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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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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고려 제18대 대왕 의종 | 毅宗 | |||
의종 상상 어진.[1] | |||
출생 | 1127년 5월 30일[2] (음력 인종 5년 4월 11일) | ||
고려 개경 개성부 연덕궁 (現 경기도 개성시) | |||
즉위 | 1146년 4월 17일[A] (음력 인종 24년 2월 28일) | ||
고려 개경 개성부 연덕궁 대관전 (現 경기도 개성시) | |||
사망 | 1173년 11월 14일[B] (향년 46세) (음력 명종 3년 10월 1일) | ||
고려 동경 곤원사 북쪽 연못 (現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일대) | |||
능묘 | 희릉(禧陵) | ||
재위기간 | 고려 왕태자 | ||
1133년 4월 1일[5][6] ~ 1146년 4월 17일[A] (음력 인종 11년 2월 17일 ~ 인종 24년 2월 28일) | |||
고려 제18대 대왕 | |||
1146년 4월 17일[A] ~ 1170년 10월 20일[9] (음력 인종 24년 2월 28일 ~ 의종 24년 9월 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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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창(昌) → 철(徹) → 현(晛) | ||
부모 | 부왕 인종 모후 공예왕후 | ||
형제자매 | 5남 4녀 중 장남 | ||
배우자 | 장경왕후, 장선왕후 | ||
후궁 | 무비 | ||
자녀 | (적)1남 3녀, (서)3남 9녀[10] | ||
종교 | 불교 | ||
자 | 일승(日升) | ||
묘호 | 의종(毅宗) | ||
시호 | 강과장효대왕(剛果莊孝大王)[11] | ||
절일 | 하청절(河淸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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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제18대 대왕.묘호는 의종(毅宗), 시호는 장효대왕(莊孝大王). 제17대 인종의 장남이자 공인된 후계자였다. 휘는 현(晛). 자는 일승(日升). 자는 대부분 부모가 지어주니 의종의 자도 아버지인 인종이 지어주었을 것이다. 인종이 지어준 자의 뜻은 '뜨는 해', '떠오르는 해'인데 비해 의종은 결국 '저문 해'가 되어버렸다.
제8대 현종 이후 지속되어 온 고려 왕조의 황금기에 종말을 고한 암군이자 무신정변으로 인해 폐위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은 군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의외로 재위 기간이 24년으로 긴 편이다.
2. 묘호, 시호, 존호
공식 묘호는 '의종'(毅宗)이다. 본디 동경으로 쫓겨나 참혹하게 시해당한 의종은 묘호도 시호도 없었으며 제사조차 모셔지지도 않았다. 그를 불쌍하게 여긴 백성 필인이 작은 무덤을 만들어 놓기는 했다.이를 고려 내 중방 반대파가 문제삼자 부랴부랴 올린 묘호가 바로 '의종'이다. 뒤늦게야 천자의 대우를 받은 셈이다. 시호는 '강과장효대왕'(剛果莊孝大王). 원래 시호는 동생 명종(제19대)이 올린 '장효대왕'(莊孝大王)으로 꽤나 다급하게 올려진 시호다. 후손인 고종(제23대)이 '강과'를 추가했다.
제18대 의종 대부터 제24대 원종까지 고려 대왕들의 시호가 크게 줄어드는데 이는 무신정변이 터지고, 몽골과의 전쟁이 시작되어 국가가 혼란스러워진 것과 왕권 추락 등의 원인이 있다. 단 제22대 강종은 예외로 그의 아들인 고종과 손자인 원종이 계속 추가했다.
생전 의종은 자신에게 표문을 지어 스스로를 '만승'(萬乘), '천'(天)으로 표현했고, 일본이 자신을 '황제'라 부른다며 자찬했다. 신하들로부터 '대평호문지주'(大平好文之主)라는 존호를 받은 적이 있다.
3. 생애
자세한 내용은 의종(고려)/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4. 가족관계
- 제1비: 장경왕후 김씨 - 강릉공 왕온의 장녀
- 효령태자(孝靈太子) - 강양공 왕감[12]의 딸과 혼인
- 경덕궁주(敬德宮主) - 연창공(延昌公) 왕평(王評)[13]과 혼인
- 안정궁주(安貞宮主) - 함녕백(咸寧伯) 왕박(王璞)[14]과 혼인
- 화순궁주(和順宮主) - 광릉공 왕면[15]과 혼인
- 제2비: 장선왕후 최씨 - 최단(崔端)의 딸
- 후궁: 궁인 무비
- 3남 9녀[16]
5. 평가
자세한 내용은 의종(고려)/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6. 기타
- 《고려사절요》엔 금나라에서 사신이 왔을 때 사신이 김돈중의 관상을 봐주었다는 말을 듣고, 의종이 자신의 관상도 봐 달라고 하면서 수명을 물었는데, 사신은 "왕께서는 수명이 셀 수 없을 만큼 길고 기셔서, 조정의 노•소 신료들이 다 죽고 난 뒤에야 임천지환(任川之患, 물가에 다다라서 생기는 고민)이 생길 듯 합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결국 그 말이 제대로 실현되고야 말았다.
