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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7 21:55:10

불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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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건물4.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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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자 : 佛窟寺 / 로마자 : Bulgulsa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불굴사길 205 (강학리 5)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2. 역사

신라 신문왕 10년(690년)에 옥희(玉熙)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찰 옆에 석굴이 있는데 거기에서 원효(元曉)가 수도했다고 하며, 김유신도 이곳에서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하다 천신(天神)으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건물이 500동에 이르고 암자가 12곳, 물레방아가 8대나 있었으며 지금과는 반대로 은해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번창하였으나, 조선 영조 12년(1736년)에 큰 비가 내려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졌다. 그 뒤 송광사에서 온 어느 노승이 중건하였지만, 불굴사는 과거의 사세를 찾지 못하고 결국 쇠퇴하여 은해사의 말사로 오늘에 이른다.

절이 갑자기 쇠퇴한 이유를 전하는 설화가 있다. 조선시대 들어 유생들이 절을 놀이터로 삼고 승려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등 횡포를 부리는 탓에 불굴사는 크게 곤욕을 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웬 점잖은 선비가 찾아왔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유생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방도를 묻자, 선비는 산 너머 솔밭에 가면 큰 거북돌이 있을 테니 그 거북의 눈을 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일러주었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들은 대로 거북의 눈을 빼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오더니 산사태가 일어나 절이 모두 묻혀버렸다. 이후 작은 암자만 복원하여 은해사의 말사가 되었다고 한다.

3. 건물

법당과 약사전·염불당·산신각·석탑·염화실·종무소 등 건물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429호로 지정된 불굴사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약사여래입상과 석등·부도 등이 현전한다. 이 중 삼층석탑은 창건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7.43m이다. 약사여래 입상은 머리에 모양이 족두리 비슷한 장식이 있어 주목받으며, 6km 떨어진 팔공산 갓바위와 마주본다고 하여 민간에서는 영험한 불상이라고 소문이 났다. 1976년 사찰 옆 석굴을 수리하다가 청동불상 1좌를 발굴하기도 하였다.

주불전인 적멸보궁(寂滅寶宮)에는 불상이 없고, 1988년 인도에서 가져온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이 있다. 불굴사가 번성했던 시절의 옛 대웅전 자리를 찾아 적멸보궁을 짓고 안에 탑을 설치하였다. 약사여래입상(문화재자료 401호)은 약사전 건물 안에 봉안되었는데, 호사가들은 약 6 km 떨어진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과 불굴사 약사여래입상이 서로 마주 보며, 갓바위가 (陽)이고 약사여래입상이 (陰)이 되어 한 쌍을 이룬다 카더라.

4. 교통

대중교통으로는 803번, 818번 능성행, 하양1번 능성행이 있다.

803번은 음양리와 능성동 쪽이 아니라 신한교차로에서 갓바위 쪽으로 가기 때문에 신한리에서 내려야 된다. 또한 818번은 아침에 2번, 밤에 1번만 운행하기 때문에 주의. 버스에서 하차 후 40분 정도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