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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22:57:49

어라하

한국사 군주의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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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라하와 건길지
2.1. 어라하2.2. 건길지
3. 기록 관련4. 미디어에서

1. 개요

중국의 사서 《주서》(周書) 등에 보이는 백제에서 사용된 군주의 칭호.

2. 어라하와 건길지

왕성(姓)은 부여씨(夫餘氏)로 ‘어라하'(於羅瑕)라 부르며, 백성들은 ‘건길지'(鞬吉支)라고 부르니 이는 중국어로 모두 '왕'이라는 뜻이다. 왕비는 ‘어륙'(於陸)이라 호칭하니, 중국어로 '왕비'라는 뜻이다.
《주서》(周書) 〈이역열전〉(異域列傳) 백제(白濟)
표기 현대 한국어 발음 중고한어 발음 일본서기》 표기 언어학자 재구
於羅瑕 어라하 'jo la hae オリコケ[1] *eraγa[2] (보빈 2013)#
於陸 어륙 'jo ljuwk ヲルク[3][4] *oluk[5] (보빈 2013)#
鞬吉支 건길지 kjon kjit tsye コニキシ[6] *kən-kici[7] (벤틀리 2000)#

어라하(於羅瑕)는 귀족들 사이에서 불리는 명칭인데 비해, 백성들은 건길지(鞬吉支)라 불러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왕비어륙이라고 불렀는데 ‘어륙’ 또한 지배층인 귀족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이 때문에 백제의 지배층과 백성의 언어가 서로 달랐다는 설이 있다. 백제의 초기 지배층은 고구려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조선도 사대부와 신하들은 주상(主上), 금상(今上), 전하(殿下)라고 부르고 일반 평민, 백성들은 나랏님이나 임금님, 상감마마 같은 식으로 서로 다르게 부른 사례가 있어서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또한 특기할 점은 ~지 계통의 존칭접미사는 고구려(막리지, 하라지 등)부터 가야(한기/간지 등)까지 당시 한반도 전체에서 확인된다는 점에서 반도 일본어설과는 다소 궤를 달리 하는 것으로 보인다.[8][9] 어쩌면 이는 먼저 남하해 삼한을 형성한 바 있는 고조선계(목지국, 건마국 등)의 단어와 뒤늦게 남하한 부여계의 단어의 차이를 드러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계통상으로는 고조선이든 부여든 모두 같은 예맥계로 확인된다.

2.1. 어라하

'하'(瑕)는 '가'(加)와 같으며 가야에서 한번 밖에 보이지 않지만 '기부리지가'(己富利知伽)처럼 쓰이기도 했다. 백제의 지배층이 본래 고구려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구려 귀족의 호칭 '제가(諸加)', '고추가(古雛加)', '상가(相加)' 등과의 연관성이 보인다.[10] 한편 중세 한국어의 '-하'는 체언 뒤에 붙어 대상을 존칭화하는 조사로 '~시여, ~이시여'라는 뜻이다. 예) 님금하 아ᄅᆞ쇼셔/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

'어라'(於羅)는 '어른'과 가까운 의미일 수 있다. 중세 국어 '얼운'은 본래 형용사의 관형사형일 가능성이 있고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을 뜻하는 '어르신'도 주체를 상위화하는 어미 -시-가 붙은 형태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어른'의 어원은 형용사가 아닌, '성관계를 가지다'라는 뜻의 옛말인 동사 '어르다'가 명사화된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경주 알천(閼川)인 아리나례하(阿利那禮河), 알지거서간(閼知居西干), 김알지(金閼智)의 '알'과 같다. 왕을 조금 다르게 말한 것뿐이지 모두 당시에 서로 통하던 말들이었다. 탐라국의 을나(乙那)와도 통한다는 추정이 있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선 '어라'가 '아리'와 같으며 '크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만약 한강의 옛 이름 '아리수'의 '아리'가 '한'과 마찬가지로 '큰'을 의미했다는 설을 따르면 이 주장도 성립된다. 그렇다면 '어라하'는 '대왕'과 같은 말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어라하는 '아리'(크다)+'하'(지도자)가 합쳐진 말로서, 건길지와 어라하는 사실 같은 뜻인데 말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다르게 표기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방언연속체로서 발음이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고, 백제의 지배층은 고구려에서 넘어왔는데 피지배층은 마한 토착 세력이 컸기 때문이다. 고구려에서도 개차(대왕)이라는 칭호가 있기도 하다.

