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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10-22 13: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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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나라 초대 국왕 문명(文命) 로마 왕국 초대 국왕 로물루스 고구려 초대 국왕 추모(鄒牟)
군왕은 백성이 함께 하면 편안하고 백성이 도와주면 강성하며, 백성이 반대하면 위태로워지고 백성이 등을 돌리면 멸망한다.
(百姓與之卽安 輔之則强 非之則危 背之則亡)
전한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
1. 개요2. 호칭3. 왕국의 국가원수인 국왕4. 나라의 군주가 작위로서 주는 제후왕
4.1. 한국 왕조4.2. 일본 왕조4.3. 중국 왕조4.4. 유럽 왕조
5. 동아시아 왕조의 왕작 제도6. 곤충에서의 왕7. 창작물에서 왕인 캐릭터8. 관련 문서

1. 개요



고대부터 현재까지 한 나라의 군주. 임금을 뜻하는 한자다. 갑골문에선 王은 아래 변이 넓고 위는 도끼 모양을 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선 도끼는 권력을 상징했기 때문에 도끼를 권력자의 상징으로 썼다. 이외에도 갑골문의 모양 해석에는 몇몇 이설이 있는데[1], 대표적으로 중국 한나라시대의 학자인 허신(許愼)은 갑골문을 보지 못했기에 전서(篆書) 등 이미 원형에서 많이 변형된 후세의 자체만 보고 하늘과 사람 사이(二)의 중간에 위치하여(一) 하늘과 백성을 연결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하늘의 명으로 만민을 통치하는 존재라고 풀이했다. 갑골문을 찾기 전까지는 이 허신의 해석이 널리 쓰였으나 갑골문이 나와 그 진짜 의미가 드러났다. 즉 "권력을 가진 높은 분"이라는 뜻.

추가로 원래 한자 문화권의 전통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따위의 "~~의 신"이란 개념은 '신'이 아니라 '왕'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듯하다. 우라노스의 이름을 딴 행성을 천성으로(해왕성, 명왕성 등도 같다.) 번역했다.

원래 한자 신(神)은 영어의 God보다는 Ghost에 가까운 개념이다. 명나라 때 중국에 입국한 가톨릭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교의 절대자를 신으로 번역하지 않고, 천주로 번역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물론 신(神)이라는 글자에 God의 의미도 없지는 않았지만, 유일신 종교의 절대자 뉘앙스는 절대로 아니었고 애니미즘적인 정령, 산신 등에 쓰는 말이었다. 당장 민간에서 제사를 지낼 적에도 조상의 자리를 위라고 부른다. 한자에서 절대자의 뉘앙스를 가지는 말은 천(天)이나 제(帝)이지 신(神)은 아니다.

2. 호칭

한국의 역사에선 왕을 뜻하는 고유의 일반명사들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국가 호칭
고조선 단군
고구려 개차(皆次)
백제 건길지, 어라하
신라 거서간(居西干)
차차웅(次次雄)
이사금(尼師今)
마립간(麻立干)
매금(寐錦)[2]
가야 한기(旱岐)[3]
발해 가독부(可毒夫)

이런 칭호들은 중국식 표현인 왕(王)이라는 칭호가 일반화 되면서[4] 신라 중대(통일신라), 고려 시대부터는 왕 칭호만 쓰게 되었다.

해외에서의 왕을 뜻하는 일반명사는 다음과 같다.
국가 호칭
영미권
프랑스 루아
독일 쾨니히
네덜란드 코닝
이탈리아
스페인 레이
포르투갈 헤이
러시아, 불가리아 차르
페르시아
이집트 파라오
에티오피아 느구스
오스만 제국 술탄
일본 덴노
그리스 바실라스
인도 라자
조지아 메페
부탄 드루크걀포
몽골
아랍 말리크
필리핀 다투
스와질랜드 응웬야마
자세한 내용은 군주의 칭호 문서 참고.

3. 왕국의 국가원수인 국왕

일반적인 정의는 왕국의 군주. 보통 목차보면 알 수 있듯이 '국왕'이라고 칭한다. 훌륭한 업적을 세우면 대왕이라고 부른다. 유럽 역사에서 "대왕"은 위대한 왕을 부를때 쓰는 단어일 뿐이었지만, 한국사에선 위대한 왕을 부를 때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주의 칭호가 "대왕"인 경우가 많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고려, 조선 왕조가 "대왕"을 자국 군주의 정식 칭호로 사용했고, 신라와 백제 역시 자국의 임금의 정식 칭호를 "대왕"이라고 했다.

