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 손종의 아들에 대한 내용은 손정 문서 참고하십시오.
孫丁
(? ~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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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중국 오호십육국시대의 전연의 인물.2. 생애
285년 모용외가 부여를 공격해 그 왕(의려왕)을 자살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부여의 수도까지 평정해 만 여명의 포로를 잡아 돌아가는 피해를 입으면서 부여가 일시적으로 멸망했으며, 286년 의려왕의 아들 의라왕이 부여에서 예전 나라를 회복하기를 원해 서진의 동이교위 하감(何龕)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진무제 사마염의 명으로 하감이 독우 가침(賈沈)[1]을 파병했다.진나라가 부여의 왕을 다시 세우려고 하면서 손정은 모용외의 명령을 받아 기병을 이끌고 공격했지만 가침이 요격하자 손정은 패하고 전사했으며, 이로 인해 부여국이 회복되었다.
3. 대중 매체에서의 손정
소설 고구려의 등장인물(최비 진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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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균 | 장통 | 구명 | 원영 | 고연굉 | |
육경 | 안저 | 진욱 | }}}}}}}}}}}}}}} |
김진명의 대하소설 '고구려'에서는 손호의 먼 손자뻘이 되는 인물로 나이는 어렸지만 문무를 고루 갖춘 명장으로 최비가 거둬서 군략을 가르쳐 배움이 누구보다 빨랐으며, 현도군의 태수에 앉혔다고 한다. 이후 평주군의 선봉이었던 안저가 중상을 입었는데, 진욱은 안저를 대신해 평주군의 선봉을 맏았다. 그러자 손정이 진욱에게 명을 내렸는데
우측 봉우리에 봉화가 오르면 적은 물러설 것이고, 좌측 봉우리에 봉화가 오르면 적은 진군할 것이오. 봉화 한 개는 느린 움직임이고 봉화 두 개는 빠른 움직임이오. 그것을 명심하되 장군은 적을 넓게 보지 말고 눈 앞에 한 무리만 보시오.
진욱이 당황하며 묻자 손정이 대답했다.
고구려군은 다섯 무리로 나누어 각기 따로 움직이고 있소. 싸움은 오로지 선두에 나선 무리만 하는 것이니, 장군은 그 변화에 현혹되지 말고 처음 선두를 맡은 무리만 쫓되 반드시 봉화의 신호를 따르시오.
진욱은 이후 이 말을 새겨듣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1] 발음에 따라 가심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