2.2. 건길지

'건'(鞬)은 '큰'의 음역으로 보이며 '지'(支)는 존칭 접미사로 고구려, 신라, 가야의 지도층의 칭호 간지, 한기(干支, 旱岐) 막리지(莫離支)와 오늘날의 '아버지', '임자'에서 찾을 수 있다. '길'(吉)은 '길다'('자라다'의 옛말)의 어근일 수 있다.

길지(吉支)는 고대 한국어을 뜻하는 낱말이었므로 '건길지'는 큰(鞬)+왕(吉)+높이는 말(支)로 풀이된다. 따라서 원래 뉘앙스는 현대어로 치면 '대왕님'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선조대에 발간된 광주판 《천자문》에서 에 '님금'이라는 훈을 달았으면서 에 '긔ᄌᆞ 왕'이라는 '훈'과 '음'을 달고 있는데, 이 때의 긔ᄌᆞ가 바로 吉支(길지)라는 것이 유력하다. 다만 吉支(길지)의 支(지)는 '기'로 발음되었으므로 정확히는 길사(吉士) 길차(吉次)가 긔ᄌᆞ에 해당한다.[11][12]

원래 발음을 재구하려는 연구에서는 원래의 발음을 큰긔ᄌᆞ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3. 기록 관련

어라하와 건길지에 대한 말이 쓰인 《주서》는 당태종 대에 위징(魏徵)의 총괄 아래 영호덕분(令狐德棻, 583~666) 등이 서기 629년에 쓰기 시작하여 636년에 편찬을 완료한 책이다. 책 자체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북주(北周, 557∼581)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쓰였으며 북주가 있던 시대나 《주서》가 쓰인 시대 모두 백제가 한참 남쪽의 수도인 사비성(현재의 부여군)으로 천도한 이후(538~660)였다.
습속에 재(宰)를 길(吉)이라고 일컬으니, 고로 그 후예의 성씨를 길씨(吉氏)로 삼았다.
《신찬성씨록》 〈키치타노무라지(吉田連)씨〉

한편 《일본서기》에서는 한반도의 왕들을 고니키시(コニキシ), 고키시(コキシ) 등으로 일컫는데, 이것은 '건길지'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키시길사(吉士, 吉師)로 음차하거나 (君)으로 쓰고 석독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구려어로 어라하와 같은 말로 보이는 오리코케. 고니오루쿠와 동의어로 보이는 오리쿠쿠[13]가 적혀 있다. 현대한국어에서 뜻이 비슷하면서 소리도 유사한 단어로는 올케가 있으나 연관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알렉산더 보빈은 동사 '오르다'와 동계어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 밖에도 태자를 고구려는 마카리요모, 백제는 고니세시무라고 한다고 적혀 있다. 이외의 백제어로 하시카시(夫人, 고대 일본어 발음으로는 파시카시), 에하시토(女郞, 고대 일본어 발음으로는 에파시토)가 있다. '에하시토'는 현대어 '아가씨'와 관련성이 주목된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 이후 왜국에 체류하던 부여선광지토 천황에게서 구다라노코니키시씨(百濟王氏)를 하사받았다. '구다라노코니키시'에서 코니키시는 '건길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본어가 아니다. 따라서 구다라노코니키시씨는 현대 한국 한자음으로 옮기면 백제건길지씨가 된다.

일본서기》에는 백제 근초고왕에 대해 “백제인들은 왕을 니리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어 ‘니리무’ 혹은 니리므가 말모음 ‘ㅜ/ㅡ’와 자음 ‘ㄹ’을 잃고 니임으로 변한 뒤에 다시 줄어들어 현대 한국어의 이 됐다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님'의 중세 형태인 '님〯'은 상성이기 때문에 고대 한국어 시절에는 2음절 단어였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 고대 한국어 川理(*NAri, *나리)가 중세 한국어 '냏〯'로 변한 바 있다.