황제의 개념이 여러 왕국들이 부대껴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면서 일종의 대빵을 만든 것처럼, 왕의 개념 역시 일반적으로 여러 부족들이 통합해 여러 부족장들의 수장을 정하게 되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 왕의 권력은 초창기에는 그리 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왕이 여타 부족장이나 귀족들과 대립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면서 차츰 권위 또한 강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왕국이 여럿 남았으며, 대표적인 예로 영국, 스페인, 벨기에, 덴마크,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은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국가이다. 심지어 현대에도 전제군주제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도 일부 있다. 브루나이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가 그 대표적인 예. 반대로 부탄 같이 왕이 직접 국가체제를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국민들은 오히려 전제군주제를 원했는데 '국왕이 명하시니까' 여기에 따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히려 의회가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왕이 사라지더라도 체스판의 왕과 트럼프의 왕 4명, 그리고 영국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세르가 이끄는 장교단의 쿠데타로 쫓겨난 이집트 국왕 파루크가 "20세기에는 각국의 왕실이 사라질 것이나 5명의 왕만은 건재할 것이니 트럼프의 왕 넷과 영국의 왕이다"라고 했다.

자세한 것은 군주 문서를, 정복군주는 정복 문서를 참조.

4. 나라의 군주가 작위로서 주는 제후왕

황제의 아래이면서 대공의 위.

동양에선 명목상으로라도 "천자의 땅을 대여받았기에 그에게 충성해야만하는 제후"의 자리이며 서양에선 봉건제도의 영토 위주 국가 시스템에서 계약직의 최고봉이라 할만 한 자리다.

4.1. 한국 왕조

한국사 왕조들은 연호 사용이나 짐(朕) 등의 제국격 용어 사용, 소극적인 칭제, 혹은 황제에 버금가는 고유의 군주 칭호을 사용하기도 했지만[5] 대부분 "국왕(대왕)"으로 통용되는 칭호를 사용했다. 작위로서 왕을 봉하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봉왕 사례가 각 왕조마다 가끔씩은 있었다.(신라의 갈문왕이라던지) 사실 제후왕도 호칭이 왕이고 그를 봉하는 천자격도 호칭이 왕이라는, 척 봐도 그렇고 실제로도 애매하다. 이게 다 외왕내제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인데 외왕내제라는 개념 자체가 앞뒤가 다른 모호함을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것이다보니..

제후왕 봉작, 타국왕 봉작, 타국왕을 자국 제후왕 취급, 친왕 봉작 네가지 사례가 있다. 그 중 제도적인 면모로 백제의 봉왕 사례가 문헌에 가장 많이 남아있다.

4.2. 일본 왕조

일본에서는 천황의 3세손(증손자)(1947년 이전에는 5세손) 이하의 남자 자손은 왕(王), 여자 자손은 여왕(女王)이라 하며, 중국의 군왕(郡王)과 비슷한 지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1947년 신헌법 시행 이후로는 "왕"은 한 명도 태어나지 않고 있다.

4.3. 중국 왕조

한나라 이래로 황제가 가장 높은 지배자의 명칭으로 굳어진 한자문화권에서 왕은 작위의 일종으로도 활용되었의며 이를 "왕작(王爵)"이라 한다.

유명한 공후백자남의 오등작도 춘추전국시대의 난리판을 거치며 유사한 과정을 통해 왕의 아랫칸에 편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찌어찌 한 시스템에서 위아래로 배치된 계급 비슷하게 되었지만, 이 명칭들은 본래 서로 다른 집단에서 각자들 칭해 쓰던 군주의 다른 말이었다. 고조선만 해도 연나라의 칭왕에 맞서기 전 까지는 대외적인 군주의 명칭이 "후(侯)"였다.

그 이전까지는 왕 아래 제후(公)가 있는 봉건제 국가가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칭왕하는 것은 중원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았다. 즉 이 시기의 왕은 진 이후의 황제와 같은 위치였다. 이후 황제가 등장하기까지 대왕, 태왕, 패왕 등 왕과 차별화하기위한 명칭들도 나타났었다.

왕을 대신해 황제가 등장한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대공 작위를 거의 준 적이 없으므로 작위로서의 왕은 유럽에서 말하는 대공을 대신해서, 위계상 황제공작의 사이에 위치했다. 보통 황제의 가까운 황족에게 "친왕(親王)" 왕작을 줬다. 황제와 혈통상으로는 다소 멀더라도 공적이 높거나 세력이 강성할 경우 경우 군왕(郡王)에 봉했다. 단 청나라 시절 친왕과 군왕은 황제의 친자라도 공이 없으면 할 수 없었다. 방계라도 공을 세우면 가능했다.

물론 한나라 이후 통일왕조의 봉건제도는 유교 윤리상 주나라 제도를 흉내낸 것이기 때문에 분봉받은 왕이 직접 통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절대왕정 시대 유럽의 공작이나 백작들처럼 작위명에 불과했다.

