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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01:28:37

왕들의 취미

1. 개요

뭔가 색다른 취미를 가진 군주들의 취미 일람. 다만 이는 정말 색다른 것일 수도 있고 왕답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2. 아시아

2.1. 한국

2.1.1. 고구려

2.1.2. 백제

2.1.3. 신라

2.1.4. 고려

2.1.5. 조선 ~ 대한제국

2.2. 중국

2.2.1. 상나라

2.2.2. 주나라

2.2.3. 춘추전국시대

2.2.4. 진나라

2.2.5. 한나라

2.2.6. 삼국

2.2.7. 서진

2.2.8. 남북조시대

2.2.8.1. 북조
2.2.8.2. 남조

2.2.9. 수나라

2.2.10. 당나라

2.2.11. 오대십국시대

2.2.12. 송나라

2.2.13. 금나라

2.2.14. 명나라

이분야의 끝판왕. 명 4대 암군 참조.

2.2.15. 청나라

2.3. 일본[13]

2.3.1. 헤이안 시대

2.3.2. 가마쿠라 시대

2.3.3. 무로마치 시대

2.3.4. 센고쿠 시대

2.3.5.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2.3.6. 에도 시대

2.3.7. 현대

2.4. 몽골

2.4.1. 몽골 제국

2.5. 우즈베키스탄

2.5.1. 티무르 제국

2.6. 티베트

2.7. 브루나이

3. 유럽

3.1. 네덜란드

3.2. 덴마크

3.3. 독일

3.3.1. 프로이센 왕국

3.3.2. 바이에른 왕국

3.4. 스웨덴

3.5. 영국

3.6. 프랑스

3.7. 이탈리아

3.8. 그리스

3.8.1. 헬레니즘 제국

3.8.2. 근현대

3.9. 러시아

3.10. 불가리아

3.11. 로마

3.11.1. 로마 제국

3.11.2. 바티칸(교황)

