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폰 클롭슈톡 Wilhelm von Klopstock · ウィルヘルム・フォン・クロプシュトック | |
OVA | DNT |
인물 정보 | |
<colbgcolor=#eee,#222> 신체 정보 | 남성, ???cm, ?형 |
생몰년 | ? ~ SE 795. 4?. |
가족 관계 | 불명 |
국적 및 소속 |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
최종 계급 | 은하제국군 예비역 대장 |
최종 직책 | 클롭슈톡 후작가 당주 |
최종 작위 | 없음[1] |
기함 | 불명 |
미디어 믹스 정보 | |
성우 | OVA 아즈사 킨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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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외전 2권, OVA 1기 9화에서 등장한다. 을지서적판에선 크롭슈토크로, 서울문화사판은 일본어 발음을 직역한 크로프슈토크로 이름이 번역되어 있었으나, 이타카판에서 클롭슈톡으로 번역됐다.은하제국군 예비역 대장이자 후작 작위를 받은 은하제국의 손꼽히는 명문 문벌귀족으로 그 위세가 대단했으나, 과거 대공 시절의 프리드리히 4세를 대놓고 무시했던 행각 탓에 그의 황제 즉위 이후 사교계에서 철저하게 매장당했다. 이후 30년간 은거하며 비밀리에 프리드리히 4세 암살 계획을 세웠다.
2. 작중 행적
2.1. 대귀족의 몰락
빌헬름 폰 클롭슈톡의 가문인 클롭슈톡 후작가는 은하제국 건국과 함께 시작된 명문 귀족 가문이었다. 시조인 알브레히트 폰 클롭슈톡은 루돌프 대제가 은하연방의 국회의원이었을 때부터 도운 그의 심복으로, 훗날 국가혁신동맹의 서기장이 되어 은하연방 공화정을 무너뜨리는 데 힘을 보탰다. 은하제국이 건국되자 알프레히트는 내각서기관과 재무상서를 역임했고, 이후 공화파의 테러로 사망한 에른스트 팔스트롱의 뒤를 이어 내무상서에 올라 '피의 롤러'라 불리는 공화파 숙청에 공헌하고 사회질서유지국을 지휘하면서 루돌프 대제의 신임을 얻었다.이후 클롭슈톡 후작가는 5세기에 걸쳐 국무상서 6명, 황후 1명을 배출하고 7명이 황실과 혼인할 만큼 은하제국에서 가장 이름 높고 뼈대 있는 명문 귀족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현 클롭슈톡 후작 빌헬름이 선황제 오토프리트 5세 시절 그의 장남 리하르트와 삼남 클레멘트의 제위 쟁탈전에서 클레멘트를 지지하며 가문의 위기가 도래하였다. 클롭슈톡 후작은 오토프리트 5세의 삼남 클레멘트가 제위를 계승할 것이라 여겨 그의 편에 섰고, 클레멘트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국무상서직을 받는다는 구두 약속까지 얻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남 리하르트와 삼남 클레멘츠가 치열한 황위 쟁탈전을 벌이다 모두 사망해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2] 더구나 황위 계승 서열에서 일찌감치 밀려나 온 제국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프리드리히 대공이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프리드리히 4세의 이름으로 옥좌에 오르게 되면서 클롭슈톡 후작과 그 가문의 운명은 완전히 파멸에 이르게 된다.[3]
클롭슈톡 후작은 평소 ‘무능하고 어리석다’고 여겼던 프리드리히 대공이 클레멘트를 제치고 제위에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과거 프리드리히 대공의 모습을 대놓고 비웃으며 멸시한 적이 있었기에[4] 이제 와서 프리드리히 4세에게 ‘신성불가침한 황제’라고 아부하며 충성을 맹세할 수도 없었다. 결국 클롭슈톱 후작은 사교계에서 퇴출당했고, 영지가 삭감된 데다 혼인 관계를 맺고있던 여러 유력 가문들에게서 일제히 파혼 통보를 받는 등 처절하게 몰락하였다. 귀족사회에서 퇴출당한 클롭슈톡 후작은 자택에 은거하며 약 30년 간 귀족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당한 클롭슈톡은 이 모든 것을 프리드리히 4세의 탓으로 돌리며 은거하는 와중에도 황제를 향해 칼을 갈았다.
2.2. 황제 암살미수
우주력 795년, 제국력 486년, 클롭슈톡 후작은 실로 오랜만에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귀족사회 복귀를 위해 후작가 창립 이래 제도 오딘에 있던 넓고 웅장한 사냥터와 저택을 황제에게 바치고, 궁내성과 전례성의 고관들에게는 거금의 헌급을 뿌렸으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비롯한 주요 문벌귀족에게는 비장해둔 미술품을 바치며 사교계에 복귀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는 오랜 귀족 생활 동안 ‘고개를 조아리는 법’이 귀족들을 상대할 때 아주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황실조차 소유하지 못한 명화들을 바치는 클롭슈톡 후작의 공손한 태도에 흡족해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그를 황제가 오는 연회에 초대했다.연회 당일, 클롭슈톡 후작은 제국군 예비역 대장 예복에 세라믹 재질의 검은 가방을 들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 방문했다. 그는 황제의 귀빈석으로부터 매우 가까운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후작은 폭탄으로 위장한 가방을 의자 밑에 두고 먼저 저택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목표였던 프리드리히 4세는 복통에 걸려 연회 참석을 취소하고 황궁으로 돌아갔으며, 폭탄은 한 귀족이 현관에 있는 소지품 보관소에 맡기러 나가다가[5] 터져 버려 결국 황제 암살은 실패했다.
