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퀄리아
Sony QUALIA
1. 개요
소니 퀄리아(Qualia)는 2003년 6월 10일 소니에서 발표한 소니 전자제품 중 하이엔드 고급 제품 브랜드명이다.2003년 소니 그룹 창업자 중 하나인 이부카 마사루의 사위였던 이데이 노부유키 CEO가 소니 브랜드의 고급화를 위해서 야심차게 발표했었다. 10여년 후 LG전자의 LG 시그니처를 통한 브랜드 고급화 전략과 상당히 유사하다.
목적은 전자제품으로서 "고객에게 폭넓은 감동을 선사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최고급의 당시 소니 전자제품 기술력을 과시하고 최고의 품질로 제작하여 한 때 전자제품 분야에서 세계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던 소니의 위상을 찾고자 한다는 이데이 노부유키 CEO의 자신만만한 인터뷰도 있었다.
2. 소개
소니 퀄리아가 발매되기 직전은 굉장히 소니에게 시기가 좋지 않았었다.이유는 2003년 4월 24일 희대의 소니의 추락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을 이를 "소니 쇼크"라고 부를 정도로 큰 사건으로 여겼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소니는 전전 분기에 비해서 영업 이익이 1,854억 4,000만엔으로 38% 증가했으나 그러나 이것은 소니 본사의 예상에 비해서 무려 1,000억엔이나 밑도는 수치였다.
사유는 바로 평면 텔레비전 분야에서 소니는 당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PDP 텔레비전과 LCD 텔레비전 개발에 노력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2003년 당시 평면 텔레비전 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던 샤프와 삼성에 비해서 소니는 연구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시대에 뒤진 브라운관 텔레비전 개발에 노력하고 있어 소비자가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시장에선 점차 SDTV를 넘어 HDTV 시대를 대비해서 대형화에 트랜드를 잡고자 했으나 일본 대부분 전자업체들은 이에 신경쓰지 않아서 샤프와 파나소닉 같은 회사도 이후 일본 전자사업의 몰락기를 걷게 되는 가장 큰 문제가 제기된 시기이기도 하다.소니는 2003년 4월 25일 이에 시장에서 예상 영업이익에 비해 전분기보다 1,300억엔이나 낮은 이익 감소 전망을 발표했다. 이는 30%나 낮아진 금액이었고 당시 도쿄의 주식 시장에는 소니 주식 매물이 쇄도하고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무려 하루 만에 500엔이나 낮아진 3,220엔을 기록했다. 그 후 주말을 지나서 2003년 4월 28일 월요일 주식 시장이 열리자마자 소니 주가는 2,720엔까지 떨어지는 사상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 전자제품의 명가라고 불리며 일본 전자업계를 주도했던 소니가 추락한다 여기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소니 본사에서는 뭔가 이 심각한 사태를 반전시킬 새로운 변혁이 필요하다고 여겨서 다양한 안을 내놓았다.
그 때 나온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이 퀄리아 브랜드의 런칭이었다.
퀄리아 브랜드는 대대적으로 고급 브랜드를 지향했고, 이데이 노부유키 CEO는 본사 직원들을 불러서 전자제품에 있어서 샤넬과 같은 고급스러움과 뱅앤올릅슨 같은 최고급 브랜드의 지향을 목표로 하라고 기술진들에게 요구했으며 이 때문에 2년 정도의 개발기간을 거쳤다고 당시 전자제품 잡지들에 인터뷰를 기고하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소니에서는 당시 최고의 기술력을 사용해서 2003년 6월 24일 두 개의 제품을 발표했다. 그 두 제품은 퀄리아 015와 퀄리아 016 이었는데, 퀄리아 015는 36인치의 트리니트론 CRT이며, 퀄리아 016의 경우 모든 모듈을 분리해낸 디지털 카메라였다. 이 제품들은 전화로 본사에 주문하거나 혹은 인터넷 소니 스타일 홈페이지 접속으로 예약 후 도쿄에 위치한 소니 빌딩에서 구입하거나 오사카에 위치한 소니 타워 혹은 소니 쇼룸에서 구입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처음 발표된 소니 퀄리아 015와 016은 매우 지독한 혹평을 받아야했다. 첫 번째로 퀄리아 015의 문제를 들 수 있었다. 우선 너무나 높은 가격이 문제였다. 퀄리아 015는 일본 정가로 84만엔이었다. 미국 소니 스타일에서는 이후 1만1천달러에 판매되는 초고가의 제품이었다. (물론 소니 스타일 USA에서는 다른 악세사리 역시 함께 동봉해서 일괄적으로 판매하기는 하였으나 그 것이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전용 스탠드는 21만엔이고 전용 스피커는 31만5천엔으로 별도로 판매되었다.
