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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2 19:15:24

성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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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빈 교응씨
파일:작약만가 불환곡.성빈.jpg
이름 교응 가능사락[1]
직위 아니타공주

아니타국왕

태황후궁 정2품 빈

태황후궁 정3품 희희

태황후궁 정2품 빈
봉호 [2]
가족관계 아니타 국왕(어머니)
아니타 국서(아버지)
순제(前 남편)
스바타 얀만(現 남편)
롱희(시사촌)
국적 아니타

태황[3]

1. 개요2. 소개3. 작중행적4. 특이사항5. 과거6. 기타

[clearfix]

1. 개요

작약만가: 불환곡의 등장인물. 이름은 교응 가능사락.

품계는 정2품 빈이었으나 16화에서 3품 희희로 강등당했다. 하지만 59화에서 다시 정2품 빈으로 복권된다. 희희가 된 이후엔 아랫사람들에겐 성씨인 교응으로, 롱희에겐 가능으로 불린다.

금빛 물고기 무늬가 새겨진 청록색 리본 + 검은 선녀머리 헤어를 한 후궁. 빈 시절엔 선녀머리를 제법 크게 틀었지만, 희희로 강등당한 후엔 선녀머리를 작게 틀고, 머리장식도 많이 치웠다. 품계가 내려갔으므로 많은 치장을 할 수 없게 된 모양. 대신 빈 시절엔 안 달던 귀걸이를 희희 시절엔 달고 다닌다.

창백한 분홍빛 입술에 약간 쳐져보이는듯한 인상을 한 여성으로,[4] 최초 등장은 3화로, 덕빈의 행동에 꽤나 경악하는 모습을 보인 엑스트라 1의 입장이었으나… 4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독자들에게 의외의 인상을 각인시켜준 후궁이 되었다.

2. 소개

4화 후반에서 덕빈이 그녀를 가리켜 외국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태황 출신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5화에서 롱희처럼 태황에게 항복한 아니타국 출신으로 황제에게 헌상되어 후궁이 되었다는 게 드러난다. 그러나 엄청난 총애를 받는 롱희와 달리 그닥 총애를 받지는 못 했다. 본인도 딱히 총애에 집착하지 않는 듯 하며 울증을 이유로 공석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었다.

자식도 없고 총애도 그닥인데다 공적인 활동도 별로 안 하는데도 빈이었던 건 교응이 (비록 태황에 의해 속국화되긴 했지만) 아니타국의 왕이었기 때문.[5]

3. 작중행적

4화 중간에 롱희의 궁으로 찾아왔지만 이를 롱희에게 드러내지 않고, '아뢸까요?' 하고 물어보는 시녀의 질문에 이를 부정하며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채 '저렇게 즐거워보이는데 내가 들어가봤자...' 하고 생각한다. 이후 돌아가는 길에 우연찮게 덕빈을 만나고, 덕빈과 대화를 나눈다. 총애없는 후궁 신세끼리 자매의 정이나 다독이자는 덕빈의 말에 성빈은 "나는 속 좁은 사람이라 의기를 합심하기엔 혼자 죽겠소" 라고 대답한다. 이에 뭔가 눈치깐듯한 덕빈이 롱희에게 내침이라도 당했냐고 하며 자기 처소에서 이야기라도 하자고 하자, 이제껏 지었던 쳐져보이는 인상을 버리고 묘하게 비꼬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곤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 한다. 그러나 덕빈이 그녀를 살릴 수 있기도 하고 죽일 수 있기도 하다는 대사를 치는 것을 듣고 난 후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 덕빈과 이야기를 하러 그녀의 처소까지 간다.

덕빈의 처소에서 덕빈이 롱희가 아들도 얻고 빈의 품계를 받은 것, 그녀와 황후의 사이가 돈독해보이는 것 등을 거론하면서 언젠가 나동그라질 신세가 될 우리 두 빈도 우애깊게 지내자고 하자 성빈은 바로 "결국 황후든 롱희든 칠 수 있게 힘을 모으자는 것 아닌가?" 하고 팩트폭력을 날려버린다. 그러면서 황후를 쉽게 건드릴 수 없으니 롱희를 노릴 것이라는 점까지 지적하자 덕빈도 찔렸는지 성빈을 보고 "외국인이란 어찌 이리 노골적인지" 하는 말을 한다. 그러나 성빈은 이에 개의치 않고
정말로 롱희와 황후마마가 돈독한 사이라면, 우리 정도가 어찌해볼 쯤엔 황후마마께서 눈치채고 가만두지 않으실 텐데?
하고 다시금 팩폭을 날린다. 이에 덕빈이 그럼 뭘 하는게 좋겠냐고 하자 성빈은 "어쨌든 이런 조잡한 잡당모의에는 그 첨예한 해답이 있진 않겠지" 하고 답한다. 이에 덕빈이 말을 이어가자 성빈은 잘도 떠든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황후의 첩자가 여기에도 있을지 모르는데 하면서 황후의 일을 나름 주의깊게 고려하는 신중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 후 덕빈에게 무슨 수라도 있느냐 물어보고, 덕빈이 이야기하며 다가오는 것을 눈살을 찌푸린 채로 흘겨본다.

5화에서 처음 취급은 롱희와 같았으나 총애받는 롱희는 모국인 송하국의 이름도 복원시켜주고 자국민의 노예화를 멈추는 등 황제의 편애를 받은 반면, 성빈은 10년 넘게 아이 한 번 못 가지고 있는 입장이며 황제가 그녀의 모국을 구해주지도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고향에서 함께 와 충성심이 강한 롱희의 시녀들과 달리 성빈의 시녀들은 태황출신이라 외국인인 성빈을 상전임에도 은근히 무시한다.[6] 이것과 더불어 덕빈에게서 궁 내의 입지가 위험하다는 것도 지적받았으나 아직까진 덕빈과 협력할 마음이 없는지[7]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3화, 4화에서 그닥 신중치 못한 면모를 보인 덕빈과 달리 나름 신중하게 황궁 내에서 처신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팩폭을 날려대는게 인상적인지 독자들 사이에서도 성빈에 대해 호평하는 댓글을 날린 독자들이 있다.

