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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2-25 19:29:43

빅토르(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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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문 배경2. 엠버플릿 골목의 집3. 구 배경

1. 장문 배경

새로운 기술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전령 빅토르는 인류의 진보에 평생을 바쳤다. 인류의 지식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자 하는 이상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기술의 영광된 진화만이 인간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강철과 과학의 힘을 빌려 기계 인간으로 거듭난 빅토르는 인류의 밝은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자운의 중간층 변두리에서 태어난 빅토르는 기술자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발명과 과학에 재능을 보였다. 눈뜨고 있는 시간에는 오롯이 공부에 매진했고 먹거나 잠자는데 쓰는 시간조차 아까워했다. 또한 화학물질 유출이나 폭발 사고, 화학공학 구름 때문에 대피하는 것도 정말 싫어했다. 단 1초라도 하던 공부를 중단하는 것. 바로 빅토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빅토르는 자운을 질서 있고 안전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자운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고를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고 원인이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인간의 실수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더 안전한 업무 환경을 위한 기계를 제작해 자운에 있는 기업들에 제공하고자 했지만 대부분은 그의 제안에 관심이 없었다. 단 한 기업, 프레더슨 화학공장이 이 성실한 청년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빅토르가 발명한 자동화 기계를 사용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프레더슨 공장의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0을 기록했다. 이에, 곧 다른 업체들도 그가 만든 기계를 도입했고 빅토르의 설계는 자운의 표준이 되었다. 덕분에 생산 과정에서 인간의 실수가 완전히 배제되는 혁신을 이룩하며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마침내 빅토르는 19세에 자운의 명문 마법기계공학 대학에 입학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빅토르의 재능을 주시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필트오버의 스탠윅 교수였다. 그는 빅토르에게 필요한 모든 자원을 지원해줄 테니 필트오버의 최신 실험실에서 자유롭게 연구하라며 필트오버의 대학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빅토르는 특별 발탁됐음에 기뻐하며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진보의 도시에서 인류의 진일보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이론을 완성하기 위한 그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빅토르는 필트오버의 최고 두뇌들과 함께 연구했다. 그중에는 그와 상극인 천재 제이스도 있었다. 지능이 뛰어나다는 점을 제외하고 둘은 판이했다. 빅토르가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고, 철두철미한 반면 제이스는 대담하고 오만하리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다. 두 사람은 공동 연구를 자주 했음에도 결코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직관 대 논리를 내세우며 서로 충돌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둘 다 상대방을 성격적 결함이 있는 천재로 여기며 어느 정도는 서로를 인정했다.

필트오버에서 연구를 이어가던 어느 날, 자운에서 심각한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해 자운 전 지역을 덮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빅토르는 당장 고향으로 달려가 구조 작업에 힘을 보탰다. 그는 기존의 자동화 기술에 정교한 인지 회로를 더해 증기 골렘, 블리츠크랭크를 특별 제작했다. 블리츠크랭크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빅토르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인지능력을 스스로 발전시켰다.