그러나 퀄리아 015는 이를 필요하지 않다고 살 수 없는 제품이 아니었다. 본체 Q015-KX36의 경우 무려 96kg의 무게를 자랑하는 아주 무거운 모니터였다. 스탠드를 비싼 가격 때문에 사지 않고는 고정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제품이었고 실용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제품으로 판매된 것이다. 전용 스피커까지 탑재하면 무게가 110kg에 육박하는 매우 무거운 제품이었다. 2014년 현재 해당 블로그가 지오시티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접속이 불가능하지만 이 무게 때문에 책상이 파손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시물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제품이 무게로 욕을 먹을 제품은 아니었다. 당시 소니의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기에 트리니트론 CRT에서 문제가 간간히 발생되던 댐퍼와이어가 보여지는 문제를 미묘하게 개선한 장점은 있었다. (트리니트론 모니터는 댐퍼 와이어가 픽셀 정렬을 위해서 필수였다.) 그리고 당대 다른 최고급 모니터들에 비해서 검은색과 붉은색의 표현이 좋았다는 덕분에 전문가용으로 수요가 어느 정도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초기에는 약간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높은 가격은 퀄리아 015의 문제로 인해 소니는 지나칠 정도로 비판을 받고 결국 2003년 10월 1일부터 모니터만 단품으로 판매했으나 여전히 문제였다.
퀄리아 시리즈는 두 번째로 퀄리아 016의 개념없는 성능이 문제였다. 위에서 퀄리아 016은 디지털 카메라라고 밝혔는데 200만 화소짜리 디지털 카메라였다. 2003년 6월 당시 일본 시장에서는 이미 핸드폰에 100만 화소 내지 130만 화소 카메라가 내장되었으며, 타사의 중고급기 라인업은 300만 화소 이상의 제품이 주류로서, 500만 화소 고급 제품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이 당시 소형 CCD 센서가 아닌 대형 CCD 센서가 내장된 고급 제품들이 서서히 나와서 현재까지 많은 유저들이 명기라고 여기는 제품들이 소니 본사는 물론 니콘, 캐논 같은 경쟁사에서 빠르게 대처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소니는 2000년에 발매된 소니 사이버샷 U 시리즈를 기반으로 본 제품을 개발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비록 퀄리아 016은 고급제품을 꿈꿨기에 사이버샷 U처럼 조악한 내장 플래쉬 대신 외장 플래쉬 모듈, 줌이 안 되고 광각의 성능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광각, 망원 렌즈 모듈을 칼 짜이즈 바리오 조나 렌즈를 사용해서 고급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했고 사이버샷 U 시리즈가 배터리가 매우 사용시간이 짧다는 것에 착안해서 추가 배터리 모듈도 제공했었다. 여기에 0.55인치의 18만 화소 터치 LCD 스크린을 제공해서 사용성 편의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높은 가격이 문제였다. 무려 39만9천엔이었기 때문이다. 이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는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이나 2003년 11월 29일에 니콘이 발표한 프레스급 DSLR이었던 D2H의 정가는 49만엔이었다. 너무나도 비싼 가격에 역시 비판이 아주 심각했다. 당시 40만엔이면 CCD 센서도 훨씬 크고 화소도 훨씬 높고 화질도 더 높은 제품을 살 수 있었으며 센서 크기도 1/1.6" 대의 고급 제품들이 널려있는데 1/2.7" CCD 센서의 200만 화소 카메라를 팔았다는 점은 분명 큰 문제였다. 높은 가격에 걸맞게 악세사리를 많이 주겠다는 느낌인지 전용 배터리도 3개가 제공되고, 후드 커버와 64MB의 메모리까지 동봉했으나 그래도 40만엔이라는 가치는 절대 할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비싼 가격에 비해서 퀄리아 016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는데 판매된 제품들의 액정에 색번짐 현상이 발생하고 작동 오류가 발생했으며, 외장 플래쉬 모듈은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소니에서는 시중에 판매하지 않고 최고급의 가치를 지닌 최고급 제품으로서 판매하겠다는 퀄리아 016의 판매전략 때문에 굉장히 많은 비판을 받아야했다. 소니는 그 대신 서둘러 그 때까지 판매된 133대의 퀄리아 016 제품 구매자들을 위해 각각의 고객 자택에 내방해서 100% 무상 AS 처리를 해주는 파격적인 처리를 했다. 하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퀄리아 브랜드의 비판이 더욱 더 커지고 있었다.
