심, 한림, 장민호, 김정옥, 주선태, 강계식 |
개봉일 | 1956년 11월 24일 |
개봉관 | 중앙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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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계용묵의 소설 〈백치 아다다〉를 이강천 감독의 연출로 최초 영화화한 1956년 개봉 영화. 이후 1988년 임권택 감독에 의해 《아다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영화화됐다.2. 과정
《백치 아다다》가 영화화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순수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한 문예영화는 상업성이 없어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제작에 나서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1940년 이규환 감독 연출로 영공(映工)에서 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시나리오도 탈고되고 출연진도 정해졌으며 검열만 남겨두고 있었는데 이후 제작 소식이 끊겼다. 당시 아다다 역은 지경순이 캐스팅되었다.
1948년 명성영화사에서 이익 각색으로 제작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1955년 신경균 감독 연출로 동도영화사에서 제작 계획이 있었다.#
1956년 3월 신경균 감독의 연출로 성립영화사[1]에서 제작을 공표하고 신인배우를 모집하여 촬영에 들어갔다.# 아다다 역은 나애심으로 캐스팅되었다. 그러나 촬영 도중 형편이 어려워지자 새로 발족한 경양영화사가 이를 인계 받아 스태프와 출연진을 교체한 후 어렵게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3. 줄거리
나면서부터 반벙어리 천치인 까닭에 주위 사람들의 조소와 놀림감이 되어 자라나는 아다다(나애심 扮)를 같은 동리에 사는 노총각 수룡(한림 扮)이만이 은근히 동정하는 것이었다. 아다다의 나이 스물이 넘자 그의 부모는 중매 노파의 말대로 득구(장민호 扮)라는 청년에게 논 열마지기를 떼어주고 아다다를 시집보낸다. 시집에선 아다다를 맞아들인 것보다 논 열마지기가 더 기쁨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풍부하게 된 남편 득구는 아다다를 버리고 딴 여자와 결혼한다. 수룡이는 친정으로 쫓겨와 고민하고 있는 아다다를 데리고 멀리 섬으로 도망한다. 섬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던 어느날 수룡이 땅을 사자고 모은 돈을 보여주자 아다다는 돈을 벌면 수룡마저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돈다발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아다다를 뒤쫓아온 수룡은 바다로 떠내려가는 돈을 건지려고 발버둥치고 아다다는 언덕에서 굴러 물속에 빠져 죽어버린다. 지폐 몇 장만이 인생을 비웃는듯 너울거리고 있을 뿐이다.4. 평가
한국 농촌생활은 물론이려니와 극적 씬, 희비극의 교차 및 인간생활을 파고 들어간 현실주의적인 감각이 가득 찬 영화로서 확실히 한국영화 최우수 작품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미국공보원 영화과장 데일 E. 하스)
오랜만에 보는 향토적인 서정과 날카로운 화면 정리와 이동에서 오는 정감이 영화를 성공케 한 바탕이 되어 주었다. 이 가운데서도 한림, 장민호의 연기는 페이소스하면서 박력이 있었다. (작가 이봉구)
대담한 터치로 아다다의 생태를 해부하고 내면세계에 파고들어 내면의식의 흐름을 극히 감각적인 수법으로 추구한 작품. 수룡 역의 한림은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으나 생리적 조건 탓인지 머슴 성격으로는 지나치게 유약한 인텔리전스가 풍겼다. (영화평론가 이청기)
5. 기타
제4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 출품되었다.나애심이 부른 주제가 '백치 아다다'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1960년대 문주란이 리바이벌해서 히트를 했다.
원작에서는 "수롱"이로 되어 있지만 영화판에서는 모두 "수룡"이로 표기되어 나온다.
[1] 어떤 기사에는 성림(聖林)영화사, 다른 기사에서는 성립(聖立)영화사라고 두 가지 표기로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