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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16 10:12:14

브린더윈 버스 추락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


파일:브린더윈 버스 추락.jpg

1. 개요

Brynderwyn bus accident

1963년 2월 7일 뉴질랜드 브린더윈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2. 사고 당시

1840년 2월 6일, 영국마오리족 사이서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됐고, 대영제국의 왕령식민지가 됐다. 이후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된 2월 6일을 "와이탕이 데이" 라 부르며 기념하게 됐고, 매년 이맘 때면 와이탕이서 축제가 열렸다. 1963년 또한 그랬다. 그때는 아예 영국서 엘리자베스 2세필립 마운트배튼이 직접 찾아오는 등 규모가 굉장히 큰 축제가 열렸다. 당시 축제엔 20,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이리라 예상됐다.

한 마오리족들은 버스 한대를 대절해 승객 35명을 태우고 축제에 갔다. 버스는 맥 옴니버스(Mack Omnibus)#, Waikato 서비스 회사 소속이었고, 46세의 운전자 해롤드 파커(Harold Parker)가 운전했다. 그런데 버스는 당시 기준으로도 꽤 오래된 버스였다. 버스 대절을 부탁한 이들은 그들이 부른 버스가 아니다, 너무 안좋은 버스가 왔다며 항의 했으나, 결국 그 버스를 타고 가서 축제에 참여했다. 축제가 끝나고, 2월 7일, 버스는 Paihia를 출발했다. 그렇게 버스가 출발해 돌아가던 도중, 오후 1시. 1번 고속도로의 브린더윈 인근을 지날 때 였다. 그곳의 도로는 커브가 많고, 경사가 상당했는데 하필 이때 브레이크가 고장났다. 브레이크의 고무 부품이 빠져나가면서 브레이크 압력이 떨어져,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운전자 해롤드 파커는 어떻게던 버스를 안정시켜볼려 애썼고, 승객 한명도 운전석으로 달려가 운전자를 도왔으나, 결국 버스는 도로를 벗어나 30m 아래 Piroa 강 인근으로 추락했다.

인근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스넬링가(Sneling)에서 사고를 목격하고 구조를 도우러 왔다. 인근에서 운전하던 운전자와 도로 작업 인부들도 도우러 왔다. 오클랜드의 마오리족 들도 달려와 구조를 도왔다. 부상자들은 인근 왕가레이(Whangarei)병원으로 이송됐다.

결국 사고로 15명이 사망,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14명은 현장에서. 1명은 치료도중 숨졌다. 부상자들은 척추 등에 부상을 입었다. 사고는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도로 교통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사고 소식을 접한 엘리자베스 2세는 당시 뉴질랜드 총리 키스 홀리오크(Keith Holyoake)에게 사망자들을 사고를 위로하는 편지를 보냈다.

2003년, 사고 40주기를 맞아 사고 현장에 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