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배우이자 이 인물의 후손에 대한 내용은 사라 처칠(배우)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BDE2F2> 말버러 공작부인 사라 제닝스 Sarah Churchill, Duchess of Marlborough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 |
<colcolor=#000000> 이름 | 사라 제닝스 (Sarah Jenyns) |
출생 | 1660년 6월 5일 |
잉글랜드 왕국 하트퍼드셔 세인트올번스 | |
사망 | 1744년 10월 18일 (향년 84세)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런던 세인트제임스 | |
배우자 | 제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 (1677년 결혼 / 1722년 사망) |
자녀 | 해리엇, 앤, 헨리에타, 존, 엘리자베스, 메리, 찰스 |
아버지 | 리처드 제닝스 |
어머니 | 프랜시스 손허스트 |
형제 | 수잔나, 존, 프랜시스, 바바라, 리처드, 리처드, 수잔나, 랄프 |
[clearfix]
1. 개요
제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의 아내. 아버지는 영국의 귀족이자 정치인 리처드 제닝스이다.2. 상세
1675년에 15살의 나이로 10살 연상 존 처칠과 사랑에 빠져 비밀리에 약혼했다. 존 처칠의 부모님은 아들을 찰스 세들리 경의 딸 캐서린 세들리와 결혼시키려 했는데, 존이 혼담을 깨고 1677년에 약혼녀 사라 제닝스와 결혼해버렸다.영국의 앤 여왕과의 긴밀한 관계로 유명하다. 앤 여왕의 의붓어머니 모데나의 마리아의 시녀로 처음 궁에 들어가 공주였던 앤과 가까워진 사라는 앤이 왕위에 오르자 여왕의 수석 시녀이자 최측근이 되었다. 이후 궁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귀족 부인으로 위세를 부렸다. 그러나 여왕의 뜻과 다르게 정치적 균형을 깨고 휘그당을 밀어주려 하다 신임을 잃었으며, 1711년에 사촌인 애비게일 힐에게 밀려 수석 시녀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사라가 실각함에 따라 그녀의 남편 존 처칠에게는 횡령 등의 혐의가 씌워졌고 결국 군 통수권자의 지위를 내려놓게 되었다. 처칠 가족은 이후 영국을 떠나 유럽을 돌아다녔는데 영국-스페인 전쟁에서 존이 세운 명성 덕분에 독일과 신성 로마 제국에서 큰 환대를 해주었다고 한다. 남편의 명성 덕분에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환영을 받으며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었으나 사라는 전 유럽이 자신들을 반기지만 고국인 영국만 냉대하는 것에 자주 불평했다고 한다.
유럽 여행을 이어가던 1714년 앤 여왕이 사망하고 조지 1세가 즉위함에 따라 그의 측근이었던 남편 존 처칠 역시 복귀에 성공했고 사라도 함께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지병으로 인해 남편은 오래 못 가 사망했지만 사라는 조지 2세의 재위 때까지 살며 조지 2세의 왕비 안스바흐의 카롤리네와 친분을 쌓아 이후에도 왕궁을 출입하였고 천수를 누린 뒤 당시로선 매우 장수한 84세에 사망한다.[1]
남해회사 거품 사태 때 주식 투기로 큰 돈을 번 극소수의 사람 중 한명이다. 10만 파운드 정도의 돈을 벌었으며, 이후에도 토지에 투자하여 이득을 보았고 남편 사후 물려받은 재산과 합쳐져 말년에는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손꼽혔다.
3. 대중매체에서
영화 더 페이버릿에서 레이첼 바이스가 연기했다. 앤 여왕과 동성애 관계로 나오며, 애비게일 힐과 대립 구조를 형성한다.[1] 정적이었던 애비게일은 앤 여왕 사망 직후 바로 실각하여 시골에 내려가 조용하게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