봉오제 때 곤경에 처한 롱희가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려 했던 유일한 후궁이다. 그러나 성빈이 우울증으로 먹던 약봉지들 중 한 포가 사라져 성빈이 불길해하며 찾는 모습이 나와서, 덕빈의 계략에 휘말려 죄를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독자들은 불안해하는 중이다.[8] 성빈이 울증을 이유로 오랫동안 칩거한 원인이 봉오제에서 계속 언급되는 혜화비일 가능성이 높은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나 혜화비처럼 되고 싶냐는 덕빈의 압박을 보면 말로가 심히 좋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12화부터는 회상씬에서 봉오제 사건이 일어난 직후 덕빈으로부터 성빈에게 보냈던 비단 궤짝 안에 있던 송하인 노예들에게 일을 사주했으니 이미 공범이고 죽고 싶지 않으면 증거 인멸을 돕고 잠자코 있으라는 협박을 듣게 되는데 자신은 증거를 인멸하고 굳이 성빈을 끌어들인 걸 보면 만에 하나 들키면 성빈에게 독박씌울 거란 걸 깨달았기 때문에 성빈은 어차피 가만 있어도 죽을 목숨인데 차라리 큰 쪽에 붙자고 결심하여 12화에서 덕빈이 계략을 꾸몄음을 황제와 공주들 앞에서 폭로한다. 그리고 덕빈의 목적이 롱희와 황후의 몰락을 향한 것도. 이 행위가 같이 죽자는 것인지 성빈 혼자 빠져나올 방도가 있는 것인지는 불명이지만 독자들은 성빈의 사이다 행보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열쇠는 덕빈의 딸. 성빈이 먹는 독한 우울증 약이 봉오제 사건에서 쓰인 것이 아니냐는 덕빈의 물음에 황궁 안에서 약을 먹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덕빈의 자폐증 딸)며 싸늘한 미소로 역관광을 보내는 것으로 13화가 종료된다.

작중 고인인 혜화비와 관련된 일화도 그렇고 의도이든 의도치 않든 계속 롱희를 도와주는 입장으로 나오는데 뭔가 사연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9]

15화에선 결국 황제에게 덕빈을 밀고한 사람 = 성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상 목숨을 걸고 롱희를 위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밀고를 해준 셈. 독자들한텐 사이다 취급

16화에선 어쨌거나 표면적으로는 덕빈의 음모에 연루된 탓에 희희로 강등당하고 처소가 호위병들에게 포위당한 채 근신하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억울해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속으로 황제가 약속을 지켰다고 안도한다.[10] 그리고 롱희가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자 몹시 어색하고 부담스러워하며 "나 하나 살자고 한 일이라 감사할 것 없다, 이 황궁에서 정의를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거리를 두려 하지만,[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희가 감사를 거두지 않고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겠다고 하자, 용기를 내어 자기 처소에서 차라도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파일:작약만가 불환곡.16화.성빈.jpg

그리고 이 제안을 롱희가 기쁘게 받아들이자, 작중 처음으로 희미하게나마 순수하게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덕분에 그녀를 안타까이 보던 독자들이 여러모로 그녀에 대해 짠한 감상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후 롱희 라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뵈지만 서리꽃에서 롱희의 결말을 생각해보면(...) 그녀 역시 황후에게 어떤 식으로든 찍혀서 나중에 처리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줄을 잘못 선 폐해 사실 황후에게 줄 섰다 해도 토사구팽당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19화에선 롱희와 즐겁게 자기 처소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나오는데, 역대급으로 밝은 모습이다(...) 그래도 성격상 좀 가라앉아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롱희에게 그 사건 이후로 황제가 자주 찾아오느냐고 묻자 군주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롱희의 돌려 말하는 소리를 듣고 안타까워 한다. 그러다가 롱희에게서 이 곳은 황궁이니 웃으라는 조언을 듣는다. 너무 황궁 내에서 기죽이며 살아도 불리해질 수 있으니 처신을 어느 정도 사교적으로 하라는 충고일듯.[12] 20화에서 3황자가 황후에게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손님 많은 날은 희소식도 달아난다더니..' 라고 하면서 안타까워 한다.

이후 2부에선 1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롱희와 친분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 들어온 온빈이 갑자기 경비와 롱희 처소에 오자, 온빈이 황후파인 것을 염려하여 시녀에게 운 황자를 데려오게 하는 기민한 움직임을 보인다. 또한 경비가 짐짓 온빈 대신 무례를 사죄한다며 손수 차를 대접하자 자신은 "희희(喜姬)"니 편하게 하대하라면서 경계심을 보인다.

2부 29화에서 롱희의 궁에서 롱희와 그의 아들 과 함께 식사를 하는 도중, 운이 "제가 작은 새를 닮았습니까?"라고 묻자[13] 경악한 롱희는 또 어상락이 장난친거냐고 묻지만, 성빈은 오히려 '어씨(어상락)는 이미 글렀구만... 사랑이야...' 라며 피식하고 웃는다. 이제껏 우울증 환자로서 침울한 모습만 보여준거에 비해, 거의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여유로운 표정을 보여주며 편해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부 31화에서 롱희궁의 시녀들에게까지 탄국에서 온 향유를 선물해주며 롱희와의 돈독한 사이를 자랑한다. 이후 후수를 찾아다니는 전 거이에게 후수는 시녀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며 알려준다.[14] 그러면서 성빈 자신도 '우리 상락이(...)는 어디로 도망갔나...'라며 어상락을 찾아다닌다. 어상락도 성빈을 피하기 위해 전 거이를 따라 서쪽으로 가려고 했으며, 자신이 떠나지 못하게 되자 '교응님께 엄청나게 놀림 당할거다'라고 생각하며 안색을 새하얘지는 것을 볼 때, 평소에도 어상락을 심하게 놀리며 사는 모양. 그 어상락이 눈물까지 흘리면서 벌벌 떠는 걸 볼 때 어상락이 어린 시절부터 괴롭혀서 아주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다. 덕분에 한동안 다른 옷이나 입고 다녔다는 후문이 있다.

