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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9 23:02:23

삐삐밴드

삐삐롱 스타킹에서 넘어옴
1. 개요2. 활동
2.1. 방송사고
3. 해체 이후의 활동4. 음반 목록

1. 개요

대한민국밴드.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활동하다 2015년에 재결성했다.

2. 활동

시나위, 작은하늘, H2O 출신의 베이시스트 강기영(달파란)카리스마, H2O 출신의 기타리스트 박현준과 보컬 이윤정이 1995년에 결성하였다. 단순히 음악 밴드라기보다는 경직되고 촌스러운 대한민국 사회의 질서와 문화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위해 도모한 일종의 '문화 기획'이었다고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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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문화혁명 앨범 표지 1집 앨범의 후면.
밴드원들과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과의 단체 사진이 실려있다

1995년 8월 1집 앨범 <문화혁명>으로 데뷔. 이 앨범은 세 차례의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에서 61위, 51위, 33위에 선정되는 등 음악성도 높게 평가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성공했다. '안녕하세요', '딸기'라는 곡으로 활동하며 당시 대한민국의 대중매체에서 처음으로 펑크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홍보한 밴드였다. 이들로 인해 펑크 록의 인지도가 대한민국 대중들에게 확 높아졌다. 다만 한국의 1세대 일렉트로니카 DJ인 강기영(달파란)의 영향력이 발휘된 '딸기'같은 곡은 전형적인 전자 음악이다. 뉴웨이브 밴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씬에서 활동하던 락 밴드들은 무겁고 진지한 음악을 했던 것에 반해, 삐삐밴드는 완전히 가벼운 음악을 한다는 모토로 시작한 밴드였고, 특히나 이윤정의 빨간머리는 당시 사회에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2] 그래서 가수의 염색을 엄격히 제한했던 KBS 가요톱10 출연할 때에는 모자를 써서 염색 머리를 가리기도 했다.#[3]

2집 <불가능한 작전>은 1집과 달리 전자음악이 메인이 되었는데, 1집을 높이 평가했던 PC 통신의 락 음악 동호회 멤버들이 앨범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삐삐밴드는 이들의 비난 글들을 2.5집인 리메이크 앨범 <붕어빵>의 부클릿에 집어넣는(...) 패기를 보였다.

대체적으로 삐삐밴드의 곡들은 별다른 연주 기교가 없는 단순한 곡에 이윤정 특유의 막 부르는 듯한 보컬로 임팩트를 주는 구성이다. 가사도 별 의미가 없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딸기'의 경우에는 '딸기가 좋아' 라는 구절이 곡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2집 타이틀 곡인 '유쾌한 씨의 껌 씹는 방법'은 제목부터 범상치않다.[4]

2.5집까지 활동 후 이윤정이 멤버간의 의견 차이로 탈퇴하고[5] 1997년고구마(권병준)를 새 보컬로 영입해 밴드 이름을 삐삐 롱스타킹[6]으로 바꾸고 나서는, 펑크와 일렉트로닉이 짬뽕된 정말 희한한 음악 세계가 되었다.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펑크 문화가 결합된 매우 희귀한 실례중 하나다.[7]

삐삐밴드와의 차이점은 막 지르는 보컬 이윤정에 맞춰서 섹스 피스톨즈와 같이 일부러 간단한 연주로 내놓은 1집과 달리, 3집은 이전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잔뼈가 굵었던 고구마에 맞춰 박현준과 강기영의 실력이 제대로 발휘된 정교한 연주로 곡이 구성되어 있다.[8]

재미있는 것은 삐삐롱스타킹은 음악방송에 출연해서도 라이브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 라이브에서 사고를 쳤다. 핸드싱크 정도가 아니라 그냥 AR을 틀었다. 강기영이나 박현준은 실제로 뛰어난 연주자들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말 일부러 그런 것이다.

