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4 15:10:43
[clearfix]일제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그는 대구에서 서상돈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 다르게 친일활동을 했다. 그는 일본적십자사 대구지부에 협찬한 것을 시작으로 명치신궁봉찬회 조선지부 경북위원, 재단법인 대구상성회 평의원, 국민협회 상담역, 제국재향군인회후원회 부회장, 대구 녹화협회 회장,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대구지부 회장 등의 관변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조선총독부 지방 지배기구의 자문기관인 대구부협의회, 경북도회, 학교평의회 등의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부터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중추원 부의장이 되었다. 그는 일제로부터 인정받아 지방공로자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았다. 그는 1940년 이름을 대봉병조로 바꾸고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로 참여하고 흥아보국단과 조선임전보국단에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일 활동을 해나갔다. 결국 광복 후,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수감되지만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와해하자 석방되었다. 이후 조용히 살다 1952년 2월 29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