다만 왕이 완전히 허수아비는 아니었다. 다른 작위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왕작은 일단 명목상 제나라, 위나라, 연나라, 순나라, 초나라, 오나라, 촉나라, 진나라 등등 중국의 지역을 구별하는 봉국들의 왕으로써 자체적으로 조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중앙 권력이 강하다면 그냥 지방정부 취급이고 세금 받아먹어서 자기 살림에 보태는 수준에 그치겠지만 중앙 권력이 취약한 상태라면 말이 달라진다. 유방은 왕에 봉한 공신들 중 같은 유씨가 아닌 자들은 끊임없이 찍어내려 노력했고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이 된다면 천하가 그 자를 공격할 것이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하지만 중앙의 통제력이 닿지 않으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조조의 케이스를 보면 스스로 한 황제의 봉신인 위왕을 칭한 뒤 수도를 업으로 옮기고 명목상의 한 조정과는 따로 놀면서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한나라 조정을 쥐고 흔들었다.

일반적으로 한족 왕조의 경우 황태자를 제외한 황제의 아들들, 즉 후계에서 제외된 친자들은 장성하기 전에 각 지역으로 분봉했다. 예외적으로 만력제의 아들 복왕 주상순은 일찍 낙양으로 분봉 받았으나 거의 예외적으로 장성해서도 임지로 보내지 않고 북경에서 끼고 살았다. 만력제가 태창제를 제끼고 황태자로 삼고 싶어한 데서 비롯한다. 이런 예외 이외에는 황자를 분봉했는데 황태자의 저위(儲位)를 방해하지 않고 중앙정계에서 후계다툼을 미리 방지하려고 한것이다.

반면 이민족 왕조인 청나라 시기에는 모든 황족은 북경성 안에서 살아야 했다.[7] 한편 한자문화권의 제국에서는 프린스의 의미와 어느 정도 일치하므로 보통 작위로서의 왕은 영어로 king 대신 prince로 번역한다.

작위인 경우의 '왕'에 경우 일단 다른 모든 신하들보다 작위는 높지만 예우상은 아니다. 분봉받은 왕의 경우 어디까지나 신하이기 때문에 천자의 조정에서의 신하들과 군신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봉건시대 예법의 기준인 주나라 예법은 경대부(천자-제후-대부-사 중에서 천자를 모시는 대부) 중에 삼공의 지위는 가장 높은 작위인 공작과 동급 대우 였고 이하의 벼슬도 직위에 따라 제후들과 매치 되었기 때문에 이후 왕조에서 황제가 분봉할때 작위가 공작 등에서 왕으로 격상되었어도 이같은 예법은 그대로 이어진다.

실질적으로 황제의 친자식이면 신하들보다 끝발은 쎄겠지만 오래된 종친이나 변방의 왕이라면 별 듣보잡한테도 개무시 당할 수 있다. 또한 중앙 관제에 속한다고 지방직은 경대부는 아니고 당나라때 절도사나 명청 시대 순무나 총독들은 제후 취급을 받기도 했다. 순무는 1개 성(省)의 행정관이고 총독은 1~2개 성의 지방행정과 군권까지 주어진다.

4.4. 유럽 왕조

유럽에서는 왕이 작위로 나올 경우가 19세기 이전까지 거의 없다. 황제가 동로마 제국신성로마제국에만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황제는 동양처럼 힘이 있으면 그 어느 누구라도 황제를 칭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유럽 그 자체였던 로마 제국과의 증명된 연계를 통한 정통성이 있어야 했다. 즉 한 지역의 지배자가 아닌 유럽 세계 전체의 지배자다.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의 경우 작위로서 왕을 많이 쓴 편이었다. 일단 다음 황제로 선출된 자에겐 로마왕이란 작위를 주었고 황제를 선출할 권한이 있는 선제후들 중 한 명은 보헤미아왕이었다. 보헤미아 왕은 황제의 신하이기도 하지만 신성로마제국과는 이질적인 독립된 지방이 신성로마제국에 복속되어 보헤미아 공작으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황제에게 왕의 칭호를 수여받았기 때문에 때문에 작위로서의 왕과 군주로서의 왕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동로마 제국같은 경우 바실레우스 아래에 데스포티스라는 작위가 있어 사실상의 친왕 역할을 했고, 중국 왕조들처럼 데스포티스는 자신만의 번왕국을 가질 수 있었다. 모레아 공국이 그 예이다.

동로마 제국의 계승은 동로마의 마지막 황녀와 결혼한 러시아의 차르가 이어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서유럽에선 무관심이었다. 한 지역의 왕이 황제를 주장하는 꼴이기 때문. 특히 러시아의 경우 로마 제국 시대에는 크림 반도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로마의 강역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리고 이 당시는 러시아가 서구화를 외치며 유럽 세계에 편입되지 않았을 때였다.