2.1. 방송사고

MBC의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인 인기가요 베스트 50의 1997년 2월 15일 방송분에서 '바보버스'를 라이브로 공연하던 도중, 카메라에 뻐큐를 하고 카메라를 향해 침을 뱉는 사고를 일으켰다.
문제의 MBC 생방송 영상[9][10]

이 밴드는 처음부터 실험임을 표방하였고 광기와 반항기가 넘쳤다. 방송 정지를 당하기 몇 주 전 MBC 방송에서는 박현준이 카메라를 향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계속 지어댔고, 무용팀은 "우리는 맆-싱크중입니다" 라는 플랜카드를 공연 중에 대놓고 펼치기도 했다. 그러다 인기가요 베스트 50은 1997년 초반 립싱크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전곡을 라이브로만 한다는 강수를 두었는데, 하필 올 라이브 첫 방송부터 광기에 찬 밴드가 등장해버린 것이었다.

이 세 명은 실험을 끝내버릴 작정으로 라이브를 시작하자마자 확성기 싸이렌을 울리고, 픽업에 장난감 전자총 소리를 대고, 뻐큐를 날리고 침을 뱉고, 광기에 넘친 춤을 추고, 무대를 완전히 헤집어 버리고는 퇴장했다.

사건 다음날인 2월 16일 SBS <TV 가요 20>[11]에서도 너바나와 같이 대놓고 핸드싱크로 악기 막 치기 +중간에 악기 바꾸기를 시전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기가요 BEST 50은 경고를 먹었고[12] 삐삐 롱스타킹은 전 방송사에서 1년간 출연 금지를 당하자 깔끔히 해체해버렸다. 징계 후“우리는 (침이 아니라) 물음표(?)를 뱉은 것이다”라는 서두로 항의문을 낼 정도였으니 의도적으로 방송사고를 일으켰음은 확실했다.

3. 해체 이후의 활동

1년간의 출연정지가 풀리고 난 뒤, 박현준과 고구마는 기타 리스트 신윤철과 함께 '원더버드'를 결성했고 1998년 MBC 일요예술무대, 1999년 SBS 인기가요,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등에 출연했다.

강기영은 해체 이후 본격적으로 현재의 달파란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가 영화 OST를 작곡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윤정은 삐삐밴드 탈퇴 후 솔로 앨범 2장을 냈고, 2008년 결혼 후에는 남편인 이현준과 EE라는 팀으로 활동했다.

고구마(권병준)는 영화 '네 발가락'의 음악감독과 배우로서 활동한 적이 있다. 2002년 원더버드 해체 이후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서 왕립 헤이그 음악원에서 수학한 뒤, 국내 복귀 후 사운드 엔지니어 및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저런 공연이나 전시를 자주하는 편.

2015년 6월 13일 원년멤버(달파란, 박현준, 이윤정)이 19년만에 다시 재결합해서 앨범 "pppb"을 발매하며 컴백하였다.

이후로는 특별한 활동을 보이지는 않고 있으니 삐삐밴드 활동은 중단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4. 음반 목록



[1] 재밌는 사실이 이윤정은 인천 서구 을/강화군의 15~18대 국회의원,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내고 데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당시 공보처) 차장이었던 이경재의 막내딸이다.[2] 이 시기에는 LG패션(현 LF)의 '티피코시'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3] 웃긴 것은 이 KBS 방송분이 무려 라이브 무대였는데, 방송 환경의 한계로 사운드가 구리게 송출되었다.[4] 황신혜밴드 멤버인 조윤석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5] 다만 재결성 당시 인터뷰를 볼땐 심각한 불화는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이윤정 본인이 탈퇴는 멤버 간의 협의하에 원만히 이뤄진 거라고 밝혔다.[6] 말괄량이 삐삐의 원제목이 "삐삐 롱스타킹"이다.[7] 1970~1980년대의 이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영미권 밴드를 뽑자면 토킹 헤즈, 디보, 더 레지던츠 등이 있다.[8] 하술하는 1997년의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의 '바보버스' 라이브와 1995년 KBS 가요톱10의 '안녕하세요' 라이브를 비교하면 전자쪽이 연주에 좀 더 힘을 줌을 알 수 있다.[9] 뻐큐는 0:18, 침은 3:01 쯤에서 볼 수 있다.[10]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은 mbckpop 공식 유튜브에선 잘렸으나 이건 어째서인지 잘리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11] SBS 인기가요 1기의 후신이자 2기의 전신.[12] 하지만 얼마 뒤 1997년 외환 위기로 다수의 예능프로그램이 종영되면서 같이 종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