롱희와 굉장히 친밀하고 돈독한 사이가 된 듯하다. 롱희와 같이 밥을 먹을 때 롱희가 교응에게 반찬을 먹여주는 장면이 나오고, 롱희의 궁에서 교응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하는 장면도 나온다.

3부 45화에서 롱희가 실수로 자신의 옷을 태워버려서 시녀들과 함께 새로 옷을 만드는 광경을 함께 지켜보고 있다. 롱희의 호의에 정작 자신은 신경쓰지 말라며 망가졌다는 옷은 과거 덕빈이 1부 때 뇌물로 준 천으로 만든 거라 입고 싶지도 않았다고 한다. 롱희도 과거 덕빈 덕분에 사형당할뻔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하라구로 미소를 보이는 게 은근히 섬뜩하다.[15]

3부 58화에서 근신형을 받은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도 화려한 장신구에 집착하고 치장에 더욱 더 신경을 쓴다. 아직 희희인 신분을 아는 지라 하녀들이 걱정하면서 롱희를 이용해서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이냐고 묻자 계획대로 표정을 짓는다.

3부 59화에서 하녀의 물음에 대꾸를 안하자 하녀도 뒤에서 "저러니 나라가 망했지."라면서 속닥거리지만[16] 성빈의 목적은 애초부터 그 점을 이용하여 빽없는 롱희에게 몰아질 어그로를 본인이 다 가져가서 롱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않지만 롱희만은 신경쓰이는지 복권을 바라는 게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느냐고 묻자 딱히 소문을 신경 쓸 사이도 아니라는 답변을 듣는다. 롱희 역시도 성빈의 의도를 알고 있었는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3부 62화에서 경비에게 이끌려 방씨 문중들의 연회에 참가한다. 하지만 태정군을 제외한 방씨 문중들은 경비와 성빈을 두고 여성이 있어야 자리가 빛난다, 아름다운 여성은 나라의 보물이라고 아부하며 구경거리 삼는다.

당연히 성빈 본인은 사람같지도 않은 것들에게 품평을 당해서 불쾌해 했지만, 곧 태정관이 나와 방씨 문중을 떡실신 시키자 집돼지 요리를 먼저 연회에 내보내라고 추천한다.[17] 이후 경비의 속내를 듣고는 롱희의 소식을 알고 싶어서 겸사겸사 협조하게 된다.

이후 이번에는 롱희궁에 직접 찾아가지만 시녀로부터 아무도 들이지 말라했다며 실질적으로 만나는 것을 거부당한다. 결국 데리고 온 시녀들도 먼저 돌려보내고 혼자 롱희궁 구석으로 가는데 이를 채려가 목격한다. 구석에서 주저앉아 혼자 우는 성빈을 달래주던 채려는 꾀를 내어 '성빈이 경비에게 끌려갔다왔다'는 전갈을 롱희에게 보낸다.[18] 예상대로 롱희는 전갈을 받자마자 바로 성빈에게로 달려온다. 그런 롱희를 보며 '어차피 나한테 달려올거면서 왜 나를 혼자뒀냐'며 눈물을 흘린다. 이에 롱희는 송하국이 자유를 되찾고 자신은 귀비로 승봉될 것을 털어놓고, 남들이 자신을 동정하다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면 등을 돌렸듯 성빈 역시 자신을 등진다 해도 자신은 송하 왕의 딸로서 송하의 국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기에 성빈에게 자신을 싫어하지 말라는 호소조차 할 수 없다고 한탄한다. 이에 성빈은 내 나라는 이미 패망했고, 내가 너를 질투할 만큼 제대로 된 인간이었으면 이 황궁에서 치졸하게 연명하지도 않았을 것, 나는 너를 위해 죽어도 상관없다고 소리친다. 이렇게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다시 화해했는지, 이후로는 도로 친밀하게 대화하는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즌 4에서는 여전히 롱희와 우정을 유지하며 큰 풍파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이후 황제가 이목과의 전쟁 도중에 승하하자 다른 후궁들과 함께 순장당할 후보로 언급된다. 하지만 98화에서 소거의 애원으로 롱희를 살려주되 인질로 삼게 된 황후가 성빈을 살려주면서 순장만큼은 면하게 된다. 그 대신 사실상 폐서인이 되어 맨발로 황궁에서 쫒겨난다. 그렇게 밖으로 쫒겨나 성 문을 바라보며 이제 나라도, 가족도, 받아주는 곳도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하냐며 허망해 한다. 그 순간 한때 자신이 데리고 있다가 롱희의 사촌 스바타 얀만에게 보냈던 노기 청년 향리가 나타나 황궁의 소문을 듣고 혹시나 하여 매일 밤낮으로 성문을 돌면서 기다렸다며, 지금 자신의 주인인 스바타 얀만이 기꺼이 성빈의 신변을 맡아주신다 하셨으니 어서 가자고 한다. 그렇게 살 길이 열렸지만 오히려 "롱희는 성 안에 남고 나 혼자서 이런 꼴로 살아야 할까? 또 나 혼자만... 살아남아서..."라고 말하며 롱희를 희생양으로 삼아 아니타 멸망 때에 이어서 또 다시 자신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에 오열한다. 속으로 "오래전 이곳에 도착했을 때 알았지. 사는 것이 형벌이라는 걸."이라고 독백한다.