- 언젠가 거북이 모양을 한 금덩이가 발견되어 의종에게 진상된 적이 있었다. 신하들은 의종의 성덕(聖德)에 감응해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며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 '대평호문지주'(大平好文之主)라는 거창한 존호가 있었다. 신하들이 의종이 쓴 시를 보고 바친 존호다.
- 의외로 의종은 손자까지 보아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고려사》 <정중부 열전>, 《고려사절요》엔 의종의 손자를 태손(太孫)이라 부르고 있다. 《고려사》 <의종 세가>엔 단순히 왕손(王孫)으로만 등장한다. 의종의 태손은 고려 최초의 태손이다. 두 번째는 고종의 태손인 제25대 충렬왕이다.
- 의종은 기존의 5묘 9실제 태묘를 7묘 9실제 태묘로 바꾸어 완전한 천자식 태묘를 완성한 임금이다. 그동안 고려는 5묘제를 쓰면서 방을 9개로 맞추고, 묘호를 올려, 불완전한 천자식 종묘를 사용해왔다. 이후 고려의 태묘는 원종 대까지 7묘 9실제가 유지된다.
다만 불완전하다는 단정은 주나라 예법을 절대시한 현대인이 과거의 생활상을 멋대로 재단하여 생긴 선입견으로 중국 역시도 국초에는 7묘를 전부 채우지 못했다. 즉 예법이란 그 자체가 사회를 완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막론하고 당시 편의와 목적에 따른 제도가 탄력적으로 운용되었을 뿐이다.
- 의종은 종묘에 별묘(別廟)를 추가한 임금이기도 하다. 태묘엔 의종까지 이어지는 정통성을 가진 임금을 모섰다. 바로 1대 태조(건국군주), 2대 혜종(태조 공인 후계자), 8대 현종(중흥군주 및 왕실의 중시조), 11대 문종(전성기 및 왕실의 중시조), 12대 순종(문종 공인 후계자), 13대 선종(숙종이 '양위' 받은 임금, 14대 헌종은 무시됐다.), 15대 숙종(선종 '공인' 후계자, 의종의 3대조), 16대 예종(숙종 공인 후계자, 의종의 2대조), 17대 인종(예종 공인 후계자, 의종의 부왕). 그 외 의종의 정통성과는 큰 연관이 없는 군주인 3대 정종, 4대 광종, 5대 경종, 6대 성종, 7대 목종, 9대 덕종, 10대 정종, 14대 헌종은 무시되어 신위를 없애는 대신 별묘로 옮겨 계속 제사를 지냈다. 원래는 재위 중인 군주의 정통성이나 직계와 관련이 없는 임금은 신위를 꺼내 땅에 묻어야 하지만 따로 모아 제사지내는 방식을 정한 것이다. 나중에 이 방식은 조선왕조의 세종대왕이 사용한다.
- 의종이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 국서를 바친 적이 있었다. 당시 금은 고려의 상국이었으니 고려는 신하의 예로 국서 양식을 갖춰야 했다. 그러나 의종은 표문(신하가 천자에게 보내는 글)에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고 국서를 가져간 사신을 가리켜 '배신'(陪臣)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의종은 금 황제의 신하(제후)이니 의종의 신하는 신하의 신하, 즉 배신(陪臣)이다. 하지만 의종은 이름을 쓰기 거부하고 배신이라고도 안해 표문의 양식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 의종과 남송의 간신 진회는 이상한 인연이 있었다. 고려의 이심이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진회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엔 고려의 지도가 동봉되어 있었는데, 이심은 진회에게 '송은 금을 공격하겠단 핑계로 고려에게 길을 빌려달라 하고 우리가 안에서 도와주면 고려를 차지할 수 있다.'란 내용을 썼지만, 편지는 바다를 건너지도 못하고 중간에 뺏겨 의종에게 전달됐다. 이심은 당연히 죽고 가족은 섬에 유배당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계획인데 일단 남송이 바다를 건너 고려를 공격할만한 군사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금나라가 호시탐탐 남송을 노려보고 있는 와중에 남송이 군대를 빼 고려로 보낸다는 모험을 했을지도 의문이다. 또한 고려가 아무리 약해졌어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닌데 왜 이런 바보같은 반란 도모를 시도했는지 알 수 없다. 이 일은 의종이 재위한 지 얼마 안된 2년 차에 일어나 고려는 아직 인종 대의 국력이 있었다.