3. 이후 진행
소니는 시작부터 악재와 마르고 닳도록 비판을 받았음에도 굴복하지 않고 차기 제품을 곧장 발표했다.이후 발표된 제품은 2003년 8월 1일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한 풀HD 해상도를 지원하는 LCD 프로젝터인 퀄리아 004를 발표했다. 이는 최초의 풀HD를 지원하는 프로젝터로 HDMI 입력도 되는 최고급의 제품이었다. 고휘도의 제논 램프를 사용한 덕분에 매우 밝고 선명한 영상을 띄울 수 있다고 호평은 받았으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가격은 무려 252만엔으로서 최초의 풀HD LCD 프로젝터로서는 기록될만 했으나 실재로 이를 구입한 곳은 매우 희귀했다고 한다. 사유는 매우 높은 가격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인터넷 자료로는 IBM, Sun 같은 일부 회사가 구입해갔다는 기록이 있으나 공식 기록은 아니다. 소니는 그 때는 이 제품의 해외 판매를 하지 않았다고 부정하였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1080p 프레그레시브가 아닌 1080i만을 지원하고[1] 480p,480i 세 가지만 지원되는 점은 당시 초고가의 제품이라는 것에 비해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후 소니는 가격을 매우 낮추고 1080p 프로그레시브도 지원되는 브라비아 프로젝터를 2005년 12월 10일에 136만5천엔이라는 가격에 발매했다. 때문에 퀄리아 004는 판매율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장점이라면 이 높은 가격에 걸맞게 설치 작업과 영상 출력 설정 등에 있어서 철저한 관리를 제공했다는 것 뿐이었다.
소니는 같은 해 2003년 8월 11일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한 SACD 플레이어인 퀄리아 007을 발표했다. 이 제품은 독특하게도 소니 퀄리아 라인업 중에서 비판이 가장 적은 제품으로 많은 유저들이 기억하는데 그 이유는 가격에 비해 성능이 워낙이나 출중한 덕분이었다. 물론 퀄리아라는 브랜드에 걸맞게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SACD 플레이어는 80만엔에 전용 스피커 시스템이 70만엔이었으나, Hi-Fi 업계에서 150만엔 정도는 비싸긴 하나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고는 절대 이야기할 수가 없다. 더욱 더 비싼 제품이 널려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판이 적었고 성능 역시 매우 출중했기 때문에 극도로 높은 호평을 받았다. 당시 스테레오 사운드 같은 자국 잡지는 자국 오디오 잡지라고 해서 이를 호평한 것이 아닌 전문가들의 가청 및 전문장비 계측을 통한 실재 성능으로 매우 가격 대 성능비가 극도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본체 Q007-SCD 뱅 앤 올룹슨의 CDP처럼 CD를 넣으면 내부에서 CD를 끌어서 가져가는 자동 디스크 로딩 시스템이 탑재되어 매우 멋진 움직임을 보여준다. 소니는 본체에 S-Master 음향 시스템을 탑재하고 추가로 6옴에서 채널별로 100W의 출력을 보여준 고효율 파워 엠프도 탑재되어 있어서 효율이 매우 높았다. 이 내장 파워 엠프는 전용의 스피커가 아니라 타사의 스피커를 물려도 구동이 매우 깔끔하게 이뤄지는 압도적 성능 덕분에 극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SACD 플레이어와 + 프리/파워가 합쳐진 인티엠프 세트라고 생각하면 80만엔이 비싼 가격으로 여겨지지 않는 하이엔드 제품으로 역시 음향기기 업계에서 소니의 부활이라는 극찬을 받은 것이다.
직접 보자.
그리고 세트로 판매되는 전용 스피커인 Q007-SSS가 2014년 현재 동급 크기의 스피커에서 아직까지도 최고의 호평을 받는 최고급 스피커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소니가 그 이전에도 고급 스피커를 잘 만드는 회사이긴 했으나 퀄리아 007의 경우는 스피커에 유례없는 물량 투자를 했다. 12cm의 아라미드 콘 우퍼와 2.5cm의 탄소섬유와 흑연 복합 재질의 트위터를 탑재하고 무려 6개의 2cm 사이즈의 탄소섬유 나노튜브 흑연 복합 재질 슈퍼 트위터가 내장되어서 70kHz까지 재생이 가능하다고 밝혔는데 실재로도 잡지에서의 주파수를 통한 필드 테스트에서도 전 대역에서 여타 100만엔 대 Hi-Fi 스피커에 뒤지지 않는 최고급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잡지 그래프는 저작권법에 의해 온라인상에 무단으로 배포할 수가 없음을 스테레오 사운드 본사에 이메일 문의와 한국 출판 저작권을 가진 미디어대중에게 전화 통화로 확인하였음.)