그렇게 스바타 얀만에게 신변을 보호받으면서 살았는지 불환곡 최종장에 의하면 스바타와 재혼했다고 한다. 리빈의 반정 이후 롱희가 궁을 나왔을 때 맞이하러 나와, 서로의 생존에 안도하며 끌어안고 오열한다.[19] 그로부터 5년쯤 뒤 송하 땅에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20][21]

4. 특이사항

롱희와 더불어서 십여 년이 지난 후인데도 전혀 늙지 않는 모습으로 나온다. 머리 모양도 과거 때보다 더 소녀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롱희는 '가능'이라고 부르고(아마 본명인 '가능사락'을 줄여 부르는 것) 운이나 롱희궁 사람들은 직위가 아니라 '교응님'이라고 부른다.

성빈시절부터 의복이나 머리 장식 어딘가에 꼭 청록색이 들어가있으며 롱희궁에서 성빈에게 선물을 보낼 때도 청록색 보자기로 포장을 했다. 이 때문에 청록색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의견이 있었는데, 과거 아니타국 시절 등장한 피묻은 장식품이 청록색 바탕에 물고기 문양이 있었고[22] 교응 또한 그 때부터 청록색과 연보라색 조합에 황금 장식과 물고기 문양으로 치장한 걸 봐서는 개인의 취향을 논하기 이전에 아니타국 왕족의 상징인 걸로 보인다.

우울증 환자이고 황제의 총애도, 후사도 없는데다 시종들에게까지 무시를 받는 처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벌한 후궁에서 살아남아 빈까지 올라간 걸 보면 눈치나 처세가 보통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23]

경비 일행이 롱희 처소에 연락도 없이 들이닥치자 얼른 운을 불러들여서 위기를 모면한 것도 그렇고, 운의 질문에 사랑이라고 단박에 알아챈 것도 그렇고, 과거에 덕빈이 롱희를 함정에 빠뜨리려하자 갑자기 혜화비 이야기를 꺼내서 언질을 준 것도 그렇고, 자신이 덕빈의 음모에 말려들게 되자 선수를 쳐서 황제에게 밀고를 하여 목숨을 구한 것(심지어 본인에게 돌아온 피해는 고작 1품계 강등+근신 처분이 끝) 등을 보면 눈치나 머리 회전이 만렙.[24] 그리고 성격도 선량하다. 당장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 한 덕빈이 역으로 역공당하자 그녀의 뒤를 쫓아가 '그러니까 안 그랬으면 좋았잖나'라고 하거나 자신에게 울분을 토해내는 덕빈에게 '자네는 그 상처, 남에게 주려하지 않았는가'라고 하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살아생전 덕빈 역시 모든 것을 다 보는 이 성빈을 황후가 가만 둘 것 같냐면서 경고한 적이 있다. 덕빈이 계략을 꾸미는 능력이 모자라서 그렇지, 덕빈 또한 황후가 인정할 정도의 지능은 있다.

이외에 성격이나 태도가 고양이를 닮았다는 평이 있다. 특히 이빨을 드러내며 짖궂은 소악마 분위기를 풍길 땐 정말 인상이 고양이 같아진다(!) 독자들 눈에만 그런 게 아닌지, 덕빈은 성빈이 자기 계획에 따라 주지 않자 '못된 고양이'라고 불렀고, 롱희도 성빈을 보고 고양이를 연상한 적이 있다.

5. 과거

파일:작약만가 불환곡.교응 가능사락.jpg

시즌 3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가능사락은 한때나마[25] 태황의 침공으로 멸망한 아니타국의 왕이었다.[26]

가능이 7살 때, 아니타국의 재상이 반란을 일으켜 가능사락의 부모인 당시 국왕과 국서를 비롯하여[27] 수많은 왕족들을 살해했다. 이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이 틈을 노린 태황이 침공해 왔고, 재상은 항복하는 대가로 자기 목이 날아갈 위기에 처하자 어린 가능을 왕위에 올렸다.[28] 아마도 보통 정복국이 속국을 점령할 땐 원활한 지배를 위해 속국의 당시 지도자의 목부터 먼저 날려버리므로 가능을 왕위에 올림으로써 사실상 바지사장인 가능을 실질적 지배자인 자기 대신 죽어줄 미끼 역할로 쓰려 했던 모양.

태황군은 왕위에 앉은 어린아이를 보고 어이없어하지만[29] 재상은 끝끝내 이것이 자기들의 왕이고, 자기들은 왕명을 따랐을 뿐이라고 우기며 가능사락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태황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리 없었기에 결국 재상을 처형했고, 가능사락은 용모가 태황인과 비슷하다는 이유로[30] 공물로 끌고 갔다.[31]

태황의 궁중에 들어서면서 이곳에선 친구도 가족도 없다는 혜화비[32]의 충고를 들었는지 잠시 그녀를 회상하지만[33] 그런 혜화비마저 외로움 속에 죽었다. 혜화비의 충고를 부정하고 싶어하면서 궁에서 살아갔지만 롱희를 만나고 나면서 인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자[34] 롱희 이전에는 혜화비와 우정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희희로 강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장신구에 집착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것을 보고 하녀들이 롱희를 이용해 황제의 총애를 빼앗을 셈이냐고 묻지만 오히려 비웃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바로 다음 화에 밝혀지기로는, 일부러 분수에 맞지 않게 과한 치장을 함으로써 롱희 하나에게 몰리는 어그로를 본인이 나누어 받을 목적이었다고.[35]

6. 기타

불환곡 시즌1 작가후기에 따르면 성빈의 키는 덕빈과 비슷하고 태후보다 크지만 태황사람보다 신장이 큰 롱희와 송하인 시녀들보다는 작다고 하며, 길대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불환곡 시즌2 작가후기에 등장인물들의 복식에 대한 설명이 나왔는데[36] 교응氏의 옷 양식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룬다고 한다. 또 벌레가 나타나면 벌레를 지독하게 무서워하는 롱희에게 보여주면서 괴롭힌다고 한다.[37] 롱희는 운에게 울면서 일러바치며 권력의 쓴맛을 보여주라고 하지만 운은 무슨 상황인지조차 모르는 눈치. 그 대신인지(?) 시녀들이 과일을 깎아줄때면 롱희는 무섭게 웃으면서 성빈에게 강제로 퍼먹인다고 한다(...)