빅토르는 유출된 화학물질이 모두 회수된 후에도 자운에 남아 유해 물질에 노출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왔다. 그는 블리츠크랭크와 함께 자신의 마법기계공학 지식을 활용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둘은 각자의 길을 떠났다. 많은 생명이 스러져가는 모습에 빅토르의 마음은 참담하기만 했다. 하지만 유출 사건은 인간의 육체와 기술을 융합하는 법과 기술로 육체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법에 대한 그의 지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몇 주 뒤 필트오버로 돌아온 빅토르는 상상도 못 한 현실과 마주했다. 그 사이에 스탠윅 교수가 블리츠크랭크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어 빅토르의 연구 성과를 자신의 것인 양 포장해 발표한 것이다. 빅토르는 학장들에게 공식 항의서를 제출했지만 블리츠크랭크의 설계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이스를 찾아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달라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거절뿐이었다. 이 일로 둘 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졌고 학교 측은 결국 스탠윅 교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빅토르는 씁쓸한 결과를 뒤로한 채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인류의 진보라는 궁극적 목표가 빼앗긴 프로젝트나 상처받은 자존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실수와 약점을 줄이는 획기적인 방법들을 포함해 뛰어난 연구성과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어느새 집착으로 변해버렸다. 생산 과정에 있어 인간의 참여가 극도로 비효율적인 이상 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다른 연구진과 교수들은 그의 관점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빅토르가 제거하고자 하는 바로 그 부분이 인간의 독창성과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한 갈등이 극에 달한 사건이 발생했다. 필트오버 바닷속 잔해와 잔류 화학 폐기물을 제거하는 잠수사들의 잠수복 업그레이드를 위해 제이스와 달갑지 않은 공동연구를 하던 중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개발한 잠수복 덕분에 잠수사들은 더 깊이, 더 오래 잠수할 수 있었고 한 번에 작업 가능한 양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잠수사들이 해저에서 유령 불빛을 봤다거나 화학물질로 인한 환각 때문에 괴로웠다고 호소했다. 이런 증상을 겪은 잠수사들은 극심한 공포에 정신을 잃거나 때로는 자기 자신 혹은 동료 잠수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빅토르의 원인 분석 결과 이는 기술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칠흑같이 어두운 심해에서 신경계가 오작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물질 회피 조종장치를 고안했다. 이 장치는 해상에 있는 조작원이 잠수사의 공포 반응을 우회해 효과적으로 잠수사의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유 의지와 정신적 노예화를 둘러싼 빅토르와 제이스의 격렬한 언쟁은 주먹다짐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각했고 이후 두 사람은 다시는 함께 일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제이스는 이 일을 학장들에게 보고했고 빅토르는 인간의 기본 존엄성을 침해한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발명품이 많은 생명을 구했을 것을 확신했다. 빅토르는 결국 대학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필트오버 사람들의 좁디좁은 사고에 넌더리를 느끼며 자운에 있는 옛 실험실로 숨어버렸다. 깊숙한 연구실에서 홀로 수 주 동안이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참아내며 깊은 우울로 침잠해갔다. 마주한 도덕적 딜레마와 씨름하며 다시 한번 인간의 감정과 나약함이 자신을 속박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사람들이 타고난 능력을 넘어 실수에서 자유롭고 목숨을 보전할 수 있도록 애썼다. 인간의 결점을 가리는 뿌리 깊은 편견을 선의로 극복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에 자신 역시 굴복해 왔음을 알게 된 바로 그때, 각성의 순간이 찾아왔다. 자신이 아직 가보지 않은 곳으로 다른 사람들이 따라 오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자신의 몸에서 감정을 필요로 하거나 감정에 의해 제어되는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직접 감행했다.

수술 후, 필트오버로 갔던 청년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신체 대부분이 기계적 증강체로 대체되었고 성격도 판이하게 변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과 희망은 그가 이름 붙인 소위 ‘영광된 진화’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되었다. 빅토르는 스스로를 발로란의 미래를 위한 개척자로 여겼다. 그가 꿈꾸는 발로란의 미래는 인간이 육신을 버리고 더 우수한 마법공학 증강체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인류는 치명적인 실수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빅토르는 이런 과업은 쉽게 완성되지 않을 것이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알고 있었다.

빅토르는 복수심을 원동력 삼아 이 과업에 온몸을 던졌다. 사고로 부상을 입은 자운인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 증강체를 사용했고 호흡 장치를 완성했으며 감정과 신체를 분리함으로써 인간의 비효율성을 낮추기 위한 연구에 밤낮으로 매진했다. 빅토르 덕분에 수백만 명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가 사용한 방법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기에 빅토르를 찾아가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이 따랐다.

하지만 절망밖에 남은 게 없는 사람들에겐 빅토르가 답이었다.

그의 철학이나 성과를 조금이라도 아는 자운인들 중 몇몇은 그를 구세주로 여겼다. 빅토르는 이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우상화란 일종의 일탈이자 나약한 감정을 제거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며 경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헛된 믿음일 뿐이었다.