퀄리아 007의 아주 호의적인 평가로 퀄리아 시리즈는 전자제품 업계에서 고급스러운 브랜드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4. 몰락의 시작
하지만 2004년 4월 24일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한 차기 퀄리아 라인업은 매우 실망스러운 제품을 다시 내기 시작했다.바로 소니의 재생 전용 MD 플레이어인 퀄리아 017을 발매한 것이었다. 물론 황동을 깎아내서 팔라듐 도금을 해낸 매우 고급스러운 외관을 지닌 제품이었다. 본체에 금 혹은 은을 도금해서 구입할 수도 있었으나 역시 추가금을 내야만 했고, 재생 전용 플레이어 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은 무려 18만9천엔의 초고가였다. 첨언으로 MD미디어 는 재생 전용 플레이어에서는 녹음이 아예 불가능하고 녹음이 되는 데크 혹은 포터블 녹음 MD 레코더 제품을 별도로 구입해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당시 소니는 MD가 점점 하향세를 걷기 시작했음을 느꼈음에도 이러한 제품을 냈기에 다시 심각한 혹평과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소니는 2004년 1월 8일부터 1GB 미디어를 사용하는 Hi-MD 기술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MD 미디어는 1992년 발표 당시 177MB의 용량이었고 이후 305MB 미디어까지 나오면서 광 미디어로서는 결코 시대상으로 뒤떨어지는 제품은 아니었으나, 퀄리아 017이 나온 시대가 2004년이라는 것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대작인 애플 아이팟이 발매되어 MP3 플레이어가 활개를 치던 시기였다. 일본에 아이팟 미니는 2004년 1월 6일에 발매해 매우 높은 판매율을 보였으며 용량 역시 마이크로드라이브를 사용했기 때문에 4GB 용량으로 압도적인 용량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소니는 최고급 제품이라면서 고작 305MB MD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일반 MD 플레이어를 낸 셈이었기에 이 당시 비판은 아직까지도 일본 및 세계 각지 인터넷 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퀄리아 017은 2002년 11월 10일에 발매된 소니의 재생전용 MD였던 MZ-E10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제품은 MD 미디어 발매 10주년 기념으로 나왔기에 마그네슘 합금으로 제작되었고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초박형 최경량 MD 재생전용 기기로 남았다. 이 제품의 단점을 그대로 계승해서 나온 것도 문제였다. 이 제품 역시 2002년 제품이었기에 일반 MD였으며, 본체에 액정이 없었고, HOLD 스위치로 본체 작동을 HOLD 시킬 경우 리모콘으로만 작동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제품 재질 덕분에 비해서 흠집도 잘 나는 것이 흠이었다.
그런데 퀄리아 017은 이 제품보다 오히려 비싸졌음에도 퇴화한 모습을 보이고만다. 고급스러움을 지향했기 때문에 크기는 커졌고 무게도 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리모콘 역시 기존의 플라스틱 제품이 아닌 직조 케이블에 알루미늄을 사용한 금속제 리모콘을 동봉했기에 플라스틱 리모콘 처럼 옷에 고정할 수 있는 핀을 꼽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퀄리아 유저들은 개목걸이같이 리모콘을 매달아서 무겁게 목에 매달고 써야하는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결국 이 제품은 판매종료 때까지 고작 300대가 약간 넘는 수가 팔리는 희대의 삽질로 기록되어 버리고 말았다. 진정한 퀄리아 라인업의 흑역사가 되어버린 대표적인 제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2004년 7월 1일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한 퀄리아 010 헤드폰이 발매되었다.
