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음)tài píng guǎng jì
(영어)Taiping Guangji
1. 개요
10세기 후반, 북송의 제2대 송태종의 치세때 편찬된 설화집으로, 《태평어람》, 《책부원구》, 《문원영화》와 함께 송사대서(宋四大書)라고 불렸다.2. 편찬
북송 태평흥국(太平興國, 976~984)[1] 연간에 편찬되어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태평어람》 역시 동시기에 나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대주제 92가지에 소주제 150개를 기준으로 이야기 7,000여 편을 수록하여 총 500권으로 완성되었다. 이방, 후몽, 이목, 서현 등 12명이 978년부터 1년에 걸쳐 편찬 작업을 마쳤고, 981년에 목판을 새겨 출판했다.초판 인쇄 뒤,
3. 내용
내용으로는 당나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다음은 남북조시대가 어느 정도 비중이 있지만 당나라와는 분량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이다. 책에 수록된 일화나 야사, 인용된 항목 등은 후대 사람들이 고치거나 추가한 부분이 많은데, 이미 유실된 책을 출처로 끌어오는 일화가 많고 책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역사서로서의 가치는 낮지만 각종 고전 소설을 모은 데다가 다양한 일화가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헤아릴 수 있게 하므로, 사회상 연구에서 가치가 있다.고대 문학이나 후대의 문학에 크게 영향을 준 책으로서, 청나라 때의 기윤은 《태평광기》를
'소설가의 깊은 바다'
라고 칭송했으며, 설화인(說話人)[2]들은 반드시 어려서부터 《태평광기》를 익혔을 정도였다.한국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에서 이름이 보인다. 경기체가인 <한림별곡> 2장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태평광기》 400여 권을 열람하는 광경이 어떠하냐고 노래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상당히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보면 고려 중기의 고종 이전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이 워낙 방대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축약본으로 성임이 세조 때 《태평광기상절》, 성종 때 《태평통재》를 간행했지만 한문이라 백성들은 읽을 수 없어, 명종 때 명나라 판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은 듯한 《태평광기언해》를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