지하동굴 지역에서 독극물 사고가 발생해 팩토리우드에 살던 수백 명의 사람이 정신을 잃고 미쳐가는 일이 발생했다. 빅토르는 강력한 마취제를 사용해 피해자들을 기절시킨 후 이들을 연구소로 데려와 회복시키려 애썼다. 이미 독극물로 인해 환자들의 뇌가 마비되고 있는 상황. 빅토르는 환자들의 뇌혈관 속에서 유독 물질을 여과하는 기계를 사용해 뇌의 퇴화 속도를 늦추었다. 하지만 기계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 이 속도로는 사람들을 제때 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여과기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방안을 찾지 못하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바로 그때, 필트오버에서 방출되는 마법공학 에너지가 증가했음이 감지됐다. 빅토르는 필요한 에너지가 거기 있음을 직감하고 강력한 에너지의 발원지를 추적했다.

도착한 곳은 바로 제이스의 실험실.

빅토르는 제이스에게 에너지의 원천, 즉 슈리마 사막에서 가져온 수정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옛 동료는 그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빅토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힘으로 빼앗을 수밖에. 그는 자운으로 돌아가 여과기와 수정을 연결했다. 사람들의 몸이 해독 과정 중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증기 골렘들도 준비시켰다. 수정의 힘을 받은 기계가 서서히 움직이자 유독물질로 인한 손상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빅토르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빅토르에게 인간다움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기뻐했을지도 몰랐다. 그 순간 빅토르의 얼굴에는 미소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어떤 흔적이 스쳐 갔다.

그러나 회복 과정이 모두 끝나기도 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제이스가 들이닥쳤다. 그는 해머를 휘두르며 빅토르의 연구실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제이스 같은 오만한 바보는 이유 따윈 들을 리 없다고 생각한 빅토르는 로봇들에게 제이스의 사살을 명했다. 살벌한 싸움은 제이스가 수정을 산산조각내면서 겨우 끝났다. 빅토르의 연구실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철근과 콘크리트만 남았고 빅토르가 구하려 애썼던 사람들도 끝내 모두 죽었다. 필트오버로 돌아간 제이스는 이 일로 영웅 대접을 받았다.

폐허가 된 연구실에서 겨우 탈출한 빅토르는 파괴적 감정의 충동을 제거하여 인류의 삶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임무로 되돌아갔다. 빅토르에게 있어 제이스의 충동적 공격은 자신의 목표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한 증명이자 인간 육신의 결함을 없애고자 하는 그의 뜻을 더 공고히 하는 기회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빅토르는 화학공학 증강체를 몸에 두른 깡패들을 고용해 제이스의 연구실을 습격했다. 빅토르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이건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야. 배움을 위한 것이다. 만약 슈리마의 수정 조각을 더 찾을 수 있다면 인류의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수정 조각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빅토르는 더 이상 제이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인류를 감정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더 혁신적이고, 더 논리적인 진화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방법을 찾는데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의 연구는 때때로 필트오버에서, 그리고 자운에서도 윤리적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빅토르에게는 모두 ‘영광된 진화’를 이루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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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엠버플릿 골목의 집

빅토르의 세 번째 팔에서 가느다란 레이저 광선이 나와 그의 왼쪽 팔과 금속을 정확하게 이어 붙였다. 살 타는 냄새는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았다. 왼쪽 손목의 피부가 벌어져 있는 것도, 혈관과 근육이 기계적 증강체와 뒤섞여 있는 모습도 이젠 아무렇지 않았다. 순간의 움찔거림조차 없었다. 오히려 합성물과 유기물이 완벽하게 혼합된 모습에 성취감을 느꼈다.

빅토르는 아이들의 고함에 하던 일을 잠시 멈추었다. 엠버플릿 골목 안쪽, 짙은 안개로 덮인 이 구역엔 사람의 발길이 뜸하다. 아무런 방해 없이 일할 수 있기에 이곳에 연구실을 마련했다.