- 의종 대엔 수많은 신하들이 그의 환심을 사 지위를 올리고자 했다. 한번은 귀족 자제들과 학교 유생들간에 아부 배틀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귀족 자제들은 막강한 재력으로 보석, 그림, 귀중품을 준비하고 서커스단을 데리고 와 왕이 남송, 여진, 탐라국, 일본 등에게서 조공을 받는 행사를 재현해 귀금속과 청색, 홍색 일산을 바치고 고급 말 2마리를 바쳤다. 반면 학교 유생들은 섭외 능력이 떨어지고 재력도 없으니 늘 진상품이 적었다. 《고려사》 <의종 세가>의 표현으론 100의 1도 안되는 양만 바쳤다고 한다. 결국 학교 유생들은 빚을 지고서 고급 말 6마리를 바쳤다. 하지만 이후 유생들은 계속 빚을 갚지 못해 늘 채권자들에게 욕을 먹어 백성들이 조롱했다고 한다.
- 서경유수 조위총이 아니었으면 묘호나 시호, 능호는커녕 장례식조차 받지 못할 뻔했다. 《고려사》 <정중부 열전>, <조위총 열전>에 따르면 의종은 죽은 뒤 시체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다가 누군가가 겨우 시냇가에 묻었다고 한다. 조위총이 의종을 핑곗거리로 내세우지 않았으면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 등 중방의 무신들은 절대 그를 굳이 언급하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대승 같이 중방 소속이 아닌 자들이 대놓고 이의민을 왕을 죽인 역적이라 비난한 걸 보면 중방이 약해지고 묘호와 시호가 올려졌을 가능성도 높다.
- 의종이 유배될 당시 동경(경주시)은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던 <정과정>의 작가 정서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정서는 정항과 강릉군부인의 4남으로 왕국모의 외손자였다. 심지어 의종이 거제에 온 뒤 한 달 뒤에 정서가 복권됐으니 같은 지역에서 같이 산 것이다.
- 고려시대의 문집인 《보한집》 <권중>엔 의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의종이 남황(南荒)으로 옮겨졌을 때 이기(李琪)라는 화가가 의종의 어진을 그렸지만, 이름을 붙히는 등 마감을 하지 않고, 단지 동도초당(東都草堂)이란 곳에 걸어둔 채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시를 보면 이기가 그린 의종 어진은 곤룡포를 입은 모습이 아니라 복두에 학의, 즉 평복을 입은 초라한 모습이었던 걸로 보인다.
- 고려시대의 문집인 《파한집》 <권하>에도 의종의 이야기가 나온다. 의종이 조령을 내려 고려 각지에 있는 사원, 역참에 있는 시를 수집해오라고 했다. 그런데 당시 장관급 직위를 맡고 있던 신하가 썼던 시가 의종에게 보내졌다. 시의 내용은 대략 '밑을 쥐어짜 위에게 잘보이는 것이 풍속이 됐고, 온나라가 따르고 있다. 뭐가 부끄럽냐? 올바른 일을 하는게 맞지.'였는데 의종을 크게 비꼬고 있었다. 의종은 이 시를 읽고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었고, 좌•우의 신하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서워 겁을 먹었다고 한다. 글에 따르면 아무 일도 없었다. 다만 어떤 신하 한 명이 관례를 깨고 두 차례나 변방에 나가야 했을 뿐.
7. 대중매체
}}} ||- 과학&역사 학습만화 《Why?》시리즈 <쫒겨난 임금> 편에서도 등장하는데 원 역사대로 가다가 무신정변이 터지자 겁을 먹고 정중부에게 왜 이러는 거냐고 묻자 정사는 안 돌보고 놀기만 하는 놈을 어떻게 섬기냐는 말을 듣는다. 이후 김보당의 난이 실패로 끝나자 무신들이 날 그대로 둘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하다 자기를 찾아온 이의민에게 죽는다.[19]
- 맹꽁이 서당에선 문극겸의 간곡한 충언에 저놈의 입을 꿰멨으면..이라 독백하나 정작 쫒겨나게 되자 문극겸 말을 들었어야 했다며 후회한다.[20] 김보당의 난이 일어나자 충신이라 칭하며 꼭 성공하라 하지만 역사대로 실패하고 이의민에게 살해당한다. 이때 허리가 부러져 죽는 게 아닌 냄비 속에 넣어져 밧줄로 봉해진 다음에 강물에 던져지는 최후를 맞게 되자 점쟁이의 말이 이런 뜻이었던 거냐며 한탄한다.