사이가 대놓고 돈독해진 롱희와 달리 덕빈과는 작중 등장 시점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고[38] 최후엔 아예 대립하다 끝났지만 둘 다 궁에서 오래 버틴 짬밥이 있던 탓인지 최후에 약간 걱정하거나 미래에 대해 경고해주는 모습[39]을 보여주는 걸로 봐서 상대 걱정을 아예 안 할 정도로 대립적이기만 한 관계까진 아니었던듯. 그런다고 해서 친해지기도 무리인 관계였지만.

파일:교응악마의미소.jpg
파일:사랑이야!.jpg

희희가 된 이후 성빈 때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술궂은 미소를 보인다.[40] 본인은 엄청 즐거운지 송곳니까지 보일 정도. 대개 어상락을 놀릴 때 "사랑이야!"라고 하면서 이 표정을 짓는데 최근엔 후수와 전거이의 본의 아닌 연애행각(?)을 보고서도 이 미소를 띈다.[41]

이와 같은 행각도 그렇고 연애물을 꽤 좋아하는지 궁중 노래엔 사랑이 없다면서 후수가 데려온 향리에게 사랑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한다.

서리꽃에서의 롱희의 신세를 보면 같은 배를 탄 성빈의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사망플래그가 선 걸로 보인다. 황후가 가만 두지 않을 거라는 덕빈의 예고와 혜화비의 뜻과는 다르게 인의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인성과 롱희를 위해 자신의 직위를 희생한 걸로 보아, 훗날 롱희와 한패로 몰려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성빈으로 복위된 후에도 황자만 있고 빽이 없는 롱희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서, 자신에게 어그로를 끌려고 의도적으로 몸치장을 과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훗날 롱희가 위험해지는 상황에서 자신을 먼저 희생할 것이라고 보는 독자들도 있다.

파일:복귀성빈.png
성빈으로 복권된 이후에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롱희가 일신상의 이유로 성빈과 거리를 두자 이렇게 된 건데[42] 아니타국에서 잠시 왕으로 지내던 때와 덕빈 생전의 성빈 때와 이후 복권 때도 그렇고 뭔가 지위가 올라가면 항상 좋은 일이 없다. 오히려 더 하위계급인 희희로 지냈을 때에 행복했던 걸 생각하면 권력을 가지면 가질 수록 불행해지는 인물로 보인다.[43] 등급이 올라갈수록 정작 운수가 나빠지는 인물이다 운빨 F랭크

시즌 3에서 밝혀진 과거를 보면 삼국지의 후한 최후 황제인 헌제와 유사한 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나라가 혼란한 때에 태어나 유년시절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강제로 지도자의 자리에 앉혀졌으나 제대로 왕이나 황제로 취급받지 못했다는 점 등이 유사하다.[44]

그나마 헌제는 바지사장 취급을 당하다 양위를 하긴 했어도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해코지를 당하지 않고 그럭저럭 의식주는 보장받다 자연사했는데, 성빈은 평온한 자연사는커녕 높은 확률로 롱희 일파의 패배와 엮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의 후궁인지라 이쪽의 어려움이 더 부각된다.[45]

파일:작약만가 불환곡.성빈.쌍어문.jpg
위의 이미지처럼 초반 등장시 하고 있던 어두운 청록색 바탕 위에 금빛 잉어 문양이 새겨진 머리장식의 경우 아니타국의 왕으로 있을 적에도 하고있던 걸 보면 아니타국 왕족들의 머리장식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46] 또 저 금빛 잉어 문양은 서로를 마주보는 구도이며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 여러 국가에서 쓰여온 문양 중 쌍어문(雙魚紋)이라 불리는 문양과 모양이 유사하다.[47]

아무래도 좋을 여담이지만 그녀가 우울증 약을 꾸준히 복용하던 걸로 봐서 태황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보이는 것과는 별개로[48], 정신질환을 보유한 사람들이 복용하거나 증세를 완화시키는 약을 만드는 수준의 의술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아니타국에서 그런 약을 취급했고 성빈이 스스로 제조해서 먹거나 제조법을 의관들에게 알려줘서 그 제조법으로 만든 약을 계속 받아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덤으로 이 우울증 약 때문에 불환곡 초반부에 곤욕을 치를 뻔했다.(...)[49]

황제의 승하 이후 10여년을 넘게 버티며 롱희를 기다렸지만 정작 그녀와 함께 송하로 돌아간지 5년만에 사망했는데, 정황상 롱희와 소거를 두고 혼자만 출궁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울증이 더 심해져 건강이 악화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후수와 전거이가 롱희의 출궁 이후 몇십년 뒤에 죽은 걸 생각하면, 확실히 성빈의 사망 시기는 롱희는 물론 작중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봐도 이르다.