빅토르는 왼쪽 팔을 고정한 후 홍채인식 망원경에 달린 은색 다이얼을 돌렸다. 망원경에는 빛을 조정하는 거울 렌즈가 여러 개 달려 있어 연구실 밖 거리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삐쩍 마른 한 소년을 빅토르의 집 철문 쪽으로 거칠게 밀고 있었다.

“냅은 저 안에서 1분도 못 버틸걸.” 눈 위에 모조 보석을 박은 소녀가 말했다.

“분명 새로 만든 황동머리를 달고 나올 거야.” 헝클어진 빨간 머리 소년이 말했다. “황동머리를 달면 잿빛 대기보다는 덜 답답할지도 모르지.”

“돈 되는 걸 들고나오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럼 우리가 네 머릴 날려버릴 테니까.” 제일 덩치가 큰 놈이 작은 소년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앞으로 밀며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한 걸음 물러섰다.

작은 소년은 벌벌 떨며 커다란 철문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조심스레 문을 밀자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여러 가지 장비가 부착된 대문을 지나자 열려있는 창문이 보였다. 신중하게 몸을 창문 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다. 하지만 한순간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동시에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빅토르는 한숨을 쉬고는 스위치를 눌러 비상벨을 껐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체 장기와 강철 장기가 초록색 액체 속에 담겨 벽에 쭉 늘어서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피 묻은 가죽 들것과 전동 드릴이 놓여 있었다. 벽마다 꼼짝 않고 서 있는 로봇도 열 대 넘게 보였다. 빅토르에게 연구실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이론을 증명하는 소중한 안식처였지만 한 아이에게는 그저 기괴하고 무서운 귀신의 집처럼 보였으리라.

작업대에 선 빅토르와 작업 중인 그의 팔을 본 소년의 눈은 충격으로 커졌다. 그는 재빨리 근처 상자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상자에선 아무것도 배울 게 없단다, 꼬마야.” 빅토르가 말했다. “그 위에 있는 뼈 끌 보이니? 그걸 좀 건네다오.”

소년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상자 위로 뻗어 녹슨 금속 공구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놓고 빅토르 쪽으로 밀었다.

“고맙구나.” 빅토르는 끌을 집어 들어 닦고는 팔에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소년의 ‘헉’ 소리가 들렸다.

“나는 틀어진 굴건근을 교체 중이란다—흠, 손목 안의 망가진 장치를 고치는 중이지.” 볼트를 조이기 위해 팔 안으로 손을 뻗으며 빅토르가 말했다. “한 번 볼래?”

소년은 상자 옆으로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아프지 않아요?” 소년이 물었다.

“전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하나도 아프지 않아.”

“그렇군요.”

“내 팔은 거의 완벽하게 기계화되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 와서 한 번 직접 보렴.”

상자 뒤에서 나와 빅토르의 맞은편에 앉은 소년은 말 한마디 없이 그의 팔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빅토르는 피부 아래 힘줄에 새로운 볼트 드라이브를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작업이 끝난 후 피부를 다시 덮고 접합 부위에 레이저를 쏘아 이어 붙였다.

“왜 그렇게 하는 거예요? 팔에 문제가 생겼어요?” 소년이 물었다.

“인간의 가장 큰 결함이 뭔 줄 아니?”

“아니요……”

“인간은 현재를 유지하는 데 안주한 나머지 끝없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계속 모른 척한단다.”

소년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빅토르가 말했다. “변화가 무서워서 최고가 될 수 있는데도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에 만족하고 살아.”

빅토르는 스토브로 가서 냄비에 검은색 믹스가루와 둔포르 크림을 넣고 레이저로 따뜻하게 데웠다.

“달콤한 우유 한 잔 마실래?” 빅토르가 말했다. “난 이 맛에 너무 약하다니까. 그래도 이 달콤한 맛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1]

“저기……제 머리를 떼어내고 금속 머리로 바꿔 넣을 건 아니죠?”

