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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7:38:22

셰릴 샌드버그


<colbgcolor=#333><colcolor=#fff> 셰릴 샌드버그
Sheryl Kara Sandberg
파일:85C49FA4-3E0E-44E0-8097-FE44E5C2B076.jpg
출생 1969년 8월 28일 ([age(1969-08-28)]세)
미국 워싱턴 D.C.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기업인, 자선사업가
현직 LeanIn.Org[1] (의장 / 2013년~ )
경력 세계은행 (RA / 1991~1993년)
맥킨지&컴퍼니 (경영 컨설턴트 / 1995~1996년)
미국 재무부 (수석보좌관 / 1996~2000년)
구글 (글로벌 온라인 판매 및 운영 VP / 2001~2008년)
메타 (COO / 2008~2022년)
메타 (사내이사 / 2012~2024년)
학력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 학사)(1987~1991년)
하버드 대학교 (MBA)(1993~1995년)
재산 18억 달러[2] (2023년 9월 / 포브스)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LinkedIn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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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기업인, 메타의 전직 최고운영책임자.

2. 생애

대학교수였던 모친과 안과의사였던 부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때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이사갔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학창시절 내내 학업 성적이 우수할 뿐 아니라 전교 회장과 전국 고교생 대표로 활동할 정도로 리더십과 적극적인 대외활동 면에서도 빼어났다.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후에는 4년 내내 학우들을 대상으로 에어로빅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최우등으로 학사를 졸업[3]한 이후 세계은행에서 RA로 근무하며 개발도상국 국가의 헬스케어에 대하여 분석했다.

이후 하버드 경영대학원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MBA 학위를 땄다.# 맥킨지&컴퍼니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1996년에 하버드대 경제학과 시절 지도교수이자 멘토였던 로렌스 서머스미국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그의 밑에서 수석보좌관으로 일했다.

2001년에는 에릭 슈밋과의 연을 통해 구글에 입사하였다. 구글에서 샌드버그는 영업 및 경영개발 팀에서 디지털 광고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내는 데 기여했다. 샌드버그의 합류 이후 구글의 규모는 네 배로 커졌다. 이후 그녀는 COO를 희망했으나, 이미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에릭 슈미트의 삼두정치인 구글에서 샌드버그가 새로운 역할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샌드버그는 자신이 비중 있는 역할을 만들 수 있는 회사를 찾았고, 2008년에 마크 저커버그로부터 막대한 권한을 보장받으며 페이스북에 합류하였다.[4] 저커버그가 제품 개발과 대외홍보 역할을 맡았다면 샌드버그는 사내 운영 등을 비롯하여 영업, 정책, 홍보, 로비, 법률 등 비엔지니어링 분야 대부분의 결정권을 쥔 총괄자가 되어 2인 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페이스북의 성장세는 상당했지만 여전히 적자 상태였는데, 샌드버그는 구글에서 하던 것처럼 광고사업 모델을 만드는 데 주력하여 2009년 9월에 페이스북을 흑자로 전환시키고 COO로 승진했다.

2010년 TED 강연[5]이 유명세를 탄 이후 '여성의 커리어'를 주제로 삼아 '린 인'이라는 책을 썼는데, 출시 반 년만에 백만 부 판매를 넘기며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한다.[6]

2017년에는 '옵션 B'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반 년만에 300만 부 가까이 판매하며 더 많은 판매 부수를 올렸다.

2022년 6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올 가을 입사 14년만에 메타COO 자리에서 사임 할 것을 밝혔다.[7]

2024년 1월 17일, 오는 5월부로 메타 이사회에서도 추가 연임 신청 없이 퇴임한다고 밝혔다. 이로서 메타와의 공식적인 동행이 종료되었다.

3. 여담


[1] 커뮤니티, 교육, 모임 등을 지원하며 여성들의 성취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이다.[2] 메타 지분 0.06%에 해당되는 4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3] 로렌스 서머스의 지도 하에 금전적 압박을 받는 여성이 배우자의 학대를 더욱 오래 감수한다는 내용의 연구를 졸업 논문으로 발표했다. <경제적 요인과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4] 페이스북 입사 전 워싱턴 포스트의 임원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가정 유지 및 남편의 일자리로 인해 캘리포니아를 떠나지 않는 결정을 했다.[5] [6] 뉴욕타임스에서 그녀가 평범한 여성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수퍼리치 기업인 점을 들어 여성들의 삶보다는 본인 PR에만 관심이 있다는 내용의 서평 기사와 칼럼을 내보내며 갈등이 있기도 했다.[7] 저커버그의 엔지니어링과 샌드버그의 비엔지니어링으로 귀결되는 이분법적 2인 체제로 인해 조직 내에서 상당한 불협화음과 비효율성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8] 서베이몽키의 창업자이자, 샌드버그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다.[9] 저커버그 전기에 의하면 남편 사망 이후 그녀의 경영 능력이 예전만하지 못해지고 본인 PR에만 집착하고 관료주의적 마인드가 심해졌다는 직원들의 증언을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