주문자의 머리 크기를 측정해서 맞춤형으로 헤어밴드가 제작되고 천연 가죽을 사용하고 안락하고 가벼운 착용감과 사람의 가청 주파수를 뛰어넘는 5Hz 부터 120kHz 까지를 재생할 수 있는 SACD의 미디어 지원 규격에 맞는 최고급 헤드폰으로 발표되었다. 가격 역시 26만2,500엔이라는 매우 높은 가격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비판의 대상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소니는 1988년 36만엔의 최고급 헤드폰의 전설로 여겨지는 MDR-R10이라는 제품을 발매했던 적이 있었다. 일본 버블 경제 때 당시를 보여준다 싶을 정도로 소니의 음향 기술력과 아낌없는 물량투자에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깎아서 장인이 수작업으로 옻칠까지 해서 만드는 희대의 고급 헤드폰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퀄리아 010은 이에 비해서 소리 성향도 달라지고 플러그와 재질, 가죽 패드 등에 물량 투자를 했다 발표했으나 MDR-R10에 비해서는 수준이 떨어져서 이에 비판을 많이 받았다. 또한 2004년 12월 10일 소니는 고급 헤드폰으로 MDR-SA5000이라는 제품을 발표했는데 일본 인터넷에서는 소니 퀄리아 매장에서 들어본 것과 이 제품이 소리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쓰레드가 많이 올라오며 병림픽을 반복하는 일이 잦았다. 차후 일본 유저들이 이 제품과 함께 저가형 제품인 MDR-SA3000과 퀄리아까지 세 개 제품을 모두 뜯어보고 진동판을 비교해보고 몇 년후 퀄리아010 개발에도 담당한 기술자가 진동판이 100% 동일한 제품을 최고 기술자가 검수해서 S급만을 퀄리아에 탑재하고 급이 떨어지는 것은 MDR-SA5000, SA3000으로 나눠서 제작했다는 인터뷰 역시 일본 인터넷 상에 나옴에 따라 다시 한 번 비판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2004년 말이 되어가는 2004년 11월 20일, 퀄리아 005가 발표된다.
이는 당시 소니 평판 텔레비전 개발에 다소 미진한 문제로 인해 자체 개발이 아닌 필립스 루미넨즈(Lumileds) LED 백라이트를 약 400개를 박아 제작되었다. 2008년 남짓에 이르러 일반인 대상으로도 LED 텔레비전이 대중적으로 판매되었기 때문에 2004년 당시 의미는 높았으나 단점이 많았다. 우선 발열이 가장 큰 문제였다. 최고급 제품이라는 가치에 걸맞지 않게 PDP 텔레비전보다 훨씬 발열이 심해서 벽지가 상한다는 이야기도 초기 제품에는 나왔을 정도였다. 화질을 샤프나 삼성의 당시 제품보다 압도하는 강점은 있었다고 격찬을 받았으나, 잔상에 심지어 번인마저 발생한다는 보고가 들어와 이를 초기에 구입한 77개의 각 가정마다 내방하여 무상 AS를 실시해 다시 한 번 퀄리아 016에 이어 조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품의 특징 상 발생하지 말아야 할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다시 한 번 비판받아야 했던 이유이다.
그리고 다시 비판받은 이유는 110만2500엔의 46인치 제품만이 풀HD였고, 84만엔의 40인치 제품은 1366 x 768 해상도로 구별했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은 부분은 그저 튜너가 두 개라 어떤 방송에도 대응이 가능했다는 점이고, 퀄리아 015 모니터가 HDMI도 없이 고작 컴포넌트 단자와 컴포지트만 지원했다는 것이 악평이었기에 HDMI 입력을 지원하는 텔레비전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기가 없었던 탓에 소니 전용매장이 아니라 전문 가전제품 매장에도 물량을 풀어서 판매해야 했던 안타까운 퀄리아 모델이 되었다.
5. 몰락
퀄리아 라인업은 여태까지 읽어오면 알 수 있겠지만 격찬받은 라인업이 단 한 개 뿐이었다.그 외에는 모두 비판이 가득했으며, 높은 가격이 문제였으며, 높은 가격에 비해서 퀄리티가 떨어지는 일도 발생했었다는 점이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때문에 2005년 초 퀄리아는 약간 방향을 선회해서 기존의 제품은 판매를 지속하나 2005년은 비디오와 영상쪽에 좀 더 강화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나온 제품이 2005년 1월 29일부터 판매를 시작한 퀄리아 001이었다. 비디오 프로세서라고 밝히고 있고,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는 단순 업 컨버터이다. 가격은 역시 퀄리아 답게 52만5천엔이었다. 하지만 역시 문제가 많았다. 여태까지 시대의 판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이 비싸디 비싼 가격에 비해 성능과 단자가 매우 부족한 반쪽짜리 제품이 나온 것이었다. 퀄리아 005에서 그나마 호평을 받았던 HDMI 입력을 제외하고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지원 역시 빠진 것이었다. 오로지 아날로그 입력만을 지원하는 괴작이 나온 것이다. 컴포지트와 컨포넌트 입력만 가능했으며 본사 퀄리아 개발팀과 임원급에서 미래를 보고 프로그레시브 지원과 튜너의 내장을 필요로 요구했으나 어째서인지 탑재되지 않고 무시된채로 발매되었음에서 이 제품의 문제를 볼 수가 있었다. 결국 1080i만이 한계인 이 제품의 판매율은 미진하다 못해 외면당하는 최악의 퀄리아 제품이 되었다. 정확한 개수 역시 알 수 없이 총 59대 정도가 판매되었다고 알려져있다.