- 대체역사웹소설 차돌박E 작가의 2019년 《근육조선》과 2022년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그리고 2023년 신작 《고려황제! 무신정변을 막아라!》에선 주인공이 의종에 빙의한다.
- 2020년 출시된 《한국사 RPG - 난세의 영웅》에선 무신에겐 대놓고 찬밥을 주고 문신은 우대해주는 무능한 임금으로 그려졌다는 반응이 나올 만큼 안좋게 묘사되었고,[21] 무신정변 때 폐위당했다는 언급으로 등장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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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폐행1(嬖幸一)」 | ||||||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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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 윤길보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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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6px -11px" | <rowcolor=#670000,#fedc89> 127권 「반역1(叛逆一)」 | 128권 「반역2(叛逆二)」 | 129권 「반역3(叛逆三)」 | |||
환선길 · 이흔암 · 왕규 · 김치양 · 강조 · 이자의 · 이자겸 · 척준경 · 묘청 (정지상) | 정중부 이광정 송유인 · 이의방 · 이의민 · 정방의 · 조원정 석린 |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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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 다지 · 홍복원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 |||||
132권 「반역6(叛逆六)」 | ||||||
신돈 | ||||||
133·134·135·136·137권 | ||||||
신우(우왕) (신창(창왕)) | }}}}}}}}}}}} |
[1] 이임춘 作. 상상 어진으로 거제시에서 의종 추념제례에 사용된다.#[2] 율리우스력 5월 23일[A] 율리우스력 4월 10일[B] 율리우스력 11월 7일[5] 율리우스력 3월 25일[6] 인종 21년(1143년)에 태자로 책봉됐다는 기록도 있다.[A] [A] [9] 율리우스력 10월 13일[10] 서자와 서녀는 모두 애첩 무비 소생. 이들은《고려사》종실열전에는 오르지 못하고 윤인첨의 제신열전에서만 짧막하게 언급되는데, 무비의 딸과 혼인한 최광균이 무비 덕에 갑자기 출세하여 많은 사대부들이 이를 갈았다고 기록되어 있다.[11] 《고려사》 <의종 세가> 마지막 조 기준.[12] 숙종의 손자[13] 한남백(漢南伯) 왕기(王杞)의 아들로 현종의 5대손[14] 한남백(漢南伯) 왕기(王杞)의 아들로 현종의 5대손[15] 공화후 왕영의 아들로 문종의 4대손[16] 서녀 중 하나는 최사위의 후손인 최함(崔諴)의 3남 충주목부사(忠州牧副使) 최광균(崔光鈞)과 혼인하였다.[17] [개성 고려왕릉 단독연재] ⑪짧은 재위 기간만큼 초라한 순종묘[18] 北방송 "황북 장풍군서 고려 13대.18대 왕릉 발굴"[19] 이때 죽어가며 독백으로 저승에 있는 선왕들을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인가...라고 한다.[20] 군졸이 그걸 보고 뉘우치며 울어도 때는 늦으리~라고 노래하는 건 덤.[21] 해당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무신정변> 편을 플레이하면서 의종이 양아치처럼 대놓고 무신한테 찬밥주고 문신들한테는 우대해주는 그런 무능한 임금으로 그려졌지만 나는 대세의 따른 처세술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 일족 내지는 문벌귀족 세력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며, 의종은 그들을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측근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그들은 김부식이 아니라 김돈중, 한뢰 같은 무능한 인간들이였으며, 이사람들이 무신들을 괜히 자극시켜 결국 조정을 피바다로 물들이고 말았다. 의종은 그들의 비위에 맞춰줘야만 해서 겉으로는 무신들을 무시했어도 속으로는 무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설령 있더라도 문벌귀족보다는 아니었을것이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다음 날 정중부를 바로 풀어준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는 살기 위해서 발악을 했고, 대세를 따르고 약자를 버리는 삶을 택했지만 결국 약자에게 베인 불우한 임금이라고 생각한다. 의종이 과연 무능했을까?"라고 표현했으나, 다른 이용자들은 의종에 대해 24년 동안 재위하면서 뭐 하나 업적을 제대로 남긴게 없고, 후대에 악영향을 준 암군이라는 의견과 그에 공감한다는 의견, 이의민도 잘못했지만 무신정권의 원인이니까 의종도 사실 할말이 없다고 본다는 반응을 보였다.