용의자는 의외로 빨리 특정되었다. 연회 도중 퇴장한 18명이 용의자가 되었는데, 그 중 분실물을 남긴 사람은 클롭슈톡 후작 하나 뿐이었으므로 빠르게 그의 범행이 드러난 것이다. 헌병들이 급히 그의 자택을 급습했으나 자택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하인들밖에 없었다. 뒤늦게 우주항에 통제가 걸렸지만, 클롭슈톡 후작은 자가용 우주선을 타고 문벌귀족답게 공공용 객선보다 앞서 오딘을 떠났다.
2.3. 죽음
클롭슈톡 후작의 자살 |
클롭슈톡 후작 또한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여 재산을 풀어 용병들을 고용하여 항전을 준비했다. 토벌군이 숫적으로는 유리했지만 문벌귀족들이 하나같이 군재가 없고, 그렇다고 제국군 장교들로 구성된 전투기술고문의 조언을 듣는 것도 아니라서 후작은 의외로 오래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병력차로 밀린 탓에 한 달이 흐른 뒤 반란은 진압되었고 클롭슈톡 후작은 스스로 독을 마셔 목숨을 끊었다. 사후 그의 영지와 영민들은 개념 없는 문벌귀족들의 자제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만다.
3. 미디어 믹스
3.1.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에서는 전반적으로 원작을 따라가지만, 원작에서는 단순히 자신의 몰락을 황제 탓으로 돌린 것에 비해 코믹스에서는 프리드리히 4세가 황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테러를 저질렀다. 미리 우주선을 대기시켜 둔 뒤, 브라운슈바이크 저택에 폭탄을 남겨둔 채로 우주선에 탑승하여 폭탄이 폭발하는 걸 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영지로 도망쳤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4세가 죽지 않은 것은 원작과 같다.OVA나 원작에선 그냥 영지에서 벌어진 지상전이었지만, 여기선 후작이 직접 함대를 이끌고 우주에서 격전을 벌인다. 후작은 지면 끝장이니 결사항전으로 나서고, 귀족 토벌군은 죄다 전투에 문외한인 귀족들이 지휘관을 차지한 탓에 더 많은 병력을 가지고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전투 도중 클롭슈톡 후작의 기함이 토벌군에 포착되었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즉시 일제포격을 명령했다. 집중포화를 두들겨맞은 기함은 전투불능이 되고 후작은 기함에서 퇴거를 권하는 부하의 진언을 거부하고 "이대로 가다간 브라운슈바이크와 프리드리히 4세가 제국을 말아먹기에 두고 볼 수 없었다...."라고 분하듯이 읊조리며 기함이 폭발하자 "은하제국 만..."을 외치며 기함과 함께 폭사한다.
3.2. OVA
원작에서 사교계 복귀를 위해 다량의 선물을 뿌린 게 축약되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대형 초상화[6]를 바친 것만 나온다. 다만 이를 받아든 브라운슈바이크가 매우 마음에 들어한 것을 보면 축약되었지만 환심을 사기 위해 엄청난 선물을 준 것은 묘사되었다고 볼 수 있다.그날 저녁 후작이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 마찬가지로 초대를 받고 참석한 라인하르트 폰 뮈젤 대장과 자택 입구에서 우연하게 마주쳤는데, 라인하르트는 예의를 갖춰 대했으나 후작은 라인하르트를 보고 크게 놀라더니 그냥 가 버렸다. 정황상 라인하르트가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란 걸 알고 불쾌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때가 되자 가방 대신 폭탄으로 위장한 지팡이를 두고 먼저 연회장을 떠나 저택으로 복귀했다. 그리고는 마당에 있는 루돌프 대제의 동상[7]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면서 어리석은 프리드리히 4세와 국가를 속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처단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 모든 것은 골덴바움 왕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라고 테러의 이유를 밝힌다.
그러나 황제는 원작대로 복통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고, 폭탄도 하인이 밖으로 들고 나가면서 터져 브라운슈바이크는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리고 먼저 연회장을 빠져나간 클롭슈톡 후작을 의심하고 있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에 의해 그가 범인으로 밝혀진다.
폭탄이 터질 때쯤, 클롭슈톡 후작은 아들[8]의 초상화를 보며 "네가 아직 살아만 있다면..."이라고 중얼거린다(이러한 점을 보면 아들이 죽고 더는 잃을 것이 없어진 상황에 닥치자 극단적인 선택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집사가 들어와 테러가 실패했음을 보고하자 크게 상심하더니, 자신을 섬긴 집사를 피신시켰고 저택에 불을 지른 뒤 권총으로 자살했다.
