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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캄보디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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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សាធារណរដ្ឋសង្គមនិយមវៀតណាម
캄보디아
ព្រះរាជាណាចក្រ​កម្ពុជា
Vương quốc Campuchia

Quan hệ Campucia – Việt Nam
ទំនាក់ទំនងកម្ពុជា-វៀតណាម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2.2.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

베트남캄보디아의 관계.

양국은 캄보디아에서의 베트남군 철수와 캄보디아의 민주 정부 수립 이후 관계가 발전하고 있으며 캄보디아로서는 베트남이 중요한 시장이다. 또한 훈 센 캄보디아 총리는 베트남의 괴뢰 정부였던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시절부터 집권했던 인물이며 친베트남 성향을 보이고 있다. 캄보디아가 여러차례 베트남의 침략을 받아온 역사가 있어서 국민 감정은 매우 좋지 못하다. 오히려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보다는 다른 동남아시아의 이웃나라인 태국과 라오스나 먼 나라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에게 더 우호적인 편이다.[1]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역사적으로 월남족이 남베트남 일대로 남하하면서 캄보디아가 차지하고 있던 남베트남 지역의 영토들을 침탈했다. 틈만 나면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략, 약탈한 일이 잦았다. 본래 현재의 호찌민시(옛 사이공 Sài Gòn. 캄보디아말로 프레이 노 코르)를 비롯한 메콩 델타 지역 또한 크메르 제국 시절부터 오랫동안 캄보디아의 땅이었으나 베트남인들의 남진 과정에서 베트남에 점령당했다. 근세~근대 시대에는 아예 태국이랑 사이좋게 양쪽에서 캄보디아 영토를 끊임없이 뜯어 먹었으며, 결국 폴란드처럼 완전히 분할점령 당하기 직전까지 가게 된 캄보디아는 아예 스스로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들어가기 까지 한다.

현대에도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1차 킬링필드 폭격으로 인해 엄청난 숫자의 캄보디아인들이 사망하였는데, 직접적인 주체는 미국이지만 베트남 내전때문에 애꿎은 캄보디아인들이 죽은 상황인지라 베트남에 대한 시선도 결코 곱지 않다. 1970년 캄보디아 쿠데타 때 남베트남군이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

1975년 캄보디아에 크메르루주 공산정부가 들어서고 베트남에서도 같은 해 월맹이 남베트남을 멸망시키면서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같은 공산국가로서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관계도 오래가지 못했는데,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이 크메르의 고토를 수복한다는 명목으로 베트남을 도발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월맹군이 대대적으로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 미국 등 열강들과 싸워오면서 전력을 키워왔던 월맹군은 순식간에 수도 프놈펜까지 함락시켰다. 그리고 크메르 루주는 패주하여 국경밖으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은 캄보디아령이었던 푸꾸옥 섬을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2] 때문에 푸꾸옥은 지금도 분쟁의 대상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악연이 있다보니 1980년대 당시 베트남이 캄보디아에서 폭정을 일삼던 크메르 루주를 축출시키는데 공헌했음에도 베트남을 불편해한다. 캄보디아 내에서는 당시 베트남이 캄보디아 내에서 여러가지 이권을 얻으려 했다는 점과 1990년 초까지 괴뢰정부를 세워 캄보디아를 간접통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캄보디아 측에서는 베트남군이 크메르 루주의 학정으로부터 캄보디아를 해방시켰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베트남군이 해방군이라고 하기에는 불편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2. 21세기

최근 양국간 교류가 활발해지며 캄보디아에도 베트남인들이 꽤 많이 넘어왔고, 베트남에도 캄보디아인들이 많이 산다. 그 이외에도 베트남의 캄보디아 인들은 메콩 강 삼각주가 베트남으로 넘어가며 가만히 있다가 나라가 바뀐 사람들이 그래서 국적은 베트남이고 정체성은 크메르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간다.

역으로 톤레삽 호수에는 베트남계 주민들이 주로 사는데, 이들은 베트남전 당시 건너왔던 피난민들이다. 갈곳 없는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고기잡이로 배곯을 일은 없는 톤레삽 호수로 밀려왔던 것. 당연히 현 베트남 정부와는 사이가 매우 나빠 베트남 통치기에도 푸대접을 받았다. 현재에도 캄보디아인이 아니므로 캄보디아 정부로부터의 지원도 미비해서, 몇십 년째 캄보디아 내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최빈층이 되었다.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인들을 극도로 증오한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길거리에서, 그것도 백주대낮에 베트남인이 캄보디아인 20여 명한테 집단구타를 당하고 죽은 사건이 2014년에 벌어지기도 했다. # 그리고 앙코르와트에 대해선 갈등이 있는 편이다.

동남아시아를 여행갔던 한국인 관광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지에서 베트남에서 사온 베트남 전통모자인 농라를 쓰고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들어가려던 베트남인 관광객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캄보디아인들이 욕을 퍼붓고 현지 관리인이 강력하게 저지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캄보디아인들의 베트남에 대한 반감은 무척 심하다.

또한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인을 가리켜 유은(요운)이라고 부르는데, 캄보디아어로 '도둑 놈'이라는 멸칭이다. 과거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쳐들어와 땅(예를 들어, 코친차이나 지역에 포함된 캄푸치아 크롬.)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인을 도둑이라고 부른다. 출처1, 출처2

베트남의 도이모이 개혁정책을 캄보디아에서 시험적으로 시행하는 등 캄보디아 입장에선 좋을 수가 없는 관계. 하지만 현재는 베트남인의 캄보디아 관광이 활성화되는 등 조금씩 서로의 관계가 변하고 있다.

베트남 영토가 된 캄푸치아 크롬을 캄보디아에 돌려달라고 캄보디아인 불교 승려들이 시위를 하는 일도 있었다. 출처

훈 센 캄보디아 총리가 베트남 괴뢰정부인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시절의 역사를 두둔했다.#

훈 센 총리에게 베트남의 꼭두각시라는 비판이 일자 직접 반발하였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감염된 남성이 입국지역을 놓고 갈등을 벌였다.#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취업사기와 관련해 베트남인들이 인신매매에 처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3년 8월 5일, 베트남 측이 훈 센 총리의 재선을 축하하며 훈 센 총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3. 관련 문서



[1] 물론 어디까지나 그나마 베트남보다는 태국과 라오스를 좀 더 좋게 생각할 뿐이지 태국과 라오스 역시 여러모로 싫어하긴 한다. 사실 태국도 캄보디아인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크메르 제국 시대의 문화유산인 앙코르 와트를 자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우기며 역사왜곡을 시도하거나,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에서 캄보디아와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라오스와도 스룽트렝 주에 위치한 캄보디아-라오스 국경 지대에 있는 영토 문제로 영토 갈등이 심하다.[2] 다만 1967년 남베트남에서 발간한 행정군사지도에는 푸꾸옥 섬이 남베트남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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