[1] 최후반부에 롱희의 본명인 망모 탄영이 태황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성빈의 본명인 교응 가능사락 역시 태황에 의해 지어진 가짜 이름이라고 추측된다.[2] 희희로 강봉되었을 때 박탈되었다가 빈으로 복권될 때 돌려받음[3] 아니타가 태황에 복속됨으로써 태황인이 되었다.[4] 등장할 때마다 거반 묘하게 울상짓는듯한 표정 + 쳐저보이는 눈매 때문에 전반적으로 뭔가 우울한 일 있는 쳐진 사람처럼 보인다. 입술 색도 꽤 옅고 창백하게 묘사되기도 하고. 그리고 실재로 궁내에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데다가[50] 우울증 약을 먹고 있음이 밝혀졌다. 울적하고 창백한 인상은 아마 이것들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던듯.[5] 본래 교응은 아니타국의 공주였지만 재상이 젋은 왕과 국서를 살해하고 권력을 차지하다 태황에 의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고작 7살이었던 교응을 급하게 왕으로 세운 것이다. 즉 일개 왕녀나 귀족과는 그래도 차원이 다른 신분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빈의 자리에 앉혀준듯. 덤으로 교응의 경우 과거사를 보면 10대 초도 채 안 되던 시절에 볼모로 잡혀 태황 생활을 한걸로 보이는데, 짬밥도 제법 있다는 뜻이 되기에 그간 다른 품계에 있다가 (더 나중에 들어온 후궁들 눈에는 좀 빠르게) 빈으로 승급했을 가능성도 보인다.[6] 태황의 적통 공주인 길선공주도 롱희를 망국 공물따위라고 비난하다가 옆에 있는 성빈을 의식하며 말실수했음을 깨닫고 눈치를 볼 정도인데,[51] 정작 미천한 시녀들은 자기네 주인인 성빈 앞에서 롱희를 욕한답시고 점령국 출신임을 강조하며 같은 신세인 성빈의 심기를 건드린다. 달리 보자면 시녀들의 경우 그 정도로 모면적인 언행을 늘어놔도 성빈이 자기들을 어쩌지 않으리라는걸 잘 알고 저런다는 말이 된다(...)[7] 패전국 출신이기에 덕빈을 경계할 가능성이 있다. 솔직히 성빈 본인도 패전국 출신인데, 다른 패전국 출신 롱희를 욕하고 조롱하는 덕빈의 말이 곱게 들릴 리가 없다. 게다가 덕빈의 친정은 패전국에서 끌고 나온 노비 장사로 돈을 번 집안이라는 궁녀들의 증언이 나온다.[8] 원래도 항우울제 등 정신질환을 지닌 환자들에게 복용하는 약은 일반인들이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약들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성빈이 먹던 그 약이 태자 봉림에게 이상사태를 발생시킨 약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 약을 봉림이 먹은 간식에 넣은 것은 아무리봐도 덕빈.[9] 성빈은 우울증이 심한 편이라 그동안 자기 처소에서 칩거했던 것 같은데, 작 초반에서 롱희에게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그리고 봉오제 사건에서도 롱희를 연회 자리에 붙잡아두려는 덕빈을 저지한 것도 성빈. 덕빈의 말에 의하면 봉오제에서 성빈이 계속 혜화비 이야기를 꺼낸 것도 롱희에게 '누군가가 누명을 씌우려 하고 있다'고 에둘러 경고해준 것이라고 한다.[10] 애초에 성빈은 지금까지 권력에 욕심 없이 조용히 살던 사람이다. 그리고 '감시 병력이 붙은 채 근신'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게 보면 황후나 길선재보 등 강한 세력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호위 병력이 붙은 채 처소에 칩거'할 수 있다는 뜻이니.[11] 정확한 대사는 "오해 마시오, 다 나 살자고 그런 것이니까.... (롱희의 대사) ...이 세상에는 구원자는 없고 정의는 요원해서, 살아 생전에 이 눈으로 그것을 보고 싶었을 뿐이오." 여기에서 "구원자는 없고 정의는 요원하다"는 말을 하며 아마도 다른 이에게서 들은 듯한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누구 하나 이런 입장, 이런 몸으로 태어나길 바란 적이 없는데, 정작 이 세상은 원망스럽게도.... 옛날 이야기 같은 구원자는 없고 정의도 없어서....' 정황상 이 말을 한 사람은 혜화비일 가능성이 높다.[12] 이 장면에서 롱희는 성빈을 '가능'이라 부르는데, 아마 본명인 '가능사락'을 줄여 부르는 것 같다. 법도가 엄격한 궁궐에서 이름을 부를만큼 두 사람이 친밀해졌다는 뜻이기도.[13] 식사하기 전, 채려가 자신을 의심하고 밀어내는 운에게 계속 '오목눈이(작은 새의 일종)'라고 비아냥 대는걸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어상락에게도 오목눈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기도 했고.[14] 웃긴건 후수 본인은 자신을 찾아다니는 전 거이를 응원하는 시녀들을 보며 모조리 엮어서 교응님께 일러바쳐 피의 제재를 받게 하겠다며 다짐했는데, 정작 후수를 전 거이에게 일러바친 건 교응 본인이다(...).[15] 2기 후기에서도 나온 장면도 그렇고, 평소 몸사리기를 하며 심약한 모습만 보여서 그렇지 롱희의 본성도 은근 여왕님 기질일 가능성이 높다.[16] 성빈은 이전부터 자기 궁 하인들에게 무시당하는 입장이었다. 존중해주는 쪽은 오히려 롱희궁 하인들 뿐. 한성질 하는 후수조차도 자신을 놀리는 사람들에게 성빈에게 고자질해서 피의 제재를 불러버리겠다고 하거나 향리를 데려왔을 때도 롱희와는 달리 성빈은 여차하면 그냥 슥삭해버릴 거라면서 그 쪽 방향으로 인정사정 안 봐주는 성품으로 여겼던 듯. 1부에서 성빈의 노예들을 다 갈아치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을 보아 노예나 시녀들을 주기적으로 갈아치우는 모양이다.[17] 거세당한 수퇘지 조림으로 여자를 여럿 갈아치워도 후사를 보지 못한 방씨 문중을 조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18] 명예에 누가 된다는 채려의 말에 나라도 없고 가족도 없고 궁녀보다 불행한 신세라는 성빈의 대답이나 1황자가 와도 의미가 없다는 말에서 성빈에게 롱희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절절하게 느껴진다[19]서리꽃 닫는 문에서 소거가 언급한 '외숙모'는 성빈이었다. 