“아. 걔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나 보구나?”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애가 기침을 해서 그 애 머리를 금속으로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들은 얘기니?” 빅토르가 물었다.

“아니요. 옆집에 사는 버마의 사촌이요. 아니, 삼촌인가. 아니, 그 비슷한 어떤 사람이 그랬대요.”

“아, 그런 경우엔 말이야.”

“사람의 머리를 바꿔 넣으면 기침을 안 하나요?” 소년이 물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구나.” 빅토르가 말했다. “그럴 리가. 기침이 싫어서 하는 업그레이드치곤 말이 안 되는구나. 기침은 폐에서 나오는 거잖아. 그리고 그보다 먼저, 난 네 머리를 금속으로 바꿔 달지 않을 거야. 네가 원하면 또 모르겠지만.”

“아니요. 전 괜찮아요.”

빅토르는 걸쭉해진 액체를 컵 두 개에 나누어 붓고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소년에게 하나를 건넸다.

“약 안 탔어,” 라고 말하며 빅토르가 자신의 컵을 마셨다. 소년은 달콤한 우유를 허겁지겁 들이켰다.

“다른 애들 아직도 밖에 있어요?” 소년이 누런 이 사이로 물었다. 빅토르가 망원경으로 내다보니 세 명의 아이가 여전히 대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있구나. 저 애들 놀라게 해줄까?” 빅토르가 물었다.

소년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빅토르는 그에게 축음기 스피커를 건네며 말했다. “여기다 대고 크게 소리 질러봐.”

소년이 스피커에 소름 끼치는 비명을 크게 지르자 그 소리가 엠버플릿 골목에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아이들은 재빨리 흩어져 숨었다. 소년은 빅토르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난 공포가 생각보다 통제 불가능한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단다.” 빅토르가 말했다. “네가 무서워하는 거 하나만 얘기해봐.”

“화공 남작들이요.”

“화공 남작들이 두려운 이유는 그들이 우월해 보이고 어쩌면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야. 만약 아무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맞서겠지. 그러면 그들이 가졌던 힘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게……”

“사라져버려. 없어지는 거야. 자운에 사는 사람의 수와 화공 남작의 수를 비교해 봐. 공포는 힘 있는 소수가 힘없는 다수를 통제하는 수단이야. 왜냐하면 힘 있는 자들은 공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거든. 너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너를 통제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전 그들이 두려운 걸요.” 소년이 말했다.

“당연하지. 공포의 패턴은 네 육신에 깊이 새겨져 있으니까. 하지만 강철에는 그런 나약함이 없단다.”

빅토르는 작은 은색 구슬이 떠다니는 우윳빛 액체를 가져왔다.

“이걸로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가 말했다. “이건 내가 개발한 건데, 공포를 없애주는 증강체란다. 잠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할 거야.”

“얼마나 잠깐인데요?”

“약효는 20분 정도 후에 사라져.”

“영원한 건 아니죠?”

“영원히 유지되는 것도 있지. 하지만 이건 아니야. 네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네 친구라는 놈들은 널 통제할 수 없어. 남을 괴롭히는 자들은 공포를 먹고 살아. 그러니 그게 없으면 굶어 죽을 거야.”

소년은 빅토르의 제안을 곱씹으며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빅토르는 가느다란 주삿바늘을 유리병에 넣었다 꺼내 은색 구슬 하나를 소년의 귀 뒤쪽에 주입했다.

소년은 잠시 몸을 떨더니 미소를 지었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게 느껴지니?” 빅토르가 물었다.

“네, 느껴져요.”

빅토르는 소년을 문으로 데려갔다. 다이얼을 돌려 문을 열고 그를 배웅하며 말했다.

“영원히 지속되는 약을 원하면 언제든 다시 와도 된다.”

연구실에서 나오는 소년의 주위를 짙은 안개가 감싸 안았다. 소년의 실루엣이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 빅토르는 작업대로 돌아가 홍채인식 망원경을 통해 이 실험의 결과를 지켜보았다.