영국에서도 대영제국이라지만 영국의 정식 명칭은 대브리튼 연합왕국이지 제국이었던 적이 없다. 유럽 최강국으로 올라서도 왕국에 여러 작위를 합친 군주였고 황제 드립은 무굴 제국을 멸망시키고 버마를 합쳐서 인도 제국을 세워서 '인도 황제'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서 나왔다. 이때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이라거나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하였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황제는 자신의 힘의 총량이 아닌 유럽 그 자체였던 로마 제국과의 증명된 연계를 통한 정통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황제를 자처했을 때 전 유럽에서 광역 어그로를 먹었다.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을 외칠 수 있던 것도 독일 역사에서 독일 1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 작센 왕조의 초대 황제가 오토 1세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그 강한 국력을 가졌을 때에도 황제 드립을 나폴레옹 이전까지는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의 왕은 자기 나라 내에서는 황제와 같다 같은 정신승리적 발언을 했던 것. 이것을 나폴레옹이 깨트리면서 그 때부터 기존 유럽세계의 질서를 깨트리는 흉악한 간웅이라고 생각한 각국과 더 치열하게 싸우게 된다. 장기 중세를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중세의 마지막의 절정기가 바로 이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라고(태동기는 프랑스 혁명, 완성은 1848년의 각국에서 벌어진 운동) 할 정도로 나폴레옹의 행동은 유럽 세계에 속한 국가들에게 기본 질서와 공식, 의식 공격을 하는 초 광역 어그로를 끈 셈.

사실 동아시아의 중화 체제와 달리 유럽에서는 King of만 붙으면 주권국가이자 진정한 왕국으로 인정하기 때문에[8] 별로 허울뿐인 황제 작위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통성이 부족한데 황제를 참칭해봐야 다른 나라 왕귀족들에게 비웃음만 들을 것이 뻔했고, 나폴레옹처럼 황제 참칭을 하다가 망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지만 King(왕)을 작위로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군주가 여왕일 경우 남편에게 주어지는 칭호인데 정식명칭은 King consort다. 유럽에서 여왕왕비를 구분할 때 왕비에게는 Queen뒤에 consort를 붙이는 것과 똑같다. 여왕은 Queen regnant. 사실 군주인 왕도 엄밀히 따지면 King regnant인데 남성인 왕이 워낙 많아서 짧게 King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러나 이런 호칭은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포르투갈) 쪽에서 주로 사용했으며,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였던 메리 여왕의 남편인 헨리 스튜어트 단리의 예처럼 타국에서도 사용되었다. 다른 나라의 여왕의 부군의 경우는 호칭에 인색한 관계로 그냥 Prince consort의 작위를 주었다. 여자 왕의 남편은 한국에서는 부군/국서(國壻)로 번역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부군은 여왕의 남편 뿐만 아니라 남의 남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국서는 여왕의 남편/부마(왕의 사위)의 뜻으로 한정.

5. 동아시아 왕조의 왕작 제도

6. 곤충에서의 왕

수개미는 오직 여왕개미정액셔틀(..)일 뿐인 개미와는 다르게 흰개미는 유시충(생식흰개미) 암수 한쌍이 평생 살면서 아이를 생산한다. 그래서 유시충 수컷을 왕이라고 부른다. 자세한 것은 흰개미 문서를 참조.

7. 창작물에서 왕인 캐릭터

왕/캐릭터 항목 참조.

8. 관련 문서



[1] 사람이 땅 위에 서 있는 모습이라는 설, 士 자의 분화자 설, 土 + 一/上 설 등. 사실 王 자의 음이 도끼의 상형문자인 戉(도끼 월) 자와 음이 멀어서 도끼의 상형자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2] 중원고구려비와 봉평신라비에서 등장. 마립간의 다른 표기로 보기도 한다.[3] 사비회의 당시 참석자 기록을 봐선 가야 안에서 크고 강한 나라의 임금은 왕(王), 작은 나라의 임금을 한기(旱岐)로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4] 왕이라는 칭호자체를 쓰기 시작한건 기원전 4세기 때부터이기는 하다.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게 문제기는 하지만[5] 고구려 태왕(성상), 신라 삼황 혹은 황왕(제왕), 발해 가독부(황상), 고려 황제(광종 시기 및 공식선상이 아닌 기타 재야 문헌 등지) 사용 등.[6] 사후 추증.[7] 청조의 경우 황족포함 모든 만주족이 북경을 포함한 전국 주요 대도시에 소재한 팔기주방 내에서 거주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은 지배민족인 만주족이 한족을 사사로이 괴롭히는것을 막으려는 목적과 한족과 섞여살며 동화되지 않은 팔기의 군사조직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애당초 북경의 옛 '여(呂)'자 모양 성벽중 자금성이 있는 위쪽 작은 직사각형 지역이 만주족 전용 주거지역이었다.[8] 따라서 King in은 일종의 외왕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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