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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11:23:22

사타리

1. 개요2. 행적3. 기타4. 출처

1. 개요

사타리(沙吒利)[1]태평광기에 인용된 당나라 소설 『류씨전(柳氏傳)』에 등장하는 번장(蕃將)이다.

류씨전의 등장하는 인물들 중 유일한 악역이다. 작중 등장하는 인물들 중 유일하게 아예 대사가 없다.[2]

사타리의 출신에 대해서는 위구르족이라는 설[3] 혹은 백제유민의 후손설[4]등이 있다. 백제인설을 따를 경우 성씨는 ‘사타(沙吒)’ 씨로, 백제 대성팔족 중 사씨 가문 출신으로 본다.[5]

2. 행적

류씨전에 의하면 일찍이 공을 세운[6]번장 사타리는 한익이 후희일의 휘하에서 종군하는 동안 한익의 부인이었던 류씨의 외모에 반해서 그를 강제로 겁탈한 후 첩으로 삼았다고 한다.[7]

한편 상관인 후희일이 좌복야 관직에 임명되어 장안으로 오면서 휘하 막료였던 한익도 후희일을 따라 장안으로 오게 되었다. 한익은 류씨의 행적을 듣게 되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사타리한테 항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익의 딱한 사정을 알게된 장수 허준은 사타리가 집에 부재한 틈을 타서 류씨를 사타리의 집에서 빼내주었다.[8]

이후 상관인 후희일이 한익과 류씨의 일을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서 한굉과 류씨의 일을 알려줬고, 황제는 이를 받아들여서 사타리를 불러 류씨를 한굉에세 돌려보내게 하고 대신 막대한 돈을 주고 체면을 세워주었다고 한다.

3. 기타

4. 출처



[1] 혹은 사질리(沙叱利)로도 표기된다.[2]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은 당나라 황제도 작중 조서를 통해 자기 의견을 드러낸 것과 달리, 사타리는 자신의 애첩이 뺏겼는데도 아무런 의견표명을 하지 않는다.[3] 중국 학자 王夢鷗의 설. 류씨전에서 황제가 사타리에게 2백만 전을 주고 체면을 세워줬다’(朝廷賜錢二 百萬)’는 기술을 근거로, 자치통감에서 당숙종이 안사의 난 진압에 위구르족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장안성의 금은과 비단, 평민은 모두 회흘(回紇)의 소유가 된다’는 조약을 맺은 것이 해당 기술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추정했다.[4] 중국학자 姜清波, 한국 중문학자인 정재서 등이 주장한 설. 이 경우 당나라로 투항한 사타상여, 사타충의 등처럼 백제 대성팔족 중 사씨 출신으로 본다.[5] 1726년 저술된 고금도서집성에서 사타리는 사타충의, 사타의와 함께 사타씨로 분류되었다.#[6] 시기상 안사의 난 당시 공적을 세운 걸로 보인다.[7] 원래 부부였던 한굉과 류씨는 안사의 난(천보의 난)이 터지면서 서로 살길을 찾아 한굉은 절도사 후희일의 막료가 되었고, 류씨는 비구니가 된 상태였다고.[8] 허준은 사타리가 말에서 떨어졌는데 류씨를 찾는다고 거짓말을 쳐서 사타리의 집으로 들어가 류씨와 함께 빠져나왔다.[9] 사타리가 등장하는 문헌들은 당나라 말기에 저술된 이문집(실전됨), 송나라 대 편찬된 태평광기, 유설, 취옹담록 등인데 모두 류씨전과 그 이본들의 내용을 수록한 것이라 내용에 큰 차이는 없다. 고금도서집성에서는 그를 사타충의, 사타의와 함께 사타씨로 분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