그 다음에 나온 제품은 2005년 3월 15일에 발표된 리어 프로젝션 텔레비전인 퀄리아 006이 발매되었다. 특이점으로는 2004년 9월 9일에 베가 브랜드로 북미 시장에서 70인치대의 제품이 나왔었다. 외관 역시 판박이에 가까워서 로고만 베가냐 퀄리아냐 차이에 가격도 1만 달러 근접이었는데 퀄리아가 같은 시기에 1만5천 달러로 발매해 또 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말았다. 소니 영상 기술의 극에 다다른 하이엔드 제품으로 빠른 응답속도, 높은 퀄리티, 훌륭한 색감에 명암비까지 지원하고 퀄리아 005에 호평받은 듀얼 튜너로 어떤 방송에도 대응이 되고 램프 역시 당시 가장 고급의 것을 사용해서 밝은 화면까지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뒤늦게 발매해서도 가격은 168만엔에 스탠드도 21만엔에 판매되고 퀄리아 제품의 고급 램프에는 없는 베가 제품 램프의 수은 성분이 환경에 유해하다는 비판만 제외하면 훨씬 저렴하고 동급이라고 봐도 무방한 고성능 때문에 자사의 브랜드에 팀킬당한 케이스가 되었다. 결국 소니는 리어 프로젝션 텔레비전 시장에서도 지속적인 실패가 이어지고 시대는 이미 더 이상 리어 프로젝션 같은 부피도 크고 구시대의 두꺼운 방식을 원하지 않고 LCD 텔레비전과 PDP 텔레비전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2008년 3월에 소니는 이 리어 프로젝션의 방식을 영원히 철수하게 되고, 이 때까지 퀄리아 브랜드의 리어 프로젝션 텔레비전은 끝끝내 베가의 판매율에 다가서기는 커녕 1/100 수준도 못되는 실패를 겪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제품은 2005년 4월 21일에 발표된 퀄리아 002 캠코더였다. 59만8500엔이라는 가격에 나왔으나 약 7만엔에 해당되는 고수준의 마이크를 탑재하고 렌즈를 제작할 때 칼 짜이즈 재팬이 아닌 본사에서 제작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2004년 10월에 발매된 기반이 된 HDR-FX1 캠코더보다 10만이나 더 비싸고 렌즈의 왜곡률과 수준도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가 없었다는 이유로 혹평과 함께 극도로 낮은 판매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결국 퀄리아 시리즈는 점차 하락세와 함께 소비자의 외면, 시장의 외면을 걷게 되었다.
6. 최후
결국 퀄리아 라인업은 2005년 6월 22일 발매한지 3주년을 앞두고 퀄리아 라인업의 전체적인 개발 중단이 발표되었다.고작 2년 동안 10개의 제품을 낸 것도 기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소니 본사에 많은 손해와 많은 이미지 훼손마저 일으킨 명품 브랜드 도약의 몰락이었다.
이와 함께 소니 그룹 전체에 사업 부진을 사유로 이데이 노부유키 CEO는 퇴임을 요구받았다. 그 후 소니 그룹의 CEO로 하워드 스트링거가 올라오면서 파란 눈의 외국계 CEO가 창사 이래로 최초로 그룹 전체의 수장으로 올라온다고 하여 마치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또 다시 외국인의 침략이냐고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으나 이미 소니 내부 사정은 창사 이후로 가장 심각한 수준이 시작되었기에 임원급의 반대와 본사 전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워드 스트링거 사장이 CEO로 승진하였으며 곧장 돈이 안 되는 사업들의 대대적인 대숙청 작업이 시작되었다. 수 많은 돈 안 되는 브랜드들이 차례로 사라져 갔으며 침체된 많은 제품들의 변화가 요구되는 때가 왔던 것이다. 문제는 이때 중요한 것까지 숙청 했다는거다.
