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새뮤얼 스미스 (Samuel Smyth) |
생년월일 | 1925년 2월 25일 |
사망년월일 | 2016년 10월 19일 (향년 91세) |
국적 | 북아일랜드 |
출신지 | 벨파스트 |
포지션 | 인사이드 포워드 |
신체조건 | 180cm | 73kg |
소속팀 | 리스번 디스틸러리 FC (1942-1945) 린필드 FC (1945-1947) 던델라 FC (1947)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1947-1951) 스토크 시티 FC (1951-1952) 리버풀 FC (1953-1955) 뱅거 FC (1955) |
국가대표 | 9경기 5골 (1947-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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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아일랜드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스미스는 북아일랜드 클럽인 리스번 디스틸러리 FC, 린필드 FC, 던델라 FC 등에서 1942년부터 소속되어 있었지만 당시는 전쟁중이라 1947년까지 리그가 중단되었다.1947년에 스미스는 잉글랜드의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 계약했고 이곳에서 FA컵 타이틀을 따냈다. 스미스는 울버햄튼에서의 4년간 116경기 출전, 43골을 기록했다.
1951년 스토크 시티 FC의 시즌 출발은 말 그대로 끔찍했고 일정은 많이 남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시즌을 치르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래서 스토크 시티는 선수 보강을 위해 뛰어다녔고 울버햄튼으로부터 2만5천파운드를 들여 스미스를 영입했다. 그리고 스미스는 영입 효과를 바로 보여줬다. 그는 이 시즌에 리그에서 12골을 넣어 스토크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스토크는 그를 발판삼아 3점차로 강등을 피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1952년을 넘기면서 리버풀 FC로 또 팀을 옮기게 되었고 리버풀에서 한 시즌반동안 44경기 20골의 기록을 남겼다.[2]
1955년에 접어들어 스미스는 잉글랜드 생활을 정리하고 뱅거 FC(Bangor FC)에서 은퇴했다.
2.1.2. 국가대표
스미스는 잉글랜드에서 활약했던 공격수답게 북아일랜드 대표팀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좋은 활약을 했다.스미스의 대표팀 경기 9회는 모두 영국팀들이 상대인 경기였고 그는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도 출전했다. 스미스가 3경기에서 3골을 넣었음에도 당시 북아일랜드는 조 꼴찌로 탈락했다.
2.2. 이후
스미스는 축구계를 떠나 북메이커, 스포츠 유통 사업을 벌였다. 스미스는 북아일랜드에서 살면서 아내와 함께 정기적으로 딸이 살고 있는 케이맨 제도를 방문했는데 2002년에 아내가 사망하면서 그는 딸과 함께 그가 사망할 때까지 케이맨 제도에서 살았다.3. 수상
3.1. 클럽
- 아이리시컵 우승 1회: 1946-47(린필드 FC)
- FA컵 우승 1회: 1948-49(울버햄튼 원더러스 FC)
- 잉글리시 풋볼 리그 준우승 1회: 1949-50(울버햄튼 원더러스 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