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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10:37:14

사마사(삼국전투기)

파일:삼국전투기_사마사.jpg
1. 개요2. 설명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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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 등장한 사마사를 서술하는 문서.

2. 설명

청의 엑소시스트오쿠무라 린으로 패러디 되어 나온다. 첫 등장부터 자기 아빠한테 반말까고 영감이라 부르면서 매우 버릇없게 군다. 그래도 후의 행적은 유능하게 묘사된다. (경박한 인상을 주는 외모나 초반 보이는 언행과 다르게) 정사에 묘사된대로 절제력과 인내심이 특히 부각된다.[1] 위 이미지에서 보이듯 조상과는 달리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으나 수명은 물려받지 못했다고...

3. 작중 행적

낙곡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조상이 군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을 사마의에게 전했고, 사마의가 사마소도 갔냐고 묻자 하후현의 꽁무니를 쫄랑쫄랑 신나게 따라갔다고 답했다. 사마사는 촉도 상황이 안 좋다던데 혹시 이기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사마의는 술을 잔에다 부어 구멍을 내려 하는 행위에 비유하며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잔에 술을 10리터, 100리터를 부어 봐야 잔에 구멍에 뚫릴 리는 없고, 적당한 송곳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없으니 불가능한 것. 사마의는 그 뒤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니 계속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송곳이 나올 거라고 답했지만 사마사는 답답했던 나머지 그대로 술잔을 기둥에 던져 깨버렸다(...) 이놈아!! 그거 아끼는 잔이닷!!

이후 사마의가 경험의 문제라며 가보질 않았으니 힘든 줄을 모르는 거라고 하후현 등을 까자 사마사는 아직 곽회가 있으며, 그야말로 경험이 있는 인물 아니냐고 물었지만 사마의는 그렇기에 곽회는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설명했다.

전투외편 4편에서는 고평릉 사변에 참여하여 사마의, 사마소와 함께 낙양을 점거했다.

그 밖에는 유엽의 아들인 유도가 자기와 관구검 사이에서 간을 보자 죽여버렸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신성 전투 편에서는 사마의의 지시로 새로운 인재 발탁 임무를 맡는다.

동흥 전투 편에서는 사마의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았다. 제갈탄이 오가 동흥에서 둑과 성을 쌓고 있다고 말하며 오를 공격할 것을 건의하자 부하를 불러서 의견을 물었다. 부하는 불리한 공략을 억지로 강행하기보다는 요지를 점거하고 둔전을 하여 상대를 괴롭게 할 것을 주장했지만, 사마사에게 중요했던 건 당장의 지지율을 올려 줄 교전이었기에 부하의 제안을 거절하고 제갈탄이 제시한 대로 강릉, 무창, 동흥의 3로로 군을 보냈다.

동흥 전투의 대패 후에는 조정 내에서 패전의 책임을 물을 희생양을 찾는 움직임이 일자 자신의 판단 미스였다고 패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약간의 인사이동만[2] 한 뒤 누구도 문책하지 않았다. 이 덕분에 수하들의 신망을 얻어 결속을 다지는 데 성공하여 패배했음에도 간신히 지지율을 올리는 데는 성공했다고 묘사된다.

합비신성 전투 편에서는 촉과 오가 대군을 끌고 동서로 쳐들어오자 머리를 싸맸지만 우송의 조언을 듣고 그들이 준비가 덜 되어 있으니 속전속결을 노릴 것이라는 것을 파악,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로 정했다. 사마사는 이후 서량의 곽회에게는 적도에 가 강유와 대치하되 싸움은 걸지 말라는 서신을 보냈고, 합비의 관구검에게는 최악의 경우 신성을 넘겨줘도 되니 수비에 모든 힘을 집중하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적도 전투 편에서는 이풍의 난이 발각된 이후 이풍을 직접 심문하며 칼손잡이로 그를 찧어죽였다. 이후 사마소가 적도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끌고 낙양에 와서 입궐하자 그 기회를 살려 사마소에게 군대를 빌린 뒤 그대로 조방을 폐출시켜버렸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병으로 요양하던 중 관구검의 반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자기가 직접 움직여야 했지만 병중이라 움직이기를 주저하지만 부하의 말을 듣고 각지의 제장들을 허창에 집결시킨 뒤 결국 친정에 나섰다. 허창으로 가면서 어떻게 관구검을 상대해야 할지 정무에게 의견을 물었고 정무가 지구전을 제안하자 거기에 만족했지만 막상 허창에 도착한 뒤에는 선봉장이 된 왕기가 속전속결이라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자 당황하게 되었고, 왕기에게 구체적인 안을 물었다. 왕기가 식량창고인 남돈을 차지해야 한다고 제안하자 일단은 허가했지만 걱정을 이기지 못해 왕기의 진군을 막으려 했는데, 왕기가 이를 거부하고 냅다 남돈을 점령했다. 왕기의 남돈 점령 이후에는 제갈탄에게 수춘을 노리는 손준을 막으러 명하고 자신은 항의 뒤편에 있는 여양에 자리를 잡았다.

여양에 자리를 잡고 관구검, 문흠을 포위한 뒤 사마사는 승기를 잡은 김에 밀어붙이자는 제갈탄 등의 주장을 묵살하고 맨 처음 계획했던 지구전에 돌입한다. 이후 관구검 일당이 낙가로 이동할 것을 예상하고 몰래 여양 본진의 병력을 끌고 낙가로 움직였다.

낙가에서 적의 야습 소식을 듣고 깨서 적의 병력을 살폈는데, 적 병력이 얼마 없는 듯 보였기에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며 넘기려고 했지만, 그 얼마 없는 병력이 갑자기 무쌍을 찍으며 대학살쇼를 펼치기 시작하자 이전에 수술했던 눈에서 피가 터져나올 정도로 당황하며 공포에 질렸다. 그거로도 모자라 눈알까지 빠져나와 버렸음에도 사마사는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들고 버틴 뒤 문앙 등이 퇴각하자 사마련에게 추격 명령을 내린다. 사마련이 밀리자 악침을 추가로 붙여 줘 문흠 부자는 놓쳤지만 그의 군은 전멸시키는데 성공했다.

관구검의 난은 무사히 진압하는데 성공했지만 사마사는 가뜩이나 안 좋던 몸상태가 관구검의 난 이후 더 안 좋아져 결국 사마소에게 후사를 맡기고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패러디된 캐릭터가 캐릭터다 보니 반 사마사 진영에게는 악마(의 자식)라 디스당하기도 했다.


[1] 제갈각과의 전투에 패배 후 신하들을 처벌하긴 커녕, 스스로 패배를 책임짐으로 민심을 수습했다. 대장군으로 오른 이후 감정적 판단보다는 부하, 우송 등 신하들의 의견을 항상 경청하며 의사 결정하였다. 특히 낙가 전투에서 문앙의 야습에 놀라 앓고있던 눈알이 빠지는 부상을 입음에 불구하고, 이불을 물어뜯고 버티며, 상황이 정리될 때 까지 군대를 지휘하는 인내심을 보였다.[2] 합비의 제갈탄과 여남의 관구검의 위치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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