엠버플릿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소년이 나오는 소리에 곧 그의 친구들이 나타났다.

“뭘 갖고 나왔어?” 빨간 머리 소년이 물었다.

“쥐방울만 한 냅이 약속을 안 지킨 것 같은데.” 소녀가 말했다.

“그럼 벌을 받는 수밖에.” 덩치 큰 소년이 말했다. “우리가 오늘 놈에게 새 머리를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날 건드리지 마.” 냅이 말했다. 그는 어깨를 펴고 허리를 곧추 세웠다.

아이들이 냅의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냅은 몸을 돌려 다가오는 놈의 얼굴에 제대로 주먹을 날렸다.

놈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놈을 잡아!”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더 이상 냅을 잡고 싶어 하지 않았다.

냅이 한 걸음 다가가자 아이들이 오히려 뒤로 물러섰다.

“저리 가.” 냅이 말했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뒤돌아 도망갔다.

빅토르는 홍채인식 망원경을 닫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새로 수리한 팔의 손가락을 쭉 펴보고 책상을 톡톡 두드려보기도 했다. 만족감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3. 구 배경

빅토르는 어려서부터 과학과 발명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기계 자동화 분야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한순간도 꿈을 잊지 않고 노력했으며 자운의 명문 마법 공학 대학에 입학했다. 곧 빅토르는 블리츠크랭크 설계팀을 이끌어 눈부신 과학의 쾌거를 이루어냈고, 이 분야의 일인자로 자리매김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 뛰어난 과학자는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던 것일까? 부푼 기대와는 달리 스탠윅 교수가 빅토르의 모든 공을 가로채 자신의 업적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스탠윅 교수는 블리츠크랭크의 지각 능력을 자신이 개발한 것이라고 발표한 것도 모자라 빅토르의 연구를 멋대로 이용해 우르곳까지 부활시켰다. 빅토르는 부당한 처사에 격분해 법에도 호소해 보았지만, 귀 기울여주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깊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주변 사람과의 접촉을 일절 끊은 채 혼자만의 연구에 매진했다. 빅토르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일대 혁명을 가져오길 꿈꿨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좀먹는 질투라는 나약한 감정을 제거해야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빅토르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몸을 기계로 대체해 진화시키는 것이었다.

빅토르가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기계 장치로 대체되어버린 외모뿐만 아니라 오랜 은거 생활로 인해 성격까지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젊은 공학도는 이제 "영광스러운 진화" 라는 모토에 집착하는 괴팍한 과학자로 변해있었다. 그는 자신을 발로란의 미래라고 소개했다. 그 미래란 모든 인간이 피와 살을 버리고 마공학 증강체로 다시 태어난 세상이었고, 빅토르의 논리대로라면 그는 새로운 시대의 개척자이자 선지자였다. 다른 과학자들은 처음에는 그의 기괴한 모습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빅토르의 몸을 이루고 있는 정교한 기계장치를 확인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마법 공학 장치들과 인간의 정신을 연결하는 데까지 성공한 그의 연구는 앞으로 더욱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터였다.

기계 인간으로 거듭난 빅토르는 나약한 감정의 속박을 벗어던질 수 있었지만, 아직 스탠윅 교수에 대한 분노만큼은 미약하나마 남아 있었다. 그는 더욱 완벽해져야 했다. 빅토르는 일생일대의 발명품인 자기 자신을 발로란의 내로라하는 적수들과 겨뤄보고, 약점이나 비효율적인 부분을 발견해 보완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테스트를 진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장소가 있었다. 이제 만반의 준비를 마친 빅토르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전장으로 향했다.

"마법 공학은 사람의 손으로 사용될 때는 도구에 불과하지. 하지만 손 그 자체가 되면 해방을 가져온다." - 빅토르

[1] 이 스토리의 개그 포인트이자 빅토르가 아직도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가장 많이 보여주기도 하는 모습이다. '감정'을 충실히 느끼며 수행한다는 뜻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