스바타는 롱희의 사촌이니 소거에게는 5촌 외당숙이 되며, 그의 배우자가 된 성빈은 5촌 외숙모가 된다.[20] 스바타와의 사이에서도 아이를 갖지 않았다면 아니타 왕가의 혈통은 성빈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멸문되었을 것이다. 만약 스바타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보았다면 그 아이는 아니타 왕가와 송하 왕가의 혼혈이다. 양친이 모두 각국의 왕족이라는 것과 두 나라의 사회적 특성을 고려하면 성빈의 아이가 어느 쪽의 성을 받게 될지는 불분명하다.[21] 다만 2황자가 즉위하고 리빈이 황후가 될 때까지 십여년을 롱희가 무사히 출궁하여 다시 만나기만을 기다렸건만 정작 재회한 지 고작 5년만에 사망한 것을 보면, 향리에게 한 말처럼 롱희는 황궁에 남아 온갖 고초를 겪게 되었는데 자기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기존의 울증이 더욱 악화되어 건강을 해치면서 일찍 사망했다는 추측이 있다. 황궁에서 쫒겨난 뒤 머물게 된 처소부터가 롱희의 조국인 송하였고 그녀의 친척들과도 함께 살았으니 롱희가 더욱 그리웠을 것이다.[22] 살해당한 왕의 것으로 보인다.[23] 당장 황제의 장자를 낳은 롱희도 후사를 하나 더 낳고서야 빈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출신 성분도 짬밥도 롱희와 비슷하고[52] 황자는 커녕 황녀 하나 낳지 못한 성빈이 롱희보다 먼저 빈까지 올라간 걸 보면...[24] 다만 덕빈이 자기 약을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가만 있었을 거라고 한다.[25] 한때나마라고 나와있긴 하지만 가능사락이 강제로 왕위에 오르게 된지 얼마 안 가 태황이 침공하고 나라가 망했으니 그 기간이 아무리 길다 해도 1년도 채 못 넘겼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26] 아니타 출신이라는 떡밥은 이전에도 몇 번 나온 적이 있었다.[27] 시즌3 후기에서 태황 주변국의 복장을 소개할 때, 아니타 왕 복장(女,男)이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여자만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송하와 남자만 황위에 오를 수 있는 태황과 달리, 아니타는 여자, 남자를 따지지 않고 맏이계승 혹은 적합한 자를 후계로 삼아 계승했던 듯 하다.[28] 다른 왕족들은 이미 재상 본인이 다 죽여 버려서, 남은 게 7살짜리 왕녀였던 가능사락 하나뿐이었다. 다른 왕족들을 다 죽였는데도 구태여 가능만 살려둔 걸로 볼 때 원래 아니타국의 후계자였던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오빠나 언니였을 것이고, 가능은 계승권이 별로 높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가능의 어머니는 아니타의 왕이였지만 아버지가 국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서녀일 가능성도 있다.[29] 보통 지나치게 어린 아이가 왕위나 황위를 물려받는다는건 선대가 너무 일찍 죽었거나 정치적 이유 등으로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왕위나 황위에 앉혀진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게 삼국지에 나오는 후한 마지막 황제였던 헌제. 헌제의 경우 성빈이 왕위에 올려진 나이인 7살에서 겨우 1살 더 많은 8살의 나이에 동탁 때문에 강제로 황위에 앉혀진 케이스다.[30] 태황인은 흑발이 많은데 아마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꼭 머리색 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이목구비 자체가 태황인과 비슷했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베일 밖으로 드러난 하관만 보고도 태황인과 비슷하다고 판단한걸 보면...[31] 정황상 당시 가능이 너무 어린아이였는데다 무력한 왕이라는 입장이 합쳐져서 죽이는 대신 공물로 끌고간듯. 가능이 아마 나이를 더 먹어 실권을 휘두를만한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상황이었다면 재상을 죽게 해도 가능을 구심점으로 아니타국 사람들이 다시 뭉칠 가능성이 있기에 재상과 가능 모두 그 자리에서 태황 군사들에게 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32] 과거 몇 번 언급된 이미 죽은 후궁 중 하나. 언급으로 보건데 다른 약하고 기댈 데 없는 후궁들을 챙겨줬지만 끝내 살아남지 못하고 죽은 모양. 성빈이 혜화비는 인의를 못 보고 죽었다는 투의 말을 한 걸 보면 혜화비의 경우 본인이 잘못했다기보단 누군가의 모함이나 정치적 이유, 혹은 아들 출산 문제(작중 기형아를 낳은 후궁은 아이를 죽이기를 택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죽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아이를 차마 포기 못할 정도로 인간적인 사람이라면 어찌될지...) 등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당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혜화비와 관한 사건에 수많은 비빈들이 갈려나갔다는 말도 나온 걸로 봐서 단순한 아들 출산 문제같은 이유가 사망 원인이 아닌, 뭔가 황실 내명부에 있어서 복잡하고 위중한 모종의 사건이 그녀의 사망 원인으로 보인다.[33] 성빈은 종종 혜화비를 떠올리는데 이를 볼 때 어릴 적에 끌려와서 측근 하나 없던 성빈에게 그나마 잘 해주던 후궁이 혜화비였던 걸로 보인다.[34] 성빈도 롱희를 구해줄 당시 나 살자고 한 일이었다고 회피하지만 롱희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자 그녀와 우정을 쌓기로 마음 먹은 걸로 보인다.