퀄리아 브랜드와 사업 역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2006년 1월 26일, 소니는 퀄리아 브랜드를 공식적으로 종료시키게 되었다. 물론 소니 측에서는 결코 퀄리아 시리즈가 부질없는 일은 아니었다고 애써 체면을 세우고자 했으나 시장에서는 이미 가격만 쓸데없이 비싸고 처참할 정도로 실패한 괴작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물론 퀄리아 시리즈가 유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은 아니었다. 퀄리아 005, 퀄리아 006은 결코 무의미한 제품은 아니었다. 소니가 당시 샤프와 삼성보다 꽤 심각하게 기술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다른 일본 유명 회사들도 이 때 삽질을 심하게 해서 몰락하게 된 것과는 다르게 최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기술 반영을 시켰기 때문에 베가 이후의 브라비아 시스템을 냈을 때 타사보다는 좀 더 버틸 수 있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다. 퀄리아 017의 경우는 번들로 MDR-EXQ1이란 커널형 이어폰이 있었는데 이 당시 연구했던 기술진들은 이전에 나왔던 MDR-EX50과 같은 제품들이 저역대만 부스트되고 고역대가 약한 저렴한 소리를 내주는 것이 단점 그 자체로 소니 커널형 이어폰들은 매우 성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던 시기였다. MDR-E888 같은 제품들이 호평을 받기는 하나 이런 제품들은 오픈 에어 타입의 개방형 이어폰으로 당시 국내에서도 슈어 등지에서 BA(Balanced Armature) 기반의 이어폰이 삼아무역을 통해 수입되기 시작해서 최고급 커널형 제품들이 공식으로 프로 업계 유저만이 아닌 일반 유저들을 대상으로 시판되었기에 소니의 커널형 이어폰 제품들은 비판의 시기가 꽤 길었다.
그러나 소니는 이후 반밀폐 커널형 이어폰 MDR-EX90과 밀폐형 커널형 MDR-EX700과 같은 플래그십 제품을 내며 커널형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2014년 현재 소니 이어폰 사업은 가격에 비해 매우 높은 성능을 보여주는 저가형 제품들도 많고 고급 제품들 역시 진동판과 BA를 하이브리드로 사용하는 제품도 효율적 성능을 보여 호평을 받고있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해외 웹진은 퀄리아 음향 시스템 쪽에서는 그렇게 덧없는 일은 아니었다고 재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퀄리아 007은 지금까지도 명기로 불리고 중고로도 매우 높은 가격을 받고 판매된다. 그리고 이 당시 개발된 기술을 기반으로 소니는 하이엔드 스피커 쪽에 기술이 매우 발전한 계기도 된다. 소니는 한국 내에서 Hi-Fi 스피커가 잘 보이질 않아서 제작하지 않는 것 같으나 의외로 매우 비싼 제품들을 자국 및 북미 시장 쪽에 시판하고 있다. 이 제품들은 언제나 평균은 가볍게 뛰어넘는 최고급 스피커들이다. 소니 음향기술의 극을 찍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가격도 100만엔이 넘는 고가 제품들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은 상당히 시간이 지나고 다시 재평가된 것일뿐, 2003년 발표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으며 브랜드를 종료할 때까지 소니의 흑역사였다. 전자제품 시장의 불황과 본사의 상황, 그리고 시장 트랜드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막무가내 도전으로 돈을 허공에 뿌린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 퀄리아 라인업은 공식적으로 완전히 생산종료 되었으며, 시판되었던 북미 시장에서도 AS가 불가능하여 일본 본사에서만 제한적 AS가 가능하다. 당시 소니는 최소 10년은 제품의 안정적 AS를 지원한다고 했으나 실재로 2010년 즈음에 퀄리아 005 같은 경우 패널 AS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며 퀄리아 017 같은 MD 플레이어의 경우 전용 MD 드라이브 모터가 단종된 탓에 대체 부품으로 AS를 진행받았다는 일본 웹의 게시글도 있다. 현재는 구입하기도 비싸고 중고가 역시 퀄리아 010 헤드폰 같은 제품은 1만 달러가 넘어가는 가격에 거래된 경우도 있다. 아직 프로 시장을 대상으로 퀄리아 002와 015같은 특수 제품은 중고 제품을 일부 구입할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소니는 더이상 고가의 음향기기 제품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되었으며 합리적인 가격에서 합리적인 성능을 추구하는 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음향기기시장이 미친듯이 성장하게 되면서 다시금 소니는 퀄리아에 버금가는 고가 제품인 시그니처 시리즈 MDR-Z1R 헤드폰과 NW-WM1Z 워크맨, TA-ZH1ES 앰프를 발매하면서 가능성을 보았고 천만원에 가까운 제품인 DMP-Z1 앰프+플레이어 등을 발매하는등 다시한번 퀄리아급에 도전하고 있다.
(제품 라인업은 위키페디아와 본사 홈페이지 참고를 했으나 세월 탓에 북미 페이지는 없어진 곳도 있습니다.)
