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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10:23:05

손수(서진)


1. 개요2. 생애

1. 개요

孫秀[1]
(? ~ 301년)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준충(俊忠). 조왕 사마륜의 부하로 갖은 모략을 써서 사마륜을 역적으로 만든 원흉이다. 하나 더하자면 갑질의 희생양에서 갑질의 무지막지한 가해자로 흑화한 인물. 그리고 그렇게 그의 명을 재촉했다.

2. 생애

그의 집안은 대대로 오두미도를 신봉했다고 하며, 서주 낭야 사람으로 낭야태수 반비 휘하에서 하급 관리로 일했지만, 반비의 아들이었던 반악이 손수를 여러 번 발로 차면서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아 손수는 반악에게 원한을 품었는데, 반악이 태위연에 임명된 것이 278년이었기에 적어도 278년 이전의 일인 것으로 보인다.

사마륜의 총애를 받았고 296년에 서쪽에서 저족강족이 일어나자 옹주자사 혜계와 군사적인 문제로 다투어 서로 조정에 표문을 올렸는데, 이 일로 인해 구양견이 사마륜의 죄악을 표문에 올려 관우 지역을 소란스럽게 여긴다고 해 사마륜이 소환되었다. 해계, 해결 등이 손수를 죽여 저족, 강족에게 본보기를 보인다고 청했으며, 장화가 이를 보고하면서 시행여부를 묻자 사마융이 이를 허락했다. 사실상 손수의 목숨은 죽은 목숨이었는데, 하지만 신염이 저족과 강족이 스스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손수의 죄가 아니라고 설득해 손수를 죽이는 것을 거뒀다.

가남풍이 정치를 전횡하고 300년에 태자 사마휼을 폐위하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는데, 손수는 사람을 시켜 어떤 사람이 황후를 폐위시키고 태자를 세우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가남풍이 사람을 시켜 사마휼을 살해하게 했다. 사마륜이 사마경과 연합해 가남풍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자 손수는 개인적으로 원한을 품던 장화, 배외, 해계, 해결 등을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2] 그가 두예의 아들 두석과 교유할 것을 구했는데 두석이 거절하므로 손수는 비록 이를 증오했으나 명망이 높은 것을 꺼려 감히 해치지는 못했다.

사마륜이 정권을 장악했지만 용렬하고 어리석었기 때문에 손수가 사마륜을 통제했으며, 손수는 큰 군에 책봉되고 중서령에 임명되었다. 천하 사람들은 모두 손수를 섬겼고 사마륜에게 찾으려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손수는 사마윤의 병권을 빼앗기 위해 가을 8월에 사마윤을 태위에 임명했고 사람을 파견해서 사마윤을 압박하고 사마윤 휘하의 관리들을 체포하면서 사마윤이 조서를 거부했다는 불경죄로 사마윤을 탄핵했다.

사마윤이 이에 반발해 군사를 일으켰다가 패하자 손수는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었던 석숭, 반악, 구양건 등을 체포해 죽였는데, 석숭의 첩인 녹주를 탐내 그에게 달라고 한 적이 있었지만 거절당하자 원한을 품게 되었다. 석숭을 죽게 만들었지만 녹주는 자살했고 손수는 하는 수 없이 석숭의 재산만 빼앗았다. 손수는 사마륜에게 구석을 더해줄 것을 논의하게 했으며, 사마륜이 구석을 받게 되자 손수는 시중, 보국장군, 상국사마에 임명되면서 예전처럼 우솔은 그대로 두었다. 손수는 자신의 아들 손회에게 혜제의 딸인 하동공주를 모시고 살게 했으며, 손기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손기의 외손녀인 양헌용을 황후로 세우게 했다.

손수는 조정의 정권을 전적으로 잡아 사마륜이 내보내는 조령을 손수가 고쳐서 집어넣거나 뺐으며, 자신이 조서를 쓰기도 하고 아침에 시행한 일을 저녁에 고치기도 했다. 장림이 사마과에게 몰래 편지를 보내 권력을 전횡하니 죽여야 한다고 보냈는데, 사마과가 사마륜에게 보여주고 손수는 사마륜에게 그 편지를 받자 장림을 잡아들여 삼족을 다 죽일 것을 권고했다. 야심이 컸던 사마륜은 손수의 말만 듣고 황제 사마충을 옥좌에서 끌어내려 스스로 황제를 자처하지만 팔왕의 난에서 제왕 사마경, 성도왕 사마영 등에게 패했고 이후 손수는 사마륜과 함께 그대로 참형에 처해졌다.

그의 후손으로 손은이 있었으며, 이 사람도 난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가 패하고 자살했다.


[1] 한자는 동시대 인물이던 동오의 전장군 손수와 동일하다.[2] 이때 해결의 딸이 마침 시집을 가던 참이었기에 당시의 법률에 의하면 연좌를 피할 수 있었지만 해결의 딸은 집안이 온통 참화를 입었는데 자신만 살 수는 없다며 스스로 죽기를 자청해 형장에 끌려가 참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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