[35] 이것이 밝혀지기 이전에도 이미 '정말로 롱희를 이용해 총애를 뺏어 올 목적은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 하는 의견이 주류였다. 가능은 빈으로 있는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느라 대외 활동도 안 하고 총애도 욕심내지 않고 조용히 처박혀 살았는데, 희희로 강등됐지만 롱희와 친해진 이후 오히려 생기를 얻고 자기 표현이 많아졌다. 가능에게 후궁 품계니 황제의 총애니 하는 것 따위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53] 그런 그가 이제 와서 어줍잖게 총애를 노리고 의수를 쓰려 한다면 도리어 더 이상한 일이었다.[36] 황후 숙정씨는 태황 중앙의 정복을 입기도 하지만 북방 출신이라서 북방 양식의 옷을 입을 때도 많은데 북방 복식의 가장 큰 특징이 목을 감싸는 옷깃이다.(차이나 칼라와 비슷하다) 길선공주나 오륜공주는 황족이니까 태황 중앙 양식으로 입고, 덕빈이나 경비는 중앙 출신은 아니지만 권세가 중앙의 명문가 못지않고 태황 황실과의 친화도도 높아서 중앙 양식으로 입는다. 롱희는 외국 출신이므로 자기 궁에 있을 때는 모국 양식으로 입는다. 태황 중앙의 복식은 당나라 복식처럼 가슴에서 발 아래까지 내려가는 아주 긴 길이에 허리의 실루엣을 드러내지 않는 치마가 특징인데, 롱희의 사복은 상의와 하의가 따로 있다.[37] 1기에서는 내내 침울한 모습만 보여줬지만 2기에서는 밝고 짓궂은 모습을 많이 보이는 걸 봐서, 1기에서의 모습은 우울증 때문이고 원래는 제법 짓궂은 성격이 아니었을까 싶다.[38] 성빈 입장에서는 덕빈이 노예상으로 부를 축적한 가문 출신에 이를 별로 문제시삼지 않고, 거기에 더해 친하지도 않으면서 자길 이용하려고 자꾸 치근덕대던 것, 마지막으로 기어이 자기를 연루시킨 것 때문에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덕빈 역시 성빈을 걱정한다기보단 딸 소의에 대한 일과 황후에의 복수에 마침 연루시킬 용도로 성빈을 이용한 것이었다.[39] 성빈은 덕빈에게 그러니 일 안 벌렸으면 좋았지 않냐고 말했는데 꾸짖기보단 조금 걱정하는듯이 '왜 가만히 있음 무사할거 이리 일을 키워서 나쁜 꼴을 당했느냐' 하는 투고 덕빈도 성빈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구태여 경고를 해줄 필요는 없음에도) 혜화비 일을 기억하라며 성빈의 미래에 대해 행동 조심하라는 암시성 경고를 남기기도 했다.[40] 과거엔 우울증 약을 꾸준히 복용할 정도로 정서적으로 심하게 침체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요새는 그런게 많이 풀어진 모양. 이를 볼 때 우울증의 수준이 심한 건 아니고[54] 상황이 좋아지면 차차 나아지는 경미 우울 수준에서 그쳤던 것으로 보인다.[41] 어상락이 녹두병을 가져와서 뭔지도 모르고 그냥 맛있어 보이니까 둘이 나눠먹는데 사실 이 녹두병은 서민들이 청혼용으로 나눠먹는 과자다.[42] 당연히 주수, 후수나 전거이, 어상락 등과도 멀어졌을 것이다. 모두 롱희와 1황자 쪽 부하들이니.[43] 본인도 역시 태황의 사정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태정군을 몰라보는 걸 보면 경비 강씨라는 변수가 있더라도 처세술과는 별도로 인맥적으로 좋은 상황이 아니다.[44] 헌제의 경우 아직 정식 후한 황제의 직위에 앉아있을 때도 (명목상이긴 하나) 신하였던 조조에게 대놓고 무시를 당했으며 결국 황제로써 더 아랫사람(조비)에게 황위를 이양하기까지 했고 성빈의 경우 자기 측 시녀들도 없어서 태황이 그녀에게 배정해준 태황 시녀들에게 툭하면 무시당하는 등 롱희파를 제외하면 측근조차 없는 비참한 신세다.[45] 특히 성빈의 경우 이전에 롱희를 편들어줬고 최근에는 후수가 데려온 노기 소년인 향리를 숨겨준 전적이 있기에[55] 황후 일파에게 이걸로 덜미를 잡힐 가능성이 높아보여 이를 우려하는 독자들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행위 모두 성빈의 인의와 인간성을 추구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행위인데 이게 정작 자기 발목을 걸고 넘어질 상황이 되었다는 것(...) 이거 외에도 성빈의 경우 과거 아니타국의 왕이자 그나마 남은 마지막 왕족이기도 한데 그런 그녀가 현재 태황에 후궁 겸 볼모로 있는 신세니 아니타국 쪽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다 보기도 힘들며[56] 위기시에 자기 나라의 지원을 받기도 롱희보다도 더 힘들어보인다(...)[57][46] 아니타국의 선대 왕과 국서(여왕의 남편)가 살해당했다는 언급과 함께 지나가듯이 성빈의 머리장식과 똑같은 모양에 똑같은 문양까지 그려진 머리장식이 땅에 대충 놓여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볼 때 아니타국 왕족 전통 머리장식이 저런 형태이며, 두 마리 잉어 문양이 아니타국의 상징 중 하나일 수도 있다.[47] 이 쌍어문의 기원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서로 마주보거나 붙어있는 두 물고기는 두 개의 강(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관련깊은 티그리스 강유프라테스 강)에 빗대어졌다. 참고로 이게 여기저기 퍼져나가면서 중국, 인도, 우리나라 등에서도 볼 수 있는 서로 마주보는 쌍어의 형상을 취한 문양으로 정립되었다. 성빈이 여러 나라가 뒤섞인듯한 분위기를 지닌 가상국가 아니타국 출신임을 고려해보면 중동, 동남아, 동북아 모두에 쓰인 쌍어문 문양의 머리장식을 다는 채로 등장한게 단순한 디자인 이유는 아닐지도...?[48] 이는 불환곡 시절 황제의 장녀 겸 첫 아이인 소의공주의 작중 취급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49] 우울증 약을 덕빈이 훔쳐가서 롱희를 모함하려는 음모에 이용하는 바람에 자칫 범인으로 몰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