3.12. 튀르키예

3.12.1. 오스만 제국

4. 중동

4.1. 이집트

4.1.1. 고대 4왕조

4.2. 이슬람 제국

4.2.1. 압바스 왕조

4.3. 이집트 왕국

4.3.1. 무함마드 알리 왕조



[1] 물론 한 사람이 음식을 이렇게 많이 먹기는 힘들기 때문에 무열왕의 치세가 그만큼 풍요로웠음을 암시하기 위한 기록일 가능성이 크다.[2] 즉위 후 제일 먼저 죽인 생물이 선왕 성종이 키우던 사슴이었다.[3] 조선시대의 잡채는 다양한 종류의 채소와 고기를 정갈한 모양으로 다듬고 채썬 후 삶거나 볶아서 만든 고급 요리였다. 이충은 직접 땅을 파서 온실을 만들어 한겨울에도 신선한 채소를 재배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그가 만든 잡채 맛의 비결이었다고 한다.[4] 도리어 개혁군주로 손꼽히는 영조의 손자 정조야말로 성리학 원리주의와 복고주의를 신봉하여 문체반정을 통해 옛날의 글쓰기 방식과 다른 소설류 등을 탄압하였다.[5] 당장 일본만 해도 자동차를 탄 최초의 군주는 다이쇼 덴노이다.[6] 먼 훗날의 제위왕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7] 그 자신부터가 호복기사 개혁을 추진할 정도로 군사적 안목이 출중했다.[8] 이에 분노한 혜문앙의 측근 인상여가 그 자리에서 소양왕을 협박하여 분부를 연주할 것을 요구하여 복수한 일화도 유명하다.[9]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했을 당시에도 범증항우에게 "유방처럼 여색을 즐기는 놈이 관중에 들어가서도 여자를 밝히지 않으니 이는 분명 야심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할 정도였다.[10] 영제가 특히 돈에 대한 집착이 심했던 것은 어린 시절에 무늬만 황족일 뿐 매우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제가 후사를 남기지 못한 상태에서 요절하는 바람에 5촌 조카뻘인 영제가 즉위하게 된 것이다.[11] 조조의 손자병법 주석본은 이른바 《위무주손자》라고도 불리는데, 현대인들이 읽고 있는 손자병법의 기본 판본이기도 하다.[12] 다행히 유욱은 살았는데 그의 막장행각이 심해도 재위가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전폐제가 먼저 죽었다.[13] 쇼군들도 무사이기 때문에 검술과 도검 수집 등의 취미는 대부분 있었으므로 본 항목에서는 생략.[14] 그것도 있지만 당시 사무라이들은 체면 상의 이유로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 시비가 붙으면, 결투를 벌여서 시비털은 상대를 베는 기리스테고멘을 해야했다. 당연히 그런 귀찮은 일을 만들기 싫어했던 부하들은 덴뿌라를 사러가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한 바 있었다. 결국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게 인적이 드문 오밤중에 복면을 쓰고 변장해서 덴뿌라를 사가는 것이었다.[15] 몽골 제국 이전 인물이지만 카마그 몽골과 몽골 제국은 주류민족은 같으니 서술[16] 칭기즈 칸 조차도 술을 적게 먹는 사람은 봤어도 아예 먹지 않는 사람은 본 적이 없으며, 그런 사람이 있다면 크게 중용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17] 오고타이의 동생인 톨루이도 형 못잖은 주당으로 그 역시 알콜 중독으로 사망했다.[18] 고려가 투항했을 당시에 당 태종도 꺾지 못했던 고려가 항복했다며 기뻐했고, 훗날 손자인 충선왕이 한 고조와 당 태종을 존경한다는 말을 듣자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어떻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19] 차트를 달리는 남자 '재벌들의 괴짜 취미'에서 4위에 랭크됐다.[20] 그 이외에도 취미랄 건 아니지만, 왕의 날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DJ들의 공연이 있자,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춤을 춘 적도 있다. 원래 네덜란드가 왕실 관련 행사에 DJ를 부를 정도로 문화적으로 개방된 면이 있지만, 빌럼알렉산더르는 이런 문화를 감안해도 대단히 소탈하고 파격적인 면모가 많다.[21] 주변국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로 지독하게 절약했고 그걸로 마련한 돈을 군대에 투자해 부국강병의 기초를 다졌다. 특히 게으른걸 싫어할 정도로 본인은 성실했다.[22] 네번째 부인인 클레페의 앤과 결혼하자마자 사이가 틀어진 이유가 이것이다. 원래는 미인으로 소문난 여인이라하여 결혼을 했더니, 상상했던 것보다 못난이라서 1차로 실망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런대로 매력점은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일단은 같이 살기로 했으나, 알고보니 할 줄 아는게 뜨개질 밖에 없었을 만큼 클레페의 앤이 일자무식이라서(클레페 공국은 딸들에게 신부수업 이외의 교육을 거의 안 시킬 정도로 대단히 보수적이었다고 한다) 2차로 멘붕했던 것이다. 그래서 단단히 빡친 나머지, 이 결혼을 알선한 토머스 크롬웰목을 날려버리고 이혼해버렸다.[23] 중세시대의 테니스는 라켓 없이 손으로 공을 쳐서 주고 받는 핸드볼과 비슷한 스포츠였다. 테니스용 라켓이 만들어진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다.[24] 이 점은 아돌프 히틀러와 비슷하다. 그래도 히틀러는 근대 시대 이후 본인이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창시한 사람답게 비록 고양이를 싫어했어도 루이 14세처럼 고양이들을 불태워 죽이거나 하진 않았다.[25]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놓고 알렉산드로스가 헤파이스티온의 허벅지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고아스는 본래 페르시아의 대왕 다리우스 3세의 캐터마이트였던 이력이 있으며 게드로시안 사막을 횡단하던 중 춤 경연대회에서 바고아스가 우승하자 알렉산드로스가 그에게 키스를 해주었다는 기록이 전한다.[26] 엄밀히 말하자면 이 사람은 생전에 제위에 오르지는 못했다.[27] 재료 중 하나로 송로버섯이 들어갈 정도였다.[28] 다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가톨릭 성직자들 대체로 타락하여 교리를 어기고 아이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29] 말타고 멧돼지를 쫓다가 낙마를 하면서 죽었다는 설도 있다.[30] 정확히는 포도주가 악마의 것으로 지정되어 금지되었고 일부 허용되는 술도 있었는데, 셀림이 즐겼던 건 포도주다. 레판토 해전으로 이어지는 키프로스 침공도 이 섬이 질 좋은 포도주 산지라는 이유였다고도 전해질 정도.[31] 그나마 1656년부터 2차 빈 공방전 이전까지 대재상을 역임한 3명의 쾨프륄뤼 가문출신들이 유능한 덕분에 제국의 사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황제자릴 지킬수 있었다. 그러나 3번째 쾨프륄뤼 가문출신인 카라 무스타파 파사를 본인이 처형한 이후 헝가리를 내주는 참사를 내며 황제자리에서 내려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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