사실이라면 "임금," "임자" 등과도 관련이 있게 된다. 본래 각각 "님〯금〮," "님〯잫"였다가 현대의 모습으로 변형된 것이기 때문. 다만 이는 한국학자들이 일본서기에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나온 최근 견해로, 님금의 어원에 관한 전통적인일본서기 안보던 시절 견해는 신라의 왕칭 닛금/니사금(尼師今)), 혹은 고조선의 왕칭 왕검(王儉)의 향찰로 보는 견해[14] 등이 있다. 절충설로는 원래 '-검/-금' 등에 '왕'이라는 뜻이 있었는데 이것이 '님〯'과 합쳐진 것이라는 설도 존재한다.[15] 즉 고대에는 '왕검', '닛금', '매금' 등 다양하게 이용되었으나 중세에 들어서 용례가 '님금'으로 좁혀졌다는 것.[16]

다만 그 '니리무'가 고대 한국어 전체에서 전반적으로 통용되었는지 백제에서만 쓰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동일 출처인 일본서기에서 가야의 왕칭으로 "니림"(主)[17]이 언급되는데, 관련 연구가 지지부진해 이렇다 저렇다 단언하기 힘들다. 알렉산더 보빈의 경우 백제어 主를 *nyerim(*녀림)으로 재구하고, 중세 한국어 '님〯'의 원형을 *nyerim의 동계어 또는 방언인 *nilim(*닐림)으로 보았다.#

4. 미디어에서


미디어에서 이 호칭을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작품은 사극영화 황산벌이나, 그나마 대중적으로 알린 작품은 KBS 사극 근초고왕이었다.

2003년 개봉한 한국의 정통 사극영화 황산벌에서 백제 등장인물들이 의자왕을 '어라하'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등장한다. 물론 전라도 사투리 억양 때문에 모르는 사람에게는 들리기는 그냥 '어-라'로 들리고, 역사도 사투리도 모른다면 이 말도 그냥 '전라도 사투리'로만 여겨지는 게 문제이다. 이 영화에서 백성들은 왕을 '건길지'라고 부른다.

또한 여러모로 말은 많지만 복식과 소소한 고증은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극인 근초고왕에서는 아예 정식으로 이 명칭을 사용한다. 작품에서는 고대 삼국시대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언어적 고증을 시도하였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언어가 바로 어라하한강의 옛말인 욱리하였으며, 그 외에도 바람들이 돌부리 능이라든가 호로하 등의 옛 지명과 고유어 등을 사용했다. 드라마가 성공했다면 이러한 언어들이 조금 더 대중적으로 알려졌겠으나, 안타깝게도 묻히고 말았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어라하는 고증했으면서 왕비를 부를 때 쓰는 어륙은 빼먹고 왕후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 '어라하'라는 명칭은 후속작 광개토태왕에서 다시 사용했는데, 이 드라마 역시 망했고, 이후 그 다음작인 대왕의 꿈에서 백제와 신라의 왕의 명칭을 대왕으로 사용하면서 완전히 잊혀졌다.

2019년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는 부족연맹체 국가 아스달 연맹 내의 각 부족장을 칭하는 칭호로 사용된다.


[1] 오리코케[2] *어라가[3] 오루쿠[4]일본서기》에선 고구려 여왕의 칭호로 나오는데 고구려어인지 '백제에서 고구려 여왕을 부른 이름'인지는 불명.[5] *ᄋᆞ륵[6] 코니키시[7] *근기지[8] 반도 일본어가 실존했다는 전제 하에 반도 일본어는 고대 일본어와 다소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일단 현전하는 고대 일본어를 비롯한 일본어족 언어/방언들에서 ~지 형태의 존칭접미사는 확인되지 않았다.[9] 그러나 《삼국지》 왜인전을 보면 왜인의 관리 중 이지(爾支), 이지마(伊支馬), 미마획지(彌馬獲支) 등의 칭호가 등장한다.[10] 더 멀리 올라가면 부여에서 처음 사용된 칭호이다.[11] 《남사》(南史)에 신라의 관명(官名)으로 자분한지(子賁旱支), 일한지(壹旱支), 일길지(壹吉支) 등의 관명이 적혀 있다. '한지'는 가야의 '한기'(旱岐)와 같은 것으로 왕, 지도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중 일길지(壹吉支)가 건길지와 형태가 같은데 이로보아 건길지의 支 또한 '기'로 읽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支자의 중고음이나 언어학자의 백제어 재구를 따르면 당시에도 '지'가 맞았을 수도 있다.[12]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으나 기자조선설의 그 기자와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견해도 있다.[13] 정부인(正夫人)을 마카리오리쿠쿠로 적고 있다.[14] '왕검' 자체가 향찰식 훈주음종 표기일 가능성이 있다. 즉 王이 훈이요 儉이 음이라는 것.[15] 그리고 이 '-금'을 '크다/큼'과 연결시키기도 한다.[16] 위키낱말사전에서는 이 절충설을 기재해 놨으며, 일본어 君(きみ)가 '-금'에서 차용되었을 가능성도 소개하고 있다.[17] 정확히는 쿠니노니림(国の主: くにのにり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