후작의 집사는 후작이 도주를 명하기 전까지 자택에서 그를 보좌하였는데, 이를 보면 고용인에 대한 인망은 어느 정도 있었던 듯 하다. 실제로 집사도 후작이 나갈 것을 명했을 때 후작의 운명을 눈치 챈건지는 몰라도 잠시 슬퍼하기도 했고 말이다.
OVA에는 클롭슈톡 사건이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후로 밀리면서 그의 사망시점도 우주력 795년이 아니라 796년 5월 이후로 밀렸다.
4. 여담
- 별다른 비중은 없지만,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오스카 폰 로이엔탈과 볼프강 미터마이어와 인연을 맺는 계기를 만들어준 인물이다. 다만 OVA에서는 클롭슈톡 사건이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후라서 세 사람이 인연을 맺는 것은 계기는 같지만 클롭슈톡 사건과는 관련없게 되었다.
- 원작에서는 그저 문벌귀족으로만 묘사되지만 미디어믹스에서는 골덴바움 왕조의 충신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원작의 묘사를 생각하면 충신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권력 때문에 황위계승전에 끼어들고 황족을 무시하는 오만한 권신에 가깝다.
- 의외로 정치력이나 처세술은 뛰어나지 않은 듯 하다. 일단 오토프리트 5세 시절부터 엄연히 그의 장남인 리하르트가 멀쩡하게 황태자 직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에겐 조그마한 결격사유조차 없었는데도[9], 계승서열이 밀리는 클레멘트를 황태자로 지지했고 그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국무상서직을 받는다는 구두 약속까지 받아내는 사실상 반역에 가까운 행동을 취했다. 저 구두약속이 무려 프리드리히 4세가 즉위한 후도 아니고 오토프리트 5세와 리하르트가 멀쩡히 살아있던 시절 때 벌인 일이니 정치력만큼은 완전 0점이였던 셈.
더군다나 개인적인 처신도 엉망이었는데 아무리 행실이 망나니이고 제위 계승에서 배제되었다고 해도, 엄연히 직계 황족인 대공 시절의 프리드리히 4세를 면전에서 지나치게 괄시하는 오판을 벌였다. 이쯤되면 클롭슈톡을 대역죄인인 클레멘트를 지지하고 황족을 모독한 죄로 진작에 처형하지 않고, 그저 영지 삭감과 사교계 퇴출만으로 처벌을 끝낸 프리드리히 4세가 자비로워보일 지경.
[1] 황제 암살미수 혐의로 작위가 박탈당했다.[2] 장남 리하르트는 무난하게 황태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클레멘츠 측 세력들이 조작한 반역죄를 뒤집어써 측근들과 함께 처형당했고, 삼남 클레멘트는 프리드리히를 제치고 황태자 자리를 차지한 지 3년 만에 리하르트에게 누명을 씌웠던 것이 폭로되어 그의 측근들도 모조리 처형당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클레멘츠는 황급히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을 꾀했으나, 사고인지 자살인지 모를 우주선 폭발사고로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3] 헌데 이상한 건 국무상서 자리까지 약속받았을 정도라면 클레멘트의 심복이라는 뜻인데, 어떻게 클레멘트의 반역이 밝혀지고 그의 측근들이 죄다 처형당하는 와중에도 목숨을 부지했냐는 것이다. 물론 클롭슈톡 가문이 황실도 함부로 하기 힘든 명문귀족이긴 하지만 황태자를 모살한 클레멘트에게 가담한 것도 작은 죄가 아니다.[4] 프리드리히 대공이 유흥비가 부족해서 빚쟁이에게 쫓겨다닌 적이 있었는데, 클롭슈톡 후작은 이 이야기를 친구들과 함께 조롱거리로 삼았다.[5] 어느 남작부인이 빈혈증세로 쓰러졌는데, 사람들이 클롭슈톡 후작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그 부인을 앉혔다. 또한 지체 높은 사람의 소지품은 함부로 할 수 없었기에, 한 젊은 귀족이 이를 소지품 보관소에 맡기기로 하였다. DNT에서는 브라운슈바이크가 클롭슈톡이 갖고온 소지품이라고 듣고는 별볼일 없는 것이라 여겨 처분하라고 명령해서 경비병이 들고 나가다가 폭발했다.[6] 베스트팔레 남작부인이 그려진 대상이야 어쨌든 미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미술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7] 초대황제인 루돌프의 동상인 만큼 이 동상에 손상을 입히는건 엄격히 금지되어서 브라운슈바이크가 클롭슈톡 후작의 자택을 포위하기만 할 뿐 포격을 안 하는 모습을 보고 질책하자 안톤 페르너가 루돌프 대제의 동상이 있다며 맞춰도 상관없다면 포격하겠다고 하자 분해하면서도 어쩌지 못한다.[8] 이름은 요안느다.[9] 리하르트는 근면하고 교양이 풍부한데다 오토프리트 5세의 장남이기까지 해서 황태자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고 한다. 은하제국이 엄격한 신분제 사회라는 걸 감안하면 이렇게 확고부동한 황제의 후계자였던 리하르트를 상대로 황태자 교체를 시도한 것만으로도 황족 모독죄 내지 반역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