7. 퀄리아 제품 라인업 소개
- QUALIA 001
출시일 | 2005년 1월 29일 | 분류 | 비디오 프로세서 | 구성 | 본체 단품 |
일본가격 | 정가 52만5,000엔 | 북미가격 | 정가 5,080달러 | ||
모델명 | Q001-CD01 |
- QUALIA 002
출시일 | 2005년 4월 21일 | 분류 | HDV 비디오 캠코더 | 구성 | 본체 및 악세사리 |
일본가격 | 정가 59만8,500엔 | 북미가격 | 정가 5,800달러 | ||
모델명 | Q002-HDR1 | 부가 악세사리 | ECM-672(마이크 / 정가 6만9,195엔) |
- QUALIA 004
출시일 | 2003년 8월 1일 | 분류 | 풀HD LCD 프로젝터 | 구성 | 본체 및 악세사리 |
일본가격 | 정가 252만엔 | 북미가격 | 정가 2만5,000달러 | ||
모델명 | Q004-R1 | 부가 악세사리 | PSS-100(스탠드 / 정가 10만5,000엔) |
- QUALIA 005
출시일 | 2004년 11월 20일 | 분류 | 풀HD LCD[2] 텔레비전 | 구성 | 본체 및 악세사리 |
일본가격 | 정가 110만2,500엔(46인치) | 북미가격 | 정가 1만달러 | ||
일본가격 | 정가 84만엔(40인치) | 북미가격 | 미확인 | ||
모델명 | KDX-46Q005(46인치) / KDX-40Q005(40인치) | ||||
부가 악세사리1 | SU-XFQ005(거실용 스탠드 / 정가 31만5,000엔) | ||||
부가 악세사리2 | SU-XWQ005(벽걸이 스탠드 / 정가 8만4,000엔) | ||||
부가 악세사리3 | SU-XTQ005(탁상용 스탠드 / 정가 5만2,500엔) | ||||
부가 악세사리4 | WMC-X10(전용 테이블 / 정가 5만2,500엔) |
- QUALIA 006
출시일 | 2005년 3월 15일 | 분류 | 풀HD 리어 프로젝션 텔레비전 | 구성 | 본체 및 악세사리 |
일본가격 | 정가 168만엔 | 북미가격 | 정가 1만5,000달러 | ||
모델명 | KDS-70Q006 | ||||
부가 악세사리1 | SU-SX10(전용 스탠드 / 정가 21만엔) | ||||
부가 악세사리2 | XL-5000(교체용 램프 / 정가 3만1,500엔) |
- QUALIA 007
출시일 | 2003년 8월 11일 | 분류 | SACD플레이어 시스템 | 구성 | 본체 및 스피커 |
일본가격 | 정가 80만엔 (본체) | 북미가격 | 6,700달러 (본체) | ||
일본가격 | 정가 70만엔 (스피커) | 북미가격 | 미확인(스피커) | ||
모델명 | Q007-SCD(본체), Q007-SSS(스피커) |
- QUALIA 010
출시일 | 2004년 7월 1일 | 분류 | 헤드폰 | 구성 | 본체 및 악세사리 |
일본가격 | 정가 26만2,500엔 | 북미가격 | 정가 2,400달러 | ||
부가 악세사리 | 스탠드 (동봉) | ||||
모델명 | Q010-MDR1 |
- QUALIA 015
출시일 | 2003년 6월 24일 | 분류 | 모니터 | 구성 | 본체 및 악세사리 |
일본가격 | 정가 84만엔 | 북미가격 | 1만1,000달러 | ||
부가 악세사리1 | SS-Q015(전용 스피커 / 정가 21만엔) | ||||
부가 악세사리2 | SU-Q015(전용 스탠드 / 정가 31만5,000엔) | ||||
모델명 | Q015-KX36 |
- QUALIA 016
출시일 | 2003년 6월 24일 | 분류 | 디지털 카메라 | 구성 | 본체 및 악세사리 |
일본가격 | 정가 39만9,000엔 | 북미가격 | 4,000달러 | ||
부가 악세사리1 | WE-NP1(추가 배터리, 본체 3개 번들제공, 정가 1만500엔) | ||||
부가 악세사리2 | WE-AC2(추가 충전기, 본체 1개 번들제공, 정가 1만2,600엔) | ||||
모델명 | Q016-WE1 |
- QUALIA 017
출시일 | 2004년 4월 24일 | 분류 | 휴대용 미니 디스크플레이어 | 구성 | 본체 및 악세사리 |
일본가격 | 정가 18만9,000엔 | 북미가격 | 1,700달러 | ||
부가 악세사리 | MDR-EXQ1(별매함, 본체 1개 번들제공, 정가 2만1,000엔) | ||||
모델명 | Q017-MD1 |
8. 외부 링크
[1] 단, 약 3천달러를 지불하고 1080p60 입력이 가능하도록 하는 업그레이드 옵션을 제공하였다. 이 와중에 끝까지 1080p24 입력은 안 되었다.[2] 백라이트는 LED이